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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여자, 도박을 하나의 화폭에 담다

영원한 보고,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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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하나의 상징이다.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무래도 루브르이다. 파리 여행자들에게 물어봐도 꼭 방문할 곳으로 에펠탑과 루브르가 빠지지 않는다.

루브르는 하나의 상징이다.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무래도 루브르이다. 파리 여행자들에게 물어봐도 꼭 방문할 곳으로 에펠탑과 루브르가 빠지지 않는다. 루브르는 박물관을 넘어서서 파리를, 혹은 유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루브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입장객들이 찾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일 년 내내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중앙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 근처에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유리 피라미드가 처음 건설되었을 때는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조롱을 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밍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영원불멸한 루브르의 상징이 되었다. 밍페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돌로 되어 무겁고 죽은 자들을 위한 건물이지요. 나의 피라미드는 가볍고 생명 그 자체입니다.” 나폴레옹이 개선문과 마들렌 성당을 세우면서 자신의 치적을 알렸듯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도 자신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건축물을 세웠다. 미테랑 시대의 산물이기도 한 유리 피라미드는 이제 영원성을 띠게 되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유리 피라미드

고대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는 38만 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3만5천 점 정도가 전시되고 있기에 루브르를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속성으로’ 보더라도 꼭 그 앞에 가야 한다는 욕구를 가진 예술품은 세 점이다. 흔히 루브르의 3대 걸작이라고 불리는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나 「모나리자」 앞은 사람들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아예 그림 근처에 갈 수도 없게 만들어놓았다. 과히 크지도 않은 초상화를 둘러싸고 군중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도 항상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계단을 지키고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보면서도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통보다도 더 붐비는 혼잡함 때문에 예전에는 ‘가능한 한’ 루브르에 가지 않으려 들었다. 방대한 공간은 다리가 아플 정도고, 미술품과 군중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브르를 보지 않고서 파리를 봤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리품을 팔더라도 하루는 날을 잡아야 한다. 요즘은 루브르에 갈 때면 아예 하루를 빼놓고 움직인다. 아침 일찍 부산을 떨면서 한 바퀴 둘러본 후, 점심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와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쉬다가 다시 ‘관람 전투’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오전에 끊은 티켓은 오후에도 사용할 수 있다. 루브르를 둘러볼 하루 정도는 일정을 짤 때 미리 예상해두는 게 낫다. 장기전에 돌입해야지, 단기전으로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않으니까.

루브르는 정말 넓다. 한참을 걷다가 스페인 회화관 쪽에서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카루젤 개선문이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한 구역을 정해놓고, 심도 깊게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 미술만 보든, 르네상스 미술이나 북유럽 구역만 정해놓고 보더라도 다른 여느 미술관 못지않은 컬렉션을 자랑하는 게 루브르다.

루브르라는 명칭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최초의 파리는 시테 섬 안에 세워진 도시였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왕궁 및 성곽을 축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2세기부터 루브르 일대에는 요새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숲이 있고 늑대들이 돌아다니던 지역이라서 늑대를 뜻하는 ‘루’(loup)라는 어원에 대한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대하기도 했던 ‘르네상스 왕’ 프랑수아 1세 시대를 거치면서 루브르는 왕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며느리이자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데 메디치는 루브르에서 신교도 학살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설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 동쪽 입구.
가운데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유리 피라미드가 보인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신격화시켰던 루이 14세는 신전이나 다름없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했고, 파리 근교로 왕궁을 옮겨버린다. 프랑스 왕정의 절정기에 루브르는 오히려 잠시 버림받은 공간이 되고 말았다. 루브르가 박물관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과거의 왕궁이었던 공간을 시민을 위한 박물관으로 바꾼다는 것부터가 상징성을 띠고 있었다. 루브르는 이제 소수 왕족의 소유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1793년 537점의 회화와 184점의 예술품들을 전시하면서 루브르는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세잔은 이런 말을 남겼다. “루브르에는 모든 것이 있으며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루브르의 세 날개 중의 하나인 드농관의 일부가
유리 피라미드 뒤로 보인다.

