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프레시안의 창간 11주년 기념 강연회가 있었다. 강연은 ‘경제 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장하준 교수가 진행했다. 강연 시작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관객석은 이미 가득했다. 경제 민주화가 대선을 앞두고 거대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사실과 더불어 대중지향적인 경제 서적을 출간해온 장하준 교수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 민주화 왜 지금 화두인가?
최근 여당도 야당도, 진보 언론도 보수 언론도 경제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좋지 않다. 자살률은 OECD 가입 국가 중 압도적으로 1등이며, 출산율과 행복지수는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1등을 하는 지표가 많아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쌓인 만큼 쌓인 셈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렇게 된 원인으로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을 꼽는다. 더불어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을 불러일으킨 원흉으로 IMF 체제 이후 수입된 신자유주의 승자 독식 체제를 지목한다. 하지만 IMF 체제가 들어왔던 그 때가 아니라 왜 지금 경제 민주화가 화두일까? 장하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을 만든 때가 IMF 체제인데, 왜 이제 와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요? 그 동안 마약 주사를 계속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체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현재 경제 부총리가 최근 정계에 다시 진출했더군요. 제발 부탁이니 그 양반 좀 어떻게 해주세요.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나쁜 체제를 만들어 놓고 사과도 없이 다시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구조조정을 했지만 경기는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용한 비책이 신용카드 발급이었습니다. 소비를 많이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말을 앞세우며 신용카드를 이름과 주소만 쓰면 발급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다들 아시다시피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신용카드 대란이 마무리 되니깐 탤런트 김정은씨가 나온 ‘여러분, 부자 되세요~’ CF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너도 나도 제테크의 열풍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다들 주택 담보 대출을 했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내 힘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있던 시기입니다. 이 바람에 편승한 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빈곤과 실패의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린 겁니다.
하지만 신용카드나 부자되세요 같은 마약의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국민들은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했지만, 결국 부자는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갑자기 경제 민주화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겁니다.”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
그렇다면 도대체 경제 민주화란 무엇일까? 경제에 민주화라는 단어가 쓰였으니 대충 좋은 의미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개념이 명확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1원 1표의 시장 원리만으로 사회가 운영되는 것이 아닌,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로 시장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또한 장하준 교수는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주장하는 주주권을 강화해서 재벌을 통제하자는 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주주권 강화는 1원 1표의 시장 원리를 보다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1인 1표의 경제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을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라고 말한다.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직 복지에 대한 인식은 걸음마 단계이다. 많은 경우 이성적인 접근이 아니라 감정적인 접근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나오는 단어가 무상복지다. 장하준 교수는 이 무상이란 단어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무상이란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미 돈을 냈다는 것이다. 세금을 통해서 이미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하준 교수는 공짜라는 단어 대신에 공동구매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복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일까? 복지에는 크게 잔여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있다. 잔여적 복지는 부족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도와주는 복지 정책을 말하고, 보편적 복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장하준 교수는 잔여적 복지를 하게 되면 복지 국가를 망치는 지름길로 가게 된다며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급식 때 많이 나온 단어 중에 하나가 부자 복지입니다. 이건희 회장 손자가 왜 돈을 안내고 급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부자가 이익 보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건희 회장은 누진세 원칙에 따라서 더 많은 세금을 냈을 것이고, 결국 그 손자는 더 비싸게 급식을 먹는 셈이 됩니다. 만약에 유상 급식을 한다고 했을 때, 가난한 집 아이는 천원만 내고 급식을 먹고, 이건희 회장 손자는 오천원을 내고 급식을 먹는다고 해봅시다. 이랬다면 부자를 구박한다고 말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논리적으로는 두 개가 똑같은 것입니다.
잔여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합니다. 이게 아까 말한 경제 민주화의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시민권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잔여적 복지는 너희가 못나서 받는 거다 이런 식이 되기 때문에,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계속 내기만 하고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받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복지를 늘리자는 말이 나오면 복지와 성장의 상충관계를 언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복지를 늘리면 성장이 줄어드는 이야기 말입니다. 복지가 늘면 성장이 준다는 이야기는 맞는 말 같습니다. 우리가 정말 많이 들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만약에 복지와 성장이 정말로 상충관계에 있다면 어떻게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높을 수가 있습니까? 미국은 예전에 비해서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었는데, 경제 성장률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복지 제도도 잘못 디자인하면 안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를 만들자고 했을 때, 어느 누가 잘못 디자인 하자고 말을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물론 누진세 원칙에 따라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스웨덴은 세금이 높지만, 국민들은 복지 국가를 없애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육아, 교육, 실업, 노후, 건강 등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세금을 걷는 것이기 때문에 다들 이해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세금을 내면 나라에서 먹고 도망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금이 집이고, 세금이 학교고, 세금이 병원이고, 세금이 공공 도서관입니다. 물론 세금을 잘 써야 합니다. 세금 가져다가 강바닥 파고 그러면 안됩니다. 하지만 세금 자체가 높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걸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한 겁니다.”자본 시장 통제가 필요하다장하준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자본 시장의 통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든 예시는 바로 파생상품이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이 금융 시장의 대량 살상 무기라고 지칭한 파생상품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래하는 당사자들조차도 파생 상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숙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금융 위기 때 파생 상품이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8천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장하준 교수는 위험성이 검증이 되지 않은 파생 상품에 대해서는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국가 차원에서 금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가적으로 장하준 교수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방대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주주들이 떠나가지 않도록 막대한 배당금을 뿌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면 기업의 수익이 배당금 보다는 투자 쪽으로 흘러가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장하준 교수는 말한다.
장하준 교수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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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문사에 나온 ‘장하준, 문어발식 골목상권 침해 지지’ 기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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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부고만 빼고 다 좋은 기사라는 말인데, 저는 그런 원칙에 사는 사람이라 괜찮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데 제가 말하는 다각화는 업그레이드 입니다. 만약에 다각화가 없었으면 지금 삼성이 양복점을 하고 현대는 길을 닦았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번 돈을 가지고,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 투자해서 기업도 크고 나라 경제도 잘 되었습니다. 재벌 기업들이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 투자 했던 것처럼 신소재나 생명공학이나 태양 전지와 같은 산업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치킨이나 떡볶이 같은 큰 투자와 고급 기술이 필요 없는 산업을 자꾸 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다각화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재벌 측들은 자기 유리한대로 다각화가 무조건 좋다고 쓰고, 저를 싫어하는 분들은 제가 골목상권 침해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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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에 진출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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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이 많습니다. 부친께서 정치를 하셨는데, 정치인은 잠이 많으면 안 됩니다.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면 정치인으로써 도태됩니다. 저는 책을 보는 게 좋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합니다. 역할 분담도 중요합니다. 한창 전쟁이 일어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무기 공장장이 야전 사령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론을 만들고 누군가가 가져다 쓰는 방식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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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공저 | 부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으로 100만 독자를 열광시킨 바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래 만 7년 만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인 경제국제팀장과 함께 한국 경제에 대해 거침없는 직설을 펼친다. 2012년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이미 실패로 검증된 좌파 신자유주의로 회귀할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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