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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전라도』 “이대로 떠나시면 됩니다” - 당신에게 권하는 1박 2일 전라도 여행 코스 완전 공개

학기가 시작되는 봄 가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때의 일년은 계절과 같이 흘러갔다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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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하고 나니, 일년은 계절도 시간도 아니라 업무량 기준으로 흘러가더라. 월초엔 기획하고, 월말엔 정산한다. 봄, 여름, 가을 상관없이 월초면 일이 많고, 월말이면 바빠진다. 반팔을 입고도 뻘뻘 땀을 흘리던 때가 언제 지나갔지. 문득 고개 들어보니 창밖에 노란 낙엽을 떨구고 있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시간에 민감했다. 학기가 시작되는 봄 가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때의 일년은 계절과 같이 흘러갔다 돌아오곤 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일년은 계절도 시간도 아니라 업무량 기준으로 흘러가더라. 월초엔 기획하고, 월말엔 정산한다. 봄, 여름, 가을 상관없이 월초면 일이 많고, 월말이면 바빠진다. 반팔을 입고도 뻘뻘 땀을 흘리던 때가 언제 지나갔지. 문득 고개 들어보니 창밖에 노란 낙엽을 떨구고 있다.

여름이야 휴가가 있다 치고, 겨울은 연말에 낀 공휴일 덕에 즐기는데,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은? 시간을 내지 않으면 쉬이 놓치기 십상이다. 여름 지나고 곧장 겨울 오나 싶게 쌀쌀하더니, 11월임에도 불구 요 며칠은 내내 이상기온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개나리도 때를 착각하고 피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잠시 정차한 것 같은 가을 날. 가을이 먼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야겠다. 마음이 급해졌다.

준비, 걱정 다 물리치고 일단 전라도 행 기차에 올라탔다. 전라도로 간 것은 최상희 작가의 책 『사계절 전라도』때문이었다. 한옥 마을의 유유자적함, 순천만의 평화로운 갈대밭 사진을 보니 마음이 동했고, 푸릇푸릇한 사진 속 풍경도 좋지만 지금처럼 단풍이 알록달록한 전라도는 어떨까 상상하니 몸이 동했다. 황금 물결 전라도! 이 가을이 제격이다. 때마침 작가님이 1박 2일 여행 취재를 제안해주니, 마다할 이유가 있나.


전라도, 고향처럼 즐기기



최상희 작가는 전라도가 고향이란다. 전라도에 갈 때면 여행가는 기분이 아니라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명절 때마다 오갈 때면 교통체증, 집 떠나 서울 생활 하느라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지방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어쩐지 서울에 없는 깊은 자연을 덤으로 안고 있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전라도가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을 소개하는 그녀의 책 『사계절 전라도』는 느낌이 다르다.


저자는 고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편안함과 아늑함을 독자들에게 공유해주려는 듯, 추억이 담긴 이야기부터 동네 사람만 아는 고급 정보를 솔솔 건네준다. 오랫동안 잡지 기자 생활을 했다는 저자의 경력 때문일까. 그녀의 안내는 감각적이고 따뜻하다. 정보는 명료하게 전달하고, 이러저러한 추억담과 느낄 거리를 담고 있는 글들은 잔상을 남겨, 읽기 전에는 꼭 한번 가보게끔 추동하고, 그곳에 가서는 문득 그녀의 이야기들이 떠올리게끔 한다.

『사계절 전라도』 책 한 권, 그리고 작가가 직접 짜준 1박 2일용 상세한 일정표만 챙겨 들고 출발했다. 일정이야 이 기사에 상세히 녹여낼 테니, 당신도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친구 말로는, 무조건 표부터 끊어두란다. 어쨌거나 떠나는 날이 정해져 있으면, 무엇을 하던 중이었든 할 일이 얼마나 많든 일상은 잠시 멈춤이다.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늘 있던 그곳을 잠시 벗어나는 순간,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겪으며 평소에 안 쓰던 감각, 세포들이 활동하는 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렇게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일년 내내 계속되는 것도 아닌데. 이 가을에 떠나지 않는 건, 유죄다!
…라고 까지는 못하겠고, 너무 아까운 거지!


