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데뷔할 때 만화가로서 결격 사유 많았죠” - 만화가 강풀
어린 친구들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26년』 그렸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
지난 12월 8일, 명동에 위치한 문화 공간 커먼플레이스에서 진행된 강풀 작가와의 만남은 영화 <26년> 개봉 후 강 작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자와 만난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 YES24도 함께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 강풀 작가와의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영화 <26년>은 어떠셨나요.
이전에도 영화를 몇 번 해보기는 했지만 <26년>의 경우에는 정말 힘들게 나온 영화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는 나온 것 자체가 감사해요. 이 영화가 좋다, 나쁘다, 라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정말 이 영화 못 나오는 줄 알았거든요. 저는 사실 영화화된 작품의 흥행에는 큰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잘 되기를 바랐어요. 만화 『26년』을 그릴 때 1980년 5월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어요. 만화도 물론 파급력이 있지만 영화는 파급력이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봐 주시길 바랐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80년 5월 광주가 오르내리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흥행도 생각보다 아주 잘 되고 있어서 기분 좋습니다.
영화 <26년>의 개봉시기를 두고 프로파간다(선전)로 비춰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대하시는 긍정적인 영향은 있을 것 같은데요.
대선을 3주 정도 앞두고 개봉이 됐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영화가 대선용 영화로 비춰지는 게 싫어요. 광주 5ㆍ18 이라는 이야기가 대선을 앞두고 프로파간다처럼 비춰지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대선과 상관없이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에요. 사람들은 대선의 표를 위해서 이용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런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결과적으로는 대선 전에 개봉을 했기 때문에 부인할 수는 없는데, 사실 이 영화는 대선 전에 개봉하려고 계획한 영화가 아니거든요. 이미 몇 차례 제작이 중단돼서 여기까지 오다가 개봉된 거예요. 기왕 이렇게 됐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난 역사를 한 번쯤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의 영화화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허락하시는 편인가요. 선택의 기준은 어떤 것인가요.
쉽게 결정하지 않아요. 굉장히 까다롭게 골라요. 가장 첫 번째 기준은 이 영화 제작사가 정말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어떤 제작사들은 일단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의미를 두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작사가 이 영화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에요. 두 번째는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가’죠. 거기에는 굉장히 중요하게 차지하는 게 감독님이에요. 몇 번 (영화화)해보니까 만화는 만화가의 것이지만 결국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더라고요. 어떤 감독이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에도 사실 감독님을 가장 먼저 누가할까를 중요하게 생각했었고, 앞으로도 감독님을 더 중요하게 먼저 생각할 것 같아요.
예상보다 흥행이 잘 되지 않았던 영화도 있을 텐데요. 관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결과에 만족합니다. 저는 정말로 대중의 눈을 믿어요. 대중이 그 정도로 좋아하고 그 정도로 보신 거죠. 대중은 정직한 것 같아요.
기대와는 다르게 대중이 외면했다 하더라도 아쉬움은 없으신 건가요.
네. 그게 맞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운 좋게 영화가 잘 되는 경우도 없는 것 같고 운 좋게 만화가 더 많이 읽히는 경우도 없는 것 같아요. 대중에게 창작물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안 좋은 결과에도 승복해야 하는 거고, 좋은 결과라면 기분 좋아하면 되는 거죠.
평소에도 SNS를 통해 솔직하게 정치적 견해를 밝히시는데요. 유명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한 입장이 확실하게 정리되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름이 알려진 만화가이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못할 건 또 뭐 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도 트위터에 썼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제일 정치적인 얘기거든요. 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저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누구라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사람,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정치는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한 거예요. 그것을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야 하고 오히려 더 나아가서 누구나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 생활하고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 하겠고요. 앞으로도 계속 할 거예요.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데 이 나라에 대해서 얘기를 못 할 것은 뭐가 있는가, 생각이 들고요. 만화로 그런 내용을 그리는 것은 저는 만화가니까요. 제가 말 잘하는 사람이면 말로 했겠죠.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로 하듯이. 그런데 저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니까 만화로 하는 것뿐이고요. 그냥 내가 살면서 느끼는 걸 얘기할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습니다.
