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산꼭대기를 천문학자들이 50년간 빌린 이유 - 이지유
하와이는 365일 중 300일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곳 세계에서 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하와이 ‘하와이는 관광지’라는 편견 깨고 싶었다
하와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빅 아일랜드는 거대한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마우나케아의 높이는 4,200미터가 조금 넘는데, 제주도 한라산이 1,950미터인 걸 생각하면 얼마나 높은 산이지 알 수 있다. 발 아래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장관을 보면 왜 천문학자들이 이곳에 천문대를 지으려고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곳은 365일 중 300일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천문학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이지유는 어떤 사람인가. 채널예스에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해보고 싶은 일이 엄청나게 많고, 그 중 여러 개를 했으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열을 내서 하는 못 말리는 호모 사피엔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과 천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과학영재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어릴때 배운 피아노는 수준급, 30살에는 바이올린, 40살에는 첼로를 배웠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드럼을 배울 예정. 초경량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러 가야겠다는 나를 식구들이 말리는 중이다. 이유는 내 건강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서 다이어트 좀 하고 가라는 것. 스키, 스쿼시, 복싱, 스포츠댄스, 태극권을 즐기고,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왜 땄는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모든 경험이 과학과 잘 어울어져 진정한 융합 논픽션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일은 다 재미있는 과학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의 출간을 축하한다. 소감이 궁금하다.
책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그림책에 도전해서 멋진 책이 탄생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다. 이 책에는 화가 선생님의 땀과 편집자 분들의 노고가 듬뿍 녹아들어 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다. 훌륭한 팀의 일원이 되어 무척 기쁘다. 조원희 선생님의 그림도 정말 마음에 들고, 내가 썼지만 참 재미있다.
이번 책을 그림책으로 구상한 계기가 있는지.
하와이에 살 때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 관한 책을 만드려고 계획했다. 화산에 관한 책은 하와이에 있는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출판했다. 그런데 마우나케아에 관한 책은 뭔가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 보고 싶더라. 그래서 판타지 형식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우리 애들 보라고 스케치북으로. 그러고는 한 8년이 지나서 비룡소에서 편집자 두 분이 찾아왔다. 하와이에 대한 오해를 깨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등장하는 원고를 썼다. 줄거리는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관측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온 가족이 천문대 견학을 가는 것으로 정했다. 하와이가 관광지라는 편견을 깨고 최첨단 천문 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줄거리가 너무 밋밋했다. 긴장감이 팽팽한 사건을 넣으려니 분량이 많아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강화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고, 천문학자인 엄마, 과학 기자이고 약간 덤벙대며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지닌 아빠, 애어른 같은 민지, 게임과 놀이, 먹을 것을 좋아하는 개구쟁이 민우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몇 가지 우스운 장면을 넣었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는 하와이 천문대를 다룬 그림책이다. 실제로 하와이에 살며 천문대를 방문했는데, ‘하와이 천문대’가 어떤 곳인지, 어떤 매력이 있나.
하와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빅 아일랜드 섬은 거대한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마우나케아의 높이는 4,200미터가 조금 넘는데, 제주도 한라산이 1,950미터다. 그런데 막상 빅 아일랜드에 가면 마우나케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산이 완만하게 내려오는 데다 섬 자체가 워낙 커서 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가려면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차가 어찌나 힘들어하는지, 자동차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게다가 산꼭대기에는 공기가 부족해서 차에서 내려서는 순간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 아래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왜 천문학자들이 이곳에 천문대를 지으려고 애를 쓰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우주와 나 사이에 방해물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실제로 이곳은 365일 중 300일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천문학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세계 각국의 천문학자들은 마우나케아에 천문대를 짓기 위해 하와이로부터 50년 동안 산꼭대기를 빌렸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 산을 아주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그래서 천문대 외관은 산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무채색을 써야 하고 산의 경관을 해치는 어떤 장식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곳에 있는 천문대는 망원경의 렌즈 지름이 10미터에 이르는 대형 망원경이다. 이렇게 큰 렌즈는 세우면 유리가 흘러내리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하는 첨단 기계 장비와 제어 시스템이 붙어 있다. 아, 물론 유리가 물처럼 흘러내린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 내려오지만 약한 별빛을 제대로 모으려면 이런 것도 보정해야 한다. 인간이 이런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 아주 대견하다. 하지만 이런 첨단 기술도 자연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구름을 걷어 내는 기술은 없으니까. 태풍을 피하는 기술도 없고. 그래서 구름이 덜 끼는 이곳 하와이로 천문학자들이 몰려와 천문대를 짓는 것 아니겠나.
우주를 보는 나름의 시선이 있나.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인간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벼운 별은 약한 빛을 내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오래 살고, 무거운 별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내며 열정적으로 살지만 수명은 짧다. “가늘고 길게 살래, 짧고 굵게 살래?” 라고 농담을 하지 않나? 그게 농담이 아니다.
