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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살에 파일럿에 도전한 여성 - 조은정

호텔리어 → 美 대사관직원 → 최초 여성 파일럿 삼천포로 빠져버린 내 직업은 여성 파일럿?! <김미경 쇼>가 선택한 드림워커, 『스물 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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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과연 이 말을 현실화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열정을 탓하기도, 여건만 탓하기도 어려운 꿈 찾기. 중국항공사 최초 한국인 여성 파일럿으로 현재 상하이 지샹항공에서 캡틴으로 일하고 있는 조은정은 29살에 파일럿을 꿈꿨고 35살이 되던 해, 스스로 천직이라 부르는 파일럿이 됐다. 비행으로 치면 출발이 한참 지연된 비행기였지만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빛나는 드림워커가 됐다.


누군가 조은정에게 “어릴 적 꿈이 파일럿이었니?”라고 물으면,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사방이 산과 들, 논밭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이천 산촌리에서 자란 조은정은 6남매 늦둥이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10살 꼬마 조은정의 장래희망은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은정이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언니의 반복되는 말에 반항심이 생겨 교사의 꿈을 버렸고 그나마 잘했던 미술 실력을 살려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그녀의 꿈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문구디자인을 하겠다는 꿈이 전부였고, 졸업이 다가오던 해에 건축디자이너에 호기심이 생겨 일본으로 무작정 유학을 떠났다. 구두쇠 아버지가 유학비를 지원해줄 리는 없었고 기내식을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 자금을 마련했다. 비행기와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녀는 자연스레 항공사에 관심이 생겼고 최종 목표를 스튜디어스로 변경한다. 하지만 항공사 입사시험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연거푸 입사시험에 낙방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 있었던 영어, 일본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직업 ‘호텔리어’가 되기로 결심하고 힐튼호텔에 입사한다. 그렇게 3년 동안 호텔리어로 활약하던 중,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외국인 여성 조종사를 본 뒤 파일럿의 꿈을 갖게 됐다. 그때 조은정의 나이는 스물아홉.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둘씩 낳기 시작했던 때였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이에 파일럿에 도전한다?! 그것도 한국 항공사의 파일럿 자격 조건에는 한참 딸리는 나이, 시력인데?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세 번의 도전 끝에 미 대사관 입사, 대사관저 비서로 일하면서 오산 미 공군부대 에어로클럽에서 훈련을 받은 조은정은 결국 35세가 되던 해, 파일럿이 됐고 2011년 39세 나이에 마침내 ‘캡틴’ 타이틀을 얻었다. 현재 상하이 지샹항공에서 기장으로 일하고 있는 조은정은 중국항공사 최초 한국인 여성 파일럿으로 약 3%가 채 되지 않는 여성 파일럿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6년 전, 여성 파일럿의 유니폼과 구두가 하나도 없어 손수 구두를 맞춰야 했지만, 이제 10명의 여성 후배들이 조은정을 따르고 있다.




호텔에서 외국인 여성 파일럿을 마주친 후
많은 사람들이 꿈을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기고 바라보기만 한다. 그 이유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금의 학비와 시간을 들여 공부했으니 전공 분야에서 일을 해야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 지금까지 일해 왔던 곳에서의 직위와 경력이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는 것. 어쩌면 당연하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들인 노력을 불안한 미래와 맞바꾸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가장이라는 경제적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지금 하는 일을 내려놓고 꿈을 좇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거나 다른 것이 하고 싶어 마음이 답답하다면, 지금의 자신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변화가 없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p. 139)
지난주에 <김미경 쇼> 녹화를 했다. 벌써 방청객들의 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왔더라. 여성 파일럿이라는 점에도 화제가 됐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했다는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이슈가 된 것 같다. (tnN <김미경 쇼> 폐지 이전에 진행한 인터뷰임)

예전에 KBS <강연 100℃>, 스토리온 <김수로 김민종의 마이 퀸>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이 닿았다. <김미경 쇼> 토크는 『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의 첫 번째 챕터인 ‘오픈 마인드’의 내용을 축약해서 이야기했다. 녹화하기 2주 전에 다른 게스트의 방송을 지켜봤는데 다들 열정이 빛나 보였다. 사실 처음에 출간 제안을 받고서는 거절을 했다. 내가 에세이를 쓸 만큼 대단하지도 않고 글도 써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파일럿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도움이 될만한 팁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파일럿에 대한 정보를 다루려고 했는데 정보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곁들인 파일럿 이야기를 쓰게 됐다. 며칠 전에 책을 한숨에 다 읽었다는 후기를 전해 들었다. 가장 기분 좋은 리뷰인 것 같다(웃음).

미대 출신, 호텔리어, 대사관저 비서 등 프로필이 화려하다. 미술과 언어에도 재능이 많았는데 파일럿의 길을 가게 된 것이 흥미롭다.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인가? 인생에 열정이 많은 것인가?

