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죽도록 일해도 결국 배신? - 『노동의 배신』, 『사당동 더하기 25』 함께 읽기
노동은 어떻게 사당동 더하기 25를 배신했나? 죽도록 일해도 노동에 배신당할 수 밖에 없는…
갓 스무 살이 넘은 청소 동료는 발목이 부러진 것 같은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에런라이크는 어떻게 그녀를 도와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발목이 부러져도 병원에 못 간 동료가 병원비도 무섭고 일 못하면 돈 못 벌 게 무서워 아픈 것보다 걱정되어 파랗게 질린 모습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조은의 책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보여지는 광경과 꼭 같다.
긍정심리학이 인기 끈 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독일 정도면 노동자의 힘이 세고 회사 다니는 것도 우리나라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지만 최근 읽은 어느 독일 에세이집을 보니 경중이 다를 뿐, 체제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어느 나라도 사장은 다 비슷하던가. 그 동네에서도 어느 날 사장이 비장한 얼굴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회사 직원 수만큼 가져다 읽혔단다. 우리가 다 아는 바로 그 책 말이다. 늘 먹던 치즈를 먹던 쥐들이 치즈가 없어진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치즈를 누가 가져갔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치즈가 있는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소위 ‘혁신’과 ‘자기계발’의 고전인 바로 그 책을 받아든 노동자들은 휴게실에서 만나기만 하면 치즈 어쨌냐, 쥐를 잡자, 하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작년 녹즙배달을 하던 시절, 배달하러 출입하던 어느 대기업, 한 층에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의 책상 위에 회사에서 나눠 준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인가 하는 책이 마치 설치미술 같은 광경으로 일제히 놓여 있던 광경이 떠올랐다. 이런 대책 없는 낙관 혹은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책의 형태는 계속되는데, 최근에는 사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듯 싶으면서도 트위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발언하고, 그래서 중생들이 모르는 지혜를 쉬운 말로 해 주는 스님들의 책이 인기다. 믿음과 긍정 장사는(그 스님들의 인격적 훌륭함과 진심에 상관없이 시장의 법칙상 어쩔 수 없이 장사가 되고 만다) 계속 재생산된다. 실제로 치즈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쥐는 아주 많은데 치즈는 너무 적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치즈를 갖지 못해도 싼 이유가 된다.
이러한 긍정 신앙에 한 차례 『긍정의 배신』으로 찬물을 끼얹은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다른 책 『노동의 배신』은 노력하면 잘 된다, 뼈가 빠지게 일하면 결국에는 복이 온다는 노동 신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책상 앞에 앉아 조사 결과와 수치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모텔 청소부와 저렴한 식당 웨이트리스와 마트 종업원 등 몸으로 뛰어들어 얻은 결과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다.
그가 노동 현장에 뛰어든 2000년대 초반은 알다시피 닷컴 열풍도 아직 사그라들지 않을 때였고,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던 때라 요즘처럼 일자리가 없어 일을 못 하는 때는 아니었다. 그래서 바바라 에런라이크는 실제로 어렵지 않게 일을 얻었고, 그 일을 하는 동료들과 같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초기 수입 등의 수준을 주의깊게 맞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부프로펜 류의 싸구려 진통제를 달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바바라 에런라이크보다 많으면 20년 가까이 젊었지만 훨씬 저 자주 아팠다. 에런라이크는 자신이 백인 중산층으로 생활하면서 그간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의료 혜택을 받으며 쌓아 놓았던 건강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더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음울하게 깨닫는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청소 동료는 발목이 부러진 것 같은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에런라이크는 어떻게 그녀를 도와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발목이 부러져도 병원에 못 간 동료가 병원비도 무섭고 일 못하면 돈 못 벌 게 무서워 아픈 것보다 걱정되어 파랗게 질린 모습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조은의 책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보여지는 광경과 꼭 같다.
사당동에서는 애가 몇 년 전 다쳐서 병원 간 것을 혼낼 일 생길 때마다 너 그때 돈 없앴다고 혼낸다. 조은은 실제로 이 안에 살지는 않았으나 연구를 돕는 남녀 조교가 사당동 별동네에 방을 얻어 상주하며 연구 일지를 기록했고, 연구 기간이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보았다. 금선 할머니를 시작해 손녀까지 3대까지 자그마치 25년이다.
『사당동 더하기 25』는 건조하게 사실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은이 문화기술자로서, 연구자로서, 이 가정을 오래 지켜보는 일종의 ‘관계자’로서 자신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고민이 끊임없이 드러나는 지점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애잔한 부분이다.
80년대 후반 ‘불량 주거지’ 사당동은 철거의 된서리를 맞는다. 백골단원이 사당동을 습격했을 때 무서워서 못 갔다, 라는 고백까지 감추지 않는 만큼 조은은 실행력은 바바라 에런라이크에 비해 떨어질지 모르나 솔직성과 근성에 있어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 3대에 걸쳐 빈곤이 되물림되는 광경을 이십 오 년 동안 지켜보면서 가족 일원의 수업료가 부족했을 때 보태거나 ‘대포폰’ 같은 사건에 휘말려 경찰서에 갔을 때 벌금이라던가 금선 할머니의 납골당 갱신 비용까지 이 일지에 기록되지 않은 도움 말고도 아마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관계를 넘어 25년간 지켜봐 온 친분에서 우러나온 마음으로 도운 일도 꽤 많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이십 오 년간 이 가족을 지켜보고 있는 조은 옆에서 왔다 가는 사람들은 수급까지 포함하면 간혹 중산층의 한 달 수입을 상회하는 벌이를 하기도 하면서 계획 없이 쓰는 이들 가족의 모습에 ‘복지병’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이 가족의 자립 의지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이 가진 모든 문제는 가난의 원인이 아니라 가난의 ‘결과’라는 조은의 의견에 독자 역시 수긍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나태하고 게으른가? 사당동 사람들은 죽도록 일한다. 6학년 아이까지도 공장에 나가서 일하다가 공장장에게 발로 차여 맞기도 하고, 이 동네 꼬맹이들 중에 어른들의 부업인 소독저 포장을 못 하는 아이가 없을 정도다. 강남 가정의 파출부 기지라고 불릴 정도로 아침마다 강남, 반포 등지로 여자들도 파출부 일을 나간다. 그러면서도 백골단 철거반원들과 몸싸움을 해야 할 때면 이 여성들이 맨 앞에 나섰다. ‘우리 아저씨는 나가서 돈 벌어 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은 이들을 배신한다.
조은이 강조하는 것처럼 에런라이크의 동료들이 가졌던 문제도, 금선 할머니 가족들의 문제도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빈곤이 낳은 결과지만 이 문제를 오래 바라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용감하고 끈덕지게 이 문제를 주시하는 바바라 에런라이크나 조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조은은 이 보고서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지금 조은은 연구자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가난함을 이해하고 가난함의 조건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쓰며 글을 맺는다.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올해 동국대학교에서 교수직 정년을 맞은 사회학자 조은이 1986년에 사당동에서 처음 만난 한 가난한 가족을 25년 동안 따라다닌 연구와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다. 이 책은 한국 근대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도시빈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빈곤을 겪어 보지 않은 사회학자가 연구 대상일 뿐이던 한 빈곤 가족을 4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빈곤을 연구한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자문하는 작업으로…
관련태그: 노동의 배신, 사당동 더하기 25, 바바라 에런라이크, 조은, 노동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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