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여, 나중에 대학을 고소하라!” - 『통섭의 식탁』 최재천
‘책읽기와 글쓰기, 지식의 통섭’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머리에서 굴리지 말고 일단 써라!”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 은둔형 작가 포레스터(숀 코네리)는 작가적 능력을 지닌 소년 자말 월러스(로버트 브라운)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각은 하지 마. 생각은 나중에 해.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서 머리로 다시 쓰는 거야. 작문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거야. 생각하지 말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 은둔형 작가 포레스터(숀 코네리)는 작가적 능력을 지닌 소년 자말 월러스(로버트 브라운)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각은 하지 마. 생각은 나중에 해.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서 머리로 다시 쓰는 거야. 작문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거야. 생각하지 말고.”
글쓰기의 처음을 말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냥 쓰다 보면 글은 꼬리를 잇는다. 중요한 것은 일단 쓴다는 것이다. 『통섭의 식탁』의 저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도 같은 말을 한다. 머릿속에서 백날 굴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쓰는 것이라고.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의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아름다운 책 이야기’에서 최 교수는 포레스터와 같은 맥락의 말을 건넸다. 이날의 주제는, ‘책읽기와 글쓰기, 지식의 통섭’이었다.
글쓰기, 세상 모든 것을 결정짓다
최 교수, 우리나라는 왜 과학자의 글쓰기에 대해 소홀하게 여기는지부터 따진다.
“우리나라는 좀 이상하다. 과학자가 글을 못쓰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서양에선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오히려 글을 더 잘 쓴다. 어려운 내용을 더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MIT는 전교생이 글쓰기를 배운다. 그만큼 과학 하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중요하다. 우리는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나야 희소가치를 누리고 있으니까, 불만은 없지만. (웃음)”
최 교수가 살아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은 글쓰기로 판가름이 난다. 지나친 과장 아니냐고? 그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지금은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지만 연애편지. 그것이 연인들의 관계를 잇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연애편지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썼느냐가 누구랑 살고 있느냐를 결정했다.” 아무렴, 그땐 그랬다. 그래서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 허다했다. 코 큰 남자, 시라노의 경우도 그랬고.
대학교수라고 다르지 않다. “대학교수는 마지막에 글쓰기가 결정을 한다. 논문을 써야 하니까. 똑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나 영향력이 큰 저널에 실리느냐가 결정된다. <사이언스>나 <네이처>를 놓고, 제목만 읽어보라. 기막힌 상상력과 비유*은유가 있다. 제목부터 섹시하지 않으면 첫 관문부터 통과하지 못한다.”
그는 일반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기안하는 일도 글쓰기의 일종이다. 『THE ONE PAGE PROPOSAL』이라는 책이 말하듯, 기안이나 아이디어를 한 페이지에 정리할 때도 글쓰기는 필요하다. 치킨집? 간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단지 한 페이지도 글쓰기라고 그는 덧붙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글쓰기 같다. 트위터 팔로어 수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선 이외수 선생이 1위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따라다닐까. 그 짧은 글에서 촌철살인의 글쓰기 솜씨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우리는 글쓰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침팬지로 태어났으면 이럴 일이 없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글쓰기가 무척 중요하다.”
글쓰기, 최재천을 물들이다
최재천 교수, 한때는 신춘문예 열병을 앓던 문청이었음을 고백한다. 다만, 용기가 없어서 한 번도 응모를 못했단다. 문학적 글쓰기에 미련을 남긴 채, 그는 미국에 유학을 갔었다. 영어로 과학 논문을 써야 했던 시절. 한 친구가 글을 곧잘 고쳐줬다. 그런데 어느 날 최 교수의 글에서 제일 뒷장을 뜯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이제 문장은 제법 써. 그런데 결점이 뭐냐면, 결론을 얘기 안 한다는 거야.”
문학적 글쓰기는 마지막에 결론을 내곤 한다. 과학논문을 쓰면서도 그리 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해야 하는데, 뱅뱅 돌려가면서 쓴 것이다. 과학논문은 결론부터 써야 한다.
“영어도 중요한 것부터 얘기한다. 우리말은 안 그렇잖나. 그러니 그 친구가 그리 말한 거지. 석사 시절, ‘기술적 글쓰기’라는 수업이 있었다. 외국인을 위한 수업이라서 신청을 했다. 수업을 3~4번 했던 즈음, 교수가 나를 부르더니, 너, 시인 되고 싶었냐고 묻더라.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무슨 과학 논문을 시 쓰듯이 폼 잡고 쓰냐고 그러더라. (웃음) 나는 그리 생각 못했는데, 교수는 그걸 알아챈 거다. 이후 그 교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학교에 추천서를 써 주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내 삶의 엄청난 굴레가 됐다. 문장을 정확하게 짧게, 군더더기 없이, 우아하게 쓰려고 애를 쓴다.”
