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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다다다단~” 운명 교향곡, 끝까지 들어본 적 있어?

청력을 잃은 음악가, 그의 운명은 비극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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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이 곡을 썼다. 음악가에게 청력의 상실이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음악을 듣는 내내, 베토벤이 과연 어떤 심정으로 이 곡을 썼을까 상상했다. 베토벤은 과연 자신의 이런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악장이나 교향곡의 개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곡을 감상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베토벤의 마음을 떠올려보고 싶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 C장조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나도, 베토벤 그 이름은 안다. 18세기 모차르트, 하이든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베토벤은 어딘가 상징적인 예술가다. 헝클어진 바람머리에 부리부리한 눈을 고집스럽게 치켜뜨고 있는 그 모습! 예술가나 음악가의 어떤 얼굴을 상상할 때 나는 곧잘 그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까칠함, 고집스러움, 예민함, 완벽주의……. 나에게 예술가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이미지도 이 얼굴에서 출발한다. 베토벤이 상징적인 것은 외양뿐이 아니다. ‘다다다 단-’ 우리는 이 네 단어만으로도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를 떠올릴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고전문학이라고 한다면, 음악에서도 그 ‘고전’의 의미는 상통한다. “‘다다다 단-’으로 시작되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는 그 곡에 담긴 ‘운명’을 온전히 느껴보거나 헤아려 본 사람이 있을까?” 선배가 건네준 클래식 첫 수저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이하 <교향곡 5번>) ‘이거 좀 식상한 시작 아니에요?’라는 나의 망언에 대한 선배의 대답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교향곡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클래식 대표곡
하지만 끝까지 들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운명교향곡은 이 <교향곡 5번>에 붙여진 별칭 같은 거야. 일본 사람이 붙였고, 한국에 전해지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만 이 곡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불러.”

<교향곡 5번>에 왜 ‘운명’이라는 별칭이 붙었는지는 나도 어디서 본적이 있어 알고 있다. 그의 제자인 안톤 신틀러가 베토벤에게 이 곡의 주제가 뭐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이렇게 답한 데서 비롯한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이 곡의 도입부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멘트다. 이 <교향곡 5번>이 베토벤의 여느 곡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데는 이런 ‘이름발’도 한 몫 했을 거다. 희로애락, 지금 그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도 ‘운명’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끌리는 데가 있는 말이니까.

베토벤은 곡을 만든 작곡자다. 오늘 들어야 할 <교향곡 5번>의 음반을 검색해보면, 여러 지휘자의 앨범이 나온다. “교향곡”에는 지휘하는 사람과 연주하는 교향악단이 있다. 지휘자는 영화로 치면 감독이고, 교향악단은 스텝이라고 보면 되겠다.

원작이 같더라도 감독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이 다르듯,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나 교향악단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 “다르다”는 것을 분간해 낼 수 있다면, 혹은 그 연주자 특유의 어떤 인상을 감지해낼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클래식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느 ‘다다다 단-’ 소리를 압도하는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5번

“명연주”라고 소문난 앨범들이 있다, 수십 년간 클래식 마니아들의 입소문과 평론가들의 인증을 거쳐 ‘명반’으로 등극한 음반들이다.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 음악을 처음 접하는 리스너라면 이런 명연주를 찾아들어야겠지? 그렇다면 첫 번째 미션곡, 베토벤 <교향곡 5번>의 명반은 어떤 음반일까? “당연히 클라이버지!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교향곡 5번>은 ‘다다다 단~’ 이후에도 귀를 뗄 수 없을 것이니라.”

클라이버라. 바로 찾아본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난 독일의 지휘자다. 또 다른 유명한 지휘자인 카라얀과 클라이버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계속 비교해 들어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

베토벤 말대로 운명의 노크소리인 1악장을 들어보면, 카라얀의 연주는 운명이 방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느낌을 준다. 반면, 클라이버의 연주는 마치 투명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쏟아지는 우박을 맞고 있는 기분이다. 당장에라도 비닐이 찢어져 눈앞으로 우박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느낌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다다다 단- 하고 비극성을 고조시키는 첫 소절은 듣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뒤이어 쏟아지는 음들, 다다다단- 소리는 깊어지고, 곡의 분위기는 장엄해진다. 비록 베토벤이 자신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은 아니지만,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청력을 잃어버린 기구한 음악가의 운명이 떠오른다.

“다다다 단, 하는 이 첫 도입부는 베토벤이 공원에서 새 소리를 모티브로 작곡했대. CD에 보면 <교향곡 5번>이 네 개로 구성되어 있지? 이걸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1악장, 2악장, 3악장, 4악장이라고 불러. 이건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이야. 다다다단, 하는 도입부가 2악장에도, 3악장에도 다시 반복되잖아. 마치 운명적인 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듯이 말야.”


