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블로그든 선거든, 각자가 의사를 표시하고 모여야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지난 14일 서울 홍대 민들레영토.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은 11인의 독자들이 소담하게 그와 마주 앉았다.
알다시피, 우리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두발자전거 경제 체제에 있다. 멈춤 없이 내달려야 유지될 수 있는 경제 시스템. 누군가의 이익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지금의 자본주의. 돈이 없으면 인간의 존재감과 자존감마저 말살당하고 마는 엄혹한 시대.
작금의 경제공황은 그런 시스템 내부에서 암약한 탐욕이 곪아 터진 것이다. 그러니까 공황의 초기, 금융위기라고 지칭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금융, 특히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파생상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우리의 탐욕을 조장했다. 그 설탕 묻힌 꽈배기 금융상품의 달콤한 감언이설은 우리의 이가 썩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금은 이를 송두리째 빼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는 그런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강력히 경고해 왔다. 지금이 결국 그런 시기다. 실물과 격리된 채 따로국밥으로 퉁퉁 불어터진 금융 파생상품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가 불러온 파국. 그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무척 비관적이다. 최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이며 “특히 파생상품이 많아서 끝을 짐작하기가 더 어렵고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져야 근본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불온(!)한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답다. 개발도상국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 노릇을 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악행을 고발(?)한 그의 책은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해 낙인이 찍혔다. 불온서적 꽝. 지나가던 개가 콧방귀를 꼈단다. 믿거나말거나. 덕분에 불온서적으로 지정됐던 책들이 더 잘 팔리는 현상을 낳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항간에는 국방부가 출판업계의 불황을 걱정한 나머지, 그런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더불어 불온서적의 저자인 불온교수 장하준 교수도, 되레 지금-여기의 잘나가는 ‘상품’이 됐다. 경제공황으로 심적 공황을 맞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되묻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파국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저발전의 원인을 문화적 비합리성이나 게으름 등에서 찾아 저들의 경제?사회적 지배를 공고히 한 서구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장 교수의 얘기도 마침 먹혔다. 자본주의를 넘기 위한, 대안을 발견하기 위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불온교수 장 교수는 현 정부가 많은 문제를 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의 개입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의 ‘심판’이자, 혼자 튀려는 시장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천사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없”지만,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요구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파국의 추가 진행을 막기 위한 방법도 그는 제시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한 한도 내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운동을 하는 것. 블로그에 글을 쓰든, 선거를 통하든, 작은 힘을 하나둘 모아서 사회를 개선시키자고. 불가능한 소리라도 자꾸 요구하자고.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역습을 가해야 한다. 학생식당의 밥값 인상에 반대해 데모를 펼쳐 결국 밥값을 내리게 한 가난뱅이의 ‘역습’처럼, 신자유주의에 ‘똥침’이라도 날리기 위해 우리에겐 지금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 어째, 듣기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지난 14일 서울 홍대 민들레영토.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은 11인의 독자들이 소담하게 그와 마주 앉았다. 장 교수를 향한 지상파 방송 3사의 인터뷰 구애를 이기고 장 교수를 차지한 운 좋은 독자들. 유병선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보고, 독자들의 질문에 이은 장 교수의 답변으로 진행된 화기애애했던 현장을 중계한다. 내 생각엔, 이건 <1박 2일>의 코너가 마련됐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건 앞으로 읽는 여러분의 몫이다. 요구하라, 그러면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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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큰 권력을 가진 한편, 거기서 폐해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고용안정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가에게 권력 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신자유주의가 잘못됐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까지 한 대통령 밑에서 살았어요.(웃음)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겠지만, 대학 때는 사복전경과 같은 장소에서 도시락도 먹고 그랬어요. 그렇게 살아서 독재에 대해 우려도 이해합니다. 지금 정부는 형식상으로는 민주화된 정부지만 안으로는 아니다보니, 정부에 그런 권력을 주는 게 옳으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정부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걸 싫어하죠. 그들이 전문가 운운하는 것도 국민들 얘기를 듣기 싫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가 묘한 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게 많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 개입밖에 없다고 봐요.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규제 없이는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방향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그랬는데, 그러려면 왜 대통령을 한 거예요? 우리는 반대로 불행한 정치적 역사 때문에 개입과 독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걱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중국과 러시아가 발전 과정에서 처음엔 석탄 등을 많이 써서 지구온난화가 확대된 것 같은데요, 아프리카가 러시아 모델 등을 따라간다면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기술패러다임으로 온 세계가 작동되면 지구 환경이 견디질 못하겠죠. 대기 중 온실가스는 추산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65~85%가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비롯된 건데, 그래놓고선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를 제한하면 문제가 되죠. 예를 들면, ‘동네의 식량공급이 제한돼 있고 남은 게 없으니 먹지 마라.’ 후진국들한테는 그렇게 들리죠. 그걸 공평하게 하려면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돈을 주든지, 친환경기술을 싼값에 공급해주든지, 친환경기술을 촉진하고 후진국 환경에 맞는 기술을 만들어주든지 해야죠. 그런데 사실 선진국들,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그러면서 산업화 말라고 하면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거죠.
