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이후의 나, 꼰대
‘뽕짝’ 대한민국, 조용한 곳 어디 없나요?
시내버스 라디오 방송,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소음이 흘러넘치는 음울한 도시에서 서서히 미쳐가고…
서울에서 나고 40년 넘게 살아온 내가 요즘 들어 가장 참기 힘든 소음은 각종 상점에서 뿜어대는 음악 소리다. 휴대폰ㆍ전자제품ㆍ의류 상점 등에서 스피커를 거리로 향한 채 틀어대는 강한 비트의 빠른 댄스곡들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봐도 이런 곳은 없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는 세종로 사거리에서 낙원 상가가 있는 종로 2가까지 한 번 걸어 보시라. 지금 한창 뜨고 있는 핫 뮤직, 특히 댄스곡들을 전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로 유명한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Adgar Allan Poeㆍ1809~1849)의 대표작 중에 『어셔가(家)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ㆍ1839)』이 있다. 정신이상(異常)을 겁내는 작가의 불안한 심리가 엿보이는 산문시풍의 단편 소설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불길한 예감과 공포로 가득한 가운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외국 문학의 고전들이 그러하듯 번역서로 읽어서는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서양판 ‘전설의 고향’이다.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인 로더릭 어셔의 긴급한 편지로 초대된 친구 ‘나’는 잔뜩 흐린 가을날에 그 저택을 찾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어셔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어셔의 쌍둥이 누이동생 매더린이 죽어 장례를 치렀는데 폭풍우 치는 어느 밤 죽은 줄 알았던 누이가 책을 읽고 있던 오빠에게 와서 쓰러지고 남매는 둘 다 숨진다. 이 무서운 사건을 목격한 나는 겁에 질려 밖으로 달아나고 저택은 두 동강이 나며 음울한 늪 속으로 침몰한다.
주인공 로더릭 어셔는 ‘감각의 병적 과민성(a morbid acuteness of the senses)’으로 인해 대단히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음식이 아니면 견딜 수 없고, 의복도 일정한 소재로 된 것만 입을 수 있었다. 모든 꽃 향기가 감각을 압박하고, 아무리 약한 광선에도 눈이 시렸으며, 특정한 소리, 바로 현악기의 음향만이 그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 구절은 현대에 들어서야 병명이 붙여진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ㆍ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을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에도 2만여명이 앓고 있다는 이 병은 살짝 몸이 스치거나 심지어 바람만 불어도 작열통(灼熱痛), 즉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 최악의 질병이다. 작열통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고통 순위 2위는 손가락 혹은 발가락의 절단, 3위는 출산이라고 한다)
불에 타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지는 2001년 9ㆍ11 테러 때 자료 화면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기 직전 화염에 휩싸여 있을 때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길에 갇혀 고통 받던 사람들이 고층 창문에서 차라리 수백 미터 아래로 몸을 던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중세 마녀 사냥 때 사람의 명줄을 끊는 수백 가지 방법 중 굳이 불에 태워 죽인 것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중세인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작열통까지는 아니어도 로더릭 어셔는 ‘소리’에 큰 고통을 받았다. “특정한 소리, 바로 현악기의 음향만이 그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there were but peculiar sounds, and these from stringed instruments, which did not inspire him with horror).” 그런 어셔가 만약 21세기 한국 서울의 종로 거리를 걷는다면, 그는 단 5분 만에 미쳐버리거나 고통으로 혼절했을 것이 틀림없다.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청계천 고가(高架) 등 주요 고가도로들을 철거한 것이 도시 소음(city noise)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도시 녹지(urban green) 공간이 태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뉴욕시 61% (‘Environment News Service’ 2012.2.23), 도쿄 40%에 비해 서울은 25% 가량이 녹지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사회에서 소음은 ‘공해(noise pollution)’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수질오염과 달리 소음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스스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감각 공해’라고도 한다. ‘공장 소음’이나 ‘항공기 소음’은 공장지대ㆍ공항 주변지역을 벗어나면 되지만, 대도시의 주요 소음원인 자동차ㆍ전철ㆍ기차에서 초래되는 ‘교통 소음’은 도시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한 피할 도리가 없는 소음이다.
문제는 확성기, 건설공사장, 유흥업소 등에서 배출되는 ‘생활 소음’이다. 환경부가 얼마 전 서울ㆍ부산을 비롯한 전국 44개 도시 소음진동 측정 결과 75%인 33개 도시의 도로변 주거지역에서 밤시간대 소음진동이 환경 기준치를 초과했다. 특히 서울(2011년)은 소음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데시벨(dB) 기준으로 도로변 주거지역 평균 소음도가 낮시간대 68dB, 밤시간대 65dB로 환경기준 65dB(낮), 55dB(밤)를 모두 훌쩍 뛰어 넘고 있다. ‘고요한 밤(silent night)’은 커녕 낮과 밤의 차이도 별로 없을 정도다.
국제적으로 보통 밤의 소음은 40dB 안팎, 조용한 지역의 일반주택가 낮 소음은 50~55dB, 시내 번화가 교통소음은 70~80dB 정도로 본다. 80dB 이상의 소음을 오랜 기간 계속 들으면 평생 청각장애가 될 수 있다.
관련태그: 소음, 도시, 어셔가의 몰락,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무심결에 범하는 오류와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인습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 때의 세상이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에드가 앨런포우> 저/<박현석> 역10,800원(10% + 5%)
추리소설의 대가인 에드가 앨러포우의 단편을 모아 담은 책. 음산함, 공포감, 괴기스러움, 우울 유머, 풍자 등 하나의 작품에서 하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기틀을 닦았다. 이 책에는 포우의 대표작중에 21편을 선정해서 수록했다....
6,100원(50% + 1%)
** 추리소설의 개척자 에드가 앨런 포 황폐한 집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 ** 에드거 앨런 포우 작품들을 토대로한 영화 책으로 느껴보지 못한 또다른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