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이야기만 하면 여자가 좋아하겠어?" - 조영남ㆍ김정운
‘예술 좀 아는 남자’들의 유쾌한 명작 토크 고정관념 타파! 쉽고 재미있는 명작 이야기 『KBS 명작 스캔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KBS1에서 방영된 <명작 스캔들>은 예술작품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의 전형을 깬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주된 핵심은 명작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굳이 진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진행자들의 유쾌하고 때론 엉뚱한 해석은 명작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게 했다. 그 중심에 바로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와 가수이자 화가로 살아가는 조영남이 있었다.
<명작 스캔들>이 처음 만들어지면서 섭외를 했을 당시, 서로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그리고 실제 진행을 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한데요.
김정운(이하 김) : 저는 개인적으로 조영남 형님 어렸을 때부터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어요. 같이 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영광이었죠.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영남이 형님 그늘에 가려서 어떻게 하려 그러냐는 걱정을 많이 하긴 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야기해보면 너무 재미있으세요. 사람들은 모르는데 천재 같기도 해요. 보이는 것과는 틀려요(웃음). 이야기가 잘 맞아떨어져서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조영남(이하 조) : 나는 이 양반 하는 몇몇 채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어, 참 재미있는 사람이 나타났다’하고 호기심이 만발했죠. 같은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드디어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과 만난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막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굉장히 말 속에는 정리가 돼 있고 뼈대가 있잖아요. <명작 스캔들>을 같이 한다고 해서 나한테도 그런 기회가 오는 구나 싶었는데, 첫날 만나면서 호형호제하게 됐어요. 나이 들어서 그렇게 되기 힘든데, 명작 스캔들 덕분에 지금까지 친구사이로 잘 지내고 있죠.
<명작 스캔들>은 기획 당시부터 기존 같은 장르의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를 추구했습니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드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은데, 두 분이 진행을 하면서 느꼈던 소감은 어떠했는지요.
김 : 개인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가 나온 지도 벌써 1년이 됐지만, 오늘 아침에도 예전 방송을 다시 보니까 우리가 정말 재미있게 잘했다 싶더라고요. 우아하고 폼 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었다는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고급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들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문화예술에 대해 자기 의견과 생각,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봐요. 저변을 확대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죠.
조 : 나는 우리나라에서 미술, 음악 등의 명작을 대표로 나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인물이 나하고 김정운 밖에 없다는 사실에 비감함을 느껴, 이렇게 인물이 없는가(웃음). 그런데 하면서 보니까 이게 영국 BBC나 미국에서도 못 본 프로그램이더라고요. 우리만의 독자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 그러니까 얼마 전에 유럽방송연맹에서도 상 받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잘했구나 하는 걸 뒤늦게 느꼈어요.
두 분 모두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하신데, 혹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내심 감정이 상했던 순간은 없으셨는지, 또 다양한 명작을 두고 서로의 작품 평가 중에 무릎이 쳐질 정도로 절묘했던 말을 꼽는다면?
김 : 제가 방송에서 영남이 형님 말을 끊고 하니까 작가들이 “교수님 그러셔도 되요?”라며 걱정하긴 했어요. 그런데 한날은 함께 식사하면서 “야, 네가 날 더 씹어야 돼. 그래야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영남이 형님 말씀 중에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어요. 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슈만과 클라라의 관계가 알려진 것과 달리 내가 봤을 때는 클라라가 굉장히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슈만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라고 했죠. 그러니까 영남 형님이 “어떻게 행복하고 불행이 따로 있는 걸로 생각을 하느냐. 사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거다. 따로 생각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야 대단한 통찰인데’싶었어요. 역시 많은 여자들로부터 단련을 받으시니까 이런 통찰이 가능하구나(웃음). 암튼 그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 우리는 행복한 시기가 따로 있고 불행한 시기가 따로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보면 행복과 불행이 항상 맞물려 있었고 거기에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온다는 거죠.
《서정적인 슈만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낭만성을 분출하는 작품 <교향곡 제4번>. 이 곡이 열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슈만의 뮤즈이자 영원한 사랑이었던 클라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교향곡 제4번>이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 찬가라는 것이다. 슈만의 생애에서 클라라와 결혼한 이듬해인 1841년은 ‘교향곡의 해’로 일컬어진다. 이 해에 슈만은 두 편의 교향곡과 하나의 작은 교향곡 등 관현악곡들을 집중적으로 작곡하는데, 클라라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후략)-『KBS 명작 스캔들』 中》
조 : 이 친구는 무한 도전자에요. 감당 못할 정도로 도전해요. 지금도 일본에 가서 사는 모습을 보면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가 나하고 <향수>를 이중창을 부르겠다고 해요. 엄청난 도전이야. 그런데 그 도전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요. 거기에 감동을 받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이 사람은 미술과 다른 심리학전문인데 (미술)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말끝마다 나한테 시비 걸고, 그게 얼마나 재미있어요(웃음). 대화라는 것은 시비하고 치고받고 하면서 더 격렬하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쉬울 뿐이죠.
