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 산신령은 이상해서 선녀로 바꾸었죠” - 백희나 『장수탕 선녀님』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구름빵』 『달 샤베트』 내가 할 일은 오직 그림책을 만드는 것 아이들이 경험하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 일상의 판타지 공간은 ‘목욕탕’
오랜만의 모습에 반가움이 앞선다. ‘다행’…….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잃지 않은 백희나 작가를 봤을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였다. 그림책 작가로서 그녀는 『구름빵』으로 데뷔 이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엄청난 창작의 산고를 치러낸 작가에게 그 성공이 되레 아픔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상에 새로운 작품을 내 놓은 그녀이기에 그 미소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 동네에는 아주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큰길가에 새로 생긴 스파랜드에는 불가마도 있고 얼음방도 있고 게임방도 있다는데…. 엄마는 오늘도 장수탕이다. 그래도 한 가지! 울지 않고 때를 밀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하나 사 주실 거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냉탕.” -『장수탕 선녀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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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 할머니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척 끝까지 들어드렸다.” -『장수탕 선녀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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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이하 김) : 『장수탕 선녀님』을 만든 과정을 보여주셨는데, 서 선생님은 이 작품을 보시고 어떠셨는지요.
서천석(이하 서) : 책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날 트위터에 바로 “너무 좋은 작품을 봐서 기분이 좋다”고 올렸죠. 백희나 선생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이 『구름빵』인데 개인적으로 『구름빵』 이전과 이후로 우리나라 그림책을 보고 있어요. 훌륭하신 선생님이 많이 계시지만, 『구름빵』이 최초로 아이들이 현실에서 상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래 동화 같은 것을 보면 상상의 세계가 많이 나오잖아요. 현재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상상을 하는지는 『구름빵』에서 처음 본 것 같아요.
『구름빵』에서 아이들은 엉뚱한 상상을 현실에서 하면서 그걸 이루려고 또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다시 또 현실을 느끼고 하는 현실과 상상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저는 『장수탕 선녀님』에서 다시 봤어요. 근데 『구름빵』보다 더 낫더군요. 『구름빵』은 완벽한 4인 가족에서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엄마가 채워주고, 그럼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아빠를 도우려고 해요. 행복한 가정의 원형이죠. 그래서 『구름빵』이 대 히트를 쳤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장수탕 선녀님』은 아이가 훨씬 앞에 있어요. 엄마가 도운 게 별로 없어요. 요구르트 정도랄까요(웃음).
[김] : 저는 개인적으로 백희나 선생님 첫 작품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림책이 이런 게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인데요. 왜냐하면 우리 공간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다룬 책이 없었거든요. 『구름빵』의 부엌이라든가, 엄마가 빵을 빚는다던가, 이런 걸 마치 바비의 침대 방을 보다가 색다른 공간에 있는 우리 인형을 만나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그 공간이 『달 샤베트』로 넘어오면서 아까 말씀하셨던 약간 불편할 수도 있는 정형화된 공간에서 서민아파트잖아요. 네 식구를 돕던 주인공이 이웃을 돕는 아이가 되잖아요.
그러다가 『장수탕 선녀님』에 오니까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우리 도시 어딘가에 있는 서민 대중목욕탕, 집안에 있던 아이가 밖으로 나오고 자기 혼자 무엇을 하고 하는 것들, 게다가 알몸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나이든 할머니의 검버섯과 주름……. 엄마는 엄마대로 정말 엄마의 몸이고요. 할머니의 몸에 아이가 알몸을 대고 수영장에서 해엄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죠. 요즘 아이들이 자기의 몸이나 주변사람의 몸을 정말 정직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에요. TV에서 보면 소녀시대의 몸 같은 것만 나오잖아요. 그런 몸이 아니라 내 엄마, 할머니의 알몸을 본다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그림책이었습니다.
[김] : 실제로 백희나 선생님 작품 세계가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죠. 이 책은 어떤 점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백] : 사실은 『구름빵』이 나오고 그 다음에 만들었던 스토리라서, 최근작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어요(웃음). 가장 큰 변화라면『구름빵』을 만들 때는 신인이었다는 거죠.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만들었고 그 다음에 『달 샤베트』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판단하는 훈련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홀로서기의 과정이었죠. 작가로서 반듯하게 일어나고 싶었어요. 그 다음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이인삼각 관계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훈련을 하고, 그렇게 『장수탕 선녀님』이 탄생했죠. 같이 해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책이에요.
[김] : 백희나 선생님이 엄마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셨잖아요. 목욕탕의 무심한 엄마, 이런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시게 됐어요?
[백] : 글쎄요.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나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엄마는 현실을 보게 하는 사람인 것 같고, 할머니는 아이에게 놀이와 여유를 주는 대상으로 구분했다고 할 수 있죠. 엄마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판타지 세계를 보지 못하는 캐릭터에요.
[김] : 엄마가 그림책에 등장하고 나서 ‘요즘 저런 엄마가 어디 있냐’, ‘너무 무심하다’, ‘애가 저렇게 냉탕에서 이상한 할머니와 놀고 있으면 불러야하지 않나’라고 비난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사실 이 엄마는 별로 나쁜 엄마가 아닌 듯 한데요.
[서] : 그렇죠. 이런 엄마가 좋은 엄마입니다. 요즘은 아이들 데리고 ‘구나’ 체를 써야지 좋은 엄마라고 해요. 어떤 부모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뭔가 제시해 줘야 좋은 엄마라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심리학에서 이만하면 좋은 엄마란, 아이를 적당히 놔주는 부모에요.