가을이 절정이다! 황금빛 한옥마을




첫째 날: 전주 한옥마을

AM 10:45 ~ PM 01:00 용산역 출발 → 전주역 도착
PM 1: 30 ~ PM 02:30 점심: 베테랑 칼국수
PM 3: 00 ~ PM 06:00 한옥마을 관람(양사재/ 경기전/ 전동성당/ 최명희 문학관)
PM 6: 00 ~ PM 07:00 타박타박 카페
PM 7: 00 ~ PM 08:00 전주 향교
PM 8: 00 ~ PM 10:00 저녁: 삼천동 막걸리 골목

지붕이 멋스러운 전주역

첫째 날은 전주로 가고, 둘째 날은 순천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오후 1시쯤 전주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가 반갑게 응대하며 묻는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한옥 마을 구경하시려고요?” 우선, 가장 높은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을 내려다본 후에 골목골목 다니라고, 팁을 건네주신다. “넓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돌아볼 수 있어요. 구석구석 걷는 재미가 쏠쏠해요.”

점심은 소문난 ‘베테랑 칼국수’에서 든든히

한옥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이내 출출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 전주,하면 비빔밥인줄 알았는데, 여기 한옥마을에서는 그보다 베테랑 칼국수가 유명하단다. 성심여고 맞은 편에 있는 베테랑 칼국수 집에서는 칼국수, 쫄면, 만두를 판다. 공간도 넓은데, 식사 때면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인기라고. 넘칠 듯 담긴 푸짐한 양의 칼국수, 그 위에 고춧가루, 김, 들깨가루가 입맛을 돋운다. 면발은 부드럽고, 멸치 육수는 진하고 고소하다. 날씨가 더 쌀쌀해지면, 분명 또 한번 생각날 맛이다.

숙소 양사재에 짐 풀기

저자가 지인들에게 일 순위로 권한다는 양사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예약해둔 숙소가 가까워, 일단 짐부터 내려놓고 움직이기로 했다. 한옥생활 체험관으로 쓰이는 양사재는 옛날 향교의 부속 건물로, 서당 공부를 마친 유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던 곳이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단정한 마당과 기역자 한옥 집이 기품 있게 손님을 맞는다.

창문의 격자무늬, 방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문이 홈대에 끼이면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 맨발에 닿는 문지방의 나무결 등등. 한옥에서 누릴 수 있는 모양새, 소리, 냄새, 감촉이 아늑하고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방에 앉아 방문을 열면, 햇살에 반짝거리는 꽃들이 오밀조밀 피어 있는 아담한 마당이 내다보인다. 그냥 이렇게 마루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좋겠다 싶다.

영화 속 풍경에 뛰어든 것 같은 한옥마을

한옥마을은 단풍이 절정이다! 샛노란 단풍나무 아래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고 있다. 검회색 기와, 갈색 나무기둥과 화선지로 이루어진 한옥은 푸른 나뭇잎과도 잘 어우러지지만, 금빛 단풍 사이에 있을 때 한껏 멋드러진다. 오목대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봉긋 봉긋 솟아 있는 한옥 지붕들이 미니어처처럼 귀엽게 보인다. 막상 내려가 그 사잇길을 걷다 보면 그야말로 영화같이 운치 있는 풍경들이 골목마다 나온다.

얕은 담벼락, 그 아래 심겨진 들풀과 꽃들. 벽돌담 위로 귀엽게 올라앉은 기왓장들. 어디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한 폭의 엽서다. 거닐다 보니 이곳이 공연히 영화의 도시가 아니구나 싶다. 여러 영화가 전주에서 촬영되었지만, 최근의 한옥마을 풍경을 잘 담아낸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다. 그 영화 장면 속에 들어와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경기전, 여기가 가을이다!

