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나든 사제지간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다. 그런 만남을 그저 흘려보내놓고 자꾸 딴 데 가서 기웃대며 불운을 탓한다. -『삶을 바꾼 만남』 |
삶을 바꾼 만남.
그 만남은 꼭 동시대 사람과의 일만이 아니었다. 정민 교수가 들려주는 연암과 다산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생생해서, 마치 정민 교수가 어제도 그 스승을 만나고 온 듯 느껴졌다. 정민 교수는 그들의 기록을 찾고 연구하고, 당시 상황과 그들의 심정을 상상하며 글을 써왔다. 그들의 연구법을 공부하면서 그는 연암, 다산, 이덕무 등의 스승과 몇백 년을 뛰어넘는 교제를 해왔다.
『책 읽는 소리』(2002)
『미쳐야 미친다』(2004),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2006),
『다산어록청상』(2007),
『다산의 재발견』(2011),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2011) 등 한시, 한문학, 조선 시대 지식인들에 관한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정민 교수는 성실하고 끈기 있는 연구자이자 조선 최고 학자들의 제자인 셈이다.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는 친절하고 다정한 스승이다. 정민 교수의 꼼꼼한 자료조사와 섬세한 문장은 난해하고 행간이 큰 한시의 속내를 들춰낸다. 조선의 문장을 동시대의 언어와 감수성으로 즐길 수 있는 까닭은 역시 고전의 힘일 테다. 허나 유독 그의 책이 많은 독자에게 환영받는 것을 보면, 조선과 지금의 시차를 논리적으로 감성적으로 이어내고 있는 파워라이터 정민 교수의 힘도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승이 내린 한 편의 글에 고무되어 삶이 바뀌다
『삶을 바꾼 만남』은 다산과 그의 제자 황상이 나눈 편지로, 그들의 아름다운 사제지간을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더벅머리 소년이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 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삶을 바꾼 만남』에는 강진 유배지를 배경으로 인간적이고 엄격한 스승이었던 다산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고, 부단한 노력으로 스승의 말씀을 좇았던 제자이자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 황상이 재조명된다.
한양대 연구실에서 정민 교수를 만났다. 연구실 벽을 두르고 있는 소동파 적벽부 글귀가 우선 눈에 띄었다. 방안이 책과 자료로 빽빽했다. 향이 좋은 차를 우리며, 정민은 다산과 연암, 그의 삶을 바꾼 만남과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제지간의 좋은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 못지 않게 좋은 제자의 역할도 크다. 귀를 기울여보면 정민 교수의 어느 한마디가 어느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릴 지, 삶을 바꿀 인연을 만들어낼지 모를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겠다”던 다산 정약용
-책이 정말 많다. 제일 자주 쓰는 서가는 어느 쪽인가?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서가다. 작업 방식에 따라, 행동반경에 따라 책의 위치가 바뀐다.”-『삶을 바꾼 만남』 탈고 후, 최근에는 어떤 책을 보고 있나.
“다시 연암. 한동안 다산을 많이 이야기했으니, 다시 연암 쪽으로 바꿔볼까 모색 중이다. 다산에 대해 글을 쓰면서, 연암 역시 다산의 방식으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등에서 연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달라진 것도 있고, 지금의 시각에서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황상은 갑작스럽게 마음속에 끼어든 사람이고, 연암은 진작부터 들어와 있던 사람이다.(웃음)”
-다산과 정민 교수님과 인연이 깊다. 다산에 많은 책을 썼다. 그만큼 정민 교수님이 다산이라는 인물을 오래 공부하고 생각한 셈이다. 시간을 초월해서 사제지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연암을 10년 넘게 공부하다 박제가, 이덕무를 보게 되었고, 결국 18세기 지식 정보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 메커니즘의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18세기에 왜 변화가 있었을까? 이런 사고가 어떻게 용인되었을까? 기존의 가치와 어떻게 대립하고 융화했을까? 이것을 연구하다 보니 그 끝에 다산이 있었다. 지식의 집대성자로 그의 학문은 마치 매뉴얼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산은 마치 지금 우리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을 당대에 해낸 사람이다. 그것에 대한 연구를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에 썼다. 미국에서 그 책을 쓰고 돌아오니, 한국에 엄청나게 많은 다산 자료가 연구되지 않은 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졌다. 알면 알수록,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었다. 자료가 고구마 넝쿨처럼 나왔고, 욕심이 생겨 뒤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산은 까다로운 스승
-『삶을 바꾼 만남』에는 제자 황상을 대하는 다산의 스승적 면모, 유배지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모습 등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다산을 어떤 인물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까다로운 스승이다. 일반 사람들은 다가가기도 어려운 스승이었을 것 같다. 대부분 강진에서 20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하다 보면, 술 먹고 폐인이 되어 죽는다. 자포자기하기 마련인데, 한결같이 자신을 인간의 극한까지 몰아붙여 글을 쓰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다. 그 힘이 지금의 우리를 압도하는 거라고 본다.
