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근본적인 이유? 미래에 관한 상상력의 부족” -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금의 일상을 만들어 낸 것은 당신과 나
‘바람구두’, 전성원 편집장은 ‘인물로 보는 21세기 문화 예술사’를 『월간 인물과 사상』에 2년여 동안 연재했다. 그 글을 묶어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펴냈다. “제1차, 2차를 넘어 3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깊이 영향을 끼친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이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그리고 바람구두 전성원
우리는 자유로이 살기 위해 무엇에 맞서 싸우고 있을까? 우리는 과거의 전통이나 망령 혹은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이루는 존재와 싸우고 있다. 마르크스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했고,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했다.(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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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선생님이 추천사에 이렇게 쓰셨잖아요. 본인을 놀라게 할 만큼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고. 어떻게 한 꼭지를 완성해나갔나요?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일상을 거꾸로 생각해봤어요. 월마트의 경우, SSM의 시조는 누구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월마트를 만든 쌤 월튼은 어떤 사람이었나? 어떻게 이런 대형 슈퍼마켓이 현대 사회의 유통망을 장악하게 되었나? 거꾸로 풀어나간 거죠. 20세기는 화석문명이니까 록펠러는 쉽게 떠올렸고요.
무언가를 발명 혹은 발견해서 21세기를 움직인 사람들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어요. 공은 이미 많이 들은 얘긴데, 과실이나 폐해는 새로웠던 이야기가 많았어요.
사실 많이 알려졌어요. 그런 책을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아서 그래요. 업적에 관해서는 내로라하는 기업연구센터 소장, 경영컨설턴트에서 빨리, 많이 다루잖아요. 그런 자료를 넘어보면, 여러 문헌에서 록펠러나 그 재단의 문제점이 나와요. 그런 것들을 종합해 보는 거죠. 한 인물과 관련해 여러 권의 책을 보면 퍼즐처럼 그림이 잡히기도 하고요.
자료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 그중에서도 이 글을 쓰실 때 취사선택을 하셨을 텐데요. 그런 과정에서 고민한 것들은 없었나요?
위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위인전이 아니라 문화비평서로 읽을 수 있도록 애썼어요. 우리는 한 명의 위인을 거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 아래 수많은 보통사람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다룰 때, 우상화하거나 위인으로 떠받들 필요도 없지만 괜히 폄하하거나 깎아 내려야 할 이유도 없는 거죠. 이 사람들은 어떤 사회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물로 무엇을 만들어낸 사람일 뿐이에요. 위인전에 나오듯,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어서 성공한 게 아니에요. 그런 사람은 아주 많거든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잖아요. 이 사람들도 어떤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작은 일부인 거죠. 저는 그 일부를 잡아서 보여준 거고요.
어떤 변화의 시기에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혹시 정리하시면서 이들의 공통점으로 발견한 것은 없었나요? 결국,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랄까요.
여러가지에요. 빌 게이츠가 지금 태어났으면, 혹은 더 일찍 태어났으면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있겠죠. 빌 게이츠가 없었으면 IT 발전이 없었을까요? 아마 MS가 없었겠죠. 전화기 발명한 사람으로 벨만 생각하잖아요. 벨하고 몇 초 차이로 뒤늦게 특허를 낸 사람들도 많대요. 무엇이 발명될 때는 그런 게 나올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추동하는 힘과 물적 토대가 있기 마련이에요. 그 부분을 무시하고 위인의 능력에만 집중할 일은 아니라고 봤어요. 물론 그와 반대로 모든 게 물적 토대로만 이루어졌다는 결정론적 사고도 배격해요. 두 가지가 어울려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삐딱하게 보지만 균형을 갖고 접근했어요.
그런 균형감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거예요?
눈칫밥을 많이 먹고 자라서 그래요. 제가 3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고, 7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어요. 젊은 시절에는 한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고요. 천호동의 사창가 안에 있는 골방에 살기도 했고, 400에 20짜리 월세방에 살면서 쌓아둔 책을 물에 다 적셔 먹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면 균형 감각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웃음)
그 녹록지 않았던 젊은 시절은 어떻게 버티셨나요?
