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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녀의 무엇을 훔쳐 가져가겠습니까?” -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시인, 자기만의 단어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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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혹시 그녀의 시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래서 그녀의 시를 찾고 읽고, 얘기한다면 시인은 당신에게서 기쁘게, 또 어떤 의미를 훔쳐갈 것이다. 자, 시인 진은영이 꺼내놓은 시에서 당신은 무엇을 가져갈까. 아무래도 그녀는 주머니에 있는 걸 조금 꺼내놓았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털어보거나, 그녀의 시로 하여금 더 많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시인, 자기만의 단어를 가진 사람





진은영 시인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을 가지고 있다. 그 사전 안에는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의 독백, 혁명, 시가 들어있다. 그 시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저 일곱 개의 단어는 진은영 시인의 단어가 되었다. 자기만의 단어를 가진 사람. 그게 시인이었다.

진은영 시인은 철학과를 나왔다. 그 사연이 재미있다. 이공계 출신으로, 부모님이 강요한 약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 시절 동사무소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만난 언니한테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인이 꿈이고, 시를 쓰고 싶은데 아버지가 자꾸 약대를 가란다고. 그러자 그 언니, 시원하게 한마디로 해결 해주셨다. “그럼 시인이 되면 되잖아. 대신 시인은 철학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철학과에 갔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

첫 시집을 낸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2008)을 출간했고, 올해 『훔쳐가는 노래』를 펴냈다. 진은영 시인에게 정말 철학공부가 시 쓰기에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시인은 “세계를 낯설게 보는데 철학이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감각 못지 않게 깊은 사유,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그녀의 시어들은 재미있다. 온도차이가 다른 단어들이 나란히 배치되기도 하고, 감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감각적인 비유는 그녀의 전매특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 전공수업을 강의중인 진은영 시인은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2007)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를 써내기도 했다. 독자로서 그녀의 철학이 시를 만나 빛을 발하는 지점은 재미다. 많은 상징과 비유들은 감각과 동시에 재미로 다가온다. 그녀가 말한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다른 시선”은 그녀의 시를 더욱 재미있고 맛있게 만든다.







훔쳐가는 노래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나는 진심을 주었는데, 타인은 그 속에서 오해만을 훔쳐가기도 한다. 나 역시 타인에게서 타인이 주머니에 숨긴 것을 슬쩍 읽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훔쳐가는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서로가 서로의 것을 훔쳐가고, 훔침을 당한다.

“대학 때 이화문학회에서 시를 썼어요. 그 무렵 농수산물 수입개방이 되면서 거리에서 바나나가 보이기 시작할 때였어요. 바나나를 놓고 네 줄짜리 사랑시를 썼는데, 합평 시간에 선배 언니가 ‘그러니까 이 시가 농수산물 수입개방을 비판하는 시구나’ 그러는 거에요. 제가 데모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니까, 시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 본 거죠. 나는 사랑노래를 들려줬는데 그 사람은 내 시에서 다른 걸 훔쳐간 거죠.”

69 작가선언을 한 작가니까, 철학을 전공한 작가니까. 그녀를 둘러싼 설명들이 그녀의 시에서 다른 것들을 읽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할 때도 있지만,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연애할 때도 그렇잖아요. 나는 사랑을 줬는데, 상대는 부담으로 느끼기도 하잖아요. 인간관계 안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사건인 것 같아요.”

당신이 혹시 그녀의 시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래서 그녀의 시를 찾고 읽고, 얘기한다면 시인은 당신에게서 기쁘게, 또 어떤 의미를 훔쳐갈 것이다. 자, 시인 진은영이 꺼내놓은 시에서 당신은 무엇을 가져갈까. 아무래도 그녀는 주머니에 있는 걸 조금 꺼내놓았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털어보거나, 그녀의 시로 하여금 더 많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시는 세상에 보내는 편지





그녀는 시 쓰기를 편지 쓰기에 비유했다. “시 쓰기는 일기쓰기와 다르잖아요. 굉장히 사적인 작업이긴 하지만, 누군가 볼 거라고 생각하고 쓰는 편지인 셈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앞선 두 권의 시집은 진은영 시인이 세상에,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누가 받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읽어줄 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한 거죠.”

반면 이번 시집은 세상에게서 온 편지에 답장을 하는 마음으로 적었다. “답장을 쓸 때는 보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잖아요. 4대강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 쓴 편지와 용산에서 죽은 분들에게 부고 형식으로 편지를 받았을 때 보낸 편지, 이런 것들에서 이전 시집과 차이를 말하는 것 같아요.”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가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69작가선언을 하면서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도 그녀에게 가장 큰 자극이 되었던 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이었다고.

“2009년쯤 신형철 평론가가 한 비평에서 ‘아름답고 미학적인 코뮨을 꿈꾸는 시인’이라고 저를 소개한 적이 있어요. 그 비평을 읽으면서 저 비평가가 그런 문학적 공동체에 관한 꿈을 갖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고, 거기에 부응하고 싶었어요.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함께 아름답고 정치적인 공동체를 꾸려보면 어떨까 싶었고, 뒤이어 69작가선언을 통해 만난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자극이 있었어요.”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즐거운 정치를 배웠다. “저는 80년대 학번이라 아직도 저에게는 정치적인 엄숙주의가 있었어요. 근데 젊은 작가들과 모이면서 정말 발랄한 친구들과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이 친구들은 정치의식은 갖고 있으면서도 과하게 무겁지 않은 거예요. 정말 행복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서 삶 속에 정치를 가져오는 게 어떤 건지 많이 배웠어요.”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그는 유년기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녀에게 시는 위로였다. “마음이 괴로울 때 시를 열심히 외우고 다녔어요. 이렇게 고통을 잊을 수 있다니, 시인이 된다면 정말 멋지겠다 싶었어요.” 철학과에서 공부를 할 때도 그녀는 시만 생각하는 시인이었다.

