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박형준 시인, ‘슬픔은 어떻게 힘이 될까’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시 쓰기는 떠나가는 것들을 잘 보내주는 일”
“시를 쓰는 일이 재미있고, 그런 능력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럴 때에요. 편편히 흩어진 기억이나, 나에게 안 은 일도 어느 순간 시로 모아지게 되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예뻐보이거든요. 나도 좀 괜찮아지는 것 같고.(웃음)”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아버지 삼우제 끝나고 식구들, 산소에 앉아 밥을 먹는다 저쪽에서 불빛이 보인다 창호지 안쪽에 배어든 호롱불 아버지가 삐걱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 -<황혼>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
이전 시집에는 어머니 얘기가 많았고, 이번에는 아버지 얘기가 많아요. 박형준 시인이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어머니가 있어서 제가 삶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거리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무의식의 8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죠. 아버지는 말씀이 없는 분이셨어요. 침묵 속에서 묵묵히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시 쓰기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젊었을 때는 누구나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죠.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아버지를 통해 그런 생각이 바뀌었어요. 크지 않은 농사였지만 아버지는 작은 논밭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실하게 가꿨어요. 나 역시 내 시의 영역이 크다, 적다 염두에 두면 시 쓰기에 자괴감도 생기고 좌절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아직 뭔가 쓸 수 있는 게 있다. 그것으로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글 농사를 지어보면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위대한 시인은 누가 인정해준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박형준 시인님은 많은 동료 시인에게 사랑과 인정을 듬뿍 받고 계세요. 시집마다 ‘올해의 시집’ 타이틀은 기본이고, 올해의 시인부터 시인이 뽑은 시 등등… 같이 시를 쓰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특별한 보람이 아닐까 싶어요.
감사하죠. 저는 시를 숙제하듯 꾸준히 써온 것 같아요. 특별하게 시가 찬란히 좋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아주 박토는 아니었던 것 같고. 시를 써나가면 써나갈수록 천부적인 시인보다는 그냥 노력형이나 자기한테 주어진 걸 그냥 해나가는 시인이구나 싶어요. 동료 시인들이라든지 비평가들이 좋게 봐주니까 그래도 시쓰는데 많이 도움이 되죠. 적어도 내가 하고싶은 걸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겠구나. 이런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 격려해주니까요.
시 쓰기가 언제부터 숙제가 됐어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였어요. 서울 예전에 입학했을 때 오규환, 최하림 선생님이 계셨어요. 입학했을 땐 제가 시를 되게 잘 쓰는 줄 알았어요.(웃음) 선생님께 지도받고, 옆에서 그분들 시 세계를 엿보면서, 어떤 태도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항상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때로는 자기감정 앞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사물을 사랑해야 한다. 이런 말씀 많이 들으면서 공부했어요. 제가 가진 감각이 저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족이나 사물, 주변에 내제하여 있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런 감각을 빌리기 위해서는 사물을 볼 때 숙제하는 태도를 보여야겠다. 그래야 간신히 시가 쓰이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 오셨죠. 행복했던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올라온 일이 소년에게는 매우 큰 변화이자 자극이 됐을 것 같아요.
시골에 있을 때는 공동체 속에 있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게 네가 알고 있는 것과 거의 같아서, 제 안에 시적 자아가 필요 없었을 거예요. 서울역에 올라와서 전철을 탔는데, 저는 서울역에서 본 것처럼 근사한 빌딩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줄 알았어요. 인천으로 가는데, 논밭이 나타나고 과수원이 보이고 그래요. 제발 근사한 건물이 나와라. 안타깝게 창에 매달려서 가던 기억이 나요.
그때 제 털신에 있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옆에 있던 아줌마가 흙물을 보고 무척 야단을 쳤어요. 그게 도회지에 올라와서 받은 최초의 상처였어요. 소외감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시적 자아가 생기게 된 건,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었을까? 그 소외를 나름대로 극복하려다 보니, 주변에 나처럼 소외 받은 것들에게 관심이 많아졌고요. 어떤 일이 생기면 곰곰이 되씹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사춘기 무렵에 겪은 일이라 더 그랬겠죠. 학교에서 돌아오면, 캄캄한 집에서 책을 읽던 기억도 많이 나고요.
어떻게 시 쓰는 몸을 갖게 되셨어요?
