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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눈으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인간을, 문명을 타자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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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를, 개들의 눈으로 본 이야기. 아니 개들이 경험한, 지켜 본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간들. 2차 대전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반환된 알류산 열도의 키스카 섬에는 4마리의 군견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미국으로, 중국으로, 소련으로 퍼져나가 수많은 자손을 낳으며 베트남 전쟁, 우주 개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의 붕괴, 마피아 항쟁 등 역사의 순간을 인간과 함께 한다.

‘어디선가 신적인 존재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신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호의적이거나 악의적인 시선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까지는 아니어도, 초자연적인 무엇? 혹은 단지 다른 존재의 시선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거리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라던가, 낡아서 언제 헐릴지 모르는 건물이라던가, 오랫동안 함께 해온 만년필 같은 것들.

그렇게 자연이나 무생물에게도 시선이 있다고 생각할 법도 하지 않은가. 그것 모두가 아니라면 개나 고양이는 어떤가. 늘 인간의 주변에 있었던, 지금도 함께 있는 동반자. 때로는 미움을 받고 학대를 받았을지라도, 단 한 번도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왔던 그들. 개와 고양이는 습성과 행태, 인간에 대한 태도 등이 사뭇 다르지만 언제나 우리와 함께 존재했다는 공통점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라면 아마도,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인간을, 인간의 역사를 꽤나 다정하게 혹은 담담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후루카와 히데오의 『벨카, 짖지 않는가』는 바로 그 이야기다. 인간의 역사를, 개들의 눈으로 본 이야기. 아니 개들이 경험한, 지켜 본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간들. 2차 대전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반환된 알류산 열도의 키스카 섬에는 4마리의 군견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미국으로, 중국으로, 소련으로 퍼져나가 수많은 자손을 낳으며 베트남 전쟁, 우주 개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의 붕괴, 마피아 항쟁 등 역사의 순간을 인간과 함께 한다. 그 역사의 순간들을 개의 눈으로 본다. 이를테면 이렇게.

20세기는 두 번의 대전이 일어난 이른바 전쟁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군견의 시대이기도 했다. 수십 만 마리의 군견이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1943년 7월, 그 섬에서 군견 네 마리가 잊혀지고 있었다. 그 섬은 이제 이름이 없다. 일본군이 일장기를 거두고 퇴각한 뒤로 그곳은 이제 나루카미토가 아니다. 하지만 미군은 여전히 그 섬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다시 탈환할 때까지는 부당하게 뺏긴 일본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즉 그곳은 이제 미국 영토인 키스카 섬도 아니었다. 그곳은 잊혀진 개 네 마리를 위한 이름 없는 섬이었다.



개들을 위한, 개들의 섬. 인간의 역사도 그렇다. 『벨카, 짖지 않는가』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노인, 소녀처럼 그들을 지칭하는 명사만이 있을 뿐이다. 개들에게는 인간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역사의 흐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함께 달려갈 뿐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군견들은 베트콩의 땅굴을 찾고, 먼저 땅굴 속으로 들어가 희생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개는 충성의 동물이다. 신뢰를 통해서 주인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끝까지 함께 달려간다.

『벨카, 짖지 않는가』의 제목에 나오는 벨카는 소련의 우주 개발에 동참했던 개의 이름이다. 1957년, 지구에서 최초로 우주공간에 나간 동물은 인간이 아닌 개 라이카였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만든 <개 같은 내 인생>의 주인공인 사춘기 소년은, 우주공간에서 홀로 쓸쓸히 지구를 내려다보는 라이카를 상상하며, 내 인생도 그런 라이카 같다고 생각한다. 최초로, 인간이 지배하는 지구를 우주에서 바라본 개. 저 작은 별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아니면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실존적인 고민? 혹은 삶과 죽음에 대한 초월적인 명상? 그런 말도 안 되는, 한심한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이 작품을 픽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논픽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후루카와 히데오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모든 것은 논픽션이자, 픽션이라고. 이것은 개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의 역사이며, 허구인 동시에 사실이라고. 후루카와 히데오의 작품세계는 바로 그,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무색케 하는 방대하면서도 허황한 작업이었다. 후루카와 히데오의 대표작은 2002년 추리작가협회상과 일본SF대상을 수상한 『아라비아 밤의 종족』이다.


