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눈망울의 그녀를 보다
모네의 시력과 함께 흐릿해지는 연꽃의 형체, 미술기법의 새 지평을 열다! - 테이트 모던은 역동적이다.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상설 전시 외에도 대형 기획전이나 새로운 작가에 대한 소개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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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런던을 상징하는 분위기는 부정적이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고딕 호러처럼 음산하거나 「셜록 홈스」처럼 안개로 가득 찬 도시였다. 템즈 강은 공해로 뒤덮였다. 그러던 런던이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스모그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는 상징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패션, 미식,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 다 낡아빠진 발전소 건물을
이렇게 현대적인 미술관으로 바꾸어 놓다니!

런던의 긍정적인 변화와 맞물려서 테이트 모던을 연상해 보면 그 모든 과정은 보다 구체성을 띤다. 과거의 공해에서 현재의 문화라는 측면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게 극적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테이트 모던은 원래 발전소 자리였다. 2차 대전 직후 런던 시내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화력발전소 뱅크사이드였다. 그러나 공해 문제로 인해 발전소는 외곽으로 이동했고, 1981년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문을 닫았다. 소장 작품 수가 너무 많아서 전시에 애를 먹고 있던 테이트 갤러리 측에서는 영국 정부와 협의 하에 흉물이 된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스위스의 건축 회사 헤르초크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를 맡은 공사는 90년대 내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2000년 5월 12일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기에 이른다. 밀레니엄을 자축하는 행사라 할 만 했다. 20세기 초반 파리가 현대 미술의 중심지였다면,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중심으로 떠오른 곳은 대서양 너머 뉴욕이었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과 동시에 런던을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부각시켰다. 그것이 런던 최악의 상황, 공해를 유발하던 발전소 자리라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면서 테이트 갤러리는 여러 미술관의 총합체로 ‘확대 재생산’ 되었다.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로 이름이 바뀌면서 20세기 이전의 고전 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테이트 모던은 이름에 걸맞게 20세기 이후의 미술품만을 전문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는 사조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중시하고 있다. 20세기 미술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풍경이나 정물, 혹은 입체파나 미래파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설정해서 현대 미술 경향의 다양한 맥락을 느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상설 전시실의 이름을 보면 그런 의도가 와 닿는다. ‘Material Gestures’, ‘Poetry and Dream’, ‘Energy and Process’, ‘States of Flux’ 같은 이름으로 전시 공간을 나눈 후 서로 다른 시대의 작가들까지 포괄해서 전시하면서 공통된 흐름과 더불어 다채로움을 만나게 한다.

현대 미술을 접하다 보면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든다면 테이트 모던 나들이는 자칫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20세기 미술이 지닌 추상성이라는 속성과 부딪쳐야 한다. 시각적으로 풍요로운 작품을 편하게 바라보는 게 우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친숙해진 후 관심이 가는 작품은 다시 감상하다 보면 현대 미술과 가까워지게 된다. 해석하다 보면 미궁으로 빠져들지만, 색이나 느낌, 이미지를 편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현대 미술과 친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트 모던의 서점. 드러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확대해서 붙여놓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테이트 모던은 역동적이다.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상설 전시 외에도 대형 기획전이나 새로운 작가에 대한 소개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전시실도 수시로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현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피카소와 베이컨의 작품이 같은 전시실에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모네와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추상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2010년 사망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들도 많이 걸려있다. 이처럼 테이트 모던은 과감한 시도를 그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각종 발전설비가 들어차 있던 거대한 공간은 자칫 휑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테이트 모던은 높은 천정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웅장한 현대의 신전으로 변모했다. 투박하고 육중했던 발전소 건물이 지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특히 야간에 템즈 강에서 바라보는 미술관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99미터가 되는 굴뚝에 반투명 패널을 설치해서 등대처럼 빛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 미술이 가야할 지표를 가르쳐주는 것처럼.


