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체코 작가 브라스E. St. Vraz는 중국을 거쳐 한반도를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서 많은 사진을 찍고 은둔의 나라 한국에 대해 호기심 어린 글을 썼다. 1980년대 초반에 시카고에서 만난 그의 딸이 아버지가 글을 쓰다가 영감을 받기 위해 먼 나라를 여행하곤 했는데, 책으로 출판하려고 한국에 관해 쓴 원고가 있었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작가 은희경은 글을 쓰다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훌쩍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여행에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이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여행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는 동유럽의 자유화 이후로 1990년 여름에 러시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여러 나라의 도시를 방문하고 신문 및 잡지에 문학예술 기행을 써왔다. 15년간의 여행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러시아 동유럽 문학, 예술 기행』이라는 책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좀 더 집중하여 한 나라에 관한 여행담을 써보았다. 체코에 대한 이야기다. 체코는 1990년 여름에 프라하를 방문한 이래 금년까지 25번 이상을 다녀왔다. 이렇게 여러 번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블타바 강에 놓인 카렐교에 새겨진 부조를 잡고 해마다 이 아름다운 프라하를 보게 해 달라고 전설에 따라 소박한 기도를 한 덕인지도 모르겠다.
프라하와 체코 전역에는 종교적, 역사적 전설과 이이기가 얽힌 거대한 중세 성곽들, 건물, 예술품들이 많을 뿐 아니라 문학가와 예술가,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유럽에서 가장 매혹적인 지역으로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프라하에서는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나 주로 활동했던 비엔나보다 더 많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다. 이 점 역시 이 도시를 더욱 국제적인 곳으로 만든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성공적으로 공연하고, 프라하 시민에게 보답하기 위해 프라하에 머물면서 오페라 <돈조반니>를 작곡해 스타보프스키 극장에서 초연했다. 그는 49곡의 교향곡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현란하며 상쾌한 교향곡 <프라하>를 1876년에 작곡하기도 했다.
20세기 문학의 거장 카프카 역시 프라하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골렘 전설과 카프카의 오묘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거닐었던 중세의 조약돌 길을 걸어봐야 한다. 카프카의 위대한 소설
『변신』을 가르치면서도 늘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프라하 골목길을 여러 번 배회하면서 프라하에 체코인의 삶과 독일인의 문화, 유대인의 애환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카프카가 일생 동안 프라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프라하는 누구나 인연을 맺기만 하면 강렬한 유혹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은 도시다. 여름만 되면 역마살이 끼는지, 플젠 맥주의 향기가 날 유혹하는지, 밀란 쿤데라가 묘사한 에로틱한 분위기에 사로잡히는지, 하셰크가 불러 날 미소 짓게 하는지, 차페크의 로봇이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모차르트,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멜로디가 유혹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프라하의 야경이 신비로움에 빠져들게 하는지, 어쨌든 지난 24년간 매 여름마다 나는 서울과 프라하를 오가면서 세월의 타임머신을 타고 초현실적인 환상에 빠져들곤 했다. 그곳에는 새로운 호기심과 유혹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프라하와 체코의 역사 유적 도시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가볼 만한 곳이다.
성숙한 중년 여인의 모습처럼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가 프라하라고 한다면, 프라하 주변의 도시는 좀 덜 성숙하지만 처녀처럼 매혹적인 멋을 갖고 있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체코 전역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그림 같은 역사적인 도시가 열두 곳이나 된다. 그 중에서도 프라하보다 젊고 예쁜 도시가 체스키크루믈로프다. 내 고향 무섬마을처럼 3면이 강으로 휘돌아나가는 체스키크루믈로프에 갈 때마다 그런 인상을 받곤 한다. 르네상스 양식을 상징하는 둥근 원형의 화려한 성탑, 로젠베르크 가문이 사용하던 화려한 황금 마차, 내부장식이 아름다운 예술품 같은 성 이르지 성당의 성스러운 분위기, 당시에는 금기였던 소년소녀의 나신을 그린 에곤 실레의 박물관도 볼만하지만, 정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반원형의 관중석에서 야외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고 해마다 국제 음악 축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체스키크루믈로프는 어느 계절에 가도 매혹적이다.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여러 번 선정된 크로메르지시에는 살로메의 악취미를 상징하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역사적인 그림 <세례 요한의 잘린 목> 외에도 유럽의 명화와 조각이 즐비하다. 체코의 유네스코 문화유적 도시 열두 곳이나 건축물 외에도, 지방 도시들 또한 여행객을 유혹하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음악회와 오페라 등 수많은 문화행사를 펼친다. 빛과 향이 좋은 맥주와 감자전 안주, 소고기 안심 스비츠코바, 돼지 족발 콜레나와 체코 굴라시, 달콤한 모라비아의 아이스와인, 향 좋은 백포도주와 과일 브랜디 그리고 다양한 치즈와 각종 과일 콜라치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여행객의 입맛을 돋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체코의 다양한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맛깔나는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오랫동안 원고를 기다려준 21세기북스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십 번씩 프라하와 체코를 오가는데도 참고 기다려준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2013년 5월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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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김규진 저 | 21세기북스
유럽 심장부의 보석, 모든 도시들의 어머니, 황금의 도시, 수많은 첨탑의 도시, 매혹의 도시, 악의 도시, 에로틱의 도시. 이 화려한 수식어는 모두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이르는 말이다. 저자인 김규진 한국외대 교수는 무려 26번이나 체코를 방문하며 그간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아,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체코만의 매력을 이 책에 가득 담아냈다. 체코의 수도이자 보헤미아 지역의 중심지 프라하,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보헤미아, 아담한 도시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모라바와 슬레스코와의 만남은 이러한 체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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