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알랭 드 보통, 종교를 주목한다
이 책은 종교에서 보다 독단적인 측면을 제거함으로써, 골치 아픈 이 행성에서의 우리의 유한한 생애 동안에 가뜩이나 회의적인 현대인이 마주쳐야 하는 재난과 슬픔에 대한 시의 적절하고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측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 책은 이제 더 이상은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현명한 것들을 구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 20) |
알랭 드 보통은,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종교를 종교인만의 것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좋은 요소들을 어떻게 무신론자의 삶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그는 흥미로운 제안을 시도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저자 알랭 드 보통이 신간 출간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신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지 않지만, 성당이나 절의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어떤 종교적 의식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무신론자를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서구 사회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종교는 이성적이지 못한 것,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공격적인 무신론자가 늘어났다. 하지만, 종교란 다시 한번 돌아볼 가치가 있고, 현대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책에서 열 가지 분야를 나누어 기독교, 불교, 유대교를 독해한다. 여러 가지를 논하고 있지만, 그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종교에서 교육, 공동체, 예술을 다루는 방식이다.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은 반대할 수 있지만, 종교가 신도들을 교육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종교는 현명하게 인간은 잘 잊어버리는 존재라는 데에서 교육을 시작한다. 그래서 반복적인 학습 구조를 가지고 있다. 1년의 스케줄을 가지고, 일년 중 특정한 날에는 특정 사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교육시킨다. 세속사회에서는 언제나 새 것이 좋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아이디어, 진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또한 종교는 특정 의식, 의례를 통해 진리를 체화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점도 놓치지 않는다.
“종교는 인간이 두뇌와 육체로 되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육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선불교의 다도가 그렇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몸을 쓰는 행위다. 차를 마시면서 철학적 고찰을 심화시킨다. 종교는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생각뿐 아니라 신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 작가의 대표작들 >더불어 예술을 바라보는 방법도 종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종교에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종교적 신념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다. 신앙인이 어떤 박물관에 가면, 거기서 아름다움뿐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종교적 진리는 그 대상을 떠나, 어쨌거나 인간이 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일반적 박물관이 부여하는 아트에 대한 의미보다 종교적 예술은 훨씬 심오한 의미를 갖게 된다.”그는
“종교란, 무척이나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종교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며 웃었다.
“종교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빌려서 우리 사회와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써보는 게 어떨까.” 지난 9월 서울 태평로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알랭드 보통이 기자들과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종교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많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인상이 어떤가? 한국에 대한 인상은 정말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한국 사람들이 내 책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즉시 한국 사람들을 내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했다.(웃음) 한국은 잘 모르지만,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냈다는 민족성, 그들의 용기에 감탄했다.
영국인 시각으로 봤을 때 한국 사회 전반이 활력 넘치고 흥분감에 차있는 듯 하다. 결속력, 단결력이 느껴졌다. 한국 사회라고 왜 문제가 없겠느냐마는, 나는 여행자 입장이기 때문에,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살면 내 인생이 좀더 나아질 것 같고, 미래가 밝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관련된 책을 읽어봤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접해봤나? 전세계 독자와 마찬가지로 베스트셀러인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책 자체도 즐겁게 읽었지만 그 책에서 표현되는 한국 사회에 주목해서 읽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 속에서의 삶 자체, 공예, 도자기, 건축, 그리고 문화다.
국가관에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물건이 오가는 무역 위주였다면, 이제는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시대가 왔다. 이 시대에는 단일 강대국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책, 아이디어 등의 문화 상품이 활발하게 교류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방문할 때, 컴퓨터나 자동차가 아니라 책을 들고 와서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웃음)
세속적 유태교 집안에서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고 들었다. 이 점이 종교에 더욱 관심을 갖게 했나? 우리 집안에서 종교는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조롱의 대상이었다. 신을 믿는다는 건 바보다. 지성인이라면 과학을 신봉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자라고 보니, 이런 태도가 오히려 지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무신론자지만 종교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아가페 식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식당에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자고 했다. 그걸 당신에게도 질문하고 싶다. 당신이 가장 후회하는 일은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얘기하면, 질문을 한 당신도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웃음)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내가 건축가가 못된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들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구나. 나의 무능함을 일깨우게 된다. 예전에는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사람들이 두렵고 부럽고 질투가 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감정에 시름하지 않나?(웃음)
책에서 그런 질문을 하자고 한 건 이유가 있다. 그룹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때, 흔히 하는 질문들은 지루하다.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냈어요?’ ‘그렇지 뭐.’ 이런 얘기들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 요즘 죽을 것 같아. 무서워 죽겠어. 나 지금 방황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나도 그래. 나도 두려워’라고 얘기할 것이다. 이 때 교감의 가능성이 열린다. 모두가 ‘나 잘났어. 잘 지내고 있어.’라는 얘기만 하면 우정의 분위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는 솔직하게 뱉어내고 시인하는 분위기를 잘 만든다. 그 점을 빌려보자는 거였다.
종교의 측면을 형식적으로 가져올 수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지 않을까? 종교의 근원적인 것은 초인적인 존재와 그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이 종교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만들어낸다. 그런 것은 어떻게 빌려올 수 있을까? 그런 경건한 경험은 꼭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주를 떠올렸을 때, 무엇인가 나보다 더 크고 오래된, 영원한 개념을 가진 대상을 생각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정말 작은 존재구나 그런 느낌은 누구나 있잖나. 그런 걸 종교는 정말 잘 활용하고 키워온 것이다. 인간의 무력감을 통해 거대한 존재에 대한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점은 보편적으로, 생리학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