루브르는 직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각각의 날개들에는 재상이었던 리슐리외와 쉴리, 루브르의 초대 관장이었던 드농의 이름을 붙였다. 서쪽은 뻥 뚫려있다. 튈르리 공원 자리에 있던 튈르리 궁전은 1871년 파리 코뮌 시절에 불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루브르 일대에 새옹지마가 되었다. 파리 중심부에 튈르리 공원이라는 거대한 녹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선사해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튈르리 공원 입구에 있는 아담한 카루젤 개선문의 연장선상에는 개선문과 라데팡스의 개선문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람들의 홍수에 휩쓸리다 나온 후,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파리의 하늘이 시원하게 트여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1.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
(The Battle of San Romano), 1455년경, 182*317

한때 원근법이 ‘만병통치약’이던 시절이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을 화폭에 묘사하기 위해 골몰했다. 그 중에서도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는 원근법을 신봉했으며, 주인처럼 섬겼다. 파올로 우첼로는 피렌체의 ‘국부’ 코시모 메디치의 주문을 받고 「산 로마노 전투」 연작 세 점을 그렸다. 이 세 점의 그림은 피렌체의 우피치, 런던의 국립 미술관 그리고 루브르에 각각 나누어서 소장되어 있다. 하나의 연작이 이처럼 정확히 삼등분된 것처럼 전 세계 미술관을 대표하는 미술관에 ‘딱 한 점씩’ 걸려 있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루브르에 있는 작품은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미켈레토 다 코티뇰라가 이끄는 지원군까지 도착하면서 피렌체가 시에나에 승리를 거두는 광경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하학적인 형태가 주는 힘을 느끼게 된다. 사방으로 뻗은 긴 창들이 중앙을 향해 하나로 몰려드는 착시현상을 체험하는 것 같다. 다른 연작들에 비하면 창이 주는 다양한 각도와 힘이 넘친다.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를 보고 있으면 세월을 넘어서 벨라스케스의 「브레다 요새의 항복」(프라도 미술관 소장)이 떠오르곤 한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빈치, 「암굴의 성모」
(Virgin of the Rocks), 1483~86, 199*122

「암굴의 성모」가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전시실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되니까. 루브르와 영국 국립 미술관 양쪽에 두 가지 버전의 「암굴의 성모」가 있다. 시기적으로 먼저 그려진 작품은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두 그림을 놓고 보면 루브르 버전이 훨씬 더 신비롭다. 런던 버전은 색조가 선명한데 비해서 루브르 버전은 어스름한 색채로 은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암굴의 성모」는 천정이 높고 밝은 거대한 회랑, 그랑드 갈르리(Grande Galerie)의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다빈치의 다른 그림들도 있지만 「암굴의 성모」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림 자체는 어둡고 신비스럽다. 무언가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가볍게 들어 올린 손끝은 우아하게 서로를 이어준다. 성모와 아기예수는 이집트로 피신하던 중에 세례 요한과 만났다고 한다. 황야를 상징하는 바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어둑한 동굴 속에서 경이로움과 조우하는 것 같다. 인물들 아래 피어있는 야생화까지 보면 종교적인 경건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됨을 느끼게 된다.


3. 파올로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

파올로 베로네제, 「가나의 결혼」
(The Wedding Feast at Cana), 1563, 677*994

「가나의 결혼」은 루브르의 위용에 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의 그림이다. 루브르에서도 가장 크다는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의 그림은 벽면 한쪽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가나의 결혼식에서 첫 기적을 행했다. 혼례식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포도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베로네제의 화려한 그림과 어울리지는 않는 내용처럼 여겨진다. 베로네제는 성서의 이야기를 세속적인 베네치아의 풍경과 결합시켰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더욱 화려하다. 당대의 거장 티치아노, 황제 카를 5세,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물론이고 술탄 술레이만까지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물들은 교류가 왕성했던 베네치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서 여주인공 제르베즈는 일행들과 함께 루브르를 관람한다. 제르베즈는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을 보면서 무엇을 그린 그림이냐고 묻는다. 액자에 주제를 적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결혼식 풍경에 웃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의 표정만 놓고 보면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더 가까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림 앞에 서면 사이즈만으로도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4.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

