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키치, 도용, 낙서. 이런 것들도 과연 예술일까? 현대미술은 이런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한다. 더 나아가 이런 작품에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매겨지기도 한다. 왜, 도대체 왜일까? 우리는 현대미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대미술 작품들이 그토록 비싼 이유는 무엇인가?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파는 현대미술 작가들은 정말로 훌륭한 작가들인가? 그들 중 특히 영미권과 중국 출신의 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미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현대미술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런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작품이 팔리는 현대미술 작가 열 명을 들여다보려 한다.
(주1. 객관적인 기준으로 많이 사용되는 아트프라이스(미술시장 분석회사)의 통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나이와 작품 경향 제한 없이 모든 작가들에 대한 통계’와 ‘1945년 이후 출생한 현대작가들에 대한 통계’. 나이와 작품 경향 제한 없이 전체 작가를 대상으로 한 2009년 아트프라이스 통계에 의하면, 1위가 피카소, 2위가 워홀이었다. 3위는 2008년에는 59위였던 치바이쓰가 차지했다. 순위가 급변한 또 다른 예는 라파엘로(1483~1520)가 있다. 그는 2008년에는 54,579위였는데 2009년에는 9위로 뛰어올랐다. 이는 라파엘로의 그림 가치가 1년 사이에 갑자기 엄청나게 급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들의 작품들 자체가 옥션에 나올 필요가 없는 문화재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클래식한 작가들의 대작이 한두 점 옥션에 나온다면 그는 단숨에 명단의 앞 부분으로 점프한다.2009년 순위를 계속 열거하자면, 4위 마티스, 5위 몬드리안(2008년에는 194위), 6위 자코메티, 7위 레제, 8위 드가, 9위는 위에서 말한 라파엘로, 10위는 모네였다. 그런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뒤샹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66위였다(2008년에는 1,781위). 뒤샹은 작품활동을 일찍 중단해 작품이 옥션에서 많이 거래되지 않아 순위가 낮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훨씬 적은 1945년 이후에 탄생한 작가들을 기준으로 한 아트프라이스 통계를 근거로 삼았다. 물론 이 순위가 가장 훌륭한 작가 순이 아님은 분명하다.)
1위에서 1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 미국), 제프 쿤스(1955~, 미국), 피터 도이그(1959~, 스코틀랜드), 리처드 프린스(1949~, 미국), 마르틴 키펜베르거(1953~97, 독일), 데이미언 허스트(1965~, 영국), 천이페이(1946~2005, 중국), 쩡판즈(1964~, 중국), 마우리치오 카텔란(1960~, 이탈리아), 애니시 카푸어(1954~, 영국).
이 순위는 2010년 10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3대 미술시장의 하나인 FIAC(국제현대미술시장)을 계기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술시장 분석회사인 아트프라이스(Artprice)가 발표한 『현대미술시장 2009/2010: 아트프라이스 연간보고서』
(주2: Artprice et Fiac, Le Marchede l’Art contemporain 2009/2010, Le rapport annuel artprice , “Les 500 artistes actuels les plus cotets” ou “Top 500 Artprice Artistes contemporains”. 이 책에서 언급하는 10대 작가 명단이란 ‘가장 비싼 500명의 작가들(1945년 이후 출생)’ 중 처음 열 명의 작가들을 뜻한다.)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945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세계 옥션에서 1년 동안 팔린 작품들의 가격을 정산하여 그 총액으로 순위를 매겼다. 이하 이 책에서 ‘10대 작가’ 라고 할 때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위에 열거한 열 명의 작가들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10대 작가 명단 가운데 비교적 최근 것이면서 가장 흥미로운 명단이 바로 2010년의 것이다.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출신국은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이 작가들의 ‘예술적 고국’을 살펴보면 열 명 모두 다르다. 장 미셸 바스키아(아프리카), 제프 쿤스(미국), 피터 도이그(트리니다드, 캐나다), 리처드 프린스(미국령 파마나 운하 지대), 마르틴 키펜베르거(독일), 데이미언 허스트(영국), 천이페이(중국 상하이, 저우좡周莊), 쩡판즈(중국 베이징, 우한武漢), 마우리치오 카텔란(이탈리아), 애니시 카푸어(인도). 이들의 작품세계에는 이처럼 다양한 예술적 고국에 대한 애정과 자긍이 듬뿍 반영되어 있다.
이 열 명의 작가들을 다음과 같이 네 그룹으로 나누어 현대미술의 이해를 돕고, 이들의 작품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성형 중독, 포토샵 처리를 한 증명사진, 키높이 구두, 학력 위조 등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반反 나르키소스 콤플렉스’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시대다.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개구리 배’를 강조한 마르틴 키펜베르거, 스스로를 어설프고 우둔한 당나귀로 비유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자신의 까만 피부색에 평생 적응하지 못했던 장 미셸 바스키아, 이 세 작가들이 표현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응시한다. 일그러짐을 즐기는 키펜베르거, 일그러졌음을 알리고자 하는 카텔란, 일그러짐을 극복하려 하는 바스키아의 삼중주를 담았다.
나의 죽음과 우리의 사랑 :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죽음에 쫓기고 있는가? 잡을 수 없는 사랑을 좇고 있는가? 죽음과 사랑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수수께끼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온갖 종류의 죽음을, 제프 쿤스는 가능한 형태의 모든 사랑을 시각화한다. 죽음과 사랑을 이렇게 구체화하여 우리 눈앞에 펼쳐놓으니 인생이 한결 명료해지고 쉬운 것처럼 느껴진다.
디지털 신드롬 :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를 진단하는 작가들을 살펴본다. 리처드 프린스는 ‘복사’와 ‘붙여넣기’가 무한 반복되는 디지털 라이프의 증상을 집요하게 재현한다. 그는 원본의 상실, ‘된장녀?된장남’의 미학, 자동차와 관련된 미국판 ‘김 여사’의 철학을 예술로 말한다. 피터 도이그는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억 속으로, 카리브 해라는 자연의 품으로 아날로그적 도피를 감행한다.
서양미술의 혁명, 메이드 인 친디아 : 최근 서양에서 동양으로 현대미술의 중심이 옮겨가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애니시 카푸어는 ‘친밀한 숭고함’으로, 중국의 천이페이는 ‘여백의 정신’으로, 쩡판즈는 ‘가면’(페르소나)으로 노쇠한 서양미술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인도와 중국은 나라 자체가 하나의 대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대하다. 인터넷 상에서 회자되는 ‘대륙 시리즈’와 연결하여, 과연 대륙의 미술은 어떠한지, 또 대륙의 정신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열 명의 작가라기보다는 열 개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이러한 엄청난 만남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우환 작가가 추구해왔던 ‘무한의 감각’ 개념을 빌려와 결론을 대신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10대 작가 모두가 포괄적 의미에서 ‘만남’(밖과 안, 가장자리와 중심, 차이와 동일성, 너와나 등의 관계성)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의 감각’은 ‘만남’과 이로 인한 공간의 열림(여백의 현상)으로 생성된다. 이는 또한 21세기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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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 심은록 저 | 아트북스
이 책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몸값이 그토록 비싼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작품이 팔리는 작가 10명의 면면을 분석한다. 1945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 중, 세계 옥션에서 1년 동안 팔린 작품들의 가격을 정산하여 그 총액으로 순위를 매긴 가장 핫한 작가 1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은 대단한 유명세뿐만 아니라 뚜렷한 개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이름값, 몸값을 창의적으로 활용,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도용과 비틀기 등 온갖 키워드가 난무하는 작가 10인의 작품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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