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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 산신령은 이상해서 선녀로 바꾸었죠” - 백희나 『장수탕 선녀님』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구름빵』 『달 샤베트』 내가 할 일은 오직 그림책을 만드는 것 아이들이 경험하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 일상의 판타지 공간은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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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모습에 반가움이 앞선다. ‘다행’…….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잃지 않은 백희나 작가를 봤을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였다. 그림책 작가로서 그녀는 『구름빵』으로 데뷔 이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엄청난 창작의 산고를 치러낸 작가에게 그 성공이 되레 아픔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세상에 새로운 작품을 내 놓은 그녀이기에 그 미소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2000년대 대한민국의 그림책이 결정적으로 변화한 시점을 살펴보자면 백희나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만의 영역이었던 그림책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며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구름빵』으로 시작해 『달 샤베트』 최근 발표한 『장수탕 선녀님』까지 그녀의 작품은 진화를 거듭하며 어른들이 놓쳤던, 그러나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판타지를 표현해 나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도 적지 않았다.

신인 작가였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성공을 맛보게 해주었던 『구름빵』은 수십만 부가 넘는, 그림책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다. 200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힌 그녀는 순식간에 유명 작가로 부상하게 됐다. 『구름빵』은 이후 프랑스, 대만, 일본, 중국, 독일과 이란으로까지 수출되고 어린이 뮤지컬,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구름빵』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초 계약 당시 인세가 아니라 원고료를 받았던 탓이다. 2차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양도 계약까지 해 이후 어떤 추가 상품이 만들어져도 창작자인 그녀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없게 되어버린 것. 이미 꽤 오래 전 이야기다.

구름빵 이후 『달 샤베트』역시 우여곡절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0년 발표한 그림책 『달 샤베트』역시 모 아이돌 그룹이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며 그녀를 힘들게 했다. 이름 정도야 어떠랴만, 그녀는 당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순수한 문화로, 무공해 이미지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적인 싸움을 불사했다. 한동안 힘겨웠을 그녀가 다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장수탕 선녀님』이다. 지난여름에 착안해 단 3개월 만에 책으로 만들어 냈다. 엄청난 집중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림책을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목욕탕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판타지





“우리 동네에는 아주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큰길가에 새로 생긴 스파랜드에는 불가마도 있고 얼음방도 있고 게임방도 있다는데…. 엄마는 오늘도 장수탕이다. 그래도 한 가지! 울지 않고 때를 밀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하나 사 주실 거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냉탕.”
이야기는 어느 아이나 일상에서 겪었음직한 목욕탕 가는 날로 시작한다. 아이의 이름은 덕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선 오래 된 목욕탕에서 덕지는 그나마 자신만의 노하우로 고통스러운 목욕과정을 이겨내고,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예컨대 요구르트를 즐기는 귀여운 소녀다. 그런데 이날 장수탕에는 덕지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자칭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라고 하는 할머니다.




“선녀 할머니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척 끝까지 들어드렸다.”
어른들은 무심코 생각한다. ‘아직 어린애가 뭘 알겠어’ 하지만 이 대목에서 덕지는 어른들의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마치 지적하듯 되뇐다. 아이들의 세계란 어른들이 감지하는 것 보다 의외로 성숙하고 배려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보냈건만 우리는 왜 스스로가 어렸을 적 기억을 잊고 있는 걸까.

덕지에게 할머니는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만의 인연이다. 여기에 엄마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할머니와 덕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놀이에 빠져든다. 폭포수 아래서 버티기, 바가지 타고 물장구치기, 탕 속에서 숨 참기……. 보통의 어른 같았으면 잔소리와 함께 저지했을 법한 일들은 할머니는 덕지에게 전수하듯 함께한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부분이다.

끝내 그런 할머니에 요구르트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덕지, 작은 선물이지만 덕지로서는 엄청난(?) 고통을 인내한 대가이자, 목욕탕을 오는 동기이기도 했던 터라 대단히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 온 선녀 할머니와 냉탕에서 너무 열심히 논 덕분에 감기에 걸리고 만다. 그때 할머니는 어머니가 떠다 놓은 세숫대야 물속에서 홀연히 나타나 요구룽(요구르트)을 준 덕지에게 고마움을 이야기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감기를 낫게 한다. 다시금 할머니가 선녀님이 되는 순간이며 현실과 판타지가 혼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작가와의 대화


어두워지는 가을밤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 나타난 백희나 작가는 시작과 함께 공개 된 『장수탕 선녀님』의 메이킹 필름을 보고 난 후 관객들에게 인사와 함께 남다른 소감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준비를 너무 하고 오면 떨 것 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편하게 질문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메이킹을 다시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불과 몇 달 전 일인데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작가는 “장수탕 선녀님 스토리는 사실 구름빵이 나온 이후 두 번째 이야기로 생각한 판타지였다”고 고백한다. 원조는 고양이 남매가 목욕탕을 가서 산신령을 만나는 스토리, 하지만 왠지 와 닿지 않은 탓에 몇 년을 묵혀둔 것이다. 그런 숙성의 과정(?)에서 덕지와 선녀님이 탄생했고 이야기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셈이다. 작품과 작가의 인연은 다 때가 있는 듯하다.