이번 책에서는 유배지에서 보여주는 그의 심리적인 궤적을 진솔하게 복원하려고 했다. 그가 위대하다고 하는데, 왜 위대한지 어떻게 위대한지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목민심서를 쓰고, 많은 책을 썼으니까? 그런 건 와 닿지 않는다. 그보다 그가 처했던 상황 속에서 보여준 그의 놀라운 태도, 때론 우리처럼 쪼잔하기도 하고, 제자에게 삐치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다산을 조망해보고 싶었다.”-그 한결같은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다산의 품성일까?
“다산 정약용은 20대에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겠다’라는 야망을 품었다. 그런데 벼슬길에 치여서 이루지 못했다. 유배지에 내려갔을 때 ‘이렇게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는데, 어찌 공부를 안 할 수 있겠냐’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예를 다산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특수성과 의외성에 경의를 표한다. 그 힘의 원천은 상황과 성품과 인간성 등이 복합된 거라고 본다.”-다산과 황상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며, 이런 만남을 지금도 맺을 수 있을까 싶더라. 만남은 인연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지만, 이런 좋은 만남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부모가 못되게 했는데 자식이 효도하지 않는다. 부모가 효도를 요구해서가 아니라, 자식에게 사랑을 베푼 과정의 결과가 효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사제지간도 마찬가지다. 다만, 스승은 여러 제자에게 같은 사랑을 베푸는데, 뜻을 따른 제자는 한 사람이었다는 거다.
즉, 자식의 자리, 제자의 자리 역시 스승의 사랑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산도 대단하지만, 황상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계의 현실이 답답하다. 왕따 문제가 심각하고, 아이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데 죄책감이 없고 교사는 그 사실을 모른다.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과연 인간이 어떻게 존재적 차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되짚어봤으면 싶었다.”신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 공부가 줘야 한다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 귀양 와서 사는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으면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으면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으면 바삐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거든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하였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다보니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이 슬퍼서 스스로 반성하길 바란 것이다.(p.53) |
-네 가지 마땅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사의재>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새해를 맞아 정민 선생님이 새로 각오한 것이 있는지, 혹은 늘 가지고 있는 원칙이 뭔지 궁금하다.
“연암이 이런 말을 했다. 시비와 이해의 두 저울이 있고, 행동에는 네 개의 결과가 나온다. 옳은 일을 해서 좋게 되는 경우, 옳은 일을 해서 해롭게 되는 경우. 나쁜 짓을 해서 이익을 보는 경우. 나쁜 짓을 해서 해롭게 되는 경우. 첫 번째와 네 번째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선택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세 번째를 요구한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고, 옳은 일을 하다 손해 보는 것은 바보라고 말한다. 교육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중 어디에 우선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다. 황상은 두 번째의 길을 갔고, 이학래는 세 번째의 길을 갔다. 이 결과가 극명하게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롭고 해로움의 문제 보다, 옳은 것의 가치가 인정받고 우선시 되는 사회를 강조하고 싶었다.
첫 번째 선택은 드물다. 두 번째는 싫다. 세 번째를 하려다가 네 번째가 되어 버리는 게 인생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판단에서 어디에 우선 가치를 두느냐에서 삶이 엇갈린다. 내가 손해 보면서도 옳은 신념으로 버티는 힘을 공부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다산은 천자문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문장훈련을 시키고, 꼼꼼한 지도 첨삭을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정민 선생님의 교육법은 어떠한가?
“나는 다산보다 연암처럼 던지고 빠지는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기존의 관념적인 사고, 타성적 사유를 깨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라고 요구한다. 세세한 매뉴얼을 제시하기보다,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져 반응에 대해 첨삭해주는 방식이다. 학생들이 워낙 개성적인 개체다 보니, 그 개성을 틔워주고, 사고를 흐트러뜨리려고 노력한다. 늘 질문의 경로를 바꾸라고 얘기한다.
