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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생은 ‘리모델링 세대’ 또는 ‘재수 없는 세대’ - 김종배 『30대 정치학』
30대, 리모델링 세대의 정치 파워를 이야기하다 2040세대? NO! 30대는 다르다 ‘이슈 털어주는 남자’ 김종배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주인공
시작은 무당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었다. 평소에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유독 대선 때 마다 등장해 판을 뒤흔들었던 그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이제까지 없었던 유권자 분석을 시도했다. 그리고 넘치는 여론조사와 복잡한 통계 수치사이에서 하나의 흐름을 짚어냈다.
정치 평론가가 말한다! 2012 대선 - 김종배 편
“1970년대생은 과거를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다. (영화)「건축학개론」에서처럼, 과거 같은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현재를 살고 있다. 그 간극, 과거와 현재의 극심한 차이를 보여 주는 영역이 바로 정치 성향이요, 이념 성향이다.「건축학개론」에서처럼 1970년대생은 20대일 때는 정치와 담쌓고 지냈지만 30대인 지금은 정치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건축학개론」에서처럼 1970년대생이 20대일 때는 정릉에서 개포동을 향해 나아갔지만, 30대인 지금은 개포동에서 정릉으로 떠밀리고 있다. 20대일 때는 욕망에 취해 현실을 외면했지만 30대인 지금은 욕망을 접고 현실에 천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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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 층의 정체를 찾다가 30대를 발견하셨고, 그들을 다시 리모델링 세대로 정의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30대 모두를 규정하신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우선 한계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책을 쓸 때 이제 가장 기본 데이터로 삼았던 것이 여론조사인데 여론조사의 특성상 보통 연령대를 바탕으로 데이터가 나옵니다. 보통 당신은 ‘20대입니까, 30대입니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죠. 전 그중 ‘30대입니다’라고 응답했던 것을 종합해서 책을 썼는데, 제 책에서 이야기하는 30대는 주로 ‘1970년대생’을 의미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현재 30대는 양력을 기준으로 1983년생부터 1974년생까지임).
어차피 세대론이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많아 어찌 보면 평균치 정도밖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1970년대생도 층계가 다양하거든요. 대졸자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몇 학번이냐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여론조사만으로는 완벽하게 데이터를 따로 뽑을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의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면 1997년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98학번 이후와 그 이전 학번이 상당히 많이 다른 건데, 굳이 특정해서 이야기한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1970년대생은 아무래도 97학번 정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그 사이를 가르는 것은 당시 발생했던 국가적인 위기와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은데요. 예컨대 IMF 사태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맞아요. 98학번 이후부터는 ‘88만원 세대’라고 하는 지금의 20대하고 거의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죠. IMF 환란이 오면서 1998년에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으로 취업대란이 벌어졌거든요. 제가 이제 이 책을 쓰기 위해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 선배들은 대학 졸업장 있으면 취업은 어렵지 않으니까 열심히 놀고 즐기라고 했다”. 이렇게 대답한 것은 30대 중에서도 IMF 이전 세대 얘기고, 이후 세대 같은 경우는 선배들이 취업에서 미역국 먹는 장면을 계속 보면서 달라진 거죠. 그러면서 대학은 거의 학원화되어 간 부분도 있었고, 그 다음으로 또 결정적인 것이 그 즈음 대학에서 학부제가 시행이 됐다는 겁니다. 덕분에 대학의 가장 기본인 공동체의 질서와 문화라고 하는 게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30대라는 것은 1970년대생 중에서도 IMF 이전인 97학번 정도까지인 거죠.
“그들은 자신을 리모델링한다. 과거의 탈정치 속성을 버리고 정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며, 과거의 ‘놀새’ 행태를 버리고 능동적 유권자로 활동하며, 과거의 무개념 면모를 버리고 진보성을 탑재한다. 과거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할 건 계승하고 혁신할 건 혁신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리모델링 세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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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정의하신 30대가 이전의 30대인 386세대하고 뒤에 20대들하고 다른 변수를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삶의 환경이 엄청나게 달라졌죠. 386세대 같은 경우 어떤 20대를 거쳤냐면 고도성장, 압축성장의 최고의 결실을 맛볼 때였어요. 우리나라에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를 3저 호황기라고 얘기를 하죠. 이 때 경제 성장률이 10%가 넘어가고 이어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과소비 문화라는 얘기까지 돌았어요. 멀쩡하게 써도 되는 소파, TV 이런 것들을 내다 버리는 사례들이 많아지며 유행어가 되고 사회문제화까지 됐죠. 386세대는 바로 그런 시대에 20대를 보냈어요. 그에 반해서 지금의 20대, ‘88만원 세대’는 정반대의 상황이죠. 취업도 어렵고, 물질적 풍요도 그렇게 누리지를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렇다면 1970년대생, 제가 리모델링 세대라고 명명했던 그들은 뭐가 다른지 살펴보죠.