카라바조, 「성모의 죽음」
(Death of the Virgin), 1604~06, 369*245

거장으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주문받은 그림을 수시로 퇴짜 맞았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3~1610). 그의 자자한 악명에 걸맞게 교회에 설치되자마자 철거당한 그림이 「성모의 죽음」이다. 이 그림에서 성스러움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죽은 마리아도 실제 매춘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당대의 종교적 분위기에서 카라바조의 이런 뻔뻔스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을 연상해 보면 카라바조야 말로 누구보다도 작품세계에 있어서 자기 소신이 뚜렷한 화가가 아니었나 싶다.

성모는 맨다리를 드러내고 있고, 발 아래쪽으로는 시신을 닦는 물이 든 대야까지 놓여있다. 그것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카라바조는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경건함을 무시했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망 속에서 숙연해진다. 성모가 아니라 어느 누가 죽었다고 해도 이런 풍경헭라면 비통함을 느낄 것 같다. 카라바조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해서 종교보다도 더 깊은 비애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5.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사기꾼」

조르주 드 라 투르, 「사기꾼」
(cheater with the ace of diamonds), 1635년경, 106*146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의 주인공은 유럽 궁정을 누비면서 도박판을 벌인다.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사기꾼」을 보면 「배리 린든」이 연상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기꾼」은 베스트셀러였던 책 『무서운 그림』의 표지 그림으로 쓰이면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무서운 그림』1,2,3편>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미묘한 빛의 세계를 포착한 화가이다. 그에 대한 복원작업은 1926년에 발견된 「사기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에 많은 화가들이 주제로 삼았던 여인의 술수에 속아 넘어간 방탕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사람들을 가장 경계하게 만들었던 술, 여자, 도박, 세 가지를 하나의 화폭에 담았다. 라 투르의 그림에서 조명은 대부분 그림 내부에 있는 촛불인 경우가 많다. 「사기꾼」에서는 외부에서 조명이 들어온다. 사기를 치고 있는 왼쪽의 젊은이만 얼굴이 그늘 속에 있다. 그는 허리춤에서 몰래 카드를 꺼내고 있다. 오른쪽에 멍하니 앉아있는 젊은이가 이 게임의 희생자이다. 중앙에 앉은 화류계 여자도 사기꾼과 공모하고 있는 듯하다. 꽉 짜인 인물들의 배치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듯하다.

루브르 3층 쉴리 관 30번 전시실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방이다. 다른 그림들은 촛불로 은은한 빛을 발한다. 요즘 루브르에 가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6. 렘브란트의 「이젤 옆에 있는 자화상」

렘브란트, 「이젤 옆에 있는 자화상」
(Self Portrait at the Easel), 1660, 111*90

파이돈(Phaidon)에서 출판된 『렘브란트의 그림들』이라는 책을 보니 자화상만 62점이다. 이게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자화상 전부인지는 모르겠다. 63살의 생애를 살았으니 매년 한 점 정도 자화상을 그린 셈이다. 그래서 어느 화가보다도 그의 모습은 낯익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면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눈이 점점 멀어가는 미셸(줄리에트 비노쉬)이 루브르로 몰래 들어가서 촛불에 의지해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는 장면이었다. (루브르 관내로 들어갈 때는 「메두사 호의 뗏목」 아래로 나온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 아주 자그마한 빛의 차이로도 그림의 톤이 완전히 바뀜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미셸이 보는 자화상은 (책에 실린 62점 중에서는) 렘브란트가 화구를 들고 그린 두 점의 자화상 중 하나다. 나름 성장을 하고 그린 다른 자화상에 비하면 화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거 같다. 미셸은 그런 렘브란트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려 했던 것일까. 미셸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할 지라도, 루브르에서 「이젤 옆에 있는 자화상」을 볼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림 하나에 삶을 기대는 미셸의 마음을 얼마간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7.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레이스 짜는 여인」
(The Lacemaker), 1669~70, 24.5*21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은 겨우 30여 점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 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보니 베르메르 두 점은 미술관 한 군데에서 만나게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천문학자」는 「지리학자」와 짝을 이루어야 하지만, 루브르에서 「천문학자」와 마주 하고 있는 작품은 「레이스 짜는 여인」이다.

