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끔 밥알이 기도를 막아 위험해질까? - 최재천 『다윈지능』
통섭의 지혜를 배우다 이제는 ‘다윈 지능’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학자와 달리, 자연 선택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크고 작은 제약 조건의 한계 안에서 이뤄진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는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에서 진화론의 발전 과정, 진화론의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 진화론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준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응급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다. 명치를 강하게 압박하는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기도가 식도 뒤에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기도 뒤에 있는 식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행히 음식을 삼킬 때는 기도를 막았다가 숨 들이마실 때에 열어주는 후두개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실수를 저지른다.
물고기는 입으로 물을 들이마셔 아가미를 통해 빠져나갈 때 산소를 걸러 마신다. 이른바 아가미 호흡니다. 그런데 물고기들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가 숨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콧구멍이 생겨났다. 숨 쉬기 위한 콧구멍이 배에 있는 것보다 등에 있는 물고기가 유리했을 것은 당연한 일. 결국 먹는 입과 숨 쉬는 통로의 위치가 엇갈리며 진화되어 온 끝에 지금과 같은 식도와 기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화에서 자연 선택은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학자와 달리, 자연 선택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크고 작은 제약 조건의 한계 안에서 이뤄진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는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에서 진화론의 발전 과정, 진화론의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 진화론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준다.
한편 오늘날의 생물학자라면 한 번 이상 들어보았음직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유전자 결정론자입니까?’ 최재천 교수는 그렇다고 대답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매 순간 유전자가 모든 것을 조정한다는 의미의 결정론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 인간 유전자가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깔아 준 멍석 위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문화를 ‘한 개체군의 모든 행동 유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문화도 유전자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종교는 또 어떤가? 서열 높은 자에게 복종하는 동물들의 의례화된 행동이 인간 사회에서 종교 행동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 있다. 또한 종교를 다른 적응 현상에 연계되어 나타난 부산물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숲 속을 가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등 뒤에서 난다면, 일단 줄행랑치는 게 안전하다. 그 자리에서 소리가 뭘까 분석하는 건 위험하다. 요컨대 이성의 영역에서 본능의 영역으로 넘기는 게 유리하다는 것.
그밖에도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일정한 유형을 찾아내고 인과 관계를 밝히려는 두뇌 메커니즘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이 종교를 가능케 한 일종의 믿음 엔진이라는 주장도 있다. 진화론과 종교, 특히 기독교의 관계는 늘 어느 정도의 긴장과 갈등이지만 최재천 교수는 종교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표현일 수밖에 없으며, 좀 더 긍정적인 차원에서 종교와 과학의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느 신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신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신에게는 기도하지 않겠다.’
다윈 진화론을 주제로 한다지만 그것과 관계있는 무척 다채로운 주제들을 담고 있는 책이어서 책장이 비교적 술술 넘어간다. 그런데 왜 제목이 ‘다윈 지능’일까? 다윈 진화론은 생물학, 지질학, 환경과학, 의학, 공학, 복잡계 과학 등 과학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문학, 철학, 종교학, 역사학, 윤리학, 경제학, 법학,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윈 진화론에 대한 정확하고 폭넓은 이해야말로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교양이자 분야를 막론하고 학자라면 갖춰야 할 전문 지식이기도 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지적이다. ‘다윈 지능’이란 찰스 다윈이라는 한 생물학자의 학문적 이론만을 가리키는 협소한 개념이 아니며, 다윈 이후 진화론을 중심이자 매개로 하여 이뤄진 다양한 분야의 이론적, 실천적 성과들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좋은 책의 기준 가운데 하나. 그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들도 찾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요컨대 추가적인 독서를 유발시키는 책, 독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 『다윈 지능』도 그러하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생물학이나 진화론 관련 책들을 읽고 싶게 만든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한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출간한 『다윈 지능』은 150여 년간 진화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뇌들의 설전, 그리고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담은 최고의 진화 생물학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해진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망라했다…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최재천> 저14,850원(10% + 5%)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이 창조주의 은총과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결과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아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과 진화 이론은 그 후 150여 년이라는 길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