18세기, 나폴레옹의 침공을 앞둔 이집트에서 은밀하게 ‘재앙의 서’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그린 『아라비아 밤의 종족』은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 허구를 하나의 이야기 안에 통합한다. 일종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재앙의 서’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허구를 통해서 현실을 압도 혹은 지배하려는 의도로 비쳐진다. 후루카와 히데오는 모든 것을 지켜보며,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에 기꺼이 개입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로서 모든 것을 관장한다. 그런 태도는 『벨카, 짖지 않는가』에서도 재현된다. 또한 『록큰롤 7부작』에서는 록큰롤의 역사를 7개의 대륙을 무대로 대담하게 재구성한다. 분명히 허황된 이야기들이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 인간이 그동안 쌓아올린 것들과 절묘하게 합치한다. 그 치밀한 장광설과 어리석은 담대함조차도.

벨카는 라이카에 이어 우주공간으로 나간, 그리고 처음 지구로 귀환한 개의 이름이다. 1960년 8월, 벨카와 스트렐카는 스푸트니크 5호를 타고 우주 궤도를 돌고 돌아왔다. 라이카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벨카와 스트렐카는 최초의 살아남은 ‘우주견’이 된 것이다. 인간조차 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경험을 한 그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들의 후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후루카와 히데오는 벨카와 스트렐카의 후예들이 어떻게, 인간의 현대사와 함께 흘러갔는지를 ‘개들의 시선’으로 그린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병치시킨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는 기존 마피아와 체첸 마피아의 항쟁이 시작된다. 그 항쟁에 일본 야쿠자가 개입했다가 두목의 딸인 12살의 소녀가 납치된다. 일본인 소녀는 외딴 마을에 감금되어 수많은 개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마피아는 개를 살인도구, 목적을 위해 쓰이는 도구로서 훈련시킨다.

사실 언제나 그래왔다. 인간은 개를, 사냥을 위한 도구로서, 외부의 침입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해왔을 것이다. 친구이면서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 그러나 후루카와 히데오가 1957년, 라이카가 우주로 나간 해를 개의 기원 원년이라고 말한 것은, 우주에서 귀환한 ‘벨카’의 이름을 제목에 쓴 것은 개가 단지 인간의 소유물이나 도구로 쓰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후루카와는 묻는다. 왜 짖지 않는 것이냐고. 왜 항상 인간을 지켜보고 있었던 개, 당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냐고. 그러면서 야쿠자 두목의 딸인 소녀에게, 다시 벨카라는 이름을 물려준다. 그것은 곧 개의 시선이, 인간에게 투영되기를 바라는 의미다.

47번은 소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오페라에게 덤벼들었다. 오페라에게 달려들어 계속 공격하다가 노인이 “앉아” 하는 명령을 내리자, 먼저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아연한 표정으로 인식표 47번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아지는 나 잘했죠, 하고 소녀에게 묻고 있었다. 소녀는 말없이 인식표 47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었다. 소녀는 이 ‘죽음의 마을’에 갇힌 뒤로 처음 누군가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개였다. 하지만 한 마리의 개와 일본인 소녀 사이에 말이 통했다.



개와 인간의 말이 통하는 그 순간, 개의 시선이 인간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은 다르게 보인다. 사실 인간의 역사란 애매하고 뒤틀린 것이다. 때로는 오로지 승자의 시선만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패배자,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혹은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도 많다. 우리는 고대의 문명들이 왜 멸망했는지, 단지 추정할 뿐이다. 혹은 현대의 수많은 사건들도 여전히 미제이고, 수수께끼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 연인이 누구인지조차 정확히 말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의 역사 역시 하나의 픽션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픽션이라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픽션의 힘으로, 다른 시선을 빌리고 뒤집어 봄으로써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봐야만 하는 것들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의 시선으로 인간의 현대사를 보면 한편으론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당신도 봐라. 개의 시선으로 보든, 당신만의 시선으로 보든, 어쨌든 뭔가 다른 시선으로. 그러면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벨카, 짖지 않는가』의 황망한 세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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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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