“철학을 열심히 하면 좋은 시인이 되겠지 생각했어요. 제가 자꾸 시인이 되겠다고 하니까, 교수님이 ‘왕년에 시인을 꿈꿔보지 않은 여고생이 어디 있냐? 왜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철없는 소리를 하냐’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좋아해주셨어요.”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믁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그 머나먼 中」 철학이 멀리 있어서 좋았다고 그녀는 노래했다. 정말 그랬다. “삶은 너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고 노골적이잖아요. 철학의 개념이나 어휘는 현실로부터 어떤 거리를 둔 개념어들이잖아요. 섬세하고 순수하게 정제해낸 언어로 세계를 구성해서 사유하는 방식은, 허덕거리는 고통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 거리를 갖게 되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어요. 그게 없었다면 불행함 속에서 허덕이기만 했을 것 같아요.”

적용해보자면, ‘멀리 있어서 좋은 철학’이란 이런 것이다. “아버지가 사업에서 망해서, 내가 반장인데 등록금을 못 낸다고 해봐요. 아이들 앞에서 등록금 때문에 불려 다니면, 왜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무능할까 싶잖아요. 세상의 불행은 나한테만 닥친 것 같고요. 그런데 자본론을 공부하면 아버지와 같은 계급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망할 확률이 크다는 걸 객관적으로 설명해줘요. 개인에 비난이나 나의 단순한 불행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여유, 다른 종류의 인식이 생겨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악은 뭘까, 고민하게 된다는 거죠.” 철학이 다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같이 위로해주고 힘이 돼 주었던 친구들이었다고.


청춘, 조심할 수 없는 시기





한시도 잊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시만 생각했던 힘, 시인의 꿈을 꿀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약간 허무주의적인 성향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요구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이런 게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었어요. 그런 것 말고 삶의 의미가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순간에 문학을 찾게 되고 철학을 하게 된 거죠.“

첫 번째 시집부터 『훔쳐가는 노래』까지.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시가 있다. ‘청춘’ 연작시다. 시 속의 청춘은 밝지만은 않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았고” “언제나 가뭄이었다” “불 속에서도 타오르지 않는 자”(「청춘1」)였다. “뜨겁고 붉은 입 속에서 찌르던 것이 사라졌을” 땐, “지나간 허기에 대해/ 닫힌 대지처럼 굳게 입을 다문다”(「청춘4」)

“요새 청춘들처럼 저도 공부하느라 정신 없는 청춘을 보냈어요.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대학원에 다니기 힘들잖아요. 등록금 열심히 벌고, 틈틈이 돈 버는 일 말고 인생의 의미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살았어요. 돈 안 버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죠. 밀도 있게 고민하고 괴로워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서른 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던 ‘시인의 말’의 글은 예삿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몸이 약했는데, 청춘은 약한 몸으로도 들뜬 시간이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조심성 있게 살 수 없는 시간”을 보냈고, 그 여파를 몸으로 감당했다. 종양이 생겨 수술까지 했다.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싶을 때, 지금도 잊지 못할 의미 있는 장면 하나를 경험했다.

“수술 받으려고 연대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 무렵 정현종 선생님 가족이 저랑 같은 병실에 입원을 하신 거예요. 정현종 선생님이 시인이시니까 나희덕, 이상희 등 시인들이 병실에 놀러 온 거예요. 너무나 좋은 거죠. 꿈에만 그리던 시인을 옆에서 보면서 사인도 받고 했어요. 죽기 전에 해볼 일이 뭐가 있을까? 시인이 돼야겠다 싶었죠.”

지금은 청춘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청춘들에게 어떤 선생님이냐고 묻자,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하세요”라고 말하는 선생님이라고 답한다. “그냥 좋아하는 만큼만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었고, 그래서 선생님께 무례를 범하기도 했지만, 그런 무례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자기가 무엇에 매혹되었는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고요.“


만 명의 사람들이 한 권씩 시집을 내는 세상 꿈꾼다





시만 생각하는 시인 진은영은 여전히 시를 생각한다. 함께 쓰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를 생각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말한 미학적인 공동체. “’그, 혹은 그녀가 쓴 이 시 구절이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어.’라든지 ‘이 사태에 대해 시를 써봤는데 너 한번 들어볼래.’ 이런 것들. 다른 소일거리가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한 명의 좋은 시인이 만 권의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 한 권의 시집을 내면 어떨까. 그녀는 이런 꿈을 꾼다.

“저는 등단과 별개로, 시쓰기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 자체가 주는 놀라운 치유의 힘이 있었어요. 그런 멋진 작업을 안 해보고 인생을 마감하는 건 아쉬운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만인이 한 권의 시집을 내는 그런 세상을 원해요.”

자기만의 단어로 된 사전을 가지고 있는 시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 단어를 찾을 수 있느냐고. “제 시에서 새로운 걸 느꼈다면, 그건 단어를 엉뚱한 데다가 가져다 놓고, 그 단어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나만의 방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찾아보세요. 그건 습작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세계와 다른 방식으로 만나야 가능한 거에요. 철학공부도 하고요. 다른 일도 열심히 하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텐데

(…)

차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시인의 사랑」 중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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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저 | 창비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후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 시인 진은영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가 출간되었다. 4년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펼친다. 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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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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