두 분에게도 <명작 스캔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 작품들을 접한 계기였다고 생각되는데요.
김 : 저는 심리학자니까 심리학적인 주제들을 많이 다뤘는데. 내가 가진 심리학적 지식들이 문화예술을 해석하는데 이렇게 쓰일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흥미로운 경험을 했어요. 지금도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인데 이 프로그램을 했던 경험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어요. 문화예술 속에 숨어있는 문화적 변동에 과정들에 대한 통찰을 배웠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죠. 같이 일했던 제작진들에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공부하는 것도 많았다”고 이야기했거든요. 프로그램을 앞두고 매일 읽어야 하는 것이 보통은 100페이지, 때론 200페이지가까이 됐거든요. 어떤 때보다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금 제가 일본에서 디자인 전문대학에 학생으로 입학을 했는데 아마도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역시 <명작 스캔들>을 진행했던 경험이 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조 : 예술은 문화잖아요. 말로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사실상 예술은 어렵고 문턱은 높아요. 그런 가운데 예술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었다는 데 긍지를 느꼈죠.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공부를 많이 했어야 했고 큰 보람을 가졌어요.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 구나를 느끼게 했다는 것, 그게 자랑스러워요.
민승식 프로듀서는 고급문화를 ‘그들만의 리그’라고도 표현했는데요. 최근 사회지도층의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에 진정한 고급문화가 존재할까 싶기도 합니다.
김 : 그것은 어차피 우리가 너무 빨리 발전을 했기 때문에, 격어야 할 부분이에요. 저는 한국 상황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정말 정신적인 면이 깊으면서도 성장해가고 또 역동적이고 행복한 사회에요. 재미있는 사회죠. 물론 글로벌한 수준에서 최고 그룹의 문화수준과 비교했을 때 당연히 좀 허점이 있어요. 지금은 그런 것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명작 스캔들>이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이 있어요. 저는 한국 문화수준에 대해 섣부른 비판을 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세요. 서구에서 300~400년간 이룬 근대화 과정을 우리는 40~50년간 해치운 나라인데 당연히 허점이 있죠.
조 : 문화라는 것은 항상 고급과 저급이 섞여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국 이래 가장 고급문화가 성행한다고 봐야지. 우리 역할은 고급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거예요. 책도 그런 맥락이죠. 밑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의욕이 있어요. 그런 와중에 있는 거죠.
김 :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이분법이 사실은 더 온당치 않은 거예요.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이냐’, 했을 때 지금 한국의 문화상황이라는 것이 TV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일반 아이돌 중심의 대중문화가 대부분이잖아요. 물론 그런 문화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는데 있어서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명작의 관심들, 또 우리문화에서 명작으로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된 점에서 『KBS 명작 스캔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외면하는 대중들 중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 교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접해야한다고 하셨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세계 최고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삶이 재미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과연 삶이 재미있어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 관심을 다양하게 가져야해요. 물론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요. 그런데 평생 그렇게 살다갈건 아니잖아요. 어려운 과정에서도 내 삶의 관심사를 다양하게 가지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에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내면의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인거에요.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 아기에 대해 얼마나 말이 많아요. 그런 것처럼 내 삶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아야 되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문화 예술의 가치거든요.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참 중요한, 그리고 너무 쉬운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조 : 밥 먹고 일 안하는 시간에 사람 만나야 할 것 아니에요. 여자도 사귀어야 하고요. 여자한테 뭘 이야기하겠어요. 자기 직장에서 있었던 일만 이야기하면 여자가 좋아하겠어? 영화 본 것, 그림에 대한 것들, 이런 것을 이야기를 할 줄 알면 그 관계가 더욱 윤택해진다는 거죠(웃음). 우리가 끊임없이 시간이 나면 문화를 접할 필요가 있어요. 써먹기 위해서……. 왜 날 더러 어떻게 그리 여자 친구가 많냐고 하는데, 계속 이야기하니까, 재미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 주위에 여자들이 많은 거죠. 문화를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죠.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지. 김 교수 같은 친구하고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심리학, 철학이 아니거든요. 그냥 별거 아닌 이야기들 그렇지만 내가 뒤에서 배운 것들을 섞어서 풀어놓으면 그것 때문에 친구가 되는 거지. 열심히 문화를 공부해야하고 그럴 필요가 있어요. 공부 안하면 재미없어. 평생 해야지.
<한지원> 글/<민승식> 기획/<김정운>,<조영남> 진행/<이강훈> 일러스트19,800원(10% + 5%)
'예술 좀 아는 남자들'의 엉뚱하지만 발랄하고 유쾌한 명작 스캔들! 따분한 클래식이 아닌 명작의 숨겨진 파격적 스캔들을 이야기한다!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드가의 〈스타〉 등을 안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제4번〉, 쇼팽의 연습곡 〈이별의 곡〉을 안 들어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