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 이어서 아동화의 다양한 색 재료들을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자주 사용하는, 참 고마운 것들이 있다. ‘되돌리기(undo)’가 그러한데, 이런 기능을 사용하다 보면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잘못된 것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그림에서도 무척 요긴할 것인데, 실상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다. 아니 대부분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색 재료의 불편함을 애기하려고 말을 시작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 불편함도 안중에 없는 경우가 많아 무척 다행이다.)
아래의 사인펜이나 수채화를 포함해 지난 회에 소개한 색연필, 크레파스 등은 모두 수정에 인색한 재료이다. 취학 전의 아이들은 미술을 수정하면서까지 고쳐 나가야 할 ‘일’로써 받아들이지 않지만, 취학 후의 아이들은 이러한 부분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아이를 잘 관찰하며 그 짐을 덜어 주는 것도 어른의 몫이 될 것이다.
▶ 사인펜
유아시기에 다양한 색 재료를 체험하는 놀이 재료로는 좋지만, 채색 재료로는 편치 않다. 수정이 불가능하고, 혼색이 쉽지 않으며, 덧칠하면 탁한 색이 되어 완성도를 떨어뜨리기에 아이가 자신의 그림에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다. 하지만 강렬한(?) 원색은 아이에게 흥미를 주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보통 6세 이전)이 채색이 아닌 밑그림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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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여 - 고모(사인펜으로 그림) | |
금방 종이에 젖어 들기 때문에 색칠을 하는 중에 종이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어른들은 ‘망쳤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반면, 아이들은 ‘구멍이 났으니 재미있다!’라는 표정을 짓는데, 이럴 때 보면 역시 아이들에게 미술은 놀이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번지는 효과를 역으로 이용하여 한지에 그림을 그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유성 사인펜은 대부분의 표면에 쉽게 채색할 수 있기 때문에 종이가 아닌 다양한 재료에 채색하는 데 유용하다. 특히 만들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 표면을 장식하고 그려 내는 데 안성맞춤인 재료이다.
▶ 수채물감초등학생에게 미술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크게 2가지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나는 ‘수채화는 어렵다.’라는 것과, 둘은 주로 3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말하는 ‘입체는 어렵다.’라는 것이다.
‘수채화는 어렵다.’라고 말한 아이들의 이유는 간단하다.
“번져서 망쳐요.”,
“삐져나가서 망쳐요.” 물로 농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쉽게 번지고, 붓이 너무 부드러워서 조금만 누르면 삐져나가기 일쑤이다. 잘 칠하려고 붓을 짧게 잡다 보면 손에 물감이 묻기도 하고…. (게다가 가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선생님들이 화가들처럼 붓을 길게 잡으라고 나무라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부분은 조금만 방법을 알려주면 쉽게 나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감이 번지는 것은 마르지 않은 색에 붙여 칠해서 번지는 것이니, 마르는 동안 다른 곳을 칠하면 번지는 문제는 없어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아이들은 색들을 바로 이어 붙여서 칠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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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여 - 수채물감 사용 | |
수채물감은 체험 놀이 재료로는 아주 좋지만, 채색 재료로는 초등 고학년 이상이 되어야 적합하다. 미술은 ‘내가 할 만한 것’임을 알려줘야 미술에 지속적인 흥미와 발전을 가져오는데, 굳이 어려운 수채화를 강요하여 미술은 ‘할 만한 것이 못 됨’을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잘 해야 하는 것’은 어른의 욕심이지만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에게 미술을 계속 이어나갈 이유와 자신감을 준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물론 아이마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 아크릴물감
한 마디로, 유화의 단점을 잘 극복한 재료이다. 빨리 마르고, 마른 표면이 튼튼하여 다양한 소재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좋은 장점이다. (만들기 후의 채색에도 좋고 돌멩이나 나무 표면 위에도 사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색칠하다 틀려도 그 위에 덮어 칠하여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수채화의 단점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적은 색 재료가 되기도 한다. 단, 물감이 마른 후에는 물로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붓, 팔레트 등을 그때그때 씻어 가며 사용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치명적인 단점일 수도 있겠다. 때를 놓치면 붓이나 팔레트를 굳혀 버릴 수 있기에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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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여 - 보고 그리기 / 초1 여 - 술래잡기 (파스텔 사용) | |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색 재료이다. 단, 입김 한 번으로 쉽게 날아가거나, 쉽게 번지고, 집 안을 지저분하게 하기에 많이 꺼리는 재료이기도 하다. (파스텔을 보면 예전에 아이들과 목탄으로 수업을 했다가 하루 종일 청소를 한 기억이 난다. 6세 전 유아시기에는 사인펜, 수채물감, 파스텔 등은 채색 재료가 아닌 놀이를 통한 흥미 유발 재료, 즉 다양한 재료들을 경험하게 하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밑그림을 그리는 재료보다는 밑그림 위에 채색을 하거나, 특히 배경 처리로 사용하면 효과가 좋다. 파스텔 작품을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정착액으로 코팅하여 보존하는 것도 좋다.
▶ 포스터물감포스터물감은 아이들이 의외로 잘 다루지 못하는 재료 중의 하나이다. 사용하는 용도도 ‘포스터 제작’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도 그렇다. 아마 초등학교에서 매 시기마다 찾아오는 불조심, 과학의 날, 자원 절약 등의 포스터를 그리는 기간이 아니라면 서랍 깊숙이 처박혀 있기만 하는 재료이다. (하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사용 빈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포스터물감을 포스터물감답게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을 많이 섞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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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남 - 포스터물감 사용 | |
이유는 이렇다.
1. 수채화를 사용하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포스터물감의 특성인 ‘불투명함’을 알려주는 이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2. 가끔 사용하는 재료이기에 어쩌다 사용하려고 열어 보면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기 일쑤이고, 이것을 다시 사용하려면 물을 타서 녹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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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남 - 포스터물감의 사용 | |
아이들이 포스터물감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또 하나 들자면, 깨끗이 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스터물감은 대부분 시각디자인적인 그림에 사용되기에 깔끔한 채색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文게 바로잡을 실기적인 방법은 여럿 있지만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사실 지도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 아쉽다.
위와 같이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색 재료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이 외에도 볼펜이나 먹물 등 재료들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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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남 - 축구하기(볼펜 사용) | |
아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 크레파스, 색연필, 파스텔 - 손의 힘으로 달라지는 재료
* 수채물감, 아크릴물감, 포스터물감 - 손의 정교한 놀림으로 달라지는 재료
수채물감이나 포스터물감 등이 초등학생 이후의 아이들에게 더 수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놀이 재료로서는 굳이 구분을 둘 필요는 없지만, 채색 재료로서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완성도도 추구할 수 있도록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사실 아동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재료라면 종이와 연필, 지우개가 될 것이다. 그야 누구나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쉽게 지나치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다음 칼럼에서는 종이, 연필, 지우개 삼총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