“책 읽는 곰 출판사에 놀러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제 만들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일단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럴듯한 판타지였고, 그렇다보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게 되는 현실적인 배경을 목욕탕으로 하고 여기서 나오는 캐릭터들 선녀나 덕지 같은 주인공들은 가상으로 만든 인형으로 해서 찍기로 했어요.

배경을 목욕탕으로 한 이유는 스토리 안에서도 일상생활에서 갖게 되는 판타지가 나오지만, 어린 시절 제게 목욕탕은 가장 비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이었어요. 배경도 현실적이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인형들이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형의 사이즈가 작아요. 그리고 목욕탕 배경은 실사거든요. 그걸 사진을 그럴듯하게 찍어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일상생활에서 그럴듯하게 일어날 수 있는 판타지 내용과 비주얼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당장 해야지’란 생각밖에 안 떠오르더군요(웃음). 여름방학을 겨냥해서 우리가 처음에 미팅을 한 게 5월말이었죠. 그리고 8월말에 책이 나왔습니다. 한국사람 정신이죠(웃음).”



물리적으로 등장하는 점토 인형을 다 만들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힘든지 모르고 일했다”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자신 있었다”고 말한다. 혼자서가 아닌 스텝들과 함께하는, 실로 오랜만의 작업이었고 그 속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뒤늦게 마비가 오는 후유증(?)이 생기고 있다”면서도 “화끈하게 잘 만든 것 같다”고 자평하는 그녀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작가로서의 삶이 평탄치는 않았거든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집나간 탕아처럼 ‘붙잡지 마시오. 혼자 살아보겠소’ 하고 혼자 책을 만들다가 따뜻하게 ‘책 읽는 곰’ 출판사가 이 세상에 다시 흡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작가 생활 10년이 되어 가는데 처음으로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제대로 했다는 느낌을 받았죠. 정말 시너지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었던 책이었고요. 완벽하게 제가 자신감을 회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같이 작업을 해서 나올 수 있는 작품에 이런 힘이 있구나’를 처음 느끼게 된 책이라서 저한테는 부활의 의미가 있다고 할까요. 작업을 빠르고 재미있게 했던 만큼 저한테도 굉장히 재미있고 무겁지 않은 책이 됐습니다.”

독자와 만남 자리에는 백희나 작가뿐만 아니라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행복한 아이연구소 소장인 서천석 교수, 아동문학평론가인 김지은 선생이 함께했다. 작가의 소감 발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세 사람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문

김지은(이하 김) : 『장수탕 선녀님』을 만든 과정을 보여주셨는데, 서 선생님은 이 작품을 보시고 어떠셨는지요.

답변

서천석(이하 서) : 책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날 트위터에 바로 “너무 좋은 작품을 봐서 기분이 좋다”고 올렸죠. 백희나 선생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이 『구름빵』인데 개인적으로 『구름빵』 이전과 이후로 우리나라 그림책을 보고 있어요. 훌륭하신 선생님이 많이 계시지만, 『구름빵』이 최초로 아이들이 현실에서 상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래 동화 같은 것을 보면 상상의 세계가 많이 나오잖아요. 현재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상상을 하는지는 『구름빵』에서 처음 본 것 같아요.

『구름빵』에서 아이들은 엉뚱한 상상을 현실에서 하면서 그걸 이루려고 또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다시 또 현실을 느끼고 하는 현실과 상상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저는 『장수탕 선녀님』에서 다시 봤어요. 근데 『구름빵』보다 더 낫더군요. 『구름빵』은 완벽한 4인 가족에서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엄마가 채워주고, 그럼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아빠를 도우려고 해요. 행복한 가정의 원형이죠. 그래서 『구름빵』이 대 히트를 쳤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장수탕 선녀님』은 아이가 훨씬 앞에 있어요. 엄마가 도운 게 별로 없어요. 요구르트 정도랄까요(웃음).