또 후진국 입장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게 친환경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 거죠. 선진국들이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정말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 강제력으로 후진국의 산업화를 방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쪽으로 가면 안 되겠죠. 지금 당장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인도도 산업화 정도가 낮아서 그런 나라들이 산업화를 한다고 지구 환경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20~30년 후면 그런 나라들도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시스템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환경 문제 전공은 아니라서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한다 말은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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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벌과 대타협해서 공생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가령 지금의 삼성은, 사회적으로도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써야할까요.
2003~2004년인가 SK소버린 사태 때, 재벌과 사회적 대타협하는 것을 얘기했어요. 도덕적 당위론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론적으로 가능한 방법 중 전 국민에게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2005~2006년 한겨레에 기고하던 시기인데,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해 칼럼을 썼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댓글에 이런 글이 있었죠. ‘외국에 오래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삼성은 사카린 밀수를 한…….’ 2003년부터 거르지 않고 언론에 기고를 했지만 독자 댓글에 반응한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했어요.(웃음)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에 깨끗한 자본이란 없습니다. 서양 자본들은 식민지를 착취해서 돈을 모은 거고 온갖 부정을 다 저질렀습니다. 카네기도 사설탐정 총으로 노동자들을 쏴 죽였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차라리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게 낫습니다. 저는 동조하지는 않지만, 일관성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소액주주 운동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액주주 운동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래서 현실 가능한 방법 중에 뭐가 제일 좋겠냐고 생각하다보니 그런 주장을 내놨죠.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맥락이 바뀌고 있습니다. 자통법(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재벌들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려고 꾀하고 있어요. 당시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당시의 맥락을 보면 법을 바꿔서 자본들한테 다른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거였죠. 복지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올바른 행동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얘길 한 거죠. 재벌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고, 이걸 이용해야 하는데, 제 가치관으로는 복지국가 받아내는 게 맞다고 본 겁니다.
국가재정이 악화되는데 감세가 바람직한지, 1% 특권층한테 당신네들 혼자 성공한 게 아닌데 그것을 계속 강화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우리도 자국 이익 때문에 걷어차고 차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부는 부유층 감세 등을 통해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요를 부양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정부재정 적자를 확대하는 게 맞을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지출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세금을 깎아주기보다는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경제규모에 비해 복지지출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이 높게 봐도 9%가 안 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3%보다 낮은 것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적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낮아요.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 정부가 감세하겠다는 것은, 부자들한테 돈을 벌 수 있는 인센티브를 더 줘야 부를 창출해서 모든 사람이 잘살게 할 거라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경제성장이 잘된 국가는 하나도 없어요. 1978년 중국처럼 지나친 평등주의를 풀어줘서 잘된 적은 있지만, 더 불평등하게 만들어서 잘된 적 없습니다. 부자도 혼자 잘나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진 빚이 뭔가 생각하면 무조건 세금을 덜 내겠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겠죠?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감세하겠다고 하는 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옆집의 잘사는 살찐 사람이 다이어트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나라도 사다리는 이미 차기 시작했습니다. 선진국들만큼 공격적이지 않지만 WTO 가면 선진국 편에 서서 얘기합니다. 또 우리도 선진국의 해적판을 보고 자랐는데, 지금 중국, 베트남에게 우리 것을 베낀다고 뭐라고 그러죠. 안 그랬으면 하는 게, 역사적으로 한국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에요. 지금 선진국들은 동아시아에 비해 경제성장을 느리게 해서 예전에 자기네들 국가가 가난했을 때,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지적재산권 도용하면서 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본도 그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으로 목소리나 역할을 낼 수 없는 나라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가 유일하게 한국인데, 한국이 그걸 안 끊으면 누가 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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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저/<이순희> 역12,600원(10% + 5%)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저자 장하준 교수가 쓴 일반인을 위한 교양경제서. 자유 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공기업 문제가 과연 민영화로 해결 가능한지, 지적재산권이 실제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떤 특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