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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 서른다섯, 어떻게 살 것인가? - 김형경 『만 가지 행동』

‘다시 태어난다면……’ 서른다섯, 황망하거나 황당한 중년의 시기 ‘나는 내일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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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인 듯하면서도,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형경은 그렇게 ‘죽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작가는 그동안 세 권의 심리 에세이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 『좋은 이별』을 통해 정신 분석을 받았던 경험과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다행히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있는 가구가 아니며,
앉은 자리에서만 맴돌도록 만들어진 시계 바늘도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현상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법정스님, 『서 있는 사람들』中>

‘무소유’와 함께 법정스님이 거듭 강조했던 가르침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마음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면 하룻밤 사이에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시켜, 오늘의 그를 지난날의 모습에 근거해 판단하거나 미루어 짐작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인 듯하면서도,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형경은 그렇게 ‘죽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작가는 그동안 세 권의 심리 에세이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 『좋은 이별』을 통해 정신 분석을 받았던 경험과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역시 ‘『좋은 이별』을 끝으로 심리 에세이는 모두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꺼내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었다. 『만 가지 행동』을 통해 전하는 ‘훈습’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 이야기에요.
이 이야기는 너무 사사롭고 개인적인 이야기어서 안 쓰려고 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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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의 심리 에세이는 제 이야기를 조금만 했어요. 그런데 훈습은 제 이야기가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 남의 이야기를 훈습에 넣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 이야기에요. 이 이야기는 너무 사사롭고 개인적인 이야기어서 안 쓰려고 했던 거에요. 그런데 친구들이나 독자들로부터 ‘그 이야기는 왜 안 쓰니?’,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줘요.’ 이런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정말 중요한 얘기가 이거구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만 가지 행동』을 쓰게 됐어요.”

『만 가지 행동』은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훈습, 무척 생소한 용어다. 책의 표지에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훈습은 심리치료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는 훈습 기간 동안 ‘자신과 타인,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의 모든 영역에서 거듭 관점이 변하는 것’(p.9)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했던 다양한 시도와 행위,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만행(萬行)’이라는 불교 용어의 뜻을 빌려 와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총체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던 진짜 이유,
중년의 위기가 왔다는 거에요.


작가가 정신 분석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서른아홉 무렵이었다. 삼십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서른여덟 즈음 되었을 때는 여기가 정말 막다른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책 한 페이지를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다. 총체적 난국에 부딪혔던 당시를 회상하며 작가가 내리는 진단은 ‘중년의 위기가 왔었다.’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는 원인을 찾기 위해 그는 유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생 이후 3~7년 사이에 형성되는 생존법과 행동법이 중년까지 이어지면서 위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유년기에 갖게 되는 ‘꿈’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러분의 꿈을 점검해 보시면 그것이 부모의 꿈이거나 아니면 부모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자기 콤플렉스일 수가 있어요. 심리학에서는 중년을 35세부터로 보는데요, 서른다섯이 되면 이미 그 꿈을 성취했어도 내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은 거에요. 왜냐하면 그건 내 꿈이 아니었고, 그 꿈을 성취했다고 해서 유아기에 만들어진 결핍이 해결된 것은 아니거든요. 현실에서 무엇을 이룬다고 해서 무의식의 결핍이 충족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꿈을 이루어도 황망해지고, 꿈을 이루지 못해도 황당한 거죠. 그래서 저도 서른다섯부터 그런 상태가 된 거에요.”

그 역시 ‘황망하거나 혹은 황당한’ 중년의 시기를 맞게 되었고, 정신분석을 받은 후 지나온 시간들과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중년으로 넘어가는 변환기를 준비 없이 맞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유년기의 꿈과 방식을 버리고, 중년 이후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저 사람을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무엇일까.’
내 속에 없으면 밉지 않아요. 내 속에 있었기 때문에 미운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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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기간이 시작되며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저 마음이 내 마음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것이다.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저런 점이 참 마음에 안 들어.’ 느꼈던 것이 모두 자신의 안에 있다는 것을 통찰과 훈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니 점점 불편한 사람이 없어졌다.