[김] : 저는 개인적으로 백희나 선생님 첫 작품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림책이 이런 게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인데요. 왜냐하면 우리 공간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다룬 책이 없었거든요. 『구름빵』의 부엌이라든가, 엄마가 빵을 빚는다던가, 이런 걸 마치 바비의 침대 방을 보다가 색다른 공간에 있는 우리 인형을 만나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그 공간이 『달 샤베트』로 넘어오면서 아까 말씀하셨던 약간 불편할 수도 있는 정형화된 공간에서 서민아파트잖아요. 네 식구를 돕던 주인공이 이웃을 돕는 아이가 되잖아요.

그러다가 『장수탕 선녀님』에 오니까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우리 도시 어딘가에 있는 서민 대중목욕탕, 집안에 있던 아이가 밖으로 나오고 자기 혼자 무엇을 하고 하는 것들, 게다가 알몸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나이든 할머니의 검버섯과 주름……. 엄마는 엄마대로 정말 엄마의 몸이고요. 할머니의 몸에 아이가 알몸을 대고 수영장에서 해엄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죠. 요즘 아이들이 자기의 몸이나 주변사람의 몸을 정말 정직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에요. TV에서 보면 소녀시대의 몸 같은 것만 나오잖아요. 그런 몸이 아니라 내 엄마, 할머니의 알몸을 본다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그림책이었습니다.

질문

[김] : 실제로 백희나 선생님 작품 세계가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죠. 이 책은 어떤 점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답변

[백] : 사실은 『구름빵』이 나오고 그 다음에 만들었던 스토리라서, 최근작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어요(웃음). 가장 큰 변화라면『구름빵』을 만들 때는 신인이었다는 거죠. 많이 위축된 상태에서 만들었고 그 다음에 『달 샤베트』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판단하는 훈련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홀로서기의 과정이었죠. 작가로서 반듯하게 일어나고 싶었어요. 그 다음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이인삼각 관계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훈련을 하고, 그렇게 『장수탕 선녀님』이 탄생했죠. 같이 해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책이에요.

질문

[김] : 백희나 선생님이 엄마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셨잖아요. 목욕탕의 무심한 엄마, 이런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시게 됐어요?

답변

[백] : 글쎄요.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나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엄마는 현실을 보게 하는 사람인 것 같고, 할머니는 아이에게 놀이와 여유를 주는 대상으로 구분했다고 할 수 있죠. 엄마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판타지 세계를 보지 못하는 캐릭터에요.

질문

[김] : 엄마가 그림책에 등장하고 나서 ‘요즘 저런 엄마가 어디 있냐’, ‘너무 무심하다’, ‘애가 저렇게 냉탕에서 이상한 할머니와 놀고 있으면 불러야하지 않나’라고 비난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사실 이 엄마는 별로 나쁜 엄마가 아닌 듯 한데요.

답변

[서] : 그렇죠. 이런 엄마가 좋은 엄마입니다. 요즘은 아이들 데리고 ‘구나’ 체를 써야지 좋은 엄마라고 해요. 어떤 부모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뭔가 제시해 줘야 좋은 엄마라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심리학에서 이만하면 좋은 엄마란, 아이를 적당히 놔주는 부모에요.

예를 들어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같은 아빠에요. 순수하게 자연스러운 아빠죠. 일에 지치고 찌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너무 개입하지 않는 아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이를 그냥 놔두고 볼 수 있는 엄마가 좋은 엄마에요. 이 엄마는 애가 냉탕에 들어갈 때 말은 한마디 하지만, 가가지고 못하게 하거나 이러지 않거든요. 두고 본다고요. 감기에 걸렸으면 뭐라고 한마디 하지만 물을 떠다 주잖아요. 결과를 책임지게 하면서 옆에서 지켜주는 정도의 엄마면 충분히 좋은 엄마인데 우리사회가 좋은 엄마의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다들 부담을 느끼면서 애 키우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약간 방치하면서 두고 보는 엄마상이 나와서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질문

[김] : 실제로 『장수탕 선녀님』에서 이 할머니가 신령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녀님과 덕지와 엄마사이에서 생기는 연결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답변

[백] : 원래는 산신령이었는데, 편집자분들하고 회의를 하다 보니 여탕인데 산신령이 숨어있다고 하는 게 이상해서 선녀님으로 바꿨어요. 운이 좋았네요.

질문

[김] : 서 선생님 보시기에 이 작품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아이들에게 상상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답변

[서] :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아이들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상상세계가 더 많아요. 왜냐하면 현실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현실에서는 엄마한테 혼나고 기껏해야 장난감을 많이 가진 것이 위안이 되죠. 하지만 장난감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아이들은 자기 능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누구나 그런 생각은 괴로운 부분 아니겠습니까. 특히 아이들은 자기가 값어치 없는 존재고 특히 무시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하거든요.