1960년대생이든, 70년대생이든, 80년대생이든 시대를 막론하고 30대라고 하는 연령대가 갖는 특성 하나가 있어요. 사람이 살다가 30대가 되면, 같은 연령 집단 안에서 분화가 시작 된다는 거죠. 20대 같은 경우는 똑같이 학교 다니고, 군대 가고, 취업준비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처지라고 하는 게 분화가 되기 전이죠. 그런데 30대 접어들면서 취직을 하면, 그때부터 ‘어느 직장을 들어갔느냐’ 그 다음으로 ‘결혼을 하고 내 집이 장만이 됐느냐’ 아니면 ‘셋방살이를 하느냐’ 이런 것들에 따라서 경제적 지위가 분화가 되기 시작하죠.
1970년대생 이전의 선배들은 그 과정을 어떻게 거쳤냐고 하면, 20대 중후반에 취직을 해서 적금 붓고 결혼자금, 독립자금을 계속 축적을 했다가 그것을 종자돈 삼아서 독립하고 결혼했어요. 그러면서 또 자기 집 넓혀가는 아주 평균적인 과정을 거쳤죠. 그랬기 때문에 386세대만 하더라도 그 세대 안에서 경제적 지위의 분화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했고요.
그런데 1970년대생 같은 경우는 제가 리모델링 세대라고 하면서 또 ‘재수 없는 세대’라는 표현도 썼는데 정말 재수가 없었어요. 이들이 사회를 나올 때쯤에 IMF 사태가 터졌죠. 그래서 1998년부터 취업대란이 벌어지는데 그 때 당시에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98년에 당시 20대였던 이들의 취업 증감률을 보면 -10% 에 달해요. 윗세대 선배들의 취업률은 그 이듬해인 1999년부터 플러스로 돌아서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딱 한 번을 제외하고 거의 계속 마이너스 상태였죠. 그러다 두 번째로 플러스로 돌아선 시점이 바로 벤처열풍이 불 때 였어요. 취업자가 IT쪽으로 대거 흡수가 되다보니까 취업률을 올라간 거였죠.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벤처거품이 빠지면서 다시 또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그러면서 축적한 종자돈조차 없이 신용카드를 막 긁어댔죠. 결국 2003년 신용카드 대란으로 다시 한 번 직격탄을 맞습니다. 당시 신용불량자 집계를 보면 1970년대 생 안에서의 신용불량자 비율이 가장 높아요.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 상황은 급변을 거듭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것이 끝이 아니었을 것 같네요.
맞아요. 그들이 30대 들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이제 집장만 하려고 할 때쯤 2006년에 또 부동산 대란이 터졌죠. 당시 부모 잘 만나서 집 살 돈이 있거나 아니면 1997년~1998년 때 용케 좋은 직장 들어가서 종자돈 마련한 사람들 같은 경우는 오히려 그것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지만, 절대다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때가 완전히 곤두박질치는 때였어요. 그러니까 모두 4번의 대란을 거친 세대라는 거죠. 그런 시기를 보내왔으니까 1970년대생 안에서의 세대 내 양극화가 극심하게 벌어졌고요.
연구 자료를 보더라도 1970년대의 소득양극화와 자산양극화를 지니계수로 보면, 소득의 지니계수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자산의 지니계수는 가장 높은 걸로 나오죠. 우리나라 자산의 80%는 부동산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여론조사에서 ‘당신의 경제적 지위가 어느 층에 속한다고 보십니까’ 했을 때 60년대생, 70년대생, 80년대생 중 ‘나는 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게 1970년대생이에요.
또 ‘나의 경제적 지위가 상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가장 낮죠. 그러니까 요즘 ‘20대 80’ 사회를 넘어서 ‘1대 99’ 사회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가장 아주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대가 1970년대생이라는 거예요. 재미있는 것이 그들의 경제적 지위별로 정치의식을 조사를 했더니 경제적 상층은 다른 연령대의 경제적 상층에 비해서 더 보수적인 반면에 경제적 하층은 다른 연령대의 경제적 하층에 비해서 더 진보적이라는 겁니다. 삶의 양극화가 의식의 양극화로 귀결 된 셈이에요. 결국 1970년대생이 상당히 높은 진보성을 보이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런 삶의 처지와 세대내 양극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서 더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또 이번 대선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할 것인지는 의문인데요.