최 교수, 한국에 귀국했다. 한 잡지사 편집장이 찾아와 글 청탁을 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쓰겠다고 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일주일동안 잠을 못 잤다. 헌데, 세 줄을 쓰니, 쓸 말이 없었다. 과학 논문처럼 결론을 앞에서 다 얘기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썼다.
그것이 최 교수의 대중을 향한 첫 번째 글쓰기였다. 그가 보기엔 아직 글이 다소 엉거주춤하다. 문인 스타일의 글이 아닌 과학자가 쓴 글이라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글쓰기를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덕(?)에 신문사 등에는 무척 까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공들인 글에 손대는 것을 용납 않기 때문이다.
“내 글에 손을 대면 길길이 뛴다. 난리를 친다. 그래서 내 글엔 손을 못 댄다. 토씨 하나 고치려면 내게 말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나는 사흘 전에 글을 보내는 사람이다. 글은 내 자식과 같은 존재인데, 내 자식을 네가 손을 대느냐, 그런 거다. (웃음)”
이윽고, 지금 그의 성취에 대해 ‘작은 성공’이라고 겸손하면서 그 비결을 푼다. 그는 미리 한다. 모든 일을 미리 하기 때문에 여유만만하다. 미리 하므로 시간이 남는다. 하버드대학에서 배운 바였다. 하버드대 기숙사 사감을 7년 동안 했다. 그러면서 그들을 지켜봤다. 삶이 매우 바쁜 그들은 다음 주 일을 미리 해놓고 산다. 그는 그때 알았다. 미리 일을 하면 편하고 일의 질도 좋아진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치열하게 쓰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무척 많이 고친다. 별짓 다한다. 밋밋하다 싶으면 문단을 확 바꾸거나 문장의 순서도 바꾸기도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나는 소리 내서 읽는다. 부드럽게 굴러가면 좋은데, 가다가 불편하게 걸리면 지우고 다시 쓴다. 고치고 또 고친다. 리듬에 맞추도록 노력한다.”
다만 그렇게 미리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자신을 속여야 한다는 것. 가령, 마감이 토요일이면, 월요일이라고 속여야 한다. 그래도 뇌의 다른 부분에선 실제론 토요일이라고 떠올리지만, 그것도 훈련 하면 된다고 최 교수는 강조한다. 글도 마찬가지로 훈련하면 누구나 상당 수준에 오를 수 있다. 미리 쓰고 훈련하는 것, 글쓰기에 대한 포레스터적 최 교수의 멘토링이다.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하니, 지금까지 직접 쓰거나 번역한 책, 편저 등을 합치면 59권이다. 1999년 『개미제국의 발견』을 처음 썼으니, 13년 새 엄청난 다작을 한 셈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가능한 수치이다.
“아내가 날 미워한다. 저녁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면 아내가 ‘에휴, 전생에 책 못 써서 죽은 귀신이 있지’라고 말한다. (웃음) 나는 그렇게 쓴다. 나는 글 쓰는 게 전혀 괴롭지 않다. 좋아서 쓴다. 물론 글을 써서 밥 벌어먹지 않아서 그렇겠지.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양쪽을 다 거머쥔 행복한 사람이 됐다. 국어교과서에 내 글이 실린다는 연락이 왔을 때, 노벨상을 타도 이보다 기쁠까 싶었다. 흥분돼서 2~3일 잠이 안 오더라.”
“과학자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과 조각가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이었던 내 꿈들이 사실과 검증이 지배하는 과학이라는 세계에서 지금껏 부서지지 않고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인을 꿈꿨던 사람이 과학자가 되었다 해서 꿈이 없어진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보기 드물게도 ‘시인의 마음을 지난 과학자’가 되었다. -《과학자의 서재》중에서” (p.23) |
지금 필요한 건 뭐? 기획독서!
