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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언제 봤다고 “사랑합니다, 고객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는 왜 절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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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색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착해 보이는 청년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우리를 향해 서 있다. 그의 눈과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길거리에서 그를 만나면 주저 없이 길을 물어도 좋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는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그의 겉모습과 문구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질리언 웨어링, 〈나는 절망적이다〉, 1992~1993



웃고 있지만, “나는 절망적이다”

밝은색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착해 보이는 청년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우리를 향해 서 있다. 그의 눈과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길거리에서 그를 만나면 주저 없이 길을 물어도 좋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는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그의 겉모습과 문구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작가가 길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달라”고 요청한 결과물이다. 그렇구나… 착하고 친절하게 보이는 미소의 젊은이는 속으로는 절망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절망적일까? 애인과 헤어졌거나 부인으로부터 이혼 통고를 받았을까? 방금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을까? 돈을 쏟아부은 주식 투자에서 쪽박을 찬 것일까? 아니면, 우울증을 앓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 청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 노동 시대, 외부와 내면의 불일치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5년도에 귀국했을 때 내가 느낀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우리 사회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114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로 전화를 받는 교환원의 목소리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나를 언제 봤다고 사랑한다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구나 하는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아무튼 매우 심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인사말이다.

백화점 개점 시간에 들어가면 일렬로 늘어서서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직원들 사이로 어정쩡하게 걸어가야 했으며, 극장 매표소에서도 양손을 어깨 높이에 대고 딸랑딸랑 흔들어 대면서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형 마트에 가면 화장실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마다 정성 들여 인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앨리 러셀 혹실드라는 미국의 사회학자가 『The Managed Heart(관리되는 마음)』라는 책을 펴내면서 널리 쓰이게 된 개념이다.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감정 노동』이라는 제목이 되었다.

감정 노동이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제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이 아무리 막무가내로 우겨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조직에서 요구하는 바대로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감정 노동자’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커지고 외부의 요구와 내면의 욕구가 어긋나면서 오는 좌절감과 스트레스는 극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무엇이든 사고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감정마저 상품처럼 포장되어 진열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속으로는 부당하다고 느끼고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지만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억눌린 감정은 다른 곳에서 폭발하게 되어 있다. 어떤 이는 술을 먹고 풀거나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해소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몸에 그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 사회에 그토록 폭력이 난무하는 건 어쩌면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몸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견뎌 내지 못하고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된다. 왜 아니겠는가. 그것은 위장병, 불면증, 편두통, 신경 불안증,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에 이르게 된다.


나의 진짜 얼굴을 찾아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대로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솔직히 우리에게 친절은 표면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매일 그렇게 친절한 미소와 인사를 받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해서 찾으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초상은 사르트르가 쓴 것처럼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걱정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절망 속에 깊이 빠져 버리지도 못한 채 ‘옹졸’하게 되어 버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더 억지스러운 상황이 덧붙여진다. 그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에 최소한 10분만이라도 억지로 웃으라는 ‘웃음 치료’까지 생겨나, 우리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는다. 웃으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나와 저절로 치료가 된단다. 그렇게 TV 화면 속에서 ‘하하하’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러다 진짜로 돌지”라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억지웃음이나 거짓으로 뇌를 속이는 행동이 아니라 화가 날 때 적절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가 솟구칠 때 그것을 참기만 한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거나 자기 몸을 해친다. 참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폭발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슬픔이나 절망, 분노와 기쁨 등 자신의 감정을 적절한 수준에서 표현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겉과 속을 일치시키는 것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웃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흘리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림, 눈물을 닦다』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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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조이한 저 | 추수밭
심리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평론가 조이한의 그림 심리 에세이.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우리의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작품들을 담았다. 사랑, 결혼, 관계, 슬픔, 상처, 자살, 삶의 비극성, 외모 콤플렉스, 늙음과 죽음 등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들을 그림을 통해 성찰한다. 모딜리아니의〈모자를 쓴 여인〉을 통해 우리는 결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관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카라바조의〈나르시스〉와 마그리트의〈연인〉을 통해 자기애와 상상력이 사랑의 본질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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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이한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자 문화운동연합에서 가수로 활동하다 199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는 심리학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었으나 그림의 매력에 빠져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다. 현재 서강대 평생교육원, 인하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상상마당 등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사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해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림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오기로 버티던 유학 시절, 에곤 실레의 〈해바라기〉 앞에서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알 리 없는 오스트리아 화가가 100년 전에 그린 그림이었지만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준 것처럼 위안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단지 그림 보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랑 때문에 아픈 마음, 삶의 고달픔에 지친 마음,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마음을, 덮어놓고 괜찮다고 하는 위로가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다독인다.
지은 책으로는 《천천히 그림 읽기》(공저),《그림에 갇힌 남자》,《위험한 미술관》,《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뉴욕에서 예술 찾기》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이 그림은 왜 비쌀까》,《예술가란 무엇인가》(이상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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