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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어서 어디에 써먹는가?” - 정혜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나를 지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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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쩔 수 없는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자각하면 할수록 그 시간은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되는 시간’을 오롯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주어진 역할을 벗어 던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내려놓은 채, 나에게만 몰두하는 시간. 그 어떤 대가도 기대도 바라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그 시간은 대체 어떻게 하면 생겨나는 걸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하늘을 찌르는 날이 있다. 하지만 길어야 이틀 정도. 다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땅끝까지 뿌리를 뻗는다. 언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잘못되어버린 것 같은 내 삶. 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우리에겐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삶 전체가 원하지 않은 시간들, 아무 재미도 없는 무의미하고 무료하고 피로한 시간들, 비극이자 코미디인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은 내가 원한 삶이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 p.36



그래, 그거다. 언제부턴가 삶이 원하지 않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건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하는데,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보면 이틀 간격으로 넘치는 의욕과 질척이는 무기력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지!”가 고개를 들었다가도 이내 지쳐 “그냥 이렇게 살지 뭐~”로 결론이 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자각하면 할수록 그 시간은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되는 시간’을 오롯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주어진 역할을 벗어 던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내려놓은 채, 나에게만 몰두하는 시간. 그 어떤 대가도 기대도 바라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그 시간은 대체 어떻게 하면 생겨나는 걸까.

저자가 인용한 책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의 등장인물 N을 보며 나는 그 답을 얻었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하는 N은 배달을 끝내고 학교에 가기 전 공원 그네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는다. 그에게는 그 짧은 시간만이 생각이란 것을 해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회사에 들어간 뒤 일과 사람에 지쳐 괴로워하던 N은 어느 날 출근길에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되는데, 바로 어릴 때 빵과 우유를 먹던 그 짧은 사색의 시간에 맡았던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기 위해 그는 첫 전철을 타고 출근 전 거리로 나가게 되고, 아무에게도 팔아 넘기지 않은 자신만의 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자율성의 시간’을 갖자고 대답한다. 원하지 않는 시간들로 점점 채워지는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서, N과 같은 자율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기쁨에 몰두하는 시간이며, 곧 나를 키우는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을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명령이 아닌 사랑으로 생긴다고 말한다. 단잠을 자지 못할 수도, 수입이 줄어들 수도, 쓸쓸해질 수도 있지만, 뭔가를 사랑하여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은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고 덧붙인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스스로 해 보는 경험.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키워 보는 경험이며, 그녀에게는 책을 읽는 시간이야말로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길을 잃을 때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조금씩 나를 바꾸어 가는 것이야말로 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며, 그녀는 책을 통해 배운 것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가는 것. 의지와 사랑을 들여 나무를 키우듯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나를 키워보는 시간. 그 시간은 원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자발적으로 지켜내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같은 고민과 생각이 담긴 책들이 나를 지켜줄 것을 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함께 지키기 위해 기꺼이 애쓸 것을 안다. 아무에게도 팔아 넘기지 않을 나만의 시간, 나를 지켜줄 그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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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저 | 민음사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와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매번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던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신간이다. 책은 우리가 흔히 던지는 독서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써먹을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등. 저자는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위 질문에 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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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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