최 교수, 미래학자들의 예언(?)을 전한다. 지금의 우리, 직업을 대여섯 번 바꾼단다. 그리고 조만간 없어지는 것 중의 하나로 정년제를 들었다. 은퇴하고 놀고먹어야 할 사람의 숫자가 일하는 사람보다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것. 어쨌거나 인류의 수명은 점차 늘고 있다. 100세 시대도 멀지 않았다. 그는 30세부터 70년을 일해야 하는 시대, 한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직업을 계속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미아리에 가서 내가 평생 가질 직업을 물어보고 공부해봐라. (웃음) 농담이고, 진짜 좋은 전략은 언제든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는 능력, 즉 수학능력을 길러야 한다. 수능시험 봤다고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거칠게 말해 수능 장애인이더라. 직업을 7~8번 바꾸는데,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하겠다? 불가능하다. 살다보면 여러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수학능력은 어떻게 기를까? 그는 기초과학과 인문학이 수학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전공에 상관없이, 그것을 갖추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대학에선 기초과학과 인문학을 무시한다.
“대학생들에게 나중에 대학을 고소하라고 말한다. 언제든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이 변하면 좋겠다. 졸업생이 돌아와 다양한 커리큘럼이나 방식으로 새로운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앞으로 필요할 일이다. 그것이 안 되면 그 다음 좋은 방법이 독서다. 책을 안 읽는데, 글 잘 쓴다는 건, 거짓말이다. 많이 읽은 사람이 잘 쓴다. 언젠가 읽은 것이 내 머릿속에서 정리돼서 나오는 거다.”
최 교수는 취미로서의 독서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인다. 취미독서는 문제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그는 취미를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독서하는 사람을 못 봤단다. 심심풀이로 읽는 독서에 대한 지적이다. 나는 동의했다. 내가 가진 편견 중의 하나는,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독서는 취미를 넘어 일상이자 생활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취미독서에 대해 위화감을 갖는다. 책은 당연히 읽어야하는 것이니까.
“독서를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하는 독서도 때론 필요하리라.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가 진정 우리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조금 공허해진다.” (p.7) |
“마음을 비우기 위해 읽는다고 하는데, 마음을 비우려면 왜 책을 읽나. 춤을 추지. (웃음) 인류문명사에서 책처럼 되먹지 못한 발명품이 없다. 눈을 다 망가뜨렸다. 눈은 입체를 보라고 만들어진 건데, 책은 평면이어서 얼마나 눈이 아프나. 취미독서로 눈 망가트리지 말고 놀아라. 그런 독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그는 그래서 ‘취미독서’가 아닌 ‘기획독서’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훌륭해진 사람, 그가 보기엔 별로 없다. 모름지기, 모르는 분야와 씨름하는 것이 독서여야 한다.
“인간에게 배우는 능력은 신기한 것이다. 쌓아가다 보면, 읽어본 분야도 아닌데, 다른 분야를 공략하고 갔는데, 쉬워진다. 학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연결돼 있다. 기획독서를 해라. 그래야 100년 인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최재천 교수와 독자들과 나눈 Q&A
사이보그도 진화의 일종인가?
진화는 그냥 벌어지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에 맞게끔 적응하는 것이 진화인데, 그것에 맞게끔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사이보그 등을 보면 인류가 달라질 걸로 본다. 우린 지금 스마트폰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내 뇌의 상당부분을 거기 넣어놨거든. 우리는 더 이상 외우지 않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한다. 사이보그는 몸에 전자 칩을 넣는 건데, 광의로 봐서, 우린 이미 사이보그이다.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나오면, 마치 심장을 빼놓고 온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웃음) 어떤 의미에선 우리 인류가 변한다고 봐도 되겠지. 생물학적 진화는 아니지만.
책을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은데,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할 때, 어떻게 하면 될까?
누군가가 내 글에 대해 평을 해 놓은 것을 봤다. 내가 ‘낯설게하기’를 잘 한다더라. 다 아는 얘기를 모르는 얘기처럼 낯설게 만들어 다시 설명하는. 나는 내가 그런 걸 하는지도 몰랐다. (웃음) 평소 자연을 보고 관찰하면서 느낀 것을 메모한다. 일상에서도 생각날 때마다 메모한다. 그 메모를 갖고 있다 보면, 일상에서 딱 겹치는 때가 있다.
