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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대박 비결은 판타지 영화?

출판계 흥행 보증수표, 마법 천자문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전 세계 초판 발행 400만부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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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자 관련 기획은 매우 단순했다. 문제가 쉬웠으니까. 문제란 바로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특히 어린이 한자 학습 영역의 재미없음 문제는 ‘더’ 심각했다. 어린이 한자 공부의 방법이란 게 수백, 수천 개의 한자를 ‘깜지 채우기’ 식으로 쓰고 외우는 노동과 다르지 않았다. 어른들이야 재미가 없어도 인내를 하면서 할 수 있다지만, 아이들이 재미없는 공부를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맨발의 추리닝 전사, 손오공 탄생의 순간


서랍을 열었더니, 한 구석에서 별 스티커 뭉치가 반짝! 그 반짝임에 2003년 여름, 마법천자문을 기획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참! 그때는 마법천자문이란 이름이 없었다. 대신 ‘만화로 읽는 서유기’라는 재미없는(?) 이름으로 불렸다. 난 이 ‘만화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의 캐릭터 후보들을 들고 회사 주변인 마포구 서교동과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강남구 대치동 일대의 초등학교를 자주 방문했었다. (물론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 교문 앞을 말이다.) 캐릭터 선정 설문은 등하교 길에 교문을 통과하는 어린이들이들 불러 세워 1번, 2번, 3번… 등의 캐릭터 중 맘에 드는 캐릭터에 별 스티커를 붙이게 하는 식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워낙에 만화와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인지라 호객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설문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그때 설문에 응해 주었던 어린이들이 지금은 20대 청년들이 되어 있겠지?)


문제는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교문 앞을 지나가는 어른들 중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대놓고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과 함께 저절로 귀가 붉어졌다. 질문을 해 오는 사람들에겐 ‘저기… 전 출판사 직원인데요… 만화 캐릭터를… 정하는데… 아이들 의견이 좀 필요…’ 하식 식으로 버벅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런 나의 반응이 나의 소심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만화에 대해서 ‘아동 및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매우 컸기 때문에, 내가 뭔가 나쁜 일을 하고 있나 하는 무의식에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었던 듯하다. (최근 조선일보의 ‘열혈초등학교’ 마녀사냥과 방통위의 웹툰 유해매체 지정 사태를 보면, 만화는 유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위정자들에게는 요즘도 여전한 듯하다. 만화 고유의 미학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자연재해였다. 설문을 교문 앞이라는 ‘실외’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장마철 잦은 호우도 약간의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비가 온 날은 호객에도 실패하고, 우산마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엔 비에 흠뻑 젖기 일쑤였다. 물론 그 와중에서 설문 자료들에는 빗물이 닿지 않게 이중삼중으로 철저히 보호했다.


이렇게 수차례 설문이 진행되었고(내 기억에 10회에서 20회 정도 설문이 진행된 듯한데,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아이들의 수백 개의 별 스티커로 마법천자문의 주인공 손오공의 모습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건, 현재의 손오공은 당시에 아이들의 가장 많은 별을 얻은 캐릭터가 아니라, 두 번째로 별을 많이 얻은 캐릭터였다는 사실이다. 여러 번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캐릭터는 가장 친숙한, 그래서 어쩌면 개성이 덜한 캐릭터일 수 있으니, 아이들이 덜 선택한, 덜 익숙한 캐릭터가 오히려 개성이 강한 것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해서 당시 최신 유행 패션으로 온몸을 감싼 미소년 우주 전사가 아니라, 맨발에 파란색 후드 트레이닝복을 입은, 개구진 모습의 손오공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쯤에서 당시 1등 캐릭터의 생김새가 궁금하실 분도 있을 것인데, 본인이 그림에는 소질 0%의 몸인지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습을 그려서 보여 드릴 수가 없다. 단지 지금 손오공처럼 뾰족 머리에 금고아를 착용했다는 것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다. 아참, 모발 색깔이 주황색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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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만화 마법=마법천자문'의 공식 탄생의 순간


