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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심야식당과 그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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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에 ‘중독’되는 때가 있습니다. 보통 한번 본 만화나 드라마는 다시 들춰보지 않는 편입니다만, 일단 중독이 되면 몇 주에서 몇 개월간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복습 철저’의 모범생으로 돌변하죠.


어떤 이야기에 ‘중독’되는 때가 있습니다. 보통 한번 본 만화나 드라마는 다시 들춰보지 않는 편입니다만, 일단 중독이 되면 몇 주에서 몇 개월간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복습 철저’의 모범생으로 돌변하죠. 2년 전쯤,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에 중독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에 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심야식당>의 세계에 빠져 만화와 드라마를 보고 또 보며 비교분석 중이었죠. 밤낮이 바뀐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밤중 요리’에도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중앙선데이’에 이 작품에 대한 칼럼을 하나 쓰게 되었는데, 그 칼럼을 읽은 ‘채널예스’ 팀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심야식당> 덕분이었네요.

요즘 다시 <심야식당>에 푹 빠졌습니다. 지난 달부터 TBS에서 드라마 <심야식당>의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매주 화요일 밤 12시 55분 본방사수는 필수에, 다음날에는 만화를 찾아보며 지난 회를 복습하고, 다음 회의 내용을 예습하죠.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꾸 묻습니다. “요즘 <심야식당> 보고 있어?” 애정이 지나치다 보니 이 작품이 인간관계를 가름하는 기준까지 되어버렸습니다. <심야식당>에 대해 “재미없던데?”, 혹은 “뭐야? 심심하던걸” 하는 사람을 보면 생각합니다. ‘미안. 우리,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절친은 될 수 없겠어.’


<심야식당>은 신주쿠 뒷골목에 있는 작은 밥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이 식당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잔잔하게 소개되죠. 빨간 비엔나 소시지, 버터라이스, 오차즈케 등 등장하는 음식들도 더없이 소박합니다. 아베 야로 원작만화는 현재 한국에서 7권까지 출간됐고(일본에는 8권까지 나와 있습니다), 2009년 일본에서 드라마 첫 번째 시즌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의 일드 팬들에게는 무척 유명한 작품이지만, 의외로 일본인들은 잘 모르더군요.)

얼마 전에는 일본에 놀러 온 절친(역시 <심야식당>의 광팬입니다)이 물었습니다. “넌 <심야식당>만화가 좋아? 드라마가 좋아?” 의외로 3초 만에 바로 답이 나오더군요. “응, 나는 드라마!!” 고백하자면 소박한 그림체의 원작만화도 물론 좋습니다만, 드라마를 기다릴 때의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지난주 14화 「니코고리(煮こごり)」 편을 보다 깨달았습니다. 그건 드라마의 음악 때문이었다는 사실을요.


드라마 <심야식당>의 오프닝은 도쿄의 밤거리로 시작합니다. 신오쿠보에서 신주쿠로 향하는, 도쿄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눈에 익은 거리입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 아래 취객들로 북적이는 이 거리의 풍경 위로 한없이 쓸쓸한 목소리가 겹쳐집니다. 듣는 순간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이 오프닝곡은 스즈키 츠네키치(鈴木常吉)라는 가수의 「오모히데(思ひで)」란 곡입니다. 야후 재팬을 검색해보니 이 가수에 대해 ‘슬픔의 근원을 파헤치는 목소리’라는 기막힌 평이 있더군요. 몽환적인 가사 역시 드라마의 분위기에 더없이 어울립니다.


「思ひで(오모히데)」 - 鈴木常吉(스즈키 츠네키치)

君が吐いた白い息が
그대가 내쉰 하얀 숨이
今ゆっくり風に?って
지금 천천히 바람을 타고
空に浮かぶ雲の中に少しずつ消えて行く
하늘에 떠있는 구름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가.
遠く高い空の中で手を伸ばす白い雲
멀고 높은 하늘 속으로 손을 뻗은 하얀 구름
君が吐いた息を吸ってっぽっかりと浮かんでいる
그대가 내쉰 숨을 들이마시고 두둥실 떠오르고 있어
ずっと昔のことのようだね
아주 오래 전 일인 것만 같아.
川面の上の雲がながれてる
강 위로 구름이 흘러가



그리고는 음악 위로 심야식당 마스터의 나레이션이 겹쳐지면서 드라마가 시작돼죠.

一日が終わり、人?が家路へと急ぐ頃、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俺の一日は始まる。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メニュ?はこれだけ。
메뉴는 이 것뿐.
あとは勝手に注文してくれりゃあ
그 외에는 맘대로 주문하면
できるもんなら作るよってのがぁ。俺の?業方針さ。
될 수 있는 한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영업방침.
?業時間は夜12時から朝7時頃まで。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人は深夜食堂って言ってるよ。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르지.
客が?るかって?
손님이 오냐고?
それが結構?るんだよ。
그게 꽤 온다구.




