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맛있다.’ 경기도 포천 ‘함병현 김치말이국수’의 김치말이국수를 보며 든 생각이다. 붉은 김칫국물에 하얀 소면, 그 위에 각종 고명이 공작새 날개처럼 색색으로 펼쳐진 모양이 맛도 보기 전에 군침이 돈다. 눈으로만 봐도 시원하고, 침이 고였다. 최정원 사장은
“혀만 사로잡았다면 우리 집 국수가 그리 유명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기자 출신인 아버지, 평양출신의 자수병풍 전문가인 어머니의 미감과 미각이 국수에 담겼다.
함병현 김치말이국수는 1989년에 작은 곰탕집으로 출발했다. 부친인 고(故) 최경덕씨가 지금의 베어스타운 인근에 터를 잡아 가게를 시작했다. 식당의 옛 이름은 ‘곰터먹촌’이다. 처음엔 곰탕과 삼겹살이 주메뉴였다. 김치말이국수는 입가심으로 먹는 후식이었다. 김치말이국수에 대한 평이 좋자 아예 주메뉴를 국수로 바꿨다. 주객전도다. 국수를 본격적으로 팔면서 자연스럽게 식당 이름도 바뀌었다. 어머니 이름을 따 함병현 김치말이국수가 됐다. 현재 경기도와 서울 인근에 10여 개가 넘는 체인점을 뒀다.
부친이 하던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춰 육수가 좀 더 달짝지근해졌을 뿐이다. 들어가는 재료도, 만드는 방식도 예전 그대로다.
“지금 국물 맛은 어렸을 때 내가 먹던 것보다 더 달아요. 김치 군둥내(‘군내’의 사투리)도 안 나죠. 요즘 입맛에 맞춘 건데, 내 입맛엔 솔직히 옛 맛이 더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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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함병현 김치말이국수. | |
김치말이국수는 주로 북쪽 지역에서 밤참으로 해먹던 음식이다. 잠 못 이루던 긴 겨울밤, 김칫국에 면을 말아 먹었다. 이북 사람들이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먹은 별식이다. 이 집의 김치말이국수는 이북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살얼음이 뜬 육수에 면과 고명을 예쁘게 올린다. 삶은 달걀과 오이, 편육, 열무김치, 으깬 순두부가 올라간다. 막국수처럼 깨를 잔뜩 뿌리지 않아도 두부 덕분에 고소한 맛이 난다. 지금은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며느리 이용숙씨가 주방을 총괄한다.
살얼음이 낀 국물은 새콤하고 매콤하다. 신맛이 강한 편이다. 뒷맛이 칼칼하면서도 깔끔하다. 김치말이국수의 일등공신은 김치다. 이 집 김치는 젓갈 맛이 강하지 않다. 육수용 김치와 반찬용 김치는 따로 담근다. 육수용 김치는 보통 무 70%와 배추 30%를 배합한다. 계절 따라 재료 분량이 조금씩 달라지고 김치 보관기간도 달라진다. 여름엔 배추, 무가 물러지는 시간이 더 빠르다. 여름에 날씨가 10일 이상 더워지면 김치는 군내가 나 맛이 없다. 여름엔 스테인리스통에서 일주일, 겨울엔 두 달 정도 숙성한다. 최 사장은
“지난 겨울은 한파가 길어 김장 맛이 좋았다”고 했다. 발효된 김칫국물은 사골육수와 1대 1로 섞어 쓴다. 육수는 소 사태를 고아 우려낸다.
소면은 20년 넘게 거래한 단골 공장에서 가져온다. 국수가 퍼지지 않게 빨리 말아내는 게 비법이다. 면은 삶은 정도가 적당해 부드럽고 쫄깃하다. 열무김치와 함께 젓가락에 말아 씹고 국물 한 모금 먹으면 감탄이 절로 난다. 추운 겨울에도 별나게 맛있는데 여름에는 또 얼마나 맛있을까. 긴 겨울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다.
함병현 김치말이국수
주소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248-7
전화 031-534-0732
메뉴 김치말이국수 6,000원, 김치말이밥 6,000원, 김치전 5,000원, 만두류 5,000원
영업 10:00~22:00(연중무휴)
주차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