한 번도 버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 같이 약한 사람들은 버티면 죽어요. 뿌리가 뽑히지 않으려면 유연하게 살아야 해요. 버티는 게 아니라 견딘 거죠. 그땐 전망이 없었어요. 그냥 오늘 오늘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고 생각했어요.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20세기 인물들을 다루고 있죠. 20세기 정점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대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20세기는 대중의 시대에요. 그런 마음으로 모든 걸 하고 있어요. 제 홈페이지에 오는 장삼이사. 그들이 주인공이에요. 20세기는 사회주의와 함께 시작해서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전 세계가 받아들여서 세계화를 이룬 시대거든요. 데모크라시잖아요. 주인공은 당연히 대중이죠. 민주주의의 역사는 아직 짧은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게 있어요. 기업 민주주의에요.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이 자신의 자각을 놓치는 순간, 기업에 권력이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기업이 만든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언론에 받아서 쓰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어져 21세기가 온거겠죠?
마찬가지일 거예요. 지금의 일상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신과 나예요. 저항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현재 일상을 만들어낸 주체에요. 지배자이면서도 피지배자인 거죠.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시작하면서 “21세기 문화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표했는데요. 어떻게 대안이 보이시나요?
문화라는 게 일종에 신화 같은 거예요.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든요. 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사고한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성조차도 사회가 만들어낸 틀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문화인지도 모르고 우리 속에 내화 된 것들을 고민해보고 탈출구를 찾아보는 작업을 ‘문화망명’이라고 명명했던 거에요. 시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지금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서 그게 절대적인 체제일까요? 저 역시도 정답을 알고 있지 않아요.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고는 있어요.
계속 공부하고 책을 만들고 편집하고 있는데요. 계속 글 쓰고 공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질문이라면 뭘까요?
하나는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까? 인간의 마음에는 과연 뭐가 있길래 우리는 이렇게 외롭고 힘들고 슬프게 살까? 그걸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남들은 왜 그렇게 살까?(웃음) 세상은 나와 남으로 구분되잖아요. 그런 걸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자연은 사람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었지만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세상 만물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곧 정치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우선 지배 이데올로기가 주입한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비판적 각성을 통해 자기계몽과 자기주체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문화망명’이다.(p.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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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서 이어진 일련의 작업이 이 책인 셈인데요. 시대를 압도하는 정서가 불안이라고 하셨잖아요. 과연 이러한 정서는 지금의 문화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다르게 살 수 있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걸 상상해내지 못해서 위기인 거예요. 그게 근본적인 불안이라고 생각해요.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정신적인 혁명은 내일을 상상하는 힘이었거든요. 원시시대 때, 동료가 죽었을 때, 그 죽음을 슬퍼하면서 인류 최초로 동료의 무덤을 만들어준 게 네안네르탈인이래요. 인간이 죽음 이후에 세계, 오늘이 아닌 내일의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생겨서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무덤을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인류의 문명의 초석을 다진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나 돌아보게 되죠. 용산, 쌍용차, 콜텍. 여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우리는 같은 시절을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이웃의 고통이나 슬픔에 둔감해져 있지 않나 싶어요. 내일을 상상하는 힘이 마비되어 있지 않나. 제 스승인 최인훈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했어요. 신체기관은 손가락 끝 머리카락 끝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고요. 영양분을 공급하고 산소를 보내고, 그렇게 조화롭게 움직이는데, 왜 그렇게 구성된 인간은 사회 일부가 썩고 곪아가고 아파하는데 외면하느냐고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이죠. 그걸 당연한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수 우파들의 생각인 거고, 그러한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안고 같이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게 진보좌파의 생각이에요. 두 가지 견해가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아서 느리지만, 꾸준히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아프지만, 그게 또 역사가 아닐까요.
요즘은 무엇이 편집장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나요?
그때그때 바뀌어요. 요즘은 인터넷? 트위터?(웃음) 아, 우리 딸?(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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