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의 1장 톱니바퀴가 아니야, 는 은행 지점장이 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부지점장 후루카와의 이야기다. 후배 점원을 닦달하다가 폭행까지 저지르고, 그 사실이 본사에까지 알려져 오점이 찍히게 된다. 은행을 위하여, 실적을 위하여 모든 행원이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후루카와의 가치관은 한참 낡은 것이다. 2장 상심가족, 에서는 대출에서 많은 실적을 올려 가족과 함께 해외 지점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도모노가 나온다. 언젠가부터 출세 길에서 멀어져만 갔던 도모노가, 거래처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매달리는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3장 미운 오리 새끼에서는, 20대 초반에 가장이 되어버린 고달픈 여행원 아이리가 인기 많은 선배와 사귀다가 동료 여행원에게 미움을 받고, 은행 내에서 분실된 100만엔을 가로챈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리를 감싸주는 상사인 니시키가 드디어 등장한다.
제목은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인데, 왜 니시키는 80쪽이 넘어서야, 3장이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일까? 게다가 니시키가 정말로 사라지는 것은 또 한참 뒤인 170쪽 이후다. 통상의 추리소설이라면 니시키가 초반에 사라지고, 그 행적을 찾아가다 보면 뭔가 엄청난 흑막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구성일 것이다. 하지만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특이한 행보를 취한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주면서 은행이라는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샐러리맨의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그려낸다. 기본적으로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샐러리맨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우여곡절을 그려낸 드라마에 가깝다. 그러면서 니시키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고, 다시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면서 ‘추리소설’의 기본 요건을 마련한다.
하지만 니시키가 사라진 후에도 결코 행적 찾기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니시키가 했던 업무를 다른 은행원들이 인계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해야만 했던 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탐정이나 형사 한 사람의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찾아낸 단서를 통해서 니시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들의 일상생활과 업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것 바로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이 탁월한 추리물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필사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연장에서 ‘범죄’의 이유가 밝혀진다. 그를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절실한 이유보다는, 그가 사라져야만 했던 간절한 이유가 마침내 밝혀진다. 범죄를 중심에 두고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범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의 원제는 <샤일록의 아이들>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의 등장인물인 샤일록은 이후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케이도 준은 일본의 은행을 샤일록에 비유한다. 80년대 거품 경제였을 때에는 무조건 돈을 빌려주며 거래업체가 부동산을 사고 건물 신축을 하게 부추겼다가, 거품이 꺼지고 불황이 닥치자 마구잡이로 대출금을 회수하며 중소기업을 도산하게 만들었던 은행은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게 없다. 후루카와 부지점장에게 반항하는 직원은, 본사에서 팔라고 강요하는 신탁이 실제로는 이익을 남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지점에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신탁 판매를 강요한다. 젊은 직원들은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런 조직에 수 십 년씩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그 무신경함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은행이 목표로 하는 것은 고객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은행의 이익일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회사를 위해, 아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누군가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속여야만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은행이라는 직장에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감정’과 ‘현실’의 갈등을 이겨내 항상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자비한 샤일록의 아이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감정 같은 것은 내버려야 한다.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중에서, 은행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직원은 아마 구조 지점장일 것이다. 구조 지점장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실적을 올리며 출세의 길을 향해 달려간다. 구조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기계적인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출세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면서. 하지만 가족에게 보다 넓은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아이의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출세를 해야만 한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올라가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둘 중 하나다. 승자가 되던가, 패자가 되던가. 그런 이분법에서 대부분은 후자로 떨어진다. 자신이 패자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자신이 이미 패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으로 머무를 수 없다. 누군가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누군가는 무기력해진다.
한 은행원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소박했던 농가의 장남은 고도성장기의 사풍에 물들어 완벽하게 세뇌돼버렸다. 샐러리맨사회의 질서와 규칙이 순진무구한 머리에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인격의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그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패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패배자였다. 패배자는 처음부터 패배자였던 게 아니라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거기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모든 것이 어긋나버린다. 그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인간이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의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온전하게 지켜질 때에나 가능한 말이다. 이미 인간 사회에서 자연의 법칙은 무너졌고, 승자 독식의 룰만이 존재한 채 모든 것이 무한경쟁의 양극화로 달려가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들은 언제나 패배자이거나 샤일록의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니시키가 그랬듯이,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 한은.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냉혹한 사회의 현실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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