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데우스>중 한 장면.
살리에르가 훔쳐보는 모차르트의 악보,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써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모차르트와 그의 재능을 탐내고 질투한 살리에르의 이야기다. 괴짜 같은 모차르트가 아름다운 그의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희대의 라이벌로 꼽히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가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은 살리에르는 천부적인 모차르트의 재능을 두려워하지만, 그 또한 멋진 음악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그럴 때면 마냥 까불거리는 모차르트와 영락없이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서로의 실력과 인기를 질투하고, 중상모략까지 꾸며대지만, 최고의 음악 앞에서 짓는 둘의 닮은 표정 때문에 둘의 관계를 단순히 적대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우정과 애증 사이를 묘하게 넘나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참 인상적인 영화였다.
그 영화 속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모차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 살리에르는 그의 집에 하녀를 보낸다. 모차르트가 연주회로 자리를 집을 어느 날, 살리에르는 몰래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 그가 최근 몰두해 작업하고 있다는 악보를 훔쳐보는데, 이때 발견하게 되는 악보가 바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다.
“이건 단지 사랑에 관한 코미디에요”
마 선배가 이번 주에 건네준 미션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다. 10년간 예스24 리스너들이 가장 즐겨 찾은 오페라이기도 하다. 이 곡명 ‘피가로의 결혼’도 익히 들어 알고 있고, 이 유명한 오페라를 모차르트가 지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들어본 적이 없다. 오페라, 이건 내게 ‘본 조르노(Buon giorno)’ ‘챠오(Ciao)’ 혹은 ‘도베(Dove)’처럼, 알고는 있지만 한 번도 듣거나 말해본 적 없는 이탈리아어일 뿐이다.
일단 들었다. ‘피가로’나 ‘수잔나’ 같은 주인공 이름 외에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 가사 때문일까. 이전에 내 맘대로 듣고 느끼던 클래식 음악과는 또 다른 음악처럼 들렸다. 그래, 이건 정말 난생처음 듣는 오페라였던 것이다. 일단, 이 곡을 작곡한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모차르트가 황제가 금한 이 희곡, 그러니까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실린 프랑스 희곡 <피가로의 결혼>에 곡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살리에르는 즉시 궁정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일러바친다. 황제가 모차르트를 불러, 왜 이런 작품을 만드는 거냐고 추궁하자.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오페라라는 이유만으로 듣기 어렵다고 느끼고, 낯설어하는 나와 당신을 설득하는 이야기다.
“이건 단지 코미디에요. 전 정치를 싫어합니다. 그런 요소도 다 뺐어요. 단지 사랑에 관한 희극일 뿐입니다. 들어보면, 열광하게 될 겁니다. 2막을 예로 들어 볼까요? 부부가 2중창으로 싸웁니다. 갑자기 하녀가 끼어들어 2중창은 3중창이 되죠. 재미있죠?
그때 시종이 끼어들면서 4중창이 되고, 정원사가 나타나 5중창이 되고……. 얼마나 계속될 것 같습니까? 20분이나 계속됩니다. 연극에서 20명이 떠들어대면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음악이 있는 오페라에서는 20명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게 되죠. 오페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모차르트, 좀 고상한 오페라를 쓸 순 없나?
<피가로의 결혼>, 극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서곡(overture)이다.
고작 부부싸움? 사랑 얘기로 오페라를 만드느냐고, 좀 더 고상한 이야기를 하라는 귀족들의 핀잔에, 모차르트는 두 손 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상한 것에 넌덜머리가 납니다. 언제까지 과거의 전설이나 신화 따위만 붙들고 있어야 합니까? 누가 자기 이발사보다 헤라클래스를 좋아하느냐고요.”
그러니까 내가 ‘워낙 고상해서’ 부담스러워하는 이 작품이 몇백 년 전에는 천박해서 흠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작품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 곡이 고상해서 어렵니 하는 얘기는 빼야겠다. 그냥 안 들어 봐서 낯선 걸로 하자. 선배도 한마디 더 한다.
“오페라는 고상한 사람들이 근사하게 옷을 빼입고 극장에서 감상했을 것 같지만, 당시 일반인들도 쉽게 즐기던 문화생활이었어. 그때는 딱히 볼거리도 없었을테니, 재미있는 오페라가 공연된다고 하면, 얼마나 화제가 되었겠어? 오페라라는 장르가 인기를 끄는데 공헌을 한 게 바로 이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이었고.”