예를 들어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같은 아빠에요. 순수하게 자연스러운 아빠죠. 일에 지치고 찌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너무 개입하지 않는 아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이를 그냥 놔두고 볼 수 있는 엄마가 좋은 엄마에요. 이 엄마는 애가 냉탕에 들어갈 때 말은 한마디 하지만, 가가지고 못하게 하거나 이러지 않거든요. 두고 본다고요. 감기에 걸렸으면 뭐라고 한마디 하지만 물을 떠다 주잖아요. 결과를 책임지게 하면서 옆에서 지켜주는 정도의 엄마면 충분히 좋은 엄마인데 우리사회가 좋은 엄마의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다들 부담을 느끼면서 애 키우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약간 방치하면서 두고 보는 엄마상이 나와서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김] : 실제로 『장수탕 선녀님』에서 이 할머니가 신령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녀님과 덕지와 엄마사이에서 생기는 연결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백] : 원래는 산신령이었는데, 편집자분들하고 회의를 하다 보니 여탕인데 산신령이 숨어있다고 하는 게 이상해서 선녀님으로 바꿨어요. 운이 좋았네요.
[김] : 서 선생님 보시기에 이 작품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아이들에게 상상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서] :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아이들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상상세계가 더 많아요. 왜냐하면 현실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현실에서는 엄마한테 혼나고 기껏해야 장난감을 많이 가진 것이 위안이 되죠. 하지만 장난감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아이들은 자기 능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누구나 그런 생각은 괴로운 부분 아니겠습니까. 특히 아이들은 자기가 값어치 없는 존재고 특히 무시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하거든요.
아이들이 상상을 통해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상처를 받으면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극복하려고 해요. 그게 놀이죠. 놀이를 만드는 걸 보면 아이들이 계속 상상을 하면서 덜 상처받는 방법으로 혹은 효과적으로 이기는 방법으로, 다음에 자기가 괜찮은 사람으로 상상하면서 만들어가거든요. 아이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상상이기 때문에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것이 없으면 현실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바로 상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 이 책을 읽는 어른 독자들에게도 위안이 됐다고 생각을 해요.
[서] : 이 그림책을 어른들도 좋아하십니다. 제가 볼 때 덕지는 할머니가 하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아는데 끝까지 듣잖아요. 할머니를 위해서 고통을 참고 요구르트를 갖다 줬고요. 이게 사실은 할머니 입장에서 더 감동적이에요. 얘는 나를 인정해주잖아요. 가치 있는 존재라고 받아주는 것. 딴 사람이 보면 사실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현실적으로는 장수탕의 미친여자일수도 있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선녀라고 그 존재를 인정해 준거죠. 우리 모두가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부분이 있잖아요. 이 전체 스토리를 볼 때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것인 것 같아요. 존재를 인정하고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이요.
[김] : 사실 백 선생님이 치유 받아야 될 과거가 있죠.
[백] : 네 제가 스스로 유기견이라고 표현해요. 상처받았던 과거 때문에 누가 손을 내밀면 경계를 하게 되거든요. 그랬는데 팀워크가 되게 좋았어요. 처음에 너무 배려해주시고 너무 맞춰 주는 게 아닌가 해서 신경이 쓰였는데 그래도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마음에 상처를 입어 예민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한 번 믿으면 확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작업 하시는 것들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단번에 믿음이 갔어요. 그래서 아까 메이킹 필름 에서도 나왔지만 옛날 같았으면 그 모든 것을 혼자 고르느라고 골머리를 앓았을 텐데 믿고 맡겼던 분들이 상당히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빨리 할 수 있었고 스토리 보드도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챙기셔서 살을 더 붙여 주시고 뺄건 빼고 피드백을 주시고,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 혼자 하는 것에 비해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백] : 벗어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다보면 그걸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데 그때그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주시죠. 예를 들어서 여기서 키워드가 되는 말이 있잖아요. ‘요구릉’의 아이디어를 주셨고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 자기가 살던 시대에 빠져서 독자와의 격리가 일어날 수 있는데, 원래는 첫 부분에 나와 있던 “큰길가에는 불가마도 있고 위에는 스파랜드가 있는데”하는 부분은 편집자의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있음으로서 제가 과거의 목욕탕에만 빠져들지 않고 요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다리 역할을 해줬던 것 같아요.
[김] : 그림책 만드시면서 제일 어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백] : 글쎄요. 책이 잘 안 팔린다는 거요(웃음) 그림책 작가를 업으로 삼는다면 내가 일을 했을 때 생활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 있는 직업이에요. 그 점을 각오를 하시고 시작을 하셔야 될 거예요.
[김] : 백희나의 작품 속 인물에는 이상하게 백희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의 캐릭터는 뭔가요.
[백] : 아까 서 선생님 말씀 중에 아이는 상상을 많이 한다고 했잖아요. 한계가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완으로 상상을 많이 한다고요. 제가 최근 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제 책인데도 나중에서야 ‘아 그렇구나’하고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정작 작업을 할 때는 모르고 한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아이들을 정말 잘 알거나, 좋아해서 만든다기보다는 ‘나 자체가 애라서 이런 걸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필요에 의해서 제가 보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이 안에 있는 주인공과 저의 관계는 아마 저 자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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