저자가 학창시절, 대표적 소풍지로 오가던 곳이자,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들렀다는 경기전에 들어갔다. 여전히 전주 학생들은 경기전으로 소풍을 오나 보다. 유치원생부터 중고등학생 등 여러 무리가 눈에 띈다. 가을 동산에 입장한 듯 화사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학생들이야 ‘또 여기야!’ 싶었을지 몰라도, 나는 마냥 신났다!)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의 어진, 즉 조상화를 모시기 위해 태종 때 지은 건물이다.

어진 박물관등 의미 있는 볼거리가 있지만, 그보다 경기전 곳곳에 색다른 가을 풍경이 들어 있다. 볕 좋은 넓은 마당을 지나 정전 옆문을 지나면, 길 양쪽에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큼지막한 은행나무 아래 한 가득 널려 있는 은행잎은 마치 금색 주단을 깔아놓은 양 화려하다. 막 해가 저물 무렵이라 더욱 운치 있던 풍경이었다.

푸른 단청, 고즈넉한 기와 집을 거니는 것도 좋지만, 경기전 밖 한적한 돌담길을 걷는 일도 빼놓을 수 없이 낭만적인 일이다. 좌측엔 돌담길을 끼고, 저 앞에 정동성당을 향해 나 있는 길은 사진에도 담아낼 수 없는 여유로움을 품고 있다. 가을 잠자리라도 된 양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발자국, 눈 자국을 찍었는데도 쉬이 경기전을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박신양, 전도연이 <약속>했던 그곳, 전동성당

박신양,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약속>, 그 영화 속에서도 특별히 기억하는 장면. 바로 이 정동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다. “당신께서 저한테 ‘니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하지만 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정말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또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동성당

우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크고, 그 모양새가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고 딱 정갈하다. 성당 안에 들어가서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아치 구조의 아름다운 곡선에 또 한번 놀랐다. 서울의 명동성당, 대구 계산동 성당과 함께 한국의 3대성당으로 꼽히는 곳으로,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이라고 불리는 신해박해 때 순교당한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 곳에 이 성당이 세워졌다고. 천주교의 역사적인 성지이자, 성당의 아름다움 덕에 영화 속 배경이나 예식장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걸오 나무가 있는 전주 향교

이번에는 <성균관 스캔들>의 주무대가 되었던 전주 향교로 향했다. 전주 향교로 향하는 골목길은 한옥마을의 골목과 또 다르지만 풍경 특유의 정겨움은 여전하다. 가을에 둘러싸인 한옥마을이 선명한 느낌의 사진이었다면, 이 골목은 로모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느낌이다. 저자도 책에서 태조로에서 향교까지 가는 이 길을 걸어보라고 권했던 기억도 난다. ‘동네의자임.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써 있는 의자에도 잠시 앉아 쉬기도 하고, 골목골목 갸웃거리다 향교에 도착했다.


<성균관 스캔들> 이 드라마가 수출된 뒤로, 걸오사형이 올랐던 나무 ‘걸오 나무’를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전주를 들르고 있단다. 아무도 없는 전주 향교를 느긋하게 걷고 있었는데, 누군가 부랴부랴 뛰어 와서 향교 속 한옥 안으로 쏙 들어간다. 두런두런 소리가 들려 살짝 들여다보았더니, 몇몇 사람들이 장구를 둘러싸고 앉아 소리를 배우고 있다. 그 마루 앞에 잠시 앉아 소리를 들으며 향교의 빛이 저무는 풍경을 구경했다.

타박타박 카페
종일 타박타박 걸었으니 잠시 쉬어야겠다. 『사계절 전라도』 저자의 동생이 운영한다는 타박타박 카페에 들렀다. 외관이 바뀌었다. 이발소 옆에 있는 설탕큐브 같은 건물을 찾으러 내내 헤맸는데, 이발소도 없고, 책에 나온 사진 속 외관과도 달라졌다. 타박타박카페는 메인로드에 위치한 한옥관광안내소 바로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의 인기메뉴라는 복분자 슬러시와, 쫄깃쫄깃한 모찌를 주문하고 잠시 휴식.