고개를 갸웃하는 황제와 귀족들에게 모차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전 저질스러운 놈이지만, 제 음악은 아닙니다. 작품을 보지 않고 제가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서곡만이라도 들어주세요.” 그래서, 다시 서곡, 1번 overture를 들어본다. 활기차고 경쾌하게 시작한다. 양쪽 발을 쫑긋 세운 사람들이 여기에서 저기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대형 뮤지컬에서도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려주잖아. 대부분 뮤지컬 음악을 한 곡에 엮어 들려주며, 앞으로 이런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하고 예고편처럼 알려주지. 영화에 비유하자면 타이틀 롤 같은 장면이랄까. 서곡을 통해 오페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서곡만 들어도 앞으로 활기찬 코미디 극이 펼쳐질 것 같지 않아? 대부분의 오페라는 좋은 서곡을 갖고 있어서, 이 서곡만 따로 모아 앨범을 만들기도 해.”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아니 ‘연주한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두고 ‘스무 명이 동시에 노래를 불러도, 완벽한 하모니를 내는 극’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대로 하모니와 화음에 귀를 기울여 음악을 들었다.
“가장 높은 톤을 내는 여자 성악가를 소프라노, 남자 성악가는 테너라고 부르고, 중간톤의 여자 성악가는 메조소프라노, 남자 성악가는 바리톤, 가장 낮은 톤을 내는 여자 성악가를 알토, 남자 성악가는 베이스라고 부른다”고 설명을 듣긴 했지만, 초보 리스너에게 썩 실용적인 정보는 아니다. 다만 하모니에 집중해 들어보니, 뮤지컬 OST를 들을 때와 조금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뮤지컬 역시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노래를 통해 극을 이끌어간다. 두 장르의 차이점이라면, 오페라가 오케스트라와 노래, 즉 음악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면, 뮤지컬은 음악 뿐 아니라 춤과 연기가 역할을 나눠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오페라 속 아리아는 성악을 이용해, 곡 자체에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오페라 가수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 걸쳐놓는다. 즉, 오페라 가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하기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의미를 갖는’ 소리가 되어, 오케스트라와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낸다. 모차르트가 설명한 ‘하나의 화음이 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반면 뮤지컬은 영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에서 발달했다. 팝적인 요소가 많아, 극과 노래가 짧고 반복되는 후렴구를 통해 관객에게 노래를 친숙하게 각인시킨다. 여기에서 노래는 노래고, 반주는 반주다. 뮤지컬의 음악은 노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배경으로 물러나고, 반주라는 역할에 충실하다. 오페라를 들을 때,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소리, 곡의 분위기, 상황에 따라 높낮이와 강약이 변주되는 음악에 귀를 빼앗기는 데 비해, 뮤지컬 음악은 배우의 음색, 목소리, 리듬에 집중하게 한다.
아름다운 아리아,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삼각관계
1막의 유명한 아리아 ‘이젠 날 수 없다, 나비들’
<피가로의 결혼>이 다른 오페라보다 많은 인기를 누린 까닭은, 아름다운 노래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극이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희곡이기 때문이다.
“베르디가 만든 유명한 오페라 <아이다> 알지? 궁중의 암투와 사랑을 그린 이야긴데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이지. 그에 비해 <피가로의 결혼>은 음악만큼이나 내용도 재미있고 경쾌해. 귀족계급에 대한 코믹한 풍자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열광하는 삼각, 사각으로 꼬이고 꼬인 러브스토리를 노래하는 작품이거든.”
나는 뮤지컬을 보고 나면, OST를 찾아보고 관련 영상을 다시 찾아 되새김질한다. 흥미로운 건, 공연을 보기 전에는 아무리 좋은 OST라고 해도 귀에 잘 들리지 않는데, 이야기를 알게 되고, 노래와 함께 어떤 장면을 눈에 또렷하게 각인시키면, 그 음악이 달리 들린다는 거다. 언제 들어도 감동이 밀려오는 노래로, 아는 노래로 ‘변신’하는 것이다.
<피가로의 결혼> 역시, 아는 노래처럼 즐기기 위해, 이야기를 먼저 살펴봐야겠다.
현대극으로도 꾸준히 공연되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가 쓴 희곡이야. 보마르셰는 앞서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희곡을 쓰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전편에 해당해. 피가로는 전작에서 세비야의 유쾌한 이발사로 등장하기도 하거든. <세비야의 이발사>가 오페라로 먼저 만들어지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야. 그걸 본 모차르트가 로렌쪼 다 폰테라는 대본작가를 꼬시기 시작해. <세비야의 이발사> 2탄에 해당하는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로 만들어보자고.”
