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티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어. 진나이는 흥분해서 말했다. 카포티라면 트루먼? 내가 물었다. 응. 트루먼 카포티. 그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라고. 아. 그런 기분은 나도 이해해. 나가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어. 에! 나가세와 나는 동시에 외쳤다. 일어났다니 뭐가? 실연한 나를 위해 지금 이 자리의 시간이 멈췄다고.
- 이사카 코타로 『칠드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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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벽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나 같은 게으른 사람이 이미 슬금슬금 책장을 빠져나와 집 여기저기에 뒹구는 수 백 권의 책 들 중에서 ‘실연한 나를 위해’ 라는 문장을 발견한 건, 거의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에 정확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이란 말이 들어간다면 말할 것도 없다.
작가들이 기약 없이 점점 늘어지는 절망적인 원고를 붙잡고 있을 때, 그의 온 신경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유능한 점성술사의 유리구슬처럼 작품의 미래를 점치는 온갖 도구들로 탈바꿈한다. 오늘 ‘행운’이라는 단어를 열 세 번이나 봤어. 정말 이상한 일이야. 오늘 소설 속 주인공과 정말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버스에서 봤는데,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이상한 일 아닌가? 11시 11분. 3시 3분. 5시 5분…. 맙소사! 내가 시계를 볼 때마다 숫자들이 우연히 겹치고 있잖아? 이거야 말로 이번 작품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진정한 신의 계시인 거지.
그러므로 내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칠드런』의 187페이지를 펴고 ‘실연한 나를 위해’라는 문장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은 딱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트루먼 카포티’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기적의 아침을 화장실 변기 위에서 맞이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을 보고, 지방시의 우아한 블랙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같은 문장을 읽고 트루먼 카포티를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체 이런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대책 없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트루먼 카포티가 작가로 데뷔했을 때 책 뒤표지에 썼던 얼굴 사진은 굉장히 (병적일 만큼) 아름다워서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가 ‘얼굴 사진을 아름답게 찍는 요령이 뭔가요?’라고 질문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건 간단해요. 당신의 머릿속을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우면 돼요.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얼굴이 찍힐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시도해 보았지만 전혀 잘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트루먼 카포티의 사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었다. 그러나 실제 트루먼 카포티의 키는 165센티미터로 아주 작은 편이었다. 병약하고 깡마른 이 소년을 부모님 양쪽 모두가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키워졌다. (이 시절에 소설가 ‘하퍼 리’와의 우정도 생겼다) 카포티는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뉴요커’의 복사 사환으로 입사했고,1944년,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안타깝게 직장을 잃게 된다. 그런 불미스런 일로 ‘뉴요커’에서 쫓겨난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 건 1945년 잡지 ‘마드무아젤’에 발표한 단편 ‘미리암’ 때부터다. 그는 이 소설로 단편에 주는 문학상인 ‘오 헨리’ 상을 받았고, 『마지막 문을 닫아라』로 두 번째 오 헨리 상을 받았다.
트루먼 카포티. 대대적인 문학적 성공 이후, 그는 ‘댄디보이’로 뉴욕 사교계의 황제가 된다. 자신의 동성애적인 경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다녔던 그는 늘 아름다운 남자 애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일찌감치 샌 그의 백발에 가까운 금발은 카포티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했는데, 그는 늘 빈틈없이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며 어떤 사교계의 인사든 단번에 구워삶아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하는 기묘한 매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카포티는 보통 남자들보다 몇 톤은 높고 가는 기이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1959년 캔자스주 ‘홀컴’에서 일가족 네 명을 살해한 살인자를 인터뷰하고, 『인 콜드 블러드』같은 저널리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쓰기도 한다. 당시, 이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해럴드 니가 “경찰보다 카포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묘하게 사람을 설득시키는 그의 재능에 대해선 의심하지 말자.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로 유명한 그의 친구 ‘하퍼 리’와 동행한 살인사건 취재는 영화 ‘카포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카포티는 뇌물을 써서 감옥에 있는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에게 접근했다. 절망에 빠져 곡기를 끊은 페리 스미스에게 음식을 떠먹여가며 카포티는 그들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을 끄집어냈다. 게다가 카포티는 스미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스미스는 카포티의 도플갱어 같았다. 둘의 유년기는 너무나 비슷한 방식으로 비극적이었다. 키도 체구도 비슷했다. 취재를 마친 카포티는 인터뷰 자료 6천 페이지, 가방 25개, 개 2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24살 때부터 함께 지냈던 10살 연상의 애인 잭 던피와 함께 스위스로 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기 시작했다. 스미스와 히콕은 종종 카포티에게 편지를 썼다. 둘은 상소에 상소를 거듭했고, 사형 집행은 자꾸 미루어졌다. 카포티는 초조해졌다. 둘이 사형되기 전에는 책을 마무리지을 수 없었다. 두 사람 특히 스미스에게는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느끼면서도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의 완성을, 그들의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 시네21 ‘미국인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삶’ 중에서
