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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는 왜 눈동자가 없을까?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니다 눈을 통해 타인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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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우리를 향해 있다. 나는 여기서“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쓰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녀에겐 눈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 눈동자가 없는 눈을 그리고 이상한 거울 속 이미지처럼 길게 늘여진 얼굴을 그리는 화가.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왜 초상화에서 눈동자를 제거해 버렸을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모자를 쓴 여인〉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1917

눈동자가 없는 여인의 초상화

길쭉한 얼굴, 상아로 깎은 조각처럼 늘씬하게 뻗은 콧날, 새초롬하게 다문 빨간 입술, 사슴만큼이나 슬프도록 긴 목. 그림 속 인물은 디테일이 생략된 채 매우 단순화된 얼굴이다. 기다란 손가락 하나, 왼쪽 턱에 살짝 대고 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을 때 하는 포즈라고나 할까?

그림 속 여인은 모딜리아니의 부인 잔 에뷔테른이다. 너무나 슬픈 그들의 러브 스토리는 모딜리아니의 그림만큼이나 유명하다.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연결해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을 언제나 비극적인 사랑과 관련지어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좀 냉정한 마음으로 그림을 살펴보자.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우리를 향해 있다. 나는 여기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쓰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녀에겐 눈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 눈동자가 없는 눈을 그리고 이상한 거울 속 이미지처럼 길게 늘여진 얼굴을 그리는 화가.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왜 초상화에서 눈동자를 제거해 버렸을까? 사람의 얼굴에서 눈동자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문득 이 지점에서 깨닫는다. 그가 제거한 눈동자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지…. 우리는 종종 말로 표현된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을 통해 타인을 알 수 있을까

사르트르적 의미에서 ‘타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보면서 상대를 객체로 만든다. 나는 너를 바라보면서 너에 대해 내 맘대로 해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너를 객체화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너는 나를 바라보면서 실제의 나와는 상관없이 네 맘대로 나를 해석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함으로써 나를 객체화한다. 나의 주체성은 그렇게 ‘바라봄’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그는 내가 자기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그것은 반대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타인은 나를 바라보고 나를 객체화하지만 그가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 너는 나를 바라보지만 네가 나를 보며 하는 생각까지 내가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 여성 혹은 대상은 눈동자가 없다.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는 그녀/그를 바라보지만 그림 속 그녀/그는 눈동자가 없으므로 화가를 보지 않는다(혹은 보지 못한다). 바라보는 자는 오직 화가다. 상대에게서 눈동자를 지워버림으로써 화가는 자신이 객체화될 수도 있는 위험 요소를 애초에 제거해 버린다. 바라보는 자는 오직 화가 한 사람이다. 시선을 독점한 자가 누리는 절대적인 힘.

그러나 그만큼 그는 외롭다. 왜냐하면 타인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나는 그만큼 안전하지만 상대의 눈에 보임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서 고독해지는 건 아마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동자가 없는 이상한 그림 때문에 내 생각은 계속해서 가지를 친다.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의 눈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말은 속일 수 있어도 눈은 속이지 못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때로 그 순한 눈동자로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눈을 통해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 상대가 사랑하는 이라면 그 갈망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는 없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난 당신을 잘 알아요, 나만큼 당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걸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도, 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열어젖혀 그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수수께끼를 풀어헤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림, 눈물을 닦다』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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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조이한 저 | 추수밭
심리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평론가 조이한의 그림 심리 에세이.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우리의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작품들을 담았다. 사랑, 결혼, 관계, 슬픔, 상처, 자살, 삶의 비극성, 외모 콤플렉스, 늙음과 죽음 등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들을 그림을 통해 성찰한다. 모딜리아니의〈모자를 쓴 여인〉을 통해 우리는 결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관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카라바조의〈나르시스〉와 마그리트의〈연인〉을 통해 자기애와 상상력이 사랑의 본질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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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이한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자 문화운동연합에서 가수로 활동하다 199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는 심리학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었으나 그림의 매력에 빠져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다. 현재 서강대 평생교육원, 인하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상상마당 등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사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해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림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오기로 버티던 유학 시절, 에곤 실레의 〈해바라기〉 앞에서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알 리 없는 오스트리아 화가가 100년 전에 그린 그림이었지만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준 것처럼 위안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단지 그림 보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랑 때문에 아픈 마음, 삶의 고달픔에 지친 마음,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마음을, 덮어놓고 괜찮다고 하는 위로가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다독인다.
지은 책으로는 《천천히 그림 읽기》(공저),《그림에 갇힌 남자》,《위험한 미술관》,《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뉴욕에서 예술 찾기》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이 그림은 왜 비쌀까》,《예술가란 무엇인가》(이상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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