아이들 독서를 물었는데, 어른이 짜주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독후감을 쓰라고 하지 마라. 그러면 읽기 싫다. 그냥 읽으라고 해라. 세상에 나쁜 책이라는 게 얼마나 있겠나. 읽고 같이 얘기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뭔가 쓰고 싶고 표현하게끔 유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자유를 주는 게 어떨까. 강요하지 않고 읽을 분위기 조성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기획독서를 하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 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보는 눈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그래서 내가 이런 책을 썼다. (웃음) 농담이고. 남들이 추천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가 좋나? 잘 모르겠다. 내 나름 이런 짓을 한다. 외국을 가면 시간을 내 동네 책방을 물어서 간다. 서서 책 제목만 본다. 제목만 읽는데도 몇 시간 걸린다. 1년에 두 세 번 하고 몇 년을 하다 보니, 새로운 제목이 눈에 띤다. 그걸 통해 학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최첨단 학문의 흐름은 논문으로 봐야 하지만, 큰 흐름이 심하게 뒤바뀌는 게 아니니까, 흐름을 볼 수 있다. 어떤 학문이나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눈이 생긴다.
나도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읽는 속도가 느려서. 나는 소리 내서 읽거든. 정독을 하는 편인데, 기억을 잘 하는 편이다. 내 분야에도 책이 몇 백 권씩 나오는데, 그걸 다 읽는 게 아님에도 동료학자와 이야기하다보면 안 읽어도 대충 알 수 있다. 중요한 책은 짚고 감을 스스로 느낀다. 다 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서론,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쓸 수 있을까?
내가 답을 잘 아는 사람처럼 질문하는데, 나는 답이 없다. (웃음) 제일 중요한 건, 일단 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어떤 분의 지도교수가 이런 얘길 했다. 최고로 좋은 논문은 끝낸 논문이다. 머릿속에서 백날 굴려야 소용없다. 일단 써놓고 고치는 게 훨씬 유리하다.
나는 글을 써놓고 앞뒤로 막 바꾼다. 밑의 문단을 앞으로 넣어봐라. 이음새만 잘 맞추면 글의 반전을 꾀할 수 있다. 우리는 기승전결을 지나치게 가르친다. 나는 기승전결이 너무 잘 맞으면 심심하더라. 그렇게 다듬으면 빵 때리고 시작하는 글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대생인데, 친구들에게 인문학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문학적 소양 없이 어느 날 기막힌 발견을 한 과학자도 물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 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과학자들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해준다. 아인슈타인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잘 한 분이다. 아인슈타인 빼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물리학자라면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사람들과 소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유명해지기 위해 인문학을 하나? 아니다. 파인만의 이론들은 인문학을 하지 않은 과학자의 것들보다 후세들이 연구를 더 많이 했다. 정말로 한 분야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려면, 다 섭렵함으로써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공하기에도 바쁘다고 하는 건, 너무 일찍 포기하는 거다. 10~20대의 두뇌는, 집어넣으면 집어넣는 대로 다 들어간다. 그러니까 10~20대는 지금 바로 인문학을 하면 할수록 유리하다.
통섭에 대해 반감을 지닌 인문학자도 많은 것 같다. 인문학이나 사회학이 자연과학에 비춰볼 때 좀 더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유전과 양육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인터넷에서 드러나서 그렇지, 우리 인문학자는 외국의 인문학자보다 (통섭을) 더 잘 받아들인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추구하는 것, 접근방법이 다르다. 두 개가 잘 녹아들어야 과학자는 문제를 더 잘 볼 수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그동안 객관성의 문제에서 걸릴 부분이 있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을 거부하기보다 더 먼저 끌어안고 반갑게 맞이해줘야 한다고 본다. 학문이 침범하고 자시고 하는 게 있나. 인문학이나 사회학을 하는 분들이 자연과학을 끌어안아줬으면 좋겠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다. 유전자가 일단 나를 만들어놓지만, 유전자가 늘 나를 조절하진 못한다. 나를 만들어놓고선 유전자는 마음 아파할 뿐이다. 부모 심정과 똑같다. 인간은 경험에 의해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자연계에서 가장 큰 생물이다. 그럼에도 유전자가 허락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결론은 안 났지만.
기획독서에 대해 좀 더 이야길 듣고 싶다.
중고등학교에 강의를 가면, ‘아름다운 방황’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학생들에게 막 질러댄다. 성적 좀 나쁘면 어떠냐고,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공부 때문에 애타지 말고 다 찔러보고 제일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찔러보라고 한다.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다 뒤집어보라고. 그런 다음 책을 읽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먼저 안겨주는 것보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해줬으면 좋겠다.
책 읽기를 즐기며, 책 쓰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책 모으기에 열심인 우리 시대의 지식인 최재천 교수. 그가 자신의 저서 『과학자의 서재』에서 못다 한 ‘책’ 이야기를 모아서 『통섭의 식탁』에 푸짐하게 차려냈다. 저자는 요즘 취미 독서에만 빠져 있는 젊은이들과 지적인 자극을 받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기획 독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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