이를테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에, ‘왜 중요하지?’ 물으면 ‘소중하니까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다산이 위대한 까닭으로 목민심서, 기중기 이야기를 하는데 ‘기중기가 왜 중요하지?’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다산은 어떻게 그 많은 책을 썼나?’ 그 질문에서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이 나왔다. ‘다산은 왜 친구들하고 헤어질 때마다 이런 글을 남겼을까?’
『다산의 재발견』은 그 질문에서 나왔고, ‘황상이라는 제자와의 만남을 추적해보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거기서
『삶을 바꾼 만남』이 나왔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 그때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셈이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훈련하면 좋을까?
“질문은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도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바라보는 훈련을 한 뒤에 요구해야 한다. 마냥 기발한 생각을 창의적인 것으로 오해하면, 해괴망측한 짓을 하면서도 기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유 속에서 질문의 경로를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번 학기 때 ‘문학텍스트 깊이 읽기’라는 강의를 한다.
책을 읽게 하고,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김훈의 『흑산』이라면, ‘김훈식 글쓰기를 파악해보라.’ ‘왜 이렇게 산만하고 복잡한 구성을 취했을까?’ 등등의 질문을 준다. 각자 글을 쓰고 토론하는데, 반응이 천차만별 다르다. 학생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게 놓고, 나는 마무리해서 종합 정리만 한다. 텍스트를 읽더라도, 내가 읽고 사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들어 있으면, 그 시각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서툴러도 내 목소리를 먼저 내려고 해라. 이렇게 한 학기 공부하고 나면, 아이들이 보는 것, 말하는 것이 달라지더라.”
등고자비(登高自卑), 기초의 중요성을 깨닫자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문장을 굉장히 좋아한다. 다정하면서도 우아하다. 소설과 산문 형식을 섞은 이번 책의 문장도 맛이 있었다. 문장 훈련은 어떻게 했나?
“박사 학위 논문이 조선 후기 문장론이다. 문장이 제 전공이다.(웃음) 금언이 있다. ‘풍부하게 쓰되 한 글자도 남기지 마라. 간략하게 쓰되 한 글자도 빠뜨려선 안 된다.’ 어떻게 할 말을 다 하면서도 쓸데없는 말, 빠뜨리는 말이 없을까 고민하고 연구했다. 조선 시대는 논술 시험으로 과거를 뽑았던 시대잖나. 글쓰기가 관인으로 출세하는데 가장 기본 요건이었다.
내 글쓰기의 핵심은, 형용사, 부사를 과도하게 쓰지 않는 것이다. 접속사와 긴 문장을 어떻게 더 쥐어짤까 고민한다. 글 쓰는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면, 독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면, ‘주르륵’을 지우고 중립적인 표현을 하려고 애를 쓴다. 충분히 몰입하되, 절제와 거리 두는 일이 글쓰기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고전을 공부하기 전과 이후, 선생님은 어떻게 달라졌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깊이가 생겼다. 표피적으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깊은 지점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근원적인 사유가 늘 바탕에 깔리게 된 셈이다. 연암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고, 다산의 합리적인 자료배열, 논리적 사고를 내 글쓰기에 더해보려고 한다. 그럼 좀 더 막강해지지 않을까.(웃음)”-2012년 새해다.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신다면.
“등고자비(登高自卑)라고, 높은데 올라가려면 낮은 데부터 밟아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용의 진리다. 사람들이 높은 데 올라가는 데만 중요하지. 단계를 한 걸음 한 걸음 밟아서 올라간다는 건 잊어버린다. 낭떠러지인지도 모르고 떨어지기도 하고 한꺼번에 몰락하기도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돌탑 쌓는 일이다. 돌과 돌 사이에 여백 없이 촘촘하게 쌓아 올려가면, 마이산의 탑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기초를 중시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교훈을 새기면 우리가 조금 더 차분해지지 않을까. 4대강, FTA, 정봉주 사건 등 들끓는 담론은 극단으로 치닫지 중간에 만나는 법이 없다. 세상일은 무조건 옳고 그름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알아야 하는데, 결사반대, 절대 찬성뿐이다. 이런 것이 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자꾸 성과만 놓고 보려고 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다.”
- 삶을 바꾼 만남 글 정민 | 문학동네
오랫동안 다산의 향기를 흠모하며 발자취를 연구해온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간의 정(情)을 정리했다. 『삶을 바꾼 만남』은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 운명적인 만남에 주목한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그곳에서 소년 황상을 만난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었던 황상은, 이 만남으로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스승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를 평생 마음에 담고 공부에 매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