마법천자문이 만들어질 2002년, 2003년 무렵 당시는 현재 유일하게 미국과 겨루는 혹은 미국을 대신할 차기 슈퍼파워로 부상한 중국이, 당시에는 막 ‘뜨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 팀에서는 중국 관련, 중국어 관련, 거기서 더나가 한자 관련 기획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사실 한자 관련 기획은 매우 단순했다. 문제가 쉬웠으니까. 문제란 바로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특히 어린이 한자 학습 영역의 재미없음 문제는 ‘더’ 심각했다. 어린이 한자 공부의 방법이란 게 수백, 수천 개의 한자를 ‘깜지 채우기’ 식으로 쓰고 외우는 노동과 다르지 않았다. 어른들이야 재미가 없어도 인내를 하면서 할 수 있다지만, 아이들이 재미없는 공부를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물론 상위 1% 아이들은 재미없는 공부도 할 거다!) 게다가 부정적인 학습 경험은 다른 학습에도 영향을 미쳐 ‘공부=재미없음’의 공식을 공고히 할 우려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어린이 한자 학습 기획의 첫 시작을 ‘재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삼게 되었다. 즉 한자 ‘에듀케이션(education)’이 아닌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로 큰 가닥을 잡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한자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이때 자연스럽게 우리가 선택한 게 바로 만화다. 당시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1000만부 판매를 돌파하고 있었고, 우리 회사에서 번역 출간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의 만화 버전이나 그 유명한 ‘살아남기’ 시리즈도 막 출간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학습만화 시장에서 하나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각을 세워 만화가 아니라 ‘스토리’ 만화, 그 중에서도 마법 판타지 만화를 선택했다. 아이들이 만화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있는, 또 마법과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만화면 더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상형 문자인 한자의 특성 때문에, 한자의 뜻을 이미지화해서 마법을 구현하기 좋다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엔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와 같은 서양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 극장가는 바야흐로 판타지 대작들이 주름을 잡고 있었다. 특히 매해 겨울 방학이면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연작물로 상영되면 수많은 관객들이 서양의 거대한 마법 판타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러한 관객 가운에 한 사람이었다. 특히 반지의 제왕은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는지 모른다. 당시 왕초짜 기획자에 불과했던 난 ‘나도 저런 멋진 마법 판타지물을 만들어(기획해) 보고 싶다’라는 바람을 영화를 볼 때마다 했던 듯하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한자 학습을 만화에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그 방법이 문제였다. 당시 패러디가 유행이었던지라, 서유기를 패러디해서 스토리를 잡자는 데는 비교적 쉽게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자 학습량을 놓고 갑론을박이 많았다. 당시 한자 학습서들은 대부분 한 권에 수백 자를 학습시키는 게 불문율과 같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 특히 서사가 강한 스토리에는 수백 자는커녕 수십 자를 넣기도 버거웠다. 억지로 구겨서 넣는다 해도 과연 그게 우리가 의도한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이들은 재미없는 한자 공부를 하게 되는, 혹은 아예 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반복할 게 뻔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다른 한자 학습서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즉 우리가 한자 학습을 모두 책임질 수 없다, 대신 만화의 재미와 한자 공부의 재미를 최대한 일치시켜 한자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자, 그럼 나머지 한자 공부는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 하게 될 것이다 라고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결국 만화를 재미없게 하는 수백 자의 한자 학습량 대신 만화의 재미를 방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학습량이라는 판단되는 권당 신규한자 20개를 선택하게 된다. (아직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미덕 아닐까?’라는 반대 의견이 귀에 멤돈다.)


그렇게 해서 마법천자문, 아니 ‘만화로 읽는 서유기’는 ‘마법 판타지 한자 학습만화’라는 기획의 틀이 확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상식적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기획이지만, 당시로서는 우리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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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피스’에 도전하며


마법천자문은 모두가 막연히 기대는 했지만 아무도 예상치는 못한 성공을 거두며 10년차 오늘에 이르렀다. 기획에 참여했던 나로서는 마법천자문이 10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도서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도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의 ‘원피스’처럼 마법천자문도 수십 권 이어지며 전 세계 만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래 본다. 최근 발행된 ‘원피스’ 64권의 전 세계 초판 발행부수가 400만부라 하는데, 만약 마법천자문은 그 보다 한 권 앞서 63권쯤에서 ‘전 세계 초판 발행 400만부!’의 기록을 깬다면, 얼마나 멋지고 가슴 벅찰까! (상상은 자유이니, 너무 눈치 주지 마시길….)

P.S. 오늘은 기획 이야기만 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초판만 20만부를 발행하는 마법천자문의 살 떨리는 편집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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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은지영

10여 년 동안 (주)북이십일에 재직하며 마법천자문을 비롯한 다양한 어린이책의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는 키즈사업본부의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마법천자문의 영역을 영상 및 공연, 게임, 디지털 컨텐츠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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