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양준모 표 Confrontation(대결)
기자도 한 때 ‘지금 이 순간’과 ‘Confrontation’을 부른 브로드웨이와 한국 배우들의 동영상을 모조리 찾아 비교해가며 점수를 매긴 적이 있다. 1인 2역, 그 지극한 대립각의 정수, 그래서 양준모는 아직 고민 중이다.
“지킬의 입장에서 보면 하이드에 대한 부분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누군가와 결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컸어요. 거기에 대한 해석을 좀 깊이 했죠. 솔직히 말하면 Confrontation 장면에서 지킬이 하이드를 이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언제 또 하이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왜 결혼하지 싶은 거죠.”
그래서 얼마 전 공개한 ‘지킬 앤 하이드’ 뮤직비디오 영상에서 흑과 백으로 대비되는 지킬 앤 하이드와는 또 한 차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단다.
“제 팬들은 그 영상을 보고 공연에선 물론 이게 다가 아니라고 팬카페에 올렸더라고요. 영상이 훨씬 노멀해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모습이라 제가 해석한 지킬과 하이드를 선보이는 게 조심스러워요. 보는 사람들이 ‘왜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잖아요.”
양지킬의 ‘Confrontation’, 기대하는 모습에 대한 이율배반이 될지, 몰입의 증폭이 될지는 본 공연에서 확인하시라.
“억누르고 산 지킬과 많이 닮았어요”
배우 양준모가 지킬을 처음 맡았을 때 사람들은 하이드가 쉬울 거라, 잘 어울릴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처음엔 하이드라는 인물을 표현하기가 어려웠고 지금은 어느 한 쪽을 잘 드러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contrast(대비)를 명확하게 줄 수 있을까, 이게 양준모의 고민이다.
“그런데 대본 분석 초반부터 지킬이라는 인물을 파면 팔수록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제가 억누르며 산 게 많아요. 그래서 표현에도 서툴고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산에 가서 꽃이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표현을 아직도 잘 못 해요. 운전을 하면서 화를 내거나 욕해본 적도 없고요. 지킬이라는 인물도 하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표현을 잘 안 하거든요. 하지만 어느 정도 누구나 하이드를 안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안 하는 거지, 없는 건 아니거든요. 하이드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다 확 변하는데 그런 주저하는 모습이 저와 비슷한 거죠. 하이드의 모습은 고민하거나 계산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내재된 무언가를 빵 터뜨리는 거죠. 그래서 다른 배우들이나 팬들이 제 ‘하이드’가 가장 무섭다고들 해요.”
그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게 바로 지킬에 대한 분석 결과.
지킬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참고 살았는지 고찰하다보면 하이드의 폭 넓은 반전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킬을 맡기 위한 그의 전략
그는 스케줄이 되지 않음에도 오디션을 봤다.
우선 미리미리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그게 그의 전략이었다.
“오디션을 볼 때 다른 공연과 겹쳐서 계속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욕도 먹었죠. 그럴 거면 오디션은 왜 보냐고. 그러다 제가 지킬의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2년 전부터 오디션을 안 봤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제작사에서 연락이 온 거죠. 한창 오디션을 볼 때 이 역을 맡았다면 지금처럼 편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만큼 무대 위에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해봤고 많은 인생을 해봤잖아요.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배역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얘기죠.”
그의 전략은 결국 적절한 시기에 그를 지킬로 변화시켰다.
영화 알투비, 광해에는 양준모가 있다, 없다?
뮤지컬 배우 10년차, 그에겐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도전한 영화,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와 광해.
사실 광해에선 좀 큰 역을 맡을 뻔도 했지만 뮤지컬과 겹쳐서 원래 들어온 역보다 좀 작은 역을 맡았다.
“저를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저도 영화 개봉하고 좀 지나서 보러 갔어요. 저도 못 찾겠더라고요. 다 편집돼서.”
만약 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면 그의 인생에도 반전이 생기지 않았을까?
“정석이랑은 달라요. 과연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좀 더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뮤지컬 배우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로 빵 뜬 남자, 조정석처럼 셀카만 찍어도 뉴스에 실리는 날이 언젠간 올지도.
어쨌든 당시 뮤지컬 ‘서편제’로 데뷔 후 처음 상도 받았다.
“어쨌든 스스로 환기가 잘 된 거예요. 그런 기분으로 참여하게 된 게 이번 작품이죠.”
“오페라도 계속 하고 싶어요”
성악 전공자들에겐 뮤지컬 배우가 새로운 일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악 발성이 뮤지컬 무대에서 썩 먹히는 편은 아닌 바.
발성을 바꾸기 위해 대단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헌데 양준모는 반대로 뮤지컬을 하면서 오페라 무대도 꿈꾼다.
“요즘도 오페라 제의가 들어왔어요. 시간이 안돼 못했죠. 문제는 오페라 발성을 다시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지금 뮤지컬을 하면서 발성을 너무 많이 바꿨어요. 그런데 오페라에 대한 욕심은 안 버리고 있어요. 계속 하고 싶어요.”
그가 오페라에 대한 꿈을 접은 이유, 유학을 생각하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경험삼아 했던 첫 작품 뮤지컬 ‘금강’이 인생을 바꿨어요. 장민호, 서희승, 양희경, 강신일 선생님 등이 함께 했죠. 평양에 가서 공연을 했어요. 공연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무대 위에서 느꼈죠. 북한 현지 관계자들이 북한 사람들은 울긴 많이 우는데 잘 웃진 않는대요. 그런데 공연 중에 북한 사람들이 많이 웃고, 많이 울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는 각 잡힌 양복을 입고 락뮤지컬 오디션을 봤다.
양복을 입고 춤이라 할 수 없는 동작으로 안무 오디션에도 응했다.
물론 떨어졌다.
하지만 각 잡힌 양복이 오히려 튀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눈여겨본 연출의 콜이 왔다.
조승우: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힘주어 형이라 말하던 조승우는 지킬 선배이기도 하다.
지금도 몇 시간씩 무대에 대해, 연기에 대해,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승우 형’이 이번 작품에 준 조언은 바로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양준모 표 지킬과 하이드로 내년에 주연상을 받는다면 그는 다음엔 꼭 모범상을 받겠다고 말하겠단다.
주연상보다 더 받고 싶다는 그 상, 배우 모범상. 앞으로 ‘배우로서’ 모범적인 그의 행보에 빨간 양탄자 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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