이 완벽한 오프닝곡은 그러나, 드라마의 주제곡은 아닙니다. 기존에 있던 노래를 제작진이 발견해 드라마의 오프닝으로 사용한 거죠. 드라마 제작에 맞춰 만들어진 주제곡은 끝날 때 흘러나옵니다. 시즌 1의 주제곡은 ‘매직 파티(MAGIC PARTY)’의 「빌리브 인 파라다이스(Believe in Paradise)」였고, 시즌 2의 주제곡은 ‘러브러브러브(LOVE LOVE LOVE)’의 「거짓말하는 법(?のつき方)」인데요. 둘 다 꽤 좋은 노래지만, 드라마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느낌이네요.

주제곡을 제외하고 드라마 <심야식당> 시즌 2는 시즌 1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속성을 강조해 1화, 2화로 새롭게 시작되는 게 아니라, 11화, 12화로 이어집니다. 영화 <도쿄타워>를 만들었던 마츠오카 조지(松岡錠司) 감독을 비롯해 <린다린다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야마시타 노부히로(山下敦弘) 감독, <마이니치 카산(?日かあさん)>의 고바야시 쇼타로(小林聖太?) 감독 등 젊은 영화감독들이 릴레이로 연출하는 방식도 같습니다. 시즌 1에서 원작만화에 없는 깜짝 캐릭터로 출연했던 오다기리 죠도 13화부터 다시 등장, 영문 모를 대사 “인생 깔보지마(人生なめるな)”를 외쳐주고 있죠. 그런데도 개인적으로는 2년 전의 시즌 1보다 시즌 2에 더 마음이 갑니다. 그 이유 역시 음악입니다.

11화 「다시 빨간 비엔나소시지」편을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흐르던 노래 말입니다. 검색신공을 발휘해보니 인디신에서 활동하는 가수 후쿠하라 키미에(福原希己江)의 「할 수 있는 것(できること)」이란 노래더군요. 그녀의 목소리 역시 심야식당의 쓸쓸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줍니다. 후쿠하라 키미에는 니시신바시에 있는 라이브카페에서 노래하던 인디 가수였는데, 우연히 한 파티에서 노래하다 마츠오카 조지 감독의 눈에 띄어 드라마 <심야식당> 시즌2에 참여하게 됐다고 합니다. 시즌 1에서는 극의 마지막에 배우들이 등장해 조리법을 소개했는데, 시즌 2에서는 그녀가 기타반주와 함께 「가라아게(唐揚げ)」 「조개술찜(あさりの酒蒸し)」 등의 노래로 조리법을 알려줍니다.


できること(할 수 있는 것)-福原希己江(후쿠하라 키미에)

思い出を忘れたいなら、さぁあたしが
消しゴムで消してあげるわ、安心しておやすみなさい

추억을 잊고 싶다면 자, 내가
지우개로 지워 줄께요. 안심하고 주무세요.

凍えるような寒い朝も、?れる大地も
身?に刻まれた記憶が、あなたを?くするのでしょう

얼어붙을 듯 추운 아침도 흔들리는 대지도
몸에 새겨진 기억이 당신을 강하게 만드는 거겠죠.

やがては土に、?ると分かっていても
この?持ちはどうしたら、どうしたらいいの

멀지 않아 흙으로 돌아갈 거란 걸 알지만
이 마음을 어쩌면, 어쩌면 좋을까요

あたしの歌は何にも力なんかないけど
あなたの心を少しだけ、撫でるくらいなら出?るかも

내 노래는 아무런 힘도 없지만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주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지도

思い出を忘れたいなら、さぁあたしが
消しゴムで消してあげるから、安心しておやすみなさい

추억을 잊고 싶다면 자, 내가
지우개로 지워줄 테니 안심하고 주무세요.




다시 문을 연 드라마 심야식당의 첫 번째 에피소드(11화)는 「다시 빨간 비엔나소시지」였습니다. 시즌 1의 1화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야쿠자 류짱의 사연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고등학교 때 큐슈 지역 최고의 야구부 에이스였던 류짱은 매니저 쿠미짱과 데이트 중 불량배들과의 싸움에 말려들어 고시엔(전국고교야구대회) 출전을 포기해야 했죠. 문어 모양의 비엔나 소시지는 그날 쿠미짱이 데이트를 위해 준비했던 도시락 반찬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죽음을 앞에 두고 류짱을 다시 만난 중년 아줌마 쿠미짱은 고백합니다.



<심야식당>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은 어떤 걸까요. 이 이야기의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겐 ‘마음에 남은 게 있어 어디론가 새고 싶은 밤’ 훌쩍 들를 수 있는 심야식당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우연처럼 그와 마주치길 기대하며 무작정 헤맸던 그 거리에 대해, 되돌아보면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담담히 털어놓을 수 있도록. 그리고 마스터가 만들어준 따뜻한 음식과 함께 하루치의 슬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다시 내일을 견딜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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