딱히 그걸 훈련이라고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시적인 감성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냥 하나의 열기나 찬기처럼 들어온 것 같아요. 저는 특별히 감수성이 탁월한 아이도 아니었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텐데, 다만, 어떤 사물이나 풍경들이 나를 통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런 걸 의식하고 좋아하게 되면 내 안에서 조금씩 익어가거든요. 바깥으로 꺼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 어미 새가 밖에서 쪼아주잖아요. 사실 누구나 다 자기 나름의 특별한 것을 안에 갖고 있고요. 모든 사람이 다 시인입니다. 다만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키워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꺼내기 위해 쪼아주지 않을 뿐이죠.
어떻게 하면 안에 있는 시심을 잘 꺼낼 수 있나요?
유사한 상태를 끊임없이 경험해야 해요. 책도 많이 보고요. 저는 시를 쓸 때, 저와 유사한 시를 쓴 탁월한 시인들의 시도 많이 봐요. 남의 시를 조금 모방하더라도, 그 안에 조금이라도 진실한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새로 쓴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거든요.
훌륭한 시를 보면 좌절감이 들지 않나요?
그럴 때도 많죠.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 쓴 시라고 하더라도 저의 경험과 똑같지 않죠. 쓰이는 갈래는 다르죠. 그분이 훨씬 위대한 길을 갔다고 보고, 나는 작은 샛길 정도라도 해봐요. 그 샛길을 잘 가기 위해 위대한 시인들이 자기 길을 어떻게 통과해나갔는지 보는 것은 중요해요. 샛길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용한 건 아무리 작은 길에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직은 비슷비슷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나요?
시 쓰는 친구들은 대체로 자의식이 강하잖아요. 소설 쓰는 친구들은 자기들이 소설을 쓰면 그게 직업이 된다는 걸 알아요. 자기가 경험한 무엇, 상상한 무엇을 서사라는 구조로 조직해내려고 하죠. 반면 시 쓰는 친구들은 자의식을 어떻게 풀어낼지 잘 모르더라고요. 자의식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부지런히 쪼아주고 조직해야 해요. 잘 흘러나오면 어떤 철학자, 시인 못지않은 고유성을 갖게 되지만, 안에만 있으면 시멘트로 봉해지듯 굳어버리거든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표현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져 보고요. 햇빛을 보고 기뻤다면, 그 햇볕이 어떻게 나한테 기쁨을 줬는지 밤새도록 써봐야죠. 그게 자기 글이 되는 순간, 독자들도 자기 안에 인식하지 못한 것을 그 글이 끄집어 내주면서 공감을 일으키는 거예요. 작가의 시선을 유사하게 느끼고 삶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되죠. 세계를 바라보는 창을 제시하는 일이에요.
박형준 시인의 시를 읽으면 한 장의 그림을 보는 기분이에요. 시각적 이미지가 많고, 3인칭 시점 때문에도 그렇고요. 읽고 나면 그림 한 장이 떠올라요.
기억이라는 건, 사실 완성형이 아니거든요. 제대로 생각해보면, 종료된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기억은 늘 부분부분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나를 새롭게 자극하잖아요. 그런 기억들이 어떤 영상처럼 자리 잡으면서 나를 격려해주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힘을 주기도 해요.
시 쓸 때 어떤 사물을 보고 사람들은 흔히 관념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잖아요. 못사는 사람은 동정해주고 싶다든지 부도덕한 사회현상을 보면 바꿔야 한다든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저는 내 안에 있는 것들로 아직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요. 기억은 무정형 상태로 떠다니기 때문에, 그걸 모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해요. 이것은 하나의 서사보다 한 장의 그림에 가까운 거죠.
