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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만 찾아서 죽이는 연쇄살인마

악인의 내면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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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살인자를 죽이고, 끔찍한 연쇄살인마들과 대적해야 하는 덱스터 시리즈이지만, 읽다 보면 이야기 전체가 유머가 흘러넘침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덱스터의 행동은 사실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언제나 냉소할 수밖에 없지만, 보통 사람인척 하기위해서는 그들과 어울려야만 한다.

요즘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 최고의 악당을 꼽는다면, 흔히 사이코패스를 떠올린다. 선천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포식자.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사이코패스는 확정된 개념이 아니다. 사이코패스가 과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의해서 누구나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이코패스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이코패스 역시 일종의 정신병이나 장애로만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까지 무엇이 정답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악인의 내면 역시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악하기 때문에 악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 역시 내면에 어느 정도의 악함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면의 악을 실제 범죄로 행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단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뛰어넘어, 그런 행위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없이 때로 즐거워하기까지 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초월적인 악의 존재를 상정해 버리면 쉽겠지만, 단지 악마의 존재만으로 인간의 모든 악행을 규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진다. 악인의 내면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그저 악인들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기는 하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의 악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면을 알고 싶었던 가장 매력적인 악역이라면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역시 최강이다. 토머스 해리스의 원작소설로 읽어도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영화 속 한니발 렉터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경비원의 귀를 물어뜯고, 입에 피를 묻힌 채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한니발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악인의 모습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살인귀가 그토록 지성적일 수 있고, 그토록 사려 깊을 수가 있는 걸까. 한니발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때로 악에 현혹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니발이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강렬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한니발』 정도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한니발 라이징』에서 한니발이 왜 그런 ‘악인’이 되었는지를 추적하면서 신화는 깨져버린다. 동생의 죽음, 인육을 먹게 된 이유 등이 밝혀지면서 한니발의 정체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런 이유만으로 한니발 렉터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악의 정체란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양들의 침묵』에서 우리가 본 한니발 렉터는 그렇게 얕은 악인이 아니라 지옥의 심연, 무저갱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악 그 자체였다. 순수한, 우리가 경외할 수밖에 없는 악의 신. 우리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신적인 존재.

어린 시절의 정신적 충격이 악인을 만들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인물은 아마도 덱스터일 것이다. 신이 아니라, 인간적인 덱스터. 어렸을 때 끔찍한 경험을 한 덱스터는 공감 능력이 없는 동시에 ‘검은 승객’에게 이끌려 살인의 욕망에 사로잡히는 ‘사이코패스’다. 하지만 경찰인 해리에게 입양된 덱스터는 어린 시절부터 양아버지에게서 교육을 받는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에 대해서 배우고, 살인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순화시키는 방법을 찾는다. 즉 무고한 희생양이 아니라 살인자들을 찾아내서 죽이는 연쇄 살인마, 결과적으로는 사회에 이득이 되는 악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성인이 되어 혈흔 분석가가 된 덱스터는 여동생인 데보라와 함께 마이애미 경찰서에 근무한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 『어둠 속의 덱스터』 『친절한 킬러 덱스터』를 쓴 작가 제프 린제이는 ‘연쇄살인이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라는 질문을 생각하다가 덱스터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사회 정의나 복수를 외치면서 악당들을 죽이는 영웅은 기존의 소설, 영화, 만화에 흔히 존재한다. 하지만 덱스터는 좀 다르다. 살인자들, 그것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악당들을 죽여 버리는 그는 전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은밀하게 자신의 욕망을 처리하면서, 세상에 좋은 일도 한다. 해리가 덱스터에게 가르친 것은,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리는 법이다. ‘검은 승객’에게 이끌리는 덱스터가 세상과 화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악당만을 죽이고, 철저하게 안전을 위한 코드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테크닉을 익히는 것.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프 린제이가 창조한 덱스터를 통해서 유추한다면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단 확고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전제할 때와 해리처럼 신뢰할 수 있는 보호자가 존재할 때.


『덱스터』는 책으로 읽어도 재미있지만, 6시즌까지 나온 드라마도 아주 흥미롭다. 설정은 동일하고 많은 사건들이 겹치긴 하지만 원작보다 빨리 진행되는 드라마 『덱스터』는 독자적으로 흘러간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검은 승객’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덱스터는 처참하게 배신당한다. 구원을 찾으면서도, 덱스터는 늘 의심한다. 자신은 결국 자신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책과 드라마를 같이 보면, 각각의 작품이 어떻게 덱스터란 캐릭터를 다루고 탐구하는지를 흥미롭게 비교할 수 있다.

끊임없이 살인자를 죽이고, 끔찍한 연쇄살인마들과 대적해야 하는 덱스터 시리즈이지만, 읽다 보면 이야기 전체가 유머가 흘러넘침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덱스터의 행동은 사실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언제나 냉소할 수밖에 없지만, 보통 사람인척 하기위해서는 그들과 어울려야만 한다. 타인과의 대화에도 적절히 참여하며 웃어줘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도 호응하는 척 해야 한다. 자신의 정서적 결함을 숨기기 위해서, 타인의 감정을 익혀서 써먹기 위해 덱스터는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미묘하게 감정 비슷한 것에 끌리기도 하고. 사이코패스이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기 위해 덱스터는 계속해서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상황은 위장으로 연애를 시작했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내가 데리고 온 아이들이 학대의 상처 때문에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덱스터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들을, 다시 아이들에게 전해줘야만 한다. 이런!

덱스터란 캐릭터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감정을 거의 느낄 수 없으면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딜레마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니어도 보통의 사람들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대부분 소외감 같은 것을 느낀다. 왜 나는 저들과 다른 것인가, 라는 생각은 사춘기 시절부터 많은 이들을 괴롭힌다. 누군가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동질감을 찾으려 하고, 누구는 극단적으로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덱스터의 노력은 충분히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자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덱스터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체득한다. 같아질 수는 없지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건 사실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저들과 똑같지 않고, 똑같아질 필요도 없다는 것.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사이코패스인 덱스터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르거나 이상한 누군가도 충분히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니발 렉터 같은 사람이라면, 어울리는 대신 군림하는 포식자로 남으려 하겠지만. 그건 신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덱스터 정도라면 우리도 기꺼이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악당들까지 처치해주니 일석이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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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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