먼저 1970년대생의 진보성을 규정했던 정치?문화적 요인까지 마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보통 386세대 같은 경우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회와 정치에 눈을 떴죠.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실에 분개를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반독재 민주화라고 하는 구호에 동의했어요. 그러나 1970년대생 같은 경우는 그런 과정이 없어요. 제가 했던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서 들어보면 정치에 눈을 뜬 계기라고 하는 게 대부분 200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노무현과 탄핵사태, 퇴임 후의 서거 국면이거든요. 또 광우병 촛불시위를 들 수 있고요. 그러니까 대부분이 20대 때가 아니라 30대에 접어들어서 정치에 눈을 떴다고 대답한 거예요. 그들이 20대 때 탈정치화 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객관적 자료는 많아요. 그들을 정치에 눈뜨게 한 큰 사건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는 거죠.
두 번째는 그 사건의 결과가 아주 뚜렷했어요. 노무현 바람은 노무현 당선으로 이루어졌고 노무현 탄핵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 승리로 이어졌고 노무현 서거는 500만 명이 넘는 조문객 행렬을 연출을 했죠. 광우병 촛불시위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고요. 그러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어요. 그걸 정치학에서는 ‘정치 효능감’이라고 표현하는데, 1970년대생들은 이렇게 높아진 정치 자신감을 가지고 팬덤, 놀이, 게임 이 3가지 키워드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죠. 이 세대는 특정 정당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인물을 중시하죠. 수많은 정치인 팬클럽이 생긴 것이 하나의 반증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정치인을 정치의 중심으로 내지 정치의 리더로 밀어올리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조직적으로 대거 나서는 거죠.
이는 1990년대 말부터 나타났던 온라인 게임의 특성과도 맥을 같이 해요. 내가 캐릭터를 고르고 돈 들여서 무기를 사가지고 캐릭터한테 장착을 하죠. 그리고는 캐릭터가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전략을 짜서 하지 않습니까? 이 양태가 정치참여에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엄청나게 능동적인 거죠. 그래서 이들이 만약 힘을 모아서 특정 대선 후보를 밀어올리기 시작을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파워풀하게 나타날 거라고 보는 거고요. 하지만 지금의 국면이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진보성이 분산이 되고 있다는 거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그 사이에서 계속 간을 보고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어느 후보한테 그러한 팬덤이 집중적으로 투영하느냐에 따라서 판이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의 주된 이슈를 꼽자면 아무래도 복지하고 경제민주화가 아닌가 싶은데요. 진보와 보수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이번 대선의 질이 높다고는 평가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대로 대선의 구도가 짜이지 않고 있거든요. 박근혜 후보의 경우는 좌클릭을 했어요.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이야기했고 그러면서 무상급식 찬반논란이 한창 전개됐을 당시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라고 했던 구도는 이미 깨져버린 상태에요. 그래서 외려 지금 대선 후보들이 복지 얘기를 거의 안해요.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경제민주화 역시도 아주 미세한 각론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로 다 용해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차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선거가 정책대결 보다는 이미지 대결로 가는 것이고 그 사람의 진정성의 문제, 의지의 문제 쪽으로 가다보니까 인물평으로 가는 이런 측면들이 있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최근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 성장 문제가 등장하는 거예요.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실감을 하니까요. 지금 대선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각종 공약에 대해 ‘과연 실현 가능할 것인가’란 의구심이 계속 확산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성장전략이 필요하죠. 그러나 거기서 과연 또 차이가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안철수 후보 측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낡은 정치로 규정하고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역시도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차이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지금 보면 정치 혁신의 문제가 더 많이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의 조건으로 기존 정당의 변화와 혁신을 얘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새누리당 같은 경우 1월부터 구태정치에 비수를 꽂는 그런 사건들이이어졌으니 박근혜 후보 입장에서도 정치쇄신이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야권입장에서도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혁신이 조건이기 때문에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그런 점에서 낡은 정치 대 새 정치라고 하는 구도가 짜이고는 있는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낡은 정치고 무엇이 새 정치냐는 문제죠.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도 대선 구도의 윤곽 정확히 드러나지를 않았고, 뭔가가 모호한 구석이 있습니다. 후보의 이미지에 많이 좌우되는 선거로 흐르고 있는 측면도 그런 맥락과 같고요.