때로 대형 도록으로 보는 게 베르메르의 진품보다 클 때도 있다. 「레이스 짜는 여인」은 엽서 네 장정도 크기에 불과한 소품이다. 그림은 밝다.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과 달리) 오른편에서 빛이 들어온다. 여인은 레이스를 짜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실과 바늘, 구슬과 부딪치면서 반짝거린다. 빛은 물이 되어 흐른다. 빛을 받은 천은 실제 색깔보다 더 밝게 빛난다. 은은한 질감의 테이블보 위에서 실들이 서로 어우러져 색채의 춤을 춘다. 질감 자체가 빛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베르메르가 다루는 빛의 아름다움이며, 섬세함의 미학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에 몰두한 여인을 가만히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8.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621*979

1804년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성당을 찾았다. 그것은 국민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황제로 대관식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베토벤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전제정치가 막을 내린 후 혼란했던 시기를 극복한 나폴레옹을 존경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에 비유하면서 교향곡을 완성했지만 그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악보를 내팽개쳐버렸다. 그러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정반대의 지평에서 나폴레옹을 우상화하고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사실적이면서도 고전적인 기품이 넘치게 그려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꿈꾸었던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영웅적인 황제로 장엄하게 묘사한 것이다.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진 이 그림에는 화가 자신도 중앙 부분의 2층 좌석에 앉아 대관식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엄청난 크기로 위용을 자랑하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한 가닥 백일몽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나폴레옹도 결국에는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다비드의 권세도 내리막길을 걷고 만다. 그렇지만 루브르의 대형 홀을 장식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다. 역사가 누구의 편이었던 간에.


9.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 1818~19, 491*716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극한 상황. 절망의 끝을 바라본다. 잉마리 베리만의 영화 <수치>를 보면서도 절망감을 느꼈다. 시체들이 둥둥 떠 있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보트 한 척. 그런 이미지가 제리코(Theodore Gericault, 1791~1824)가 그린 「메두사 호의 뗏목」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영화 이상으로 극적인 이 그림은 실재했던 사건을 토대로 삼고 있다. 서아프리카로 운항하던 해군함선 메두사 호가 침몰하면서 150명의 선원과 승객들이 13일 동안 대서양을 표류했다. 결국 그 중 15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그 사이에 얼마나 아비규환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인간은 대범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메두사 호의 뗏목」은 가장 참혹한 상황에 빠진 인간의 절망과 고통을 다루고 있다. 몰려오는 먹구름, 바람을 안은 돛, 뗏목 위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지닌 인간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은 마치 라오콘 군상을 연상케 한다. 뗏목 뒤쪽에는 지나친 절망 끝에 초연해졌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듯한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 앞에 서면 그들의 고통이 몸을 만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한다.


10.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260*325

자유의 여신이 삼색기를 들고 있어서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가장 프랑스다운 그림을 꼽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포함시키게 된다. 아니, 그보다는 마치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포스터로 사용해도 너무나 어울릴 만한 분위기다. 들라크루아는 1830년 7월 혁명을 소재로 삼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다.

포연이 날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격정적이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힘차고 정열적이다. 총과 칼을 들고 쓰러진 시체를 넘어 진격하지만, 혁명이란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들 앞에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들라크루아는 대범하게 자유의 여신을 등장시키면서 이런 모든 상황에 희망을 존재함을 알리고 있다. 여신의 모습은 자욱한 포연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을 연상케 한다. 마치 한 편의 스펙터클한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낭만성으로 넘치는 혁명, 바이런의 시를 장렬하게 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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