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로 세상읽기
궁지에 몰린 인간들, 그들만의 ‘지푸라기’ 생존법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이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칸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돈을 놓고 사라진 손님. 그리고 치졸한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형사 료스케, 신야를 만나 불륜관계를 맺는 미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다. 어딘가에서 관계가 엮이지도 않는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서로를 모른 채, 오로지 각자의 스토리만을 진행해 간다. 이런 형식의 미스터리가 그렇듯이 그들은 어딘가에서 마침내 엮일 것이다. 모든 인물과 이야기가 하나로 뭉치는 그 순간이 이런 형식의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대체 왜 살아가는가, 라고 묻고 싶은 인생들이 있다. 안다. 그들 나름의 곡절이 있고, 이유가 있고, 때로 도망칠 수 없는 족쇄가 단단히 매여 있기도 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안타까움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나의 선택이 어그러지면서, 계속해서 벼랑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는. 그런 비루한 인생을 잘 보여주는 작가로는 『아웃』과 『그로테스크』의 기리노 나쓰오가 있다. 『아웃』에서는 매 맞는 주부, 가사노동에 지쳐 메말라가는 주부 등 고난의 길에 서 있는 여인들을 지독하게 보여준다. 『그로테스크』는 더욱 더 지독하다. 기리노 나쓰오는 결코 그들에게 연민을, 동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사슬을 끊기는커녕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지옥으로 점점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만 한다.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그들도 그렇다. 화류계 여인에게 빠져 야쿠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궁지에 몰린 악덕 형사 료스케. 선물투자에 빠져 빚을 지게 되자 생활비도 주지 않고 구타를 하는 남편 때문에 매춘을 하게 된 주부 미나, 치매인 노모를 모시면서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로 겨우 살아가는 59세의 칸지.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 같은 것은 한 치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위기를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우울하고 고단하다.
그런데 ‘지푸라기’가 보인다. 사우나에 들어왔다가 잠깐 나갔던 손님이 사라졌다. 옷장 안의 가방을 치우던 칸지는 거액이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미나는 손님으로 만났던 스무 살의 신야와 애인 사이가 된다. 미나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게 된 신야는, 남편을 죽여주겠다고 제안한다. 료스케는 야쿠자에게 진 빚 2천만엔을 당장 갚으라는 협박에 시달린다. 게다가 관내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의 시체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윤락업소 여주인으로 드러난다. 칸지, 미나, 료스케는 저마다 궁지에 몰려 있다가, 도망치는 것은 물론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정말로 구원의 손길인지, 썩은 동아줄인지는 모른다. 다만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 유혹의 손길 앞에서 망설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칸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돈을 놓고 사라진 손님. 그리고 치졸한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형사 료스케, 신야를 만나 불륜관계를 맺는 미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다. 어딘가에서 관계가 엮이지도 않는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서로를 모른 채, 오로지 각자의 스토리만을 진행해 간다. 이런 형식의 미스터리가 그렇듯이 그들은 어딘가에서 마침내 엮일 것이다. 모든 인물과 이야기가 하나로 뭉치는 그 순간이 이런 형식의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간을 둘러싼 약간의 트릭도 있다. 다 읽고 나면 앞의 이야기들을 반추하며 머릿속으로 전체적인 구성을 다시 한 번 짜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형식은 다 읽을 때까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치밀하게 엮인 구성이 좋은 소설이지만, 그것을 감지하기 이전에 읽는 즐거움 역시 대단한 소설이다. 료스케는 악인이다. 늘 부정을 저지르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불량 형사. 미나는 착하지만, 자신의 길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결국은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 칸지는 그나마 올바른 길을 선택하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선대부터 이어졌던 이발소를 왜 그만뒀는지를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시선도 조금 흔들린다. 그런 ‘짐승들’의 이야기가 빠른 템포로 휙휙 흘러간다. 그 짐승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맞물려가면서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감지하게 되면 더욱 흥미롭다. 그들이 대체 어떤 식으로 행동했기에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깨닫게 되면.
소네 케이스케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작가다.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가 ‘흔해빠진 인생을 살며 삶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중퇴하고 사우나 종업원, 만화카페 점장 등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2007년 『코』가 일본 호러소설 대상 단편상을 받았고, 이후 『침저어』가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단편집 『코』에 실린 작품들은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가상의 세계 대신 지극히 현실적인, 너무 너저분해서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려낸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소네 케이스케라는 작가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낸다. 하세 세이슈보다는 조금 가볍지만, 나름의 지독한 세계를 경쾌하게 질주한다. 형식적인 도전도 감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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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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