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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제왕, 한무제

중화의 제왕, 시황제가 아닌 한무제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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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제왕이었다. 이릉과 그의 처자ㆍ일족 그리고 사마천 본인의 불행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닥친 참화(그 직접적인 계기가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했기 때문인지, 투항 이후에 한나라의 정보를 흘렸다고 오해한 것인지 그 어느 쪽이든 이릉의 권솔이 처형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에 대해 무제의 책임이 아니라 한나라라는 법치국가의 체제가 강요한 당연한 법적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흉노-한 전쟁’이라는 범상치 않은 장기전을 현실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한의 왕 무제 본인이었다. 무제는 흉노 타도를 삶의 주제로 삼아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한무제 유철(漢武帝 劉徹)

무제는 이 전쟁을 위해 어떤 유혈 사태나 부담, 불행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제는 수도인 장안에 머물렀다. 한 번도 전선에 가거나 전쟁의 고통스러움을 맛보지 않았다. 순수한 명령자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다 보니 ‘후방’에 있는 민중의 목소리는 그의 눈이나 귀에 도달하지 않았다. 아니,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장군이나 신하 등 친숙한 사람들조차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쓰다가 버렸으며 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서운 제왕이었다. 이릉과 그의 처자ㆍ일족 그리고 사마천 본인의 불행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닥친 참화(그 직접적인 계기가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했기 때문인지, 투항 이후에 한나라의 정보를 흘렸다고 오해한 것인지 그 어느 쪽이든 이릉의 권솔이 처형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에 대해 무제의 책임이 아니라 한나라라는 법치국가의 체제가 강요한 당연한 법적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정상적인 장기 총력전을 국가 방침으로 정하고 신하와 백성 모두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은 무제였다. 그것을 ‘법치’라는 근대식 영리함으로 그럴 듯하게 변호하려는 생각이었을까? 무제가 신하나 백성들에게 보여준 오만함, 악랄함, 무자비함, 참혹함과 가혹함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법치’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법치’가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이 경우 그 ‘법치’의 기준이 되는 것이 다름 아닌 무제였다. 전쟁 추진자가 ‘법치’의 기준이 되는 국법을 그대로 준수했기 때문에 멸족도 시스템에 따른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은 정말로 무서운 논리다.

거기에 절대 전제자가 지배하던 옛 중국에 근대 서양식 법치의 개념을 적용하려고 생각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절대 전제자의 지배 아래에서 ‘법’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로마법에 기원을 둔 서양의 ‘법의 정신’과 과연 어느 정도 연계해 말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릉 사건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불행은 무제가 자기가 강행한 전쟁의 참상에 조금이라도 눈을 돌려 약간이라도 반성하고 국법을 바꾸려고 했다면 그것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제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무제는 이상한 집착을 보이며 장기전을 추진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수많은 불행을 안긴 것은 무제였다. 그러나 제왕은 처벌 받지 않는다.

비극의 근원인 무제의 심상은 흉노제국에 대한 신하ㆍ종속 관계를 타개하려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흉노 국가 그 자체, 더 나아가 흉노의 왕인 선우의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무제는 이 땅에 자기 이외에 비슷한 힘을 가진 권력자가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지배욕ㆍ정복욕ㆍ권력욕을 한 몸에 체현시킨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인간이었다.

중국사에서 이름이 높은 한무제는 좋든 나쁘든 이상한 사람이었다. 기원전 141년 16세로 즉위해 기원전 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4년에 걸쳐 긴 치세 기간을 가졌다는 점부터 이미 이상하다.

그 이후 역사를 통해 ‘중화’라고도 하고 ‘한의 땅’이라고도 부르는 이 지역이 진의 통일에 의해 정치적으로 하나의 땅덩어리로 인식된 이후 그렇게 오래 제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시황제 (BC 259 ~ BC 210)
시황제의 경우 중화의 제왕으로 보낸 세월은 앞서 보았듯이 11년에 불과했다. 그러니 치세 기간이 반세기가 넘는 무제는 타고난 제왕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긴 중국의 역사에서도 그의 긴 재위 기간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청왕조의 강희제, 건륭제 두 사람 정도로 매우 드물다.

실제로 한무제는 긴 치세 기간 동안 휘두른 권력의 크기와 그 총량을 따져보면 시황제를 훨씬 능가하는 절대 권력자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선악은 차치하고 규모가 큰 전제군주였다. 다만 어두운 쪽의 인상이 강하고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명군名君’이라는 평온한 이미지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중화’라는 정치 전통에는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또 시대를 넘어서 자칫하면 유일한 지상의 절대 권력자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문명의 체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진의 시황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의 무제에서 그런 패턴이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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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이 책은 그동안 야만족,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으며, 그들이 사용한 아람어가 소그드문자를 비롯해 위구르문자와 만주문자, 한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왜곡, 축소되었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음으로써 동과 서로 단절되었던 세계사를 연결시켜 비로소 역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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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스기야마 마사아키

1952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여자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대학 교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몽골 시대사로 일본 내에서 몽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95년 《쿠빌라이의 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고, 2003년 시바료타로상, 2006년 《몽골제국과 대원 울루스》로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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