한국에는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로 여겨지는 것 같다. 실제로 외길 인생을 걸으면서 성공하신 분들도 많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 혹은 내가 하는 공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거나 의문이 드는 것이라면 굳이 그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동기들 대부분 어느 정도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삼천포로 빠진 내 직업을 신기해한다(웃음).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아깝지 않냐고도 말하는데, 난 대학에서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과 협조하는 삶, 사회생활에 필요한 인내, 능률적으로 일하는 것을 배웠고, 굳이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고 나의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튜어디스 지원을 포기하고 호텔리어로 3년간 생활했다. 호텔리어도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고 3년쯤 됐을 때는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텐데, 어떻게 파일럿에 도전할 생각을 했나?

호텔리어를 지원한 건 내 언어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에 붙은 건 아니다. 1년 동안 지겹도록 이력서를 썼다(웃음). 호텔리어로 몇 년 경험을 쌓고 나면 해외 지점에서도 근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로컬로 취업을 한 경우라 해외 발령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후, 20년 후를 상상해봤는데 그 때도 이렇게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며 직장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까 답답했다.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던 중에 호텔에서 우연히 미국 페덱스 화물기 기장인 ‘제니스 스킬라’를 만나게 됐다. 처음 ‘제니스 스킬라’ 기장님을 만났을 때는 그녀가 여성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리 받은 투숙객 명단에는 성과 이니셜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 어떤 파일럿보다 당당하게 호텔로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 때부터 파일럿을 꿈꾸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바꿔준 분이다.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호텔리어로 생활할 당시, 투숙하는 외국인 파일럿들과 친분을 돈독히 쌓았는데 비결이 있었나? 아무리 호텔리어라고 하더라도 수백 명의 고객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떤 면에서는 윈윈(win-win)이었다. 그들도 나의 관심을 좋아했으니까(웃음). 호텔리어와 고객과의 대화는 거의 매일매일 똑같은 내용인데, 고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주면 그들은 신나게 대답해준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한 기색으로 호텔에 왔더라도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면 기뻐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그들을 통해 나는 파일럿에 대한 정보도 얻었고. 그래서 윈윈(win-win)이지 않았나 싶다.

2001년 당시에는 한국에 저가 항공사가 없었다. 국내 두 개 항공사의 파일럿 자격 요건에는 나이도 시력도 맞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면 포기하기 마련인데.

그 때 내 나이가 만 29세여서 채용 기준 나이는 훌쩍 넘은 상태였다. 1990년대 후반의 채용공고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나이 제한은 25세였고 시력도 양쪽 모두 1.5 이상이어야 했다. 나는 시력이 0.8이었기에 내가 파일럿이 되는 길을 없는 듯 했다. 그래서 포기를 해야 하나 싶던 중에 오산에 있는 미공군 부대 안에 페덱스 여기장 스킬라가 비행을 시작했던 곳과 같은 에어로클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난 당장이라고 비행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미군 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이 없어 입학이 안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출입증이 필요하면 발급을 받으면 되는 일 아닌가(웃음). 미군 부대나 미국 대사관에서 일을 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미국 대사관으로 직장을 옮겼고 다행히 대사관에서의 임무가 대사의 비서였기 때문에 미군 부대 출입증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비서로 일하면서 훈련을 받는 것이 가능했나?

대사님 부부께 비행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을 때, 두 분은 흔쾌히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 다만 한 가지 약속을 하길 원하셨다. 대사님이 한국에 있는 3년 동안은 절대로 비서 일을 관두지 않는다는 것. 나는 비서 일을 하던 3년 동안 주말에는 에어로클럽에서 비행공부를 하면서 미국 각지에 있는 항공학교 정보들을 스크랩했고 미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교 투어를 했다. 그리고 대사님께서 한국을 떠난 해에 나도 미국으로 떠났다.

대서관저 비서 직무를 마치고 미국 델타항공 비행교육원에서 전문 파일럿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중국 항공학교에서 교관활동을 했다.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 갈 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파일럿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중국 항공학교에서 외국인 비행교관을 채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아뒀던 유학 자금도 다 써버린 시점이라 급여조건에 이끌려 간 것뿐이었다. 어찌 보면 또 한 번 정상적인 길을 가지 않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미국 친구들은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으니까. 하지만 2006년 미국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정상적인 길을 선택했던 미국의 친구들과 나의 미래는 정반대가 됐다. 돌고 돌아 늦은 길이라고 생각했던 내 미래는 중국 항공업계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지금 난 마흔의 나이이고 기장이 되었지만, 내가 스물아홉이었을 때 한국에서 부기장을 하던 파일럿 중에는 아직도 기장이 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조금 늦게 출발하더라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로 돌아가더라도, 침착하게 방법을 찾고, 찾은 방법을 잘 실행하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것도 생각보다 더 빨리.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꿈을 이룰 수 없거나 다른 사람에게 뒤지는 것이 아니다. (p.88~89)


동북아시아의 관계 발전을 위한 일 하고 싶어
파일럿은 나의 천직이다. 비행을 하는 것이 내 취미이자 일이 되었다. 파일럿이라는 직업은 늘 나를 약간의 긴장 속에 살게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들고 체력유지와 같은 자기관리를 하도록 만든다. 또 계속해서 공부를 하도록 부여한다. (p.80)
누구나 꿈을 꾸고 꿈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민만 하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파일럿 조은정이 있기까지 성격적인 면도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다.