웹툰 『26년』의 후기에서도 밝히셨다시피 이전 작품들보다 그림체에 욕심을 내신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림체와 관련해서 고민하신 부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26년』 전과 후로 그림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26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5등신이고, 6등신이고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렸었는데요. 『26년』은 팩션이잖아요. 팩트에 픽션이 붙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물론 그렇게 해도 능력의 한계로 인해 그림이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현실감 있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26년』을 그릴 때는 주 2회 업데이트였는데도 마지막 화가 거의 2주 동안 펑크가 났어요. 그만큼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부족한 능력 가운데에서도 최대치를 발휘하려고 하다 보니까 마감이 많이 늦어졌죠. 솔직히 지금 보면 그림이 조금 어색하고 안타까운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해요. 그 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밖에는 안 될 것 같아요. 만족합니다.
작품 분위기의 측면에서 기존의 캐릭터 보다 조금 더 무거운 느낌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민도 있으셨나요.
역으로 저는 『26년』이 무겁지 않게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광주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건넨다고 하면, 어느 정도 광주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무겁게 받아들이거든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만화를 그리지만 그 의미를 강요한다면 만화가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만화는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가 있어서 읽힌 다음에 의미가 전달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26년』은 오히려 다른 만화보다 더 재미에 치중을 했죠. 저는 어린 친구들한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이 만화를 그렸거든요. 너희들이 잊으면 안 된다, 여러분 잊으면 안돼요, 하면서 무거운 이야기를 계속 건네면 사람들이 보다가 지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죠. 사실 극중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곽진배라는 조직폭력배잖아요. 만화 그리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저는 조폭 미화가 싫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이 제일 멋있게 나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26년』은 오히려 그 어떤 만화보다도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취재를 위해 광주에 가셨을 때 유가족을 실제로 만나거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연재하기 전에 광주에 2주 정도 내려가서 숙소를 잡고 취재를 다녔거든요. 후기에 나오는 망월동 묘역 사진도 제가 직접 찍은 것이고 유가족 분들도 만났죠. 그리고 시민군이었던 분도 실제로 만나 뵙고 인터뷰를 했죠. 당시에 제가 느꼈던 건 ‘많이 잊히고 있구나, 심지어 광주에서 조차도’라는 것이었어요.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 분들도 학생회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많이 알았었던 것 같고요. 광주에서조차도 기억 속에 흘러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는 이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그래서 만화를 그렸죠.
처음에는 정말 단순 논리로 ‘광주를 알리자’라는 마음으로 광주를 찾았다가, 구 도청과 망월동에 갔을 때는 정말 너무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대충 대충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싶었어요. 원래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광주까지 내려갔지만 마음이 더 무거워졌어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데 힘을 썼죠. 만화니까 내 무거운 마음이 드러나지 않아야 된다, 재밌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광주에 가자마자 망월동에 갔었고 떠나는 날 한 번 더 망월동에 갔었거든요. 가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재미있게 그리겠습니다. 더 재미있게 그려서 더 많이 기억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왔었죠.
지금까지 모든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온라인에서 작품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까요.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가 완전히 소유했다는 느낌과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죠. 물론 요즘 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전자매체들이 많이 있지만, 책은 그것 하고는 다른 질감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봤을 때 누구나 다 그것을 소유하고 싶잖아요. 그걸 해줄 수 있는 게 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제 만화도 『26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만화를 인터넷으로 볼 수가 있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을 사주시고 소유하고 계신 분은 정말로 고마워요.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만화를 좋아해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죠.
얼마 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주호민 작가님께서는 단행본 출간을 위해 부록을 새로 그리기도 한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께서도 추가 작업을 하시나요.