청력을 잃어버린 음악가의 삶이란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이 곡을 썼다. 음악가에게 청력의 상실이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음악을 듣는 내내, 베토벤이 과연 어떤 심정으로 이 곡을 썼을까 상상했다. 베토벤은 과연 자신의 이런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악장이나 교향곡의 개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곡을 감상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베토벤의 마음을 떠올려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베토벤은 생전에 두 동생에게 편지를 많이 남겼고 그 기록이 남아있다. 편지글을 모은 책 『베토벤, 불멸의 편지』를 뒤져봤다. 베토벤은 자신을 스스로 ‘아끼는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하는 슬픈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활기찬 기질을 가졌던 베토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증세를 알아챌까봐 바깥출입도 자제했다. 자신의 적들이 이런 상태를 눈치채면 어쩌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연주 여행도 중단해야 했다. 그가 이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그가 자신의 운명 앞에서 느낀 참담함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

“다른 직업이면 모르겠지만, 이 직업에는 치명적인 병이니 나의 많은 적들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들 하겠나.(...) 아 귀가 완전히 낫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땐 자네에게 달려갈 텐데... 이제 다 그만둬야 하나봐. 내 힘과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인생의 황금기를 흘려보내야 하다니. 슬픈 체념에 빠지게 되지만, 기필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해내리라 결심한다네. 그러나 정말 극복할 수 있을까?”

그의 운명은 비극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궁정합창단의 음악감독이었던 할아버지,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그였기에, 이 비극은 더욱 가혹한 것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예민한데다가 혈기왕성하기까지 했던 베토벤은 이십 대 중반에 닥친 이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보통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니까 이러한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음악을 하지 못할 운명’ ‘음악을 하지 말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말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가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그에게 닥친 비극 못지않게 지독했다. 그가 쓴 편지 곳곳에서 이 불행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아, 나는 이 불행 가운데서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겠네. 아니야, 나는 견딜 수 없어. 운명이라는 놈의 목줄기를 졸라버리겠네. 운명은 결코 나를 꺾지 못해. 오! 삶은 너무나 아름답군, 천 번이라도 다시 태어나 살고 싶어. 이런 적막한 삶에 머무를 수 없어!”
그는 운명은 운명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감당하면서 음악을 계속해나갔다.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내면의 깊은 소리를 끌어냈다. 그렇게 본인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교향곡을 작곡해낸 거다. 내가 듣고 있는 이 음악은 그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고쳐 쓰고, 한땀 한땀 정교하게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가 들을 수 없는 소리여서 이토록 강렬한 걸까? 그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곡들이라 이토록 오래도록 많은 사람의 가슴에서 공명하는 것일까?

그는 ‘내가 만약 청력을 잃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정법으로 가득 찬 비통한 세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청력을 잃고도 생계수단인 음악을 부지런히 만들었고, 불멸의 연인에게 사랑에 빠져 연애편지도 열심히 썼고, 친구와 다투기도 했고,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마 선배가 들려준 이런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나서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었어. 하지만, 가끔 그가 사람들 앞에서 시끄럽게 피아노를 두드려댔대.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웃었대. "Ist es nicht schon?(아름답지 않소?) 어떤 기분이었을까. 묘하지?”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너희 생각을 많이 했다

그의 대표적인 곡들이 청력을 잃었을 때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비극이 그의 운명처럼 보였으나, 그는 음악을 운명으로 선택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어둠의 노크로 시작했던 교향곡은 마지막 4악장에 이르러서는 활기차고 쾌활한 외침으로 바뀐다. 운명에 처한 자 아닌 운명을 선택한 자의 당당함이 거기서 묻어난다.

여기 천재라고 불렸지만, 소리를 잃어버린 음악가가 있다. ‘다다다단’, 큰 사건이 그의 삶의 누군가의 삶에 벌어진다. 이걸 너는 어떻게 감당해 낼 거냐고, <교향곡 5번>은 큰소리로 묻는다.

좋고 나쁜 사건들이 우리 삶에 노크도 없이 찾아온다. 어떤 일에 운명이라든지 비극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붙여놓고 과대평가하는 일이 문뜩 오만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하지만, 달갑지 않은 일 앞에서도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비슷하다. 그저 어떤 일이 생긴 것뿐이다. 괜히 움츠러들 일도 호들갑 떨 일도 아니라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겸손함이 있다고. 나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이렇게 들었다.

첫술에 배부르랴.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다시 듣는다. 그리고 베토벤이 생전에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남겼다는 유서를 찾아 한 대목을 소리 내서 읽어본다. 운명을 선택한 자의 목소리다. <교향곡 5번>이 조금은, 다르게 들려온다.

“죽음이 언제 오든 기쁘게 맞으리라. 내가 가진 예술적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전에는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게 괴롭히더라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여, 용감히 너를 맞으리니 언제든지 오라. 안녕히... 내가 죽은 후에도 나를 잊지 마라. 일생동안 그 정도는 너희에게 해주었다.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너희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니 행복해라.”

2번째로 많이 찾은 음반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토벤 : 교향곡 5,6,9번>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도 웬만하면 이름을 한번씩은 들어봤을, 가히 클래식 지휘자계의 아이돌이라 할만한 카라얀의 음반이 2번째의 선택이 되겠다이 음반은 더구나 베토벤의 교향곡중 인기곡 5,6,9번이 같이 들어있다. 연주는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도 꽤나 실용적이다.

색다른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듣고 싶다면?

   글렌 굴드 : <베토벤 교향곡 5,6번 (피아노 편곡버전)>

영화배우 에단 호크를 얼핏 연상시키는 이 얼굴을 잘 기억해두자. 후에 또 등장할, 외모보고 더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피아니스트이다. 베토벤 교향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만든 것은 역시 유명한 작곡가인 리스트(Franz Liszt)이다. 베토벤 5번을 색다르게 들어보고 싶다면, 피아노를 너무 사랑한다면, 글렌 굴드가 맘에 든다면 믿고 들어볼만 하다. 물론, 원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웅장함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므로 그 점은 각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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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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