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스페인에 다녀와서 낸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로부터 시작된 개인적인 여행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손미나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오는 7월, 4년간 머물다온 ‘프랑스에서의 손미나’를 풀어놓은 책이 발간된다. 제목은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뭔가 사회적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부터 갈등할 수 있을 때 훌쩍 떠나서 겪은 얘기였죠. 그렇게 떠나 석사 과정을 하면서 얻은 자신감에 대한 걸 쓴 이야기라면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는 프랑스에서 2011년에 첫 소설을 냈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누구나 파리에 가면 생각지 않던 큰 영감을 받아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예요.”
특히나 한국인이 대개 갖고 있는 파리에 대한 환상, 그 낭만을 확 깨고 싶었단다.
“파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유쾌한 도시는 아니거든요. 까다로운 사람도 많고, 생각보다 우울한 기운도 있고요. 어떻게 해서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됐는지 변화하는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진짜 프랑스 얘기를 들려주려고요. 로맨틱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것에 대한 환상을 깨는 거죠. 제가 ‘파리에 사는 동안 내 머리에 혁명이 일어났다’ 요즘 이렇게 말하거든요. 결국 긍정적이고 행복한 혁명이죠. 특히 젊은 싱글 여성들에게는 꼭 한 번 살아보면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 여성들의 고정관념을 깰 그 혁명이 있는 곳, 기자 역시 그곳에 가서 꽃이 되고 싶다…
“지금은 저도 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전 아나운서라는 꼬리표가 남아있는 손미나,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규정을 거부한다.
“어쩌다 저를 누가 아나운서라고 부르면 맞나 싶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요즘엔 저를 다 작가라고 부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뭐라고 불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책을 냈을 때도 작가라는 호칭에 대해 다들 애매해 하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책을 내거나 글을 쓰기만 해도 스스로 작가라고 하거든요. 기자들도 처음엔 ‘뭐라고 불러야 하죠?’ 그랬는데 소설을 쓴 다음에는 당연히 작가라고 부르더라고요.”
지금은 작가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 그녀지만, 아직 그 작가라는 호칭의 무게를 느낀다. 그게 그녀가 세상으로 자꾸 나가는 이유다.
“세상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성장하지 않으면 한 단계 뛰어넘는 여행기를 쓸 수 없겠구나 싶어서 소설에도 도전해 봤거든요. 그게 그만큼 저의 포지셔닝을 확고하게 한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작가가 된 건 아니니까 이제부터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책을 써야죠.”
아나운서로, 작가로, 여행가로, 스타 강사로, 또 지금은 팟 캐스트 DJ로도 활약 중인 손미나, 욕심이 많은 것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로에서 나온 결과물들일 뿐이다.
“요즘엔 ‘나야말로 진정한 멀티플레이어구나’ 싶어요.(웃음) 몇 달 전부터 팟 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서 바빠졌어요. 원래는 간소하게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려던 것이 기업 후원을 받아 해외 로케 동영상도 찍고, 공개 팟 캐스트도 하고, 톱 A급 스타도 나올 예정이고, 갑자기 스케일이 커져서 더 바빠졌거든요. 그 땐 제가 또 DJ가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TV 방송도 간간히 하고요. 글도 쓰고, 여행가이기도 하고, 강의를 많이 다녀요. 지금은 저도 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존재의 이름이 ‘무에 중요하랴.’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난다면.
“전 엄친딸 아니에요”
대중에게 각인된 아나운서라고 하면 대개 명망 있는 가문에서 곱게 자라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는 게 일반. 그러나 최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관둔 건 물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나운서였다는 것이 엄친딸인 것 같고, 어려움 없이 살았을 것 같고,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는 사람인 것 같은가 봐요. 저는 아르바이트해서 학비 벌면서 대학 다녔거든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20대엔 저도 똑같이 어려운 과정을 겪었죠.”
기자 역시 손미나에게서 엄친딸의 이미지를 품었던 게 사실, 그렇다면 도전의 연속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 닥쳤던 고난과 좌절의 시기는 어땠을까?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 저는 너무 스스로에게 푸시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영감이나 용기를 지나치게 주잖아요. ‘꿈은 이루어진다’며 전 국민적으로 세뇌하듯이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꿈이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마다 여건도 다르고요. 힘들 때 다 용기를 내서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도저히 할 수 없다 하는 것은 확실히 놓을 줄 알아야 나머지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데 그걸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진짜 가진 행복을 못 누리는 거죠.”
어느새 기자 역시 손미나 강사의 인생강의에 폭 빠져버렸다. 그러니까 여행은 그녀에게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선물했다는 게 강의의 요점.
“라틴계가 좀 이기적이고 현재만 생각하는 사람들 같지만 좀 더 여유롭게 사는 부분이 있어요. 그들이 매일 와인 마시며 춤추고 노는 것 같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인생을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저한테 ‘너는 그걸 왜 괴로워하냐, 살다보면 감기 걸리는 것과 같아. 당연히 힘든 일인데 왜 그래, 기다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녀 역시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도 그래서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지나가면 된다고, 포기하라고, 왜 애써 그걸 잡으려고 하냐고’ 그들의 얘기가 맴돌았다.
“제 인생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왜 이래, 왜 하필 나한테’ 이랬으면 다신 아무 일도 못했을 거예요. 이젠 ‘누구나 자기 몫의 불행과 슬픔과 아픔이 정해져 있는 건데 미리 겪어 감사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지금 넘어졌으니 앞으로 넘어질 일은 적겠죠. 포기할 수 있는 용기는 사람의 인생을 많이 바꿔놓을 수 있거든요. 그게 저의 힘인 것 같아요.”
콘서트 마스터 손미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녀의 얘기를 듣느라 공연 계획에 대해선 한참 만에 물었다. 그녀의 성장기를 담은 콘서트, 기획부터 진행까지 손 가지 않은 곳이 없다.
“기획에 참여해서 내용도 다 제가 짰고요. 뮤지션 선정도 함께 했죠. 악기나 춤도 제가 원하는 걸로 구성했고요. 그래서 의미가 굉장히 크고 기대가 돼요.”
‘문화즐김’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은 한국에서 돈 내고 공연을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보여주겠다며 기획한 그녀의 콘서트, <손미나의 로맨스 인 유럽>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마을이 안달루시아의 가오신이라는 곳인데 그 산속의 마을에서 혼자 휴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산 속의 하얀 마을에 카르멘을 테마로 한 카사 카르멘이라는 호텔에서 제가 묵었는데요. 그 테라스에 서면 모로코 탕헤르의 불빛이 보였어요. 그런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카르멘의 이야기를 하고 플라멩코를 추는 거죠.”
플라멩코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콘서트가 성공한다면 다음엔 쿠바 음악이나 포르투갈 파두를 주제로 한 공연도 해보고 싶단다. 특히 공연장은 있으나 공연은 별로 없는 지방을 순회하고픈 새로운 꿈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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