저는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주호민 작가의 생각이 옳다고도 보는데 생각이 약간 다를 뿐이고요. 웹툰을 그릴 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기 때문에 더 덧붙일 게 없다고 봅니다. 제가 잘나서 만화를 더 그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가끔 그런 제안도 받아요. 책으로 나올 때 뭔가 플러스 되는 요인, 팁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더 넣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죠. 그런데 넣을 게 없어요. 저는 제가 완전히 만족하는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 같아요. 다만 웹에서 책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올 때 편집에 더 신경을 쓰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웹툰을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와 웹툰 작가들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환경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웹툰은 현재 포털 사이트에 많이 기대어 있어요. 양대 포털 사이트에서 만화들이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조금씩 유의미한 방법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웹툰에서의 만화가 얼마 전부터 유료화 되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에 허영만 선생님께서 시작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지금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만화가 연재되는 기간 동안에는 무료고 연재가 끝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유료화로 돌려요. 그것은 앞으로 좀 더 확장될 것이고, 확장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은, 저는 웹툰이 공짜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고 보거든요. 또 그것은 작가들한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독자 분들한테도 굉장히 유리한 상황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만화가들은 고료로만 생활을 하잖아요, 특히 신인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 끝나고 나면 당장 수입이 끊겨서 직업인으로서 만화를 하기가 힘든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들은 연재 중인 만화가 끝나고 나면, 자신이 조금 덜 준비가 되었거나 아직 부족해도 바로 만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요. 만화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게 되는 거죠. 충분히 준비를 하고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고 난 다음에 만화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에라도 고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만화를 시작한다면, 그것이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영위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좋지 않은 만화가 나올 수 있거든요.
작가가 정말 자기 마음에 들고 독자들한테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만화가 나올 때까지 버텨줄 수 있는 것이 웹툰의 유료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뿐만 아니라 ‘네이버’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이것은 작가들의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연재 기간 동안 열심히 그려내고 그때는 고료를 받고, 독자 분들은 연재 기간 때 보시면 되는 거죠. 후배 작가들에게도 이것이 차츰 차츰 적용이 되겠지만, 더 넓고 빨리 적용이 되어서 안정적인 환경에서 만화를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전체적으로 더 좋은 만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독자 분들한테도 더 좋은 작업물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업환경은 어떤 것입니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은 못하겠는데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방식이 있거든요. 제가 지난 10년 동안 10편의 장편만화를 냈는데, 저한테 맞는 작업방식인 것 같아서 저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할 것 같아요. 사실 10년에 10편이라고 하면 굉장히 다작이거든요. 다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1년에 5개월만 연재를 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 충분히 준비를 해서 들어가는 거예요.
작가들이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휴식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휴식하고 말 그대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갖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작가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고료라든지 처우가 개선이 되고 유료화 부분이 확대가 되어야겠죠. 사실 어느 작가나 한 번에 2~3군데에 연재하고 싶어 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계속 한 번에 한 군데, 한 번에 한 작품만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나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 하나를 끝내고 나서 휴식기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히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리지는 않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님에게 만화는 잘할 수 있는 일이었나요, 하고 싶은 일이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마음이 더 강하고, 만화는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이죠. 다시 다른 직업을 택하라고 하면 저는 할 만한 다른 직업이 없어요. 유치하게 말하면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가 될 것 같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우기지만(웃음), 사실 저는 처음 데뷔할 때 만화가로서의 결격 사유가 많았죠. 일단 그림이 제대로 안 됐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까 욕심이 나고, 자꾸 더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잘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마음이 먼저 중요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사람이 다 똑같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제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그거에요. 강연을 다니거나 메일을 보면 굉장히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인데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직업으로 삼았다가 싫어지면 어떡하죠’ 라는 질문이에요. 그건 아직 어린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싫어지는 게 두렵다면, 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더 힘들어요.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일단 좋아한다면 나중에 싫어질까봐 무섭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해요. 능력에 대한 부분은 정말 소질이 안 맞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싫어도 해라, 하면 된다,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하면 된다”라는 건 사실 거짓말이거든요. 안 될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좌파 성향의 작가라는 일부 시선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으셨죠.
제가 좌파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하도 좌파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진짜로. 피하기 위해서 대답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좌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상식적인 거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저는 제가 가운데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왼쪽에 있는 걸로 보이겠죠. 제가 원하는 세상은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죠(웃음). 진짜에요. 그 어떤 돈과 물질, 그런 것보다도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가장 좋은 거죠. 그리고 평등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평등했으면 좋겠어요. 인권이 지켜지고요. 제가 원하는 건 기본적인 인권과 평등이 지켜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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