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아티스트로 꾸려진 다섯 번째 GMF지난 2011년 10월 22일, 23일 양일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가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가벼운 옷차림, 한껏 들뜬 마음으로 나갔다. 날씨는 맑았지만, 일교차가 큰 만큼 저녁 시간을 생각해서 두툼한 겉옷 한 벌 가방에 넣어갔다.
지금이야 두어 달에 걸쳐 굵직굵직한 페스티벌이 눈에 띄지만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을 적부터, 좋은 가수들을 소개하고 무대를 마련해온 GMF가 올해로 다섯 번째다.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은 듯한 화려한 라인업,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입 소문에 힘입어 올해는 일찌감치 매진 사례를 빚은 바 있다. 올림픽 공원 역에 가까워지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팬들의 행렬이 속속 눈에 띈다.
이적, 자우림, 윤종신, 넬,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노리플라이 등 여느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를 맡을 법한 가수들이 이틀에 걸쳐 비슷한 시간에 포진되어 있으니, 동선을 고려해 시간표를 잘 짜는 일이 중요했다.
메인 무대인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는 풀밭 위에 세워진 오픈형 무대라 많은 사람들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고, 클럽 미드나이트 선셋은 제 1체육관에 마련되어 줄을 서야 하지만, 체육관 안에 설치된 무대라 야외와는 달리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대로 마련되었다. 강물을 배경으로 세워진 수변무대는 1000여명의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 오붓하게 관람할 수 있지만, 수용 인원이 적으므로 수변무대 공연을 보려면 일찌감치 서둘러야 했다.
이 밖에도 한얼 광장에 마련된 ‘버스킹 인 더 파크’와 잔디마당에 마련된 ‘카페 블로썸 하우스’가 마련되어 있다. 메인 무대에 비해 규모가 작은 이 무대에는 ‘일단은 준석이들’, ‘차가운 체리’, ‘박솔’, ‘글렌체크’ 등 라이징 스타라고 할 만한 인디 밴드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올해 GMF에서 기대되는 무대 중 한 곳이었다. 공연장의 문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음악 팬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22일_Sat: 윤종신, 자우림, 장윤주, 박솔 등 각양각색의 무대
|
3년 만에 무대에 오른 ‘넬’ | |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기 모이신 거 보면, 저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클럽 미드나잇 선셋 무대에서 첫 공연을 펼친 ‘디어클라우드’ 나인이 말했다. 가을의 애잔한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음악들이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펼쳐진다. 밴드의 연주와 나인의 짙은 음색에 실린 가을 정서가 금새 체육관에 모인 팬들을 가을빛으로 물들였다. 고개를 돌려 객석을 둘러봤다. 음악을, 가수들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일렁이고 있었다.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는 축제분위기다. 깜찍한 목소리, 귀여움 가득한 무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 눈길을 사로잡은 ‘라이너스의 담요’. 페스티벌 때마다 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 ‘몽니’에 이어 ‘세렝게티’가 무대에 올랐다.
리드보컬 유정균, 드럼에 장동진, 기타 치는 정수완 세 사람으로 구성된 ‘세렝게티’는 축제에 꼭 어울리는 밴드. 선량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이들의 신나는 음악을 듣고 있자면, 밝은 대낮에 멀쩡한 정신으로도 절로 춤바람이 인다. 특히 이날에는 게스트로 ‘버벌진트’, ‘킹스턴 루디스카’가 깜짝 등장해 흥겨움은 한껏 배가 됐다.