알마바바 백작네 집에서 일하는 시종 피가로가 하녀 수잔나와 결혼 준비를 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태생부터 바람둥이 백작은 수잔나에게 수작을 걸며 결혼식을 방해하는데, 이에 맞서 수잔나와 피가로, 그리고 백작부인이 힘을 합쳐 백작의 못된 버릇을 혼내준다. 이 줄거리 사이사이에 관객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재미있는 플롯들이 더했다.
1막에는 수잔나와 피가로가 입을 맞추며, 백작의 수작에 조심하자는 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에 예비신랑 피가로를 탐내는 나이 많은 하녀 마르첼리나가 끼어든다. 마르첼리나는 예전에 피가로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피가로가 돈을 갚지 못할 시에 자기와 결혼하기로 서약했다고 주장한다.
시종 케루비노는 사춘기를 겪는 소년으로, 여자들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사랑을 느끼는데, 백작부인도 수잔나에게도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려 ‘내 마음 나도 알 수 없다’고 노래 부른다. 게다가 정원사 딸과 몰래 연애하다가 영주에게 들키는 바람에 군대로 추방을 당하게 된 처지다.
1막의 유명한 장면으로 꼽히는 ‘나비야, 더는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을 들어보자.
“더는 날지 못하리, 사랑에 들뜬 나비야. 여기 찝적, 저기 찝적, 더는 치근대지 못하겠지. 꽉 조이는 군복, 어깨에 총, 허리에 칼, 빳빳이 목을 세우고 근엄한 얼굴. 더 이상 날지 못하겠지.” 피가로가 캐루비노를 쫓아다니며 놀리고 괴롭히는 1막의 마지막 장면이다.
사랑이 뭔지 아나요, 숙녀님들?
시종 케루비노가 백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른다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
2막에서는 백작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백작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거짓편지로 백작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케루비노를 여자로 변장시켜 골탕먹이는 거다. 이 작전에 백작이 말려들고, 문을 잠그고 부스고,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한 편의 소동이 벌어진다.
2막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은 케루비노의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다. 모든 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케루비노는 백작 부인에게까지 찾아가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부르는데, 친숙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시녀의 만돌린 반주도 아름답다. 재미있는 건 케루비노 역을 여성 성악가, 중성적인 음성의 메조 소프라노가 맡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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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뭔지 아나요? 숙녀님들. 제 가슴 속에 있는 게 사랑 맞나요? 기쁨으로 가득했다가, 다시 고통스럽고. 차갑게 얼었다가 뜨겁게 타오르기를 반복해요. 나도 모르게 한숨 쉬다 신음하고, 이유도 모른 채 전율하죠. 하지만 이 나른한 기분이 좋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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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피가로를 탐내고,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마르첼리나가 사실은 그의 어머니였던 것! (내가 니 에미다! 이때도 출생의 비밀이 반전의 플롯으로 쓰였구나!) 결혼을 방해하던 마르첼리나가 물러나게 되어 사람들은 기뻐한다.
이제 백작 부인은 수잔나와 남편 길들이기 마지막 작업에 착수하는데, 남편을 꾀어내는 편지를 써보자며 이 노래 ‘산들바람 부드럽게’(Canzonetta Sullaria)를 합창한다. 백작부인이 편지를 구술하고, 수잔나가 받아쓰는 장면이다. 백작 부인이 예전에 백작과 연애하던 시절, 숲에 불던 산들바람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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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이 속삭이던 오늘 밤…. (백작부인)”
“산들바람이 속삭이던 오늘 밤…. (수잔나)
“수풀의 소나무 아래….” (백작부인)
“수풀의 소나무 아래….” (수잔나)
“그렇게 쓰면 다 알아들으실 거야.” (백작부인)
“분명 알아들으시겠죠.” (수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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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역시 또 작전에 말려든다. 수잔나의 편지를 받고, 설레 하며 약속장소로 나가는데, 여기에 피가로가 잘못 끼어들어 수잔나가 백작과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를 한다. 밀회를 약속한 그 장소에 모두 모인 사람들. 그 자리에서 백작은 달콤한 말로 수잔나를 유혹하는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여인은? 백작 부인이었다! 백작은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하고, 부인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피가로는 오해를 풀고, 모두가 행복하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중간 중간 ‘막장 드라마’라고 할 만한 요소가 끼어 있지만, 모차르트 말대로 유쾌하고 재미있는 희극이다. 우리가 소위 ‘막장’이라고 비하하는 이야기들은, 비슷비슷한 설정 탓도 있지만, 그 갈등을 놓고 인물들이 소모적인 갈등을 빚거나 혼잣말을 해대며 오해를 하는 식으로 상황을 답답하게 끌어내기 때문이다.
