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 18코스를 걷다 만나는 아름다운 해변가에 위치한 곤을동 마을은 모든 곳이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다. 항상 물이 고여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진 곤을마을은 고려 충열왕 26년(서기 1300년)에 설촌된지 7백년이 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하며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8.15 해방 직후 1949년 1월 4일 아침 9시경 군 작전으로 양민 24명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불에 타 지금처럼 흔적만 있다. 도대체 이 시기에 제주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지슬>은 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하고있다. (링크) 6년 6개월에 거친 이 사건으로 사망자만 무려 1만 4천 명에 이르고, 이후에도 살아남은 생존자와 그 가족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곤을동 마을의 흔적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진상조사결과에 의하면, 사건 당시의 제주도 상황은 8.15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약 6만 명에 이르는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만연,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특히 과거 일제강점기당시 경찰출신들이 미군정경찰로의 변신,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미군정 관리들의 모리행위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로동당계열의 좌익세력들의 활동과 군정경찰,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 반공단체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부터 좌익계열 활동의 전통이 강한 지역으로 광복 후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미군정청과 협조적이었다.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본 시위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여 시위대에게 발포해 6명 사망,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발포사건의 전모를 모르던 미군정 당국은 이 발포사건을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정당방위로 주장하고 사건을 ‘시위대에 의한 경찰서 습격사건’으로 규래 행사 간부와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경무부에서는 3만여 시위군중이 경찰서를 포위 습격하려고 했기에 불가피하게 발포했다고 해명하면서 민심이 들끓었다. 이에 남로당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삐라 붙이는 일과 사상자 구호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3월 10일부터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이 발생하여, 제주도의 대부분의 행정기관과 학교, 우체국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명이 참여하였고, 제주 경찰의 20%도 파업에 동참하였다. 경찰은 3월 15일부터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에 또 다시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조선 로동당 제주도당은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이들은 경찰관과 서북청년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것이 제주도 4.3 사건의 시작이었다. 현장에서 경찰관 가족과 민족청년단원 등이 처형되었다. 이에 미군정은 즉각 각 도로부터 차출한 대규모의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등 반공단체를 증파하였고, 제주도 도령을 공표해 제주 해상교통을 차단하고 미군 함정을 동원해 해안을 봉쇄하였다.
처음에는 평화협상이 체결되어 전투를 72시간 이내에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양측은 강경 일변도의 진압정책과 방화 사건 등으로 합의가 파기되면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선거관리사무소가 습격을 당하고 선관위원들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5월 10일의 남한 단독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었고, 다음달 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는 미군정의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5월 20일 경비대원 41명이 탈영하여 무장대에 가담하였고, 6월 18일 경비대 연대장 박진경이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친 후 문상길 중위(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형집행 1호)등 모 부사관 등 부하 대원에게 암살당했다.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다음달 9일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문제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그해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증파하였고,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앞서 한라산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이 발표되었고, 중산간마을에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실시되었다.
1948년 11월부터 중산간마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타 없어지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은 중산간마을 주민 2만 명 가량이 산으로 들어가 무장대의 일원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진압 군경은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없는 경우에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이른바 ‘대살(代殺)’을 자행하기도 하였으며, 재판절차도 없이 주민들이 집단으로 사살되기도 하였다. 또한 세화ㆍ성읍ㆍ남원 등의 마을에서는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가가 불타고 주민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
4.3 평화기념관의 다랑쉬 동굴 학살 재현
1949년 진압과 함께 선무작전이 병행되었으며, 귀순하면 용서한다는 사면정책에 따라 많은 주민들이 하산하였다. 1949년 5월 10일 재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데 이어 6월에 무장대 총책인 이덕구가 오라리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살됨으로써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6ㆍ25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그리고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검속되어 당시 제주 계엄군을 맡고 있던 대한민국 해병대 등에게 학살을 당하였다.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사건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되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발발 이후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4.3 사건은 30여 만 명의 도민이 연루된 가운데 2만5천~3만 명의 학살 피해자를 냈다. 당초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대 숫자는 최대 500명이다.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망자만 14,000여명(진압군에 의한 희생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764명 및 기타)에 달한다.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주도민들은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일 한국인들 출신 구성을 보면 제주도 출신자가 상당히 많은데, 이는 제주 4.3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반공 극우단체의 가혹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보트피플’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주로 오사카 지역)을 피난처로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4.3 사건을 경험한 유족들의 회고에 따르면,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제주 4.3 학살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에서 줄곧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였으나 역대 정부는 이를 무시하였고, 오히려 금기시하였다. 4.3 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의 경우 책은 금서가 되고 작가 현기영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1948년 5월, 처형을 기다리는 제주 주민들
민주화 이후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1999년 국회에서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0년 제정 공포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되었다. 2003년 조사위원회에서 보고서를 확정하였고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였다.