|
페스티벌 레이디 장윤주의 무대 | |
<슈퍼스타K3> 슈퍼위크 라이벌 미션에서 탈락한 박솔의 무대도 GMF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제겐 올해 GMF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페스티벌이고, 여러분은 제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관객이에요.” 박솔은 수줍게, 하지만 벅차 오르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때 락 음악을 틀어놓고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진짜 섰네요.” 그가 느끼는 처음의 설렘이 관객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무대에는 기타에 나루, 베이스에 서면호(Soran)가 함께 올랐다. 민트페이퍼 프로젝트 앨범
<cafe : night & day>에 담긴 곡 「저 잔에 담긴 물처럼」을 시작으로 마지막 곡 「너를 노래해」까지, 박솔은 30분 무대에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가을날 오후,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을 배경으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검정치마’, ‘자우림’, ‘페퍼톤스’, ‘넬’의 공연이 차례로 준비되어 있는 클럽 미드나이트 선셋 공연장은 입장하려는 관객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 서 있었다. ‘검정치마’의 공연이 매우 보고 싶었으나, 여기저기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이 펼쳐지는 축제의 장에서 마냥 줄만 기다리고 싶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패스. 메인 무대에서는 페스티벌 레이디 장윤주의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
전국민 떼창곡이 된 ‘아메리카노’를 열창하는 십센치 | |
그녀의 첫 번째 앨범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가수 장윤주는 정감 있고 소박하다. 광고나 사진 속에서 보여지는 도도한 모습과 다르다. GMF 포스터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상큼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장윤주는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가볍게 농담도 던지고, 팬들과 함께 「Fly away」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장윤주는 신곡을 들려주며, 내년 초에 새 앨범을 발표하겠다는 소식도 전했다.
어느덧 해가 졌고, 밤이 깊어지면서 페스티벌은 더욱 무르익었다. ‘자우림’, ‘십센치,’ ‘토머스 쿡’, ‘페퍼톤스’의 공연이 맞물려 있었고, 선택을 해야 했다. 올 해 페스티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토머스 쿡’을 만나러 수변 무대로 일찌감치 옮겼다.
‘마이 앤트 메리’ 소속이었던 정순용의 다른 이름. ‘토머스 쿡’은 이날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가 기타를 퉁기기만 해도 팬들은 환호했다.
“나 떴나봐.” 타이틀 곡 「솔직하게」를 팬들의 떼창으로 흐뭇하게 마친 ‘토마스 쿡’은 공연 내내 재치 있는 애드립으로 내내 객석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감미로운 노래와 위트 있는 그의 멘트가 기분 좋게 어울리는 자리였다.
|
가수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월간’ 윤종신 | |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월간’ 윤종신은 최근에 발표한 곡들로 공연을 시작했다. 페스티벌 무대에 오랜만에 선 그는 쌀쌀한 가을 날씨에 「팥빙수」를 앙증맞게 부르며 객석에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과거 그의 히트곡을 열창하는 그의 무대 앞에서, 우리는 가수 윤종신을 만났다. 이날도 윤종신 특유의 말발, 재치가 팬들을 사로잡았지만, 역시 예능인이기 이전에 그는 노련한 프로가수였다.
5년째 GMF에 초대받은 ‘페퍼톤스’는 이날 무대에서 신곡 2곡을 선보였고, 군 제대로 활동을 멈췄다가 3년 만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넬’도 화려한 컴백 무대를 팬들에게 선사했?. 감수성 결정체인 ‘넬’의 노래 때문일까. 3년을 기다린 팬들과 3년 동안 무대를 꿈꿔온 이들이 만난 이날의 마지막 무대는 짠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그간의 타이틀 곡, 수록곡을 부르는 동안 내내 떼창과 끊임없는 환호로 가득한 이들의 무대는 마치 드라마 마지막 회를 지켜볼 때의 뭉클함이 있었다.
