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로 세상읽기
실종된 은행원, 그가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
은행은 왜 피도 눈물도 없는 짓을 할까?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의 1장 톱니바퀴가 아니야, 는 은행 지점장이 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부지점장 후루카와의 이야기다. 후배 점원을 닦달하다가 폭행까지 저지르고, 그 사실이 본사에까지 알려져 오점이 찍히게 된다. 은행을 위하여, 실적을 위하여 모든 행원이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후루카와의 가치관은 한참 낡은 것이다.
대공황 시대, 2번이나 탈옥에 성공한 은행 강도 존 딜린저는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FBI를 탄생시킬 정도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신출귀몰하는 행각과 오로지 은행만을 털었던 범죄 이력 때문이다. 당시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었던 대중은 정부와 은행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은행의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기업이나 농장에 돈을 빌려주면서 확장을 부추기다가 불황이 닥치면 바로 회수해간다. 돈이 없으면 공장, 농장, 집 등을 바로 경매에 붙인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대체 은행이라는 곳이 어떻기에 그런 피도 눈물도 없는 짓을 하는 것일까? 이케이도 준의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을 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의 1장 톱니바퀴가 아니야, 는 은행 지점장이 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부지점장 후루카와의 이야기다. 후배 점원을 닦달하다가 폭행까지 저지르고, 그 사실이 본사에까지 알려져 오점이 찍히게 된다. 은행을 위하여, 실적을 위하여 모든 행원이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후루카와의 가치관은 한참 낡은 것이다. 2장 상심가족, 에서는 대출에서 많은 실적을 올려 가족과 함께 해외 지점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도모노가 나온다. 언젠가부터 출세 길에서 멀어져만 갔던 도모노가, 거래처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매달리는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3장 미운 오리 새끼에서는, 20대 초반에 가장이 되어버린 고달픈 여행원 아이리가 인기 많은 선배와 사귀다가 동료 여행원에게 미움을 받고, 은행 내에서 분실된 100만엔을 가로챈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리를 감싸주는 상사인 니시키가 드디어 등장한다.
제목은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인데, 왜 니시키는 80쪽이 넘어서야, 3장이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일까? 게다가 니시키가 정말로 사라지는 것은 또 한참 뒤인 170쪽 이후다. 통상의 추리소설이라면 니시키가 초반에 사라지고, 그 행적을 찾아가다 보면 뭔가 엄청난 흑막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구성일 것이다. 하지만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특이한 행보를 취한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주면서 은행이라는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샐러리맨의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그려낸다. 기본적으로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샐러리맨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우여곡절을 그려낸 드라마에 가깝다. 그러면서 니시키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고, 다시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면서 ‘추리소설’의 기본 요건을 마련한다.
하지만 니시키가 사라진 후에도 결코 행적 찾기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니시키가 했던 업무를 다른 은행원들이 인계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해야만 했던 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탐정이나 형사 한 사람의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찾아낸 단서를 통해서 니시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들의 일상생활과 업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것 바로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이 탁월한 추리물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필사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연장에서 ‘범죄’의 이유가 밝혀진다. 그를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절실한 이유보다는, 그가 사라져야만 했던 간절한 이유가 마침내 밝혀진다. 범죄를 중심에 두고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범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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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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