푸짐한 안주와 함께 막걸리 한 주전자

전주에 왔는데 막걸리를 먹지 않을 수 없다. 8년~9년 전 한 두 집의 생막걸리 집이 유명해지고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막걸리 가게들이 붐비면서 형성된 막걸리촌이 이제 전주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맛집 명소 중 하나다. 전주 막걸리가 유명해진 까닭은, 맑고 뒤탈 없는 막걸리의 맛과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져 나오는 안주 때문이다.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용진집’과 ‘두 여인 막걸리’다. ‘용진집’은 평일 저녁인데도 사람이 가득 북적인다. ‘두 여인 막걸리’ 집으로 향했다.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켜도, 과일, 야채, 생선, 게, 샐러드, 두부김치, 된장찌개 등 갖가지 안주가 테이블 위에 차려진다. 두 주전자, 세 주전자를 시킬 때마다 안주가 업그레이드 되어 삶은 오징어, 삼계탕 등등이 나온다고 하는데, 단체로 가야 그 맛 볼 수 있겠다. 또 집게발, 소라, 아귀수육 등 어른들의 안주가 나오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안주 만족도는 다르다는 후문이다. 막걸리는? 맛있다. 겨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나로서는) 마음껏 마셨는데도 그 다음날 숙취가 전혀 없었다.



올 가을이 가기 전에 순천만으로 떠나라

순천만의 절정! 바로 지금이다


둘째 날: 순천에서 몸보신 마음보신

AM 08:30 ~ AM 09:30 양사재에서 차려준 조식
AM 09:30 ~ AM 11:00 한옥마을 한바퀴 돌고 전주역으로 이동
PM 11:30 ~ PM 01:30 순천역 도착
PM 01:30 ~ PM 02:30 점심: 짱뚱어탕
PM 02:50 ~ PM 04:30 순천만
PM 05:00 ~ PM 06:00 벌교 이동. 저녁: 꼬막정식
PM 06:30 ~ PM 09:00 전주역으로 이동. 서울로!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마련해준 조식을 먹었다. 정갈한 집 밥, 맛있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아침반찬으로 나온 쭈꾸미 젓갈이 맛있다고 단체 주문을 했다. 아주머니께서 임실 치즈라며, 후식으로 먹을 치즈 두 덩이를 밥상에 올려주셨다. 쫄깃하고 고소했다. 아침 산책 겸 오목대 숨길을 걸었다. 어제는 미처 둘러보지 못한 곳들을 살피며, 다시 보는 전주 풍경이 한껏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주 영화의 거리에 가보면 매스컴에서 극찬한(!), 그보다 친구가 극찬해서 더욱 궁금한 꽈배기 집이 있다고 하여 서둘러 영화의 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없는 여행객인지라 헤맸다. 예약해둔 순천행 열차 시간이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동했다. 원래 이렇게 한 두 가지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또 오게 되는 법이라고.

점심은 순천의 명물 짱뚱어탕

꽈배기를 먹지 못해 더욱 굶주린 배를 안고, 강변 장어 구이집으로 달려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줄을 서야 했다. 이 곳에는 짱뚱어탕이 유명하다. 요즘이 제철이란다. 짱뚱어를 삶아 곱게 살을 거른 후, 된장과 우거지와 끓여낸 탕이다. 보기만 해도 고단백 영양음식이다. 갯벌을 뛰어다니는 짱뚱어를 한 마리씩 잡아야 해서 장뚱어탕은 귀한 음식이라고 가게 아주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셨다.

된장국이나 추어탕과는 또 다른 묘한 맛이 난다 싶었는데, 그 맛의 비밀은 ‘방아 잎’이었다. 방아 잎이 짱뚱어의 비린내를 제거해준단다. 된장과 어우러진 향이 무척 독특하다. 뼈를 발라낸 짱뚱어의 살은 부드럽고 고소하게 씹힌다.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반찬 또한 푸짐하다. 젓갈, 게장, 꼬막 등 밥 도둑이 한 상이다. 순천은 맛의 고장이라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든든하게 한 상 먹고, 순천만으로 향했다.