◆ 2011 GMF와 함께 한 YES24 ◆
천고마비 가을 하늘 아래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GMF의 단독 예매처였던 YES24는 GMF 축제날, 직접 현장에 나가 관객들과 함께 했다.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에 마련된 YES24 부스에서는 1000원을 기부하고 원하는 책을 골라가는 기부행사를 진행했다. 이 날 현장에서 기부된 총 모금액은 31만원. 이 돈은 (재)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YES24 아트워크’ 이름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더불어 축제장 내에서 책을 대여할 수 있는 미니 도서관도 운영되었다. 축제가 진행되는 이틀 간 많은 관객들이 방문하여, GMF 관객들의 책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
23일_Sun: 이적, 스윗소로우, 김도향…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다
|
제1체육관에 마련된 클럽 미드나이트 선셋 무대 | |
23일에도 GMF에서만이 볼 수 있는 볼거리는 계속 이어졌다. 클럽 미드나이트 선셋의 오프닝 공연으로 ‘국카스텐’이 올랐다. 여느 음악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급으로 등장하던 강렬한 사이키델릭 밴드 ‘국카스텐’이 열두 시에 출연한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국카스텐’은 GMF 성격에 걸맞게 기존의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꾸려왔다.
“민트 해지고 싶어요.” 그야말로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무대. 강렬한 사운드 대신 어쿠스틱 특유의 리듬이 감칠맛 있게 배어든 그들의 노래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
모델 한혜진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칵스의 무대 | |
이어진 ‘칵스’는 클럽 미드나이트 선셋이라는 무대 이름과 걸맞는 화끈한 공연을 펼쳤다. 모델 한혜진이 게스트로 출연해, 클럽 음악을 배경으로 강렬한 포스의 워킹을 선보였다. 이어 ‘문샤이너스’, ‘데이브레이크’까지 제1체육관은 쿵쿵거림이 멈출 틈이 없었다. 밖에는 화사한 날씨와 잘 어울리는 ‘어반자카파’의 공연이 있었고, 어제보다도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88잔디마당에 꾸려진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 앞에 돗자리를 펼치고 음악과 데이트를 일석이조로 즐기는 커플들, 가족 관객들이 훨씬 눈에 띄었다.
|
아름다운 화음으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은 스윗소로우 | |
김도향, JK김동욱, ‘스윗소로우’, 이적으로 이어지는 슈퍼스타 라인업이 큰 영향을 끼쳤을 테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이자, 최근 활발한 TV 출연으로 눈도장을 찍은 가수들의 공연이 줄줄이 이어진 메인 무대 근처에는 돗자리를 깔욾두고 자리를 옮기지 않는 팬들이 많았다. 김도향은 CM송 메들리를, JK 김동욱은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경연곡을, ‘스윗소로우’와 이적 역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부른 노래를 열창해 팬들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누구나 한데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스윗소로우’는 곧 ?표될 새 앨범에 수록된 신곡을 2곡 불렀다.
|
가을밤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이적의 노래들 | |
한편, 두터운 골수 팬을 갖고 있는 ‘짙은’, ‘이한철과 엑기스’,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은 같은 시간 수변무대에 마련되었는데, 일찌감치 팬들이 붐벼, 수변무대 입장 제한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날의 헤드라이너인 이적, ‘언니네 이발관’이 공연할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인」을 불러달라는 팬들의 성원에 잠깐 ‘레인’의 도입부를 부르던 이적은
“레인을 부르면 정말 비가 오기 때문에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공연의 후반부로 갈수록 빗방울은 굵어졌다. 하지만 팬들 모두 쌀쌀한 날씨 속 떨어지는 빗방울에 동요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다행이다」 「달팽이」 「왼손잡이」 「하늘을 달리다」 등 빗속에서 듣는 그의 히트곡 라이브 무대는 비 오는 날씨에도 등질 수 없이 따뜻하고 흥겨운 무대였다.
음악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GMF. 이틀 동안 음악만 듣고, 음악만 생각하던 짧고도 긴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좋은 공연들이 시간이 겹쳐 안타까웠고,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번잡했던 것도 사실이다. 페스티벌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이었던 만큼, 페스티벌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 있던 자리였다.
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서, 여느 때보다 가까이 만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처음 만나 특별한 기억을 안겨준 아티스트들도 많았다. 누구나 돌아가는 길에 각자 자기만의 특별한, 무대, 특별한 노래 한 곡을 안고 갔을 것이다. 아티스트도 관객도 이곳에서 만든 추억의 힘으로 흩어졌다가 내년 이 맘 때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