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유학이 정답일까?
수능공부를 할 때였다. 당시 외국어영역 유명강사 한 명이 어학연수를 반대하는 입장을 살짝 비추었는데 다녀온 사람들이 영어의 유창성보다는 “Oops!” , “OMG!”, “ASAP” 등의 감탄사만 잔뜩 배워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화를 할 때도 영어단어를 섞어 이야기하는 점도 지적했다. “환자분의 상태가 배드(Bad)해서 따른 처방보다는 아큐펑쳐(acupuncture)가 좋을 것 같습니다.” 와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jargon)등이다. 한국어와 영어의 혼용은 사람들과의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도록 한다. 때론 “재수없어.” 라는 생각도 든다.
조기유학의 문제점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유창한 영어와 학벌을 위한 조기유학은 인성교육이나 주도적 학습의 선행학습이 배제되면 언어장벽과 문화적 충격(Culture Shock)라는 경험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생각은 “조기 유학을 보내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배워오니 다른 것들은 상관없다.” 라는 부모들의 생각이다. 영어만 잘한다면 자녀의 인성은 망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조기유학 실패 사례로 꼽는 ‘이태원 살인사건’과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악질 범죄를 생각하면 영어만을 위한 조기 유학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물론 조기유학의 장점도 있다. 두 가지 언어를 배움으로써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언어로써 국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조기유학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조기 유학이 유행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에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실제로 영어를 쓸 상황은 적지만, 영어 학습 시간은 많다. 그러다 보니, 영어학습법도 의사소통의 중점을 두기보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하고 더 복잡한 문장구조를 파악해야 실력이 입증되는 기이한 구조를 갖추게 된다. “영어 점수 = 영어 실력” 과 같은 공식이 생겨버렸다.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는 것일까?
그리고 언어 습득의 결정적시기(Critical period)란?
언어습득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을 살펴보자.
행동주의 가설(Behaviorist Hypothesis)은 인간이 ‘백지상태’로 태어나 수많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의 과정을 겪으면서 주변의 언어를 모방하여 배운다고 말한다.
생득적 가설(Innateness Hypothesis)은 인간의 언어습득 능력이란 타고난 것이고, 인간의 뇌 속에 언어 습득을 할 수 있는 언어습득장치(LAD, Language Acquiring Device)가 존재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물론 생득적 가설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반대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인간은 점차적으로 성장해가면서 복잡한 형태로 언어를 습득하고, 언어의 구조와 규칙을 습득하여 사용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언어 습득의 결정적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 이 점이 조기 유학을 보내려는 배경이 된다. Lenneberg(1967)가 주장한 언어습득의 결정적 시기 가설은 언어습득에서 제한을 가하는 특정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적으로 7세 이하에서 언어를 학습하는데(물론 그 시기를 사춘기까지 보는 주장도 있다.) 가장 효과적이다. 결정적시기를 놓친 후에 제2외국어 학습은 어렵다. 실제로 사춘기 이후나 성인이 되어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의 경우에(물론 개개인의 차이는 있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TED TALKS에서 패트리샤 쿨(Patricia Kuhl, 2010):‘아기들의 언어적 재능’ 의 강의를 보면 이해가 쉽다.
패트리샤 쿨(Patricia Kuhl, 2010) : ‘아기들의 언어적 재능’
실험결과를 통해서 언어는 학습을 위한 결정적 시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기유학의 열풍은 당연한 결과다. 조기유학의 대안으로 나온 것 중 하나로 영어 유치원을 들 수 있다. 한 달 수강료만 해도 학원마다 차이가 천차만별인 영어유치원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좌우된다.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만약 부모의 능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초등학교를 전후로 하여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결정적 시기를 놓친 상황이라면 유학도 영어 유치원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외국에서의 이중 언어 교육외국에서의 이중 언어 교육은 어떨까? 벨기에는 네덜란드어권과 불어권의 반목으로 나라가 갈라질 지경까지 갔었다. 반면에, 룩셈부르크는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사용한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한민국도 늘어나는 동남아 노동자, 이민자들을 고려한다면 앉아서 불구경만 할 상황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중 언어(다중 언어)는 주요 관심사과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중 언어와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럽 공동체에서는 50%가 이중 언어자이며 (27개 유럽 국가, 2007년 통계 기준) 미국도 전체 인구의 20%가 이중 언어자이다. 세계화의 발맞춰 국가 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국가에서 ‘언어’가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유럽의 가장 작은 나라 핀란드를 통해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해법을 찾아보자. 핀란드를 꼽은 이유는 한국어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으로 한국의 영어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큰 나라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국민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꾸준한 우수 영어교사 성장 프로그램과 영어 교사들의 높은 사회적 대우와 보상정책이 만든 결과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유명 어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에서 강의를 맡은 원어민강사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영어에 서툴더라도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어 교사로 초빙해서 강의를 할 정도로 문제점이 많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영어 교사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해외어학연수 프로그램의 도입, 우수 원어민교사 유치를 위한 다양한 지원대책과 철저한 관리 등만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20~30년 후에는 영어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보다는 적을 것이다.
언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2008년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오렌지 아니라 오린지’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위원장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주장으로 여론의 몰매를 맡았다. 이 위원장의 말처럼 유창하게 영어 발음을 하면 영어를 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전 국민에게 언어학의 음성학과 음운론을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과목을 교육하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은 단순히 ‘발음’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는 외국어를 어떻게 학습하고 있는가? 영어학원의 회화반을 수강하거나 프렌즈(friends)와 같은 미드로 학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중에 유명 베스트셀러 영어교재를 구입하여 독학을 한다. 어학인증시험 준비를 위한 수험영어가 대부분이라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우리는 외국어를 학습할 때 현지인과의 만남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는가? 단순히 영어학원에서 두 시간 정도의 회화수업으로 원어민처럼 유창한 실력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하는 꼼수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더 심각한 점은 청취, 어휘, 작문, 독해를 따로 따로 학습한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말 그대로 언어다. 정해진 문제에 답을 찾는 과정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에 언어습득 능력이 배가 되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이 해당 언어를 듣고 모방을 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수행착오를 겪고 언어에 대한 기본 틀을 잡기 때문이다. 이런 수행착오 없이 언어를 유창하게 하려고 하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결정적 시기가 지난 후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이 절망적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결정적시기 가설은 반증하는 다양한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결정적 시기만으로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누구나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원어민처럼 외국어를 구사하고 싶은가? 그럼 당장 밖으로 나가 외국인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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