무정형의 기억이 모이는 순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예를 들자면, 제가 사는 곳이 재개발 지역이에요. 아파트를 짓기 전에 터를 닦는데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그 공터에서 산책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 밤, 어떤 경찰이 가로등 밑에서 손톱을 깎고 있더라고요. 와, 신기하다. 가로등이 문명의 기기나 삭막함의 상징이 아니라, 때로 누군가에게 달빛 같은 것이기도 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쳐 지나갔어요. 자세히 보니까, 손톱 깎는 게 아니라 수첩을 읽고 있더라고요.(웃음) 저한텐 손톱을 깎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그게 순간 시라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지 가로등은 문명의 기기였고, 순경은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 이런 것들 것 위계가 사라지면서 풍요로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시를 쓰는 일이 재미있고, 그런 능력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럴 때에요. 편편이 흩어진 기억이나, 나에게 안 은 일도 어느 순간 시로 모이게 되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예뻐 보이거든요. 나도 좀 괜찮아지는 것 같고.(웃음)
첫 시집 제목이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였어요. 기억 속의 이야기다 보니 소멸에 관한 이미지도 종종 등장하고요. 결국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게 다 떠나가잖아요. 저는 요즘 떠나가는 것들이 사무치게 슬플 때가 많은데 작가님은 어떠신가요?(웃음)
떠나가는 것에 집착하면 안 돼요. 과거에 저한테 사무쳤던 것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시 쓰는 이유 중의 하나에요. 도시에 살다 보면 바쁘잖아요. 떠나가야 할 것들을 제대로 떠나보낼 시간이 부족해요.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사물이나 추억을 흘려보낼 때, 그것이 잘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기억, 사람들만 떠나가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이 시집을 읽으니 해, 달, 별, 나무… 다 떠나가는 것들이더라고요.(웃음) 이런 익숙해지지 않은 이별에 시 쓰기가 위로가 되나요?
궁극적으로는 글을 쓴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의지라고 생각해요.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현상이나 지나간 추억을 용납하기 위한 것만 은 아니에요. 추억에 잠긴다는 것이 단순히 그것에 매몰되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동정을 받기 위해 어떤 슬픔을 시로 쓰고, 독자들의 감상만 이끌어낸다면 곤란하죠.
그 슬픔을 끄집어내서 그것이 저에게도 의지가 되고, 읽는 사람도 유사한 슬픔을 발견하고, 그것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벌판으로 시가 기능해야 한다고 봐요. 시에서 손톱만큼의 의지를 얻었다면, 제 시가 세상에 이바지한 바가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슬픔을 토로하는 일기장의 글과 의지가 되는 글은 어떻게 달라지는 건가요?
냉정함이죠. 때때로 아무리 자기 안에 슬픈 것들도 냉정하게 봐야 해요. 그래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들이 생명 기계처럼 서로 연결돼요. 여기 카메라하고 책이 연결될 수 있어요. 그런 의지와 냉정하게 볼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해요. 물론 이런 시각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깔린 거고요. 어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야 하려면 사랑은 기본이에요.
시가 되지 못하고 지워져 버린 구절, 그것이 다음 시를 쓰게 하는 힘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셨어요. 마음속에 지워진 구절들이 몇 개 있겠네요?
있을 거에요. 그게 다 지워져 버리면 시를 못 쓸 것 같아요. 그럼 현실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굳이 시를 쓸 이유가 없죠. 제가 쓰는 시는 어떻게 보면 결핍, 소외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자면, 시인의 삶은 쓸쓸한 것일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적절하게 단맛도 나고… 쓴맛도 납니다.(웃음)
창문을 떠나며 지층이라는 주소에서 오래 살았다 창문 밖 감나무와 옆집 담쟁이덩굴 집으로 돌아올 때면 흐리멍텅해진 눈빛 같은 것이지만 밤늦게 시를 쓰려고 내다보면 그 눈 속에 차오르는 야생의 불꽃 창문에 가득하였다 가난이 있어 나는 지구의 이방인이었다 가로등의 불빛과 어둠에 섞인 두 그루의 식물이 영혼이었다 담쟁이덩굴은 기껏 옆집 난간을 타고 고작 2층에 머무르지만 지층의 창문에서 올려보면 언제까지나 야생의 울음으로 손짓했다 감나무의 이파리는 계절이 바귀면 햇빛 속에 들어 있는 온갖 바람을 느끼게 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겸손한 무릎으로 지구를 찾아온 나무여야 하리라 현재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 실상을 꿰뚫어보는 시선을 지녀야 하리라 지층의 창문에 왔다 간 것들 가령 구름을 향해 뻗어가는 담쟁이덩굴 찬 서리가 지층의 창문을 얼리고 있는 이사 가기 전날 밤 내 영혼은 어떤 나무로 다음 생에 지구에 서 있을 것인가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다 | ||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인”으로, “이지와 감성의 결합, 언어와 율조의 긴장, 감각과 서정의 균형 등을 통한 시적 성취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박형준 시인.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를 펴낸 이후 3~5년 마다 꾸준히 시집을 펴내어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이한 그가, 2005년에 출간한 전작 『춤』을 펼쳐낸 후 6년이라는 긴 공백 끝에 펼펴낸 새 시집이다…
관련태그: 박형준, 시인,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