대선이 임박해지면서 네거티브 선거전도 치열한 양상인데요. 이는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거티브라고 하는 걸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어요. 나라 살림 5년을 맡기는 사람의 인물 됨됨이가 어떤지는 당연히 따져야 할 문제죠. 그 과정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벌어지는 것은 필연이에요. 미국 같은 경우도 다르지 않잖아요.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려면 제대로 해라는 겁니다. 네거티브 공세에 실명제를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새누리당 입장에서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의원이 내지 어떤 캠프 관계자가 정정당당히 나서서 실명제로 제시를 하고 아니면 책임을 지는 식이죠. 그렇게 되면 근거 없는 흑색선전은 많이 줄어들 수가 있을 거라 봅니다.
NLL 논란 같은 경우는 의원이 직접 나서서 했으니 실명제가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얼마만큼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 거든요. 결국은 이 NLL논란의 근자에는 이른바 ‘친노?종북 프레임’이 깔려있어요. 진보의 입장에는 ‘지금이 도대체 어느 시대 그런 프레임을 후보에게 덧씌우나’할 수도 있지만, 보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검증해야 될 사안일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당당하게 근거를 갖고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안철수 후보 같은 경우도 네거티브를 거치는 게 나쁜 것이라 보지를 않아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네거티브 공세라고 하는 게 필요악인 측면들이 분명히 있는데, 또 한 가지 특징이 A후보가 B후보를 상대로 어떤 네거티브 공세를 폈을 때 꼭 B후보가 타격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통령의 자리가 결국 가시밭길인데 거기서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국면 국면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측면도 되거든요. 최근 들어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특성 중에 하나가 뭐냐면 웬만한 네거티브 공세에는 지지를 철회를 하지를 않고 오히려 보호막을 쳐준다는 겁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초미의 관심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단일화가 안 될 수 있는 2가지 시나리오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1987년 12월 대선 때를 떠올리면 됩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가 안됐을 때 논리가 왜냐면 사자필승론이었어요. 다자구도로 가면 표가 분산되기 때문에 따로 가도 이길 수 있다는 거였죠.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과정에서도, 그 다음에 2007년에 비록 성사되지 않았지만 정동영, 문국현 단일화 논의 때도 비슷한 논리가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러나 다자구도로 가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은 두 가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해요.
첫째는 상대에 있는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쭉 빠져가지고 굳이 단일화 안해도 이길 수 있는 경우죠.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은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우위의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지지율은 쭉 올라가는 반면에 어느 하나의 후보의 지지율은 쭉 빠졌을 때, 이 때 또 다시 이른바 사자필승론 논리가 나올 수가 있는 거죠. 근데 지금 양상이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지금 계속 나란히 가고 있어요. 다자구도로 가도 반드시 이긴다는 논리가 나올 수 없는 거예요. 물론,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앞으로 어떤 돌발 변수가 나오고 이 지지율 추이가 어떻게 요동을 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단정을 할 수 없죠. 하지만 지금 이 추세대로 간다면 제가 볼 때 단일화를 안 하려야 안할 수가 없는 판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후보들이 모두 정치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던 기존 정치권이나 사회 기득권의 만만치 않은 도전을 받을 텐데요. 이걸 바꾸기란 굉장히 어려운 문제 아닐까요.
제가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통해서도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릴레이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캠프사람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거의 비슷한데, 그걸 꼭 공약으로만 가져가지 말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하면 어떠냐는 거였죠. 그러면 각 당에서 우리도 추진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 캠프에서 하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고 있죠. 저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요지부동할 사안도 선거 국면에서는 유연해지고 덕분에 국민적 요구가 관철되기 가장 쉬운 때라고 생각합니다. 합의 가능한 부분은 선거 투표일까지 가지 말고 지금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으니까 빨리 후보 간 합의를 통해 입법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치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옛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치개혁은 정치권에만 맡긴다고 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치개혁이라는 것은 강제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내려지는 조치가 절대로 될 수가 없다고 봐요. 결국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폭과 강도가 더 커질 필요가 있죠. 특히 범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은 지금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사이에서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그 프레임에 갇히지 마시고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자기 관점과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1990년대와 오늘날의 30대(1970년대생)에 대한 정치분석서이다. 책은 이들이 누구이며 한국 정치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분석한다. 또,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조망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광범위한 여론조사와 각 세대별로 5~10명을 묶어 집중적으로 실행한 인터뷰를 사용했다. 이러한 질적?양적 방법론을 통해 객관적이고도 심도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30대와 우리나라의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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