자신이 인터뷰했던 사형수에게 애정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위해 (그는『인 콜드 블러드』가 걸작이 될 것임을 거의 확신했다!) 그의 사형이 하루빨리 집행되길 바라는 극렬한 정신적 혼란은 훗날 그를 지옥에 빠뜨리는 마약과 알코올, 음주 운전의 장엄한 전주곡처럼 들린다. 500만부 이상 팔렸던 ‘인 콜드 블러드’의 상업적 성공은, 그러나 그에게 남아 있던 인터뷰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까지 삭제시켜버렸고, 그는 타인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는 천하의 ‘빅 마우스’로 낙인 찍혀, 뉴욕 사교계에 비참하게 내던져지니까 말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아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 우연히 ‘트루먼 카포티’의 이름을 발견한 날, 나는 카포티의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읽었다. 그리고 “야성적인 것은 사랑하지 마세요, 벨 씨. 그게 그이의 실수였어요. 그는 늘 집에 야생 동물을 데려왔어요. 날개에 상처 입은 매 같은 거요. 한 번은 다리가 부러진 살쾡이를 데려왔어요. 하지만 야생 동물한테는 마음을 줄 수 없는 법이죠. 마음을 쏟을수록 그것들은 더욱 강인해져요. 강해져서 숲으로 달아나죠. 나무 위로 날아가거나, 그 다음에는 더 높은 나무로 가고, 결국 하늘로 날아가죠. 마침내 그렇게 끝나고 만다니까요, 벨씨. 야성적인 것을 사랑하면 결국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요”같은 소설 속 여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배가 고파 오빠와 함께 몰래 잠입한 농장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던 가난한 소녀. 사별한 농장집 주인과 어린 나이에 충동적으로 결혼 해 버린 여자. 비밀을 간직한 채, 뉴욕까지 밀려와 사교계의 여왕이 된 미스터리 우먼. 낮이고 밤이고 검정색 선글라스를 쓰며 창가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여자. 자신의 명함에 늘 ‘여행 중’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고, 영화스타가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자유 때문에 날려 버린 이 여자는 3백 50달러나 되는 터무니없이 비싼 새장을 남자에게 선물하고, 애인의 편지를 읽을 땐, 자신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립스틱이라도 발라야 직성이 풀리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이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 삶이 공허해질 때면, 맨해튼의 보석상 ‘티파니’에 간다고 말하는 홀리 골라이틀리는 정작 다이아몬드는 나이 든 여자에게나 어울리는 보석이라고 잘라 말하며 늘 품위 있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또 그녀의 매력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길에서 주워 기른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 것으로 그녀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어울리는 주인을 만날 때까지 자신에게 고양이 이름을 지어줄 권리가 없다고 믿는 이 여자의 영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마치 이 소설의 모호한 결말처럼 말이다.
얼핏 홀리의 이미지는 ‘노르웨이 숲’이나 ‘양을 좇는 모험’ 같은 초기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밤의 군대’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노먼 메일러가 “트루먼 카포티는 한 단어, 한 단어를 엮어서 리듬감 있는 가장 뛰어난 문장을 쓴다. 나는『티파니에서 아침』에서 두 단어도 바꾸지 못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 카포티의 기념비적인 문장 속에서 티파니의 어떤 보석보다 반짝이는 건 단연 홀리 골라이틀리다.
만약 영화와 소설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어 본다면?
원작이 있는 영화 중, 나는 거의 언제나, 영화보단 소설 쪽을 훨씬 더 좋아했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이 원작)같은 몇 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건 꽤 나 드문 일이다. 그러나『티파니에서 아침』만큼은 영화와 소설 중 무엇을 더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영화가 소설의 대사를 성실히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오드리 헵번’이 부린 마술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아우라’ 때문일 거라고 믿는다.
문득 사는 게 공허할 때, 홀리는 맨해튼의 보석상 ‘티파니’에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는 게 괴로운 어떤 날, 나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본다. 헨리 맨시니의 ‘문 리버’가 흐르는 영화의 첫 장면. 맨해튼의 텅 빈 아침거리를 뉴욕의 옐로우 캡이 다가와 멈춰서면, 택시에서 한 여자가 내린다. 지방시의 블랙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의 뒷모습. 텅 빈 거리의 보석상 앞에 서서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크루아상을 뜯으며 커피를 마시는 그 장면을, 무엇보다 그녀의 눈이 스쳤을 반짝이는 티파니의 보석들을 나 역시 바라본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굳이 현실이라 믿고 싶은 이 마술적인 장면을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마치 그것이 이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그리고 예외없이 나는 매번 이 영화의 첫 장면과 사랑에 빠진다. 마치 그 장면과 쉽게 끝나지 않을 지독한 연애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이토록 화려하고 방탕한 삶을 산 작가만이 ‘홀리 골라이틀리’ 같은 여자를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