“내 속에 없으면 밉지 않아요. 내 속에 있었기 때문에 미운 거거든요. 훈습이 많이 진행된 다음에 어느 날 생각해 보니까 미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특성이고, 또 어떤 사람이 아주 이상해도 나도 그렇고. 혹은 나는 더하구요. 옛날에는 내가 더한 줄 모르고 그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가르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한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됐다. 누군가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면 ‘저 사람을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무엇일까.’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을 찾게 되면 잊지 않고 메모했다. 그렇게 삶의 순간순간 마다 자신을 알아차리고 내면화시키면서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훈습기간은 그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하다.’고 느꼈던 시간들은 돌아보면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꺼내어 보고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자신이 만들어졌다. 중년 이후의 삶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삶의 목표도 갖게 되었다.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변해요.
내게 오는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도 변해요.


자신이 변화한 만큼 ‘예전의 자신’이 맺었던 관계들도 변화했다. 훈습 과정에서 가장 지켜내려고 했던, 스스로가 세운 원칙 ‘분리되기’였다. 유아기에 형성된 행동법을 답습하던 시기에 자신이 맺었던 관계들을 지속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의존적이고 미숙한 생존법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들만 맺어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으려는 노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보다 이성적이고 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친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신이 이성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감정적인 면이 없어지고, 훨씬 더 이성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변화하니까 그런 상태의 친구들이 새로 생겨요.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확 변하는 건 없어요. 대신,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변해요. 내게 오는 사람들이 변하고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이 변하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변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도 변해요. 그런데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옛 친구들을 냉정하게 안 만나는 게 힘들었을 거에요. 왠지 인정머리 없는 것 같고, 인간이 그렇게 변하면 안 될 것 같고. 그걸 우정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작가 역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그것이 유아적인 행동법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안과 외로움을 혼자 참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남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에만 에너지를 쏟게 되었기 때문이다.


‘충ㆍ 탐ㆍ 해ㆍ 판’은 불안한 사람들의 방어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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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맞섰던 관성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충ㆍ 탐ㆍ 해ㆍ 판’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알쏭달쏭한 용어는 충고와 탐색, 해석, 판단의 줄임말이다. 이 행동들은 불안한 사람들의 방어기제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을 예로 들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정말이야? 사실이야?’라고 되묻는 것이 사실은 방어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충ㆍ 탐ㆍ 해ㆍ 판’의 탐색에 해당한다. 다른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 판단하고,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왜 저런 말을 하지? 저 말을 하는 의도는 뭘까?’ 생각하는 것 역시 일종의 방어라고 했다.

“‘충ㆍ 탐ㆍ 해ㆍ 판’이라는 단어는 제가 어떤 리더십 캠프에 갔을 때 들은 거에요. 어떤 조직에서 리더와 구성원들 사이에, 혹은 구성원들끼리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로 충고, 탐색, 해석, 판단이 있더라구요. 그 단어를 듣고 ‘아, 이게 전부 방어적인 사람의 말투구나.’ 느꼈어요. 그때부터 제가 어떻게 말하는지 세밀히 관찰해 보니까 저도 그렇더라구요.”

자신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미 몸에 밴 말투를 버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말투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분석을 통해 유년기에 형성된 생존법-의존적이고 방어적이며 시기하는 생존법을 통찰하는 데에는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그것이 몸에 배도록 하고 새로운 중년의 생존법을 갖는 데에는 6~7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기’를 인지하고 형성해 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다. 김형경 작가를 두고 ‘다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가정해 보거나 꿈을 꾼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에 대한 만족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백 퍼센트 만족한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더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동시에 가장 고차원적인 바람이 아닐까. 누구나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바람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 가지 행동』을 읽는 독자들은 ‘나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동감하면서 위안을 얻게 될 것 같다. 작가처럼 나도 원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용기와 희망 역시 갖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강력한 희망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밤 잠자리에 누워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나는 이제 죽고 내일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이다, 라고. 마인드 컨트롤의 힘을 한 번 믿어보자. 밑지는 장사일 건 없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이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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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김형경 저 | 사람풍경

『사람풍경』,『천 개의 공감』,『좋은 이별』 등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꾸밈없이 받아들여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통찰의 힘을 가진 심리 에세이를 써온 김형경의 심리에세이다. 책은 훈습이라는 심리 치료 과정을 제시한다.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을 통찰해낸 다음 그것이 몸에 배어 성격과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훈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낡고 오래된 생존법을 버리는 과정,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시도들, 후배 여성들과 정신분석 경험을 나눈 시간들, 영적 건강을 지키는 구체적 방법 등, 작가가 실천한 다양한 시도, 경험, 행동들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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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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