순천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꽤 오래 전, 순천만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기 이전에 친구와 이곳에 여행을 온 적이 있다. 추운 날, 제 멋대로 흐트러져 있는 갈대 숲, 그리고 다가갈 수 없는 갯벌을 멍하니 바라보다, 밤이 깊어져 돌아갔다. 그땐 지금처럼 볼거리가 정비되진 않았어도 이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었는데! 사람 정말 많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 뒤꽁무니만 쳐다보며 걸어도 여러 번 오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쳤다. 모든 등산객들이 마지막 코스로 이곳에 들른 것처럼, 등산복 차림의 단체 관광객으로 즐비하다. 갈대밭에서 사진을 찍으면, 여간 해서는 혼자 원샷으로 사진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디 포기하지 말고 용산 전망대까지 올라가길 권한다. 이왕에 순천만에 왔다면 말이다. 갈대 숲은 그 속에 폭 빠져 있는 것도 낭만적이지만, 용산 전망대에 올라 섬을 이루고 있는 갈대숲 전경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절경이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도 운치있다. 가다 보면, 힘든 길과 쉬운 길이 있는데, 언제나 힘든 길엔 사람이 적은 법. 높이 오를수록 사람은 적어지고, 풍경은 깊어진다.


전망대에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은 풍경, 탁 트인 순천만을 바라보고 있자면 눈을 쉬이 뗄 수 없다. 바다로 이어지는 순천만은 마치 꿈쩍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위로 아주 천천히 물이 흐르고 있고, 하늘의 구름도 그에 속도를 맞추어 흘러가고 있다. 그대로 서서 해질녘 순천만과 해 뜰 때의 순천만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풍경은 전망대 내에 마련되어 있는 스크린 영상으로 대신하고,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쉬움 가득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꼬막 음식의 모든 것?! 벌교 원조꼬막회관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을 계산해보니, 딱 하나의 일정을 더 할 수 있었다. 낙안 읍성을 둘러보거나 벌교의 명물 꼬막정식을 먹으러 가는 일. 저녁 시간, 두 말할 것 없이 벌교로 이동.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벌교읍으로 건너가다 보니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도, 할증이 붙어 25,000원이 나왔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택시를 타고 주변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혹은 출발하기 전에 미리 택시 기사 아저씨와 가격을 흥정하고 가는 게 좋겠다. 할증지역이라 미터기를 켜지 않고 달리는 분도 계시니까.

하지만, 작가님이 추천해준 ‘원조꼬막회관집’에서 꼬막 정식을 먹으면서 나는 벌교에 오길 참 잘했다며, 어쩐지 많이 나온 것 같다며 투덜거린 택시 요금에 대한 불뢸 따위는 금새 잊었다. 전라도에서 매 끼니마다 다양한 메뉴, 푸짐한 반찬들, 정갈한 음식 맛에 행복했지만, 벌교의 꼬막은 특히나 큰 행복을 더했다. 통꼬막, 꼬막탕수육, 꼬막구이, 양념꼬막,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 된장국… 등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꼬막은 어찌나 갖가지 다른 맛을 내는지. 한 가지씩 맛을 보고 났는데도 배가 불렀다. 빈 꼬막 껍데기들만 아름답게 쌓아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주역으로 가서 서울행 기차를 탄다는 얘기를 듣자 인상 좋은 주인 아저씨는 바로 우리를 따라 나섰다. 근처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시겠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꼬막이 가난했던 벌교 사람 여럿 먹여 살리고 있지요. 요즘에는 가게가 많이 생겨서…… 마구잡이로 캐지 말고, 일 년쯤 쉬었다가 캐면, 손님들한테 더 싱싱하고 맛있는 꼬막을 내어 줄 수 있는데, 그게 참 미안하지요.” 차창 밖 캄캄한 벌교를 배경으로 아저씨의 이야기가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들려왔다.


당신에게 권하는 전라도 여행


벌교 터미널에서 전주역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전라도의 짧고도 맛있었던 1박 2일은 이렇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 찍어온 사진을 보며 일정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마음에 가을 물이 노랗게 들었다. 마음은 따뜻하고, 배는 든든했던 여행. 전라도, 누구에게라도 적극 권하고 싶은 여행지다. 『사계절 전라도』를 보니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다. 조만간 다시 날을 잡아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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