성격이 급한 편이다(웃음). 보통 사람들보다 판단을 빨리 하는 편이고. 뭐를 하나 생각했는데 해볼만한 것이면 비교적 빨리 빨리 추진한다. 뭉그적대는 걸 싫어한다. 한두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당장 실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마 이런 성격도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된다. 비행교관으로 일했던 중국 항공학교는 오전과 오후로 교대 근무를 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 퇴근했다. 그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으면 조금이라도 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능했고(웃음). 더불어 내 학생들도 비행 진도가 빨리 나갔고 너도나도 내 학생이 되길 희망했다. 그 결과 예상치도 못했던 이전에는 없었던 ‘우수 교관 표창장’도 받았다.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한 길을 걸어온 사람과 비교해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파일럿 조은정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자들이 많이 있는 직장에서 일을 해봤기 때문에 승무원들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거 같다. 눈물 쏙 빠지게 교육받는 승무원들의 세계를 호텔에서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포용력이 생기지 않았을까. 또 대사관에서 비서로 일했던 경험은 계획을 짜고 수행하는 업무에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상해에 놀러 온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그들의 분 단위 스케줄을 모두 완벽하게 짜주고 있다(웃음).

한 달에 며칠 정도 비행을 하고 있나? 가장 많이 비행하는 나라는 어디인가?

13일~15일 정도 비행을 한다. 보통 중국 국내 왕복과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방콕, 치앙마이, 말레이시아를 자주 간다. 한국은 오는 5월 정도부터 취항한다. 휴가 때 자주 한국에 방문하지만 직접 비행해 온다면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기대된다.

현직 항공사의 첫 번째 여성 파일럿이다. 지금은 여성 후배들이 많이 생겼나?

5년 전 내가 지샹항공사에 첫 여자 파일럿으로 입사했을 당시 전체 파일럿의 숫자는 겨우 50명 내외였다. 지금은 조종훈련생을 제외하고 현역으로 일하는 파일럿이 약 300여 명이 된다. 그 중 여성 파일럿은 10명, 약 3%다. 아직 미미하지만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파일럿은 남성의 직업이라는 시각이 아직도 많다. 여성이 도전한다면 ‘그래,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라는 시선으로 본다. 하지만 그 시선을 한번 즐겨보는 건 어떨까. 그 곱지 않은 눈빛이 놀람의 눈빛으로 바뀔 때까지(웃음).


많은 중고등학교, 대학으로부터 직업 특강 요청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파일럿이 될 수 있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그런 경우는 어디에서부터 대답해줘야 할지 난감한데,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고 답해준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그 길이 보인다. 지금부터 파일럿이 되는 길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시험제도나 자격 요건은 매년 바뀌기 마련이다. 우선 지금 현실에 닥친 공부부터 열심히 하다 보면 파일럿이 되는 길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시력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미국이 5년 전에 라식 시력을 인정했듯이 한국도 곧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파일럿을 꿈꾸고 있진 않지만, 자신의 꿈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에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다.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일들을 여러 방향에서 고민했으면 좋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꿈을 향한 작은 시도부터 시작한다면 언젠가 그 꿈에 닿아 있을 거다. 한 단계씩 가는 게 중요하다. 한번에 곧장 가는 길 말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일들을 하나씩 해봤으면 좋겠다.

왠지 조은정의 마지막 직업이 파일럿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최후의 꿈이 있나? 

(웃음). 우선 10년, 20년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지 않았지만 동북아시아의 관계 발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중국 전문가 교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예상만 할 수 있을 뿐,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실제로는 알 수가 없다. 적당한 시기를 놓쳤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이미 늦은 나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도가 망설여지고 미래에 닥칠 것 같은 태풍 예상도가 두려운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착륙 가능성을 믿고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우리도 자신의 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이륙을 해야 한다. 설령 선회비행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회항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막상 그 미래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그 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일 수 있다.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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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조은정 저 | 행성:B잎새
이 책은 늦은 나이에 파일럿이란 꿈을 꾸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 하늘과 비행기와 함께 했던 이야기들, 파일럿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실질적인 조언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파일럿을 꿈꾸는 후배들, 파일럿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찾아가도록 조언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관제사, 앞서간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탄치만은 않았던 가정환경, 늦은 나이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야기, 파일럿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담아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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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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