아이들이 상상을 통해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상처를 받으면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극복하려고 해요. 그게 놀이죠. 놀이를 만드는 걸 보면 아이들이 계속 상상을 하면서 덜 상처받는 방법으로 혹은 효과적으로 이기는 방법으로, 다음에 자기가 괜찮은 사람으로 상상하면서 만들어가거든요. 아이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상상이기 때문에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것이 없으면 현실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바로 상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문

[김] : 이 책을 읽는 어른 독자들에게도 위안이 됐다고 생각을 해요.

답변

[서] : 이 그림책을 어른들도 좋아하십니다. 제가 볼 때 덕지는 할머니가 하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아는데 끝까지 듣잖아요. 할머니를 위해서 고통을 참고 요구르트를 갖다 줬고요. 이게 사실은 할머니 입장에서 더 감동적이에요. 얘는 나를 인정해주잖아요. 가치 있는 존재라고 받아주는 것. 딴 사람이 보면 사실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현실적으로는 장수탕의 미친여자일수도 있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선녀라고 그 존재를 인정해 준거죠. 우리 모두가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부분이 있잖아요. 이 전체 스토리를 볼 때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것인 것 같아요. 존재를 인정하고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이요.

질문

[김] : 사실 백 선생님이 치유 받아야 될 과거가 있죠.

답변

[백] : 네 제가 스스로 유기견이라고 표현해요. 상처받았던 과거 때문에 누가 손을 내밀면 경계를 하게 되거든요. 그랬는데 팀워크가 되게 좋았어요. 처음에 너무 배려해주시고 너무 맞춰 주는 게 아닌가 해서 신경이 쓰였는데 그래도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마음에 상처를 입어 예민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한 번 믿으면 확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작업 하시는 것들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단번에 믿음이 갔어요. 그래서 아까 메이킹 필름 에서도 나왔지만 옛날 같았으면 그 모든 것을 혼자 고르느라고 골머리를 앓았을 텐데 믿고 맡겼던 분들이 상당히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빨리 할 수 있었고 스토리 보드도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챙기셔서 살을 더 붙여 주시고 뺄건 빼고 피드백을 주시고,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질문

[김] : 혼자 하는 것에 비해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답변

[백] : 벗어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다보면 그걸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데 그때그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주시죠. 예를 들어서 여기서 키워드가 되는 말이 있잖아요. ‘요구릉’의 아이디어를 주셨고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 자기가 살던 시대에 빠져서 독자와의 격리가 일어날 수 있는데, 원래는 첫 부분에 나와 있던 “큰길가에는 불가마도 있고 위에는 스파랜드가 있는데”하는 부분은 편집자의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있음으로서 제가 과거의 목욕탕에만 빠져들지 않고 요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다리 역할을 해줬던 것 같아요.

질문

[김] : 그림책 만드시면서 제일 어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답변

[백] : 글쎄요. 책이 잘 안 팔린다는 거요(웃음) 그림책 작가를 업으로 삼는다면 내가 일을 했을 때 생활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 있는 직업이에요. 그 점을 각오를 하시고 시작을 하셔야 될 거예요.

질문

[김] : 백희나의 작품 속 인물에는 이상하게 백희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의 캐릭터는 뭔가요.

답변

[백] : 아까 서 선생님 말씀 중에 아이는 상상을 많이 한다고 했잖아요. 한계가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완으로 상상을 많이 한다고요. 제가 최근 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제 책인데도 나중에서야 ‘아 그렇구나’하고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정작 작업을 할 때는 모르고 한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아이들을 정말 잘 알거나, 좋아해서 만든다기보다는 ‘나 자체가 애라서 이런 걸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필요에 의해서 제가 보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이 안에 있는 주인공과 저의 관계는 아마 저 자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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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구름빵』, 『달 샤베트』 등의 동화로 일상의 틈새에서 판타지를 꽃피우는 작가 백희나의 신작 『장수탕 선녀님』은 '목욕탕'을 소재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일깨웁니다. 주인공 덕지처럼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아이들은 책 속에서 선녀 할머니와 한바탕 신나게 놀면서 짜릿한 모험을 즐기고, 따뜻한 위안을 받고, 풍부한 감성을 키워 가지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용기와 자신감을 얻기도 합니다. 『장수탕 선녀님』은 어린이들만의 상상의 세계를 만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놀이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들

[ 구름빵 ]
[ 팥죽 할멈과 호랑이 ]
[ 달 샤베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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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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