충돌이라면 우리는 나쁜 것을 연상하지만 우주에서 은하끼리 충돌할 때는 별들이 부서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별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피해가고 그 사이에서 가스들이 뭉쳐 아기별이 태어난다.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아들이 생기는 인간 사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로 설계되었으니 우주의 행동 양식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파괴를 위한 충돌이 아니라 우주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생산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별똥별 아줌마’라는 별명으로 여러 과학 분야에 대한 책을 많이 썼다. 언제, 어떻게 과학과 우주, 글쓰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 작가로서의 하루도 궁금하다.
예전에 광주에서 발행하던 《굴렁쇠》라는 어린이 신문이 있다. 그 신문을 구독해서 보고 있는데, 거기에 과학 글이 없더라. 그래서 《굴렁쇠》에 편지를 썼다. 전공을 살려 천문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곧바로 답이 왔다. 아주 흥미로우니 글을 보내라고. 그게 1999년, 35세일 때다. 그때 신문사 편집자 분들과 어린이를 위한 과학 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문의 글이나 책이 일방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누가 하는 말을 그냥 듣는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내뱉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작가는 가상의 독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우선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관심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다. 머리가 맑을 때 공부를 한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한 뒤, 지금 진행 중인 교정지를 보거나 편집자들과 회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해가 지면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
원고지 100매 이내인 짧은 글은 작업실에서도 쓰고 카페에서도 쓴다. 원고지 300매 내외의 글은 일주일에 걸쳐 작업실에서 쓰고, 원고지 800매 정도인 장편은 3주에서 한 달 동안 작업실에서 쓴다. 원고를 쓰는 동안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아침, 점심, 저녁 오로지 글만 생각한다. 거의 일어나지 않고 써서 다리가 붓기도 한다. 물론 글에 대한 구상과 자료 찾기는 그 전에 다 끝나서 머릿속에 있고, 위에 언급한 기간은 노트북 앞에 앉아 풀어내는 시간이다.
과학에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과학에 재미를 붙이게 만들어야 하나.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 사람마다 관심 분야는 다르다. 우리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엄마, 아빠가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먼저 생각해봐라. 만약 부모가 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다면 그 아이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을 확율이 90%.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럴 경우, 과학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말고 과학관, 자연사 박물관에 데려가 마음껏 놀게 해라. 가서 본 것, 배운 것을 확인하지도 말라. 그리고 과학을 재미있게 풀어 쓰거나 이야기로 만든 수준 높은 책을 보여줘라. 그러면 언젠가는 관심을 가지게 될 거다. 만약 과학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면 예술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줘라. 아이들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관심 분야가 여기 저기 나누어지면 깊이 할 수 없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회 문제도 많지만, 한국의 교육 문제는 해결책이 안 보일 정도다. 아이들 중 일부는 성적 스트레스, 왕따 등으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로서, 직접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교육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서 고민이 많을 듯하다. 한국 교육 어떻게 보나,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의 성적 스트레스, 왕따, 자살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범인은 바로 어른이다. 어른들의 그릇된 도덕관, 엇나간 교육열, 공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얄팍한 사고 수준이 우리 아이들을 망친다. 그러니 아이를 가르칠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겠다. 이것이 사회로 확장되면 아이들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공부, 인성은 물론 다방면에 뛰어난 아이들을 만들어야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잘 가르치는 방법이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는 그림이 굉장히 예쁘다. 그림을 보다 보면, 마치 직접 하와이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하와이의 노을은 날마다 색이 다르고 날마다 모양이 다르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특히,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다. 다만 해가 지는 곳이 아닌 반대쪽을 봐야 한다. 거대한 마우나케아 산의 그림자가 구름 바다 위를 스물 스물 기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산에 올라온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모두 해 지는 쪽만 보면서 ‘원더풀, 뷰티풀’ 한다. 참 안타깝다. 구름 위를 기어가는 산 그림자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이 지식을 전달하는 논픽션 책이지만 이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영재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이유가 있나.
지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지식이 나오니까. 문화의 변화도 예전보다 빨라졌다. 작가는 이런 변화에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과학영재교육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글을 쓰고 감성으로 다가가는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과학글은 어린이의 잠재적인 능력과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숨어 있는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냥 쉬운 소재를 선택해 쉽게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더. 과학적 지식이 녹아 있으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은 지식을 넘어서서 자신의 경험을 끌어내기도 한다.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나.
논픽션은 발로 쓰는 책이다. 현장 감각이 살아 있는 책을 더 많이 쓰고 싶다. 독자들은 제 눈과 발과 손과 머리를 통해 그랜드캐넌, 남극, 사막, 폭포 등을 보고 느낀다. 그리고 지식 전달이 아닌 단순히 놀이와 재미를 주는 책도 쓰고 싶다. 나는 그쪽이 훨씬 재미있다. 나라는 인간이 원래는 놀고 웃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를 잘했고, 운 좋게 글을 쓰는 일에 들어서면서 작가가 되었다. 만약 지식 전달이라는 목적을 걷어낸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뜯어 말리기도 한다.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목표가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글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음…… 필명을 여러 개 만들어야 되겠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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