※ 제주 4.3 사건 관련 도서 ※
순이 삼촌
현기영 저 | 창비
제주 4.3항쟁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표제작을 비롯해 은폐된 진실을 복원하고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나간 작품들로 채워진 현기영의 첫 소설집.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기도 한 「순이삼촌」은 4.3 학살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고통스런 내상을 안고 30년 동안을 살다가 자살한 ‘순이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참담했던 역사의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간섭하는지 잘 보여주는 역작이다. 등단작 「아버지」와 「도령마루의 까마귀」「해룡이야기」등 4.3을 소재로 한 작품 외에 작가의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는 「소드방놀이」「아내와 개오동」「동냥꾼」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문제작들로 채워져 있다.
제주 4.3항쟁
양정심 저 | 선인
제주 4.3특별법에 따라 제주 4.3‘사건’으로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가려진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책. 이 책에서는 1장에서 4.3항쟁의 배경과 원인의 前史로서 8.15 직후의 제주도 상황과 인민위원회 활동 그리고 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사건 및 3.10총파업과 이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을 살펴보고, 2장에서 남로당과 제주도민의 연대를 통해서 ‘항쟁 과정’을, 3장에서는 초토화 진압작전으로 대응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시각과 이제는 공식화되고 있는 민간인 학살 과정을 서술할 것이다. 4장에서는 학살 경험이 제주도민에게 낳은 피해의식의 작동과 그로 인한 제주4.3항쟁의 망각을 다루면서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현재의 진상규명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박윤식 저 | 휘선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중앙당의 지령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1048.5.10)를 방해하며 제주도의 공산화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무장폭동계획을 수립,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습격, 불을 지르고 행정관서를 장악함으로써 경찰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을 해제하고 백록담에 평화기념비를 세우기까지 6년 6개월 동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비극적인 반란이었다.
바람의 풍경, 제주의 속살
허상문 저 | 열린시선
이 책은 산과 들과 바다를 바람과 함께 두루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과 문화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절망에서 희망을, 죽음에서 삶을 일구어내며 살아왔다고 본 저자는 제주도에 대한 짝사랑을 통해 얻게 된 아름답고 은밀한 제주도의 속살을 그대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곳’ ‘세월의 흔적을 찾아서’ ‘섬, 바다, 제주여인’ ‘부 오름에서 왔다 오름으로 갈 것을’ 등으로 나누어진 글들을 통해서 제주도의 풍경, 문화와 역사, 살아온 사람들의 삶, 오름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도에 대해 좀 더 깊고 자세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제주 역사 기행
이영권 저 | 한겨레신문사
우리는 삼별초의 대몽항쟁을 외세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역사라고 배운다. 그러나 제주인들에게는 고려나 몽골 모두가 외세였을 따름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쓴 ‘변방의 시선’이란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제주 4.3 제주 항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육지’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제주만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더불어 제주의 역사를 12개의 테마로 분류해 유적지에 대한 꼼꼼한 설명과 세밀한 지도를 곁들여 책의 효용성을 높이고 있다.
불량 국민들
주철희 저 | 북랩
이 책은 해방직후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여순사건’을 다루고 있다. 역사 전공자답게 철저한 사료의 검증은 물론이고 가슴으로, 발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이 책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역사를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19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통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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