부끄러워할 땐 부끄러워하고, 화낼 땐 화내고, 사과할 땐 사과하는 <피가로의 결혼>의 인물들은 솔직하고 명쾌하게 극속 복잡한 갈등에 부딪혀 나간다. 고로, 이 극은 “네가 니 엄마다” 같은 플롯을 안고 있음에도 막장은커녕 유쾌한 소동극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명반, 에리히 클라이버가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
“3막 전체를 다 듣기 어려울 땐, 주요 곡을 녹음한 축약반을 먼저 들어보는 것도 방법이야. <피가로의 결혼>은 일단 서곡을 듣기만 해도, 내용이 궁금해지잖아. 그리고 아름다운 아리아들을 귀에 익혀두면, 전체 극을 감상하기 조금 수월해지지.” 기억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황제도 4시간에 달하는 이 극이 길다고, 하품하기도 했다.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로 가장 손꼽히는 곡은 위에서도 소개한 편지 이중창, ‘산들바람 부드럽게’다.
“멜로디 라인이 아름답고, 두 소프라노의 어우러짐도 좋아서 인기가 많은 곡이야. 영화 <쇼생크탈출>에 나왔던 아리아지.”
누명을 쓰고 복역 중인 주인공 듀프레인(팀 로빈슨)은 교도소 운동장에 이 아리아를 틀고는 방문을 잠그고,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삭막한 교도소에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장면, 그리고 편하게 몸을 젖힌 채 이 음악에 잠기는 듀프레인의 모습은, 이 아리아의 아름다움을 정말로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아리아 위로 그의 독백이 흐른다. 정말 잊지 못할 장면이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장면
예스24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찾은 리스너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음반은 에히리 클라이버가 지휘한 앨범이다.
“클라이버, 기억나? 베토벤 5번의 명연으로 추천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아버지가 이 에히리 클라이버야.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후대에 전해지는 명연을 남겼으니, 정말 대단한 집안이지.
에리히 클라이버는 엄청난 연습벌레였대. 한 번의 녹음을 위해서 리허설을 수십 번이나 했을 만큼 말야. 하지만 그 연주를 들어보면, 단순히 정확하고 꼼꼼하기만 한 지루한 연주가 아니야. 뭔가 독특함이 있달까.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녹음한 몇 안 되는 음반이 다 명반으로 꼽히는 명지휘자지만, 그 당시에는 계속 ‘에히리 클라이버의 아들’로 불렸대. 그만큼 아버지도 훌륭한 지휘자였다는 거지.”
마 선배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이 곡을 선택한 사람이 클래식을 상당히 좋아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느낌이 다르다고 얘기했지? 이 영화 속에 나온 곡은 클라이버가 아니라, 칼 뵘이라는 지휘자의 곡이야.
이 지휘자의 <피가로의 결혼>은 연주가 약간 느긋해. 노래를 부르는 두 소프라노는(Gundula Janowitz, Edith Mathis) 목소리가 순수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고, 그러니 그야말로 천상의 화음이라는 느낌이 드는 곡이지.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자극하는 데에는 클라이버의 연주보다 칼 뵘의 연주가 훨씬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는 거지. 칼 뵘은 동양권에서 사랑받는 연주자니까, 찾아서 들어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교도소 운동장에 울려퍼지는 아리아.
마 선배한테 음반을 전해 받고 처음 <피가로의 결혼>을 들었을 때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영 낯설게만 들려 좀체 음악이 귀에 들리지가 않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나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몇몇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리아가 생겼다.
“오오오오, 피가로. 피앙세” 여전히 들리는 말은 주인공 이름뿐이지만, 이제는 아리아가 아름답게 들리고, 음악에 담긴 표정이 떠오른다. 화들짝 놀라고, 달아나고, 작전을 짜고, 속아 넘어가고, 화해하는 장면들 말이다. 활기차고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에, 모차르트는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곡을 붙였을까. 살리에르 같은 심정으로 탄복했다. 그리고 <쇼생크탈출>에서 이 음악을 흐를 때, 앨리스(모건 프리먼)가 읇조린 독백을 떠올리면서 한 번 더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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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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