1. 클로드 모네의 「수련」

클로드 모네, 「수련」(Water Lilies), 1916, 427*200

나이가 들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다양한 수련 연작을 그렸다. 연못과 꽃은 점점 형체를 잃어버리고 색채의 변주만을 통해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아갔다. 그래서 모네의 후기 작품에서는 추상 표현주의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20세기 미술이 지향하는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후기 모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모네의 수련은 칼라만으로도 모든 느낌을 전달한다. 잭슨 폴록이나 마크 로스코가 그린 그림을 같이 놓고 보면 모네가 얼마나 선구자적인 길을 열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폴록과 로스코의 그림도 같은 전시실에 걸려있다. 모네를 느끼면서 폴록과 로스코까지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2. 프란시스 베이컨의 「앉아 있는 인물」

프란시스 베이컨, 「앉아 있는 인물」(Seated Figure),
1961, 165.1*142.2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가일 것이다. 세계 각국의 미술관을 관람하다가 그의 그림과 마주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할 때도 있고,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 존재의 절망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봐도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일그러지고 뭉그러진 인간의 얼굴은 막막한 현실 앞에 선 인간의 처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다. 작년에는 베이컨과 피카소가 같은 방에 걸려 있었다. 지금은 「앉아있는 인물」과 아니쉬 카푸르(Anish Kapoor)의 작품이 같은 전시실에 있다. 하나의 그림은 어느 그림과 같이 걸려 있느냐에 따라 느낌은 조금씩 달라진다. 절망을 심화시키기도 다른 느낌의 그림을 보면서 이해도를 높게 만들기도 한다. 현대 미술은 작품의 완성됨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떻게 전시를 꾸미느냐에 따라서도 무척 다른 인상이 남게 만든다.


3. 파블로 피카소의 「세 명의 댄서」

파블로 피카소, 「세 명의 댄서」(The Three Dancers),
1925, 215.3*142.2

테이트 모던에서 가장 유명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작품은 「세 명의 댄서」일 것이다. 2미터가 넘는 꽤 큰 그림이라서 그 앞에 서면 압도당하게 된다. 같은 방에 피카소와 베이컨을 마주보게 해서 걸어놓았을 때는 전시실 안의 에너지가 엄청난 힘으로 충돌하는 느낌을 받았다. 「세 명의 댄서」가 관람객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림 안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다. 「세 명의 댄서」는 삼각관계를 연상케 한다. 피카소는 사랑 때문에 자살한 친구를 회상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인물들의 얼굴은 아프리카 조각과도 같은 원초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그들이 추는 춤은 사랑과 죽음, 질투가 엇갈리는 듯하다. 광란의 춤은 죽음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불길해 보이기도 한다.


4. 조르조 데 키리코의 「시인의 불확실성」

조르조 데 키리코, 「시인의 불확실성」
(The Uncertainty of the Poet), 1913, 106*94

그림과 시의 세계는 어떻게 다를까.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그림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그림은 환상적인 시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키리코의 그림을 볼 때마다 상상력은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그리는 광장은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실재와 허구가 하나의 공간에서 만난다. 그것은 마법과도 같다. 광장에는 세 가지 오브제가 있다. 가까이 아프로디테의 조각상과 바나나들이 있고, 멀리 지나가는 기차가 보인다. 이런 것들이 순서대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병렬적으로 존재하면서 비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왜곡된 사물들이 기이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꿈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태곳적 어디론가, 무의식의 세계로. 거대한 공간, 과거와 현재의 것들, 상상력으로 쫓아가다가 가끔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5.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소녀의 초상」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소녀의 초상」(Portrait of a Girl),
1917, 80.6*59.7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의 내면에는 어떤 슬픔이 잠재해 있었을까. 천재적인 실력을 지녔으나 병약했고, 몽마르트르에서 가난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삶은 슬픔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닐까.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그림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같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인물의 형태가 길어지면서 왜소한 느낌은 깊어지고, 고독은 더욱 심화된다. 거기에서 슬픈 눈망울을 바라본다. 그녀의 긴 목을 본다. 노천명의 「사슴」처럼 ‘모가지가 길어서 슬프다’는 표현을 절감하게 된다.


6. 페르낭 레제의 「나뭇잎과 조개」

페르낭 레제, 「나뭇잎과 조개」(Leaves and Shell),
1927, 129.5*972

페르낭 레제(Joseph Fernand Henri Leger,1881~1955)는 다재다능했다.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도 만들었다. 「발레 메카닉」 같은 단편영화는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전시실에서 지속적으로 상영되기도 한다. 그는 영화를 비롯해서 과학 기술의 발전과 기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래서 마르셀 레르비에 감독의 「비인간」 같은 아방가르드 영화에서는 세트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그렇게 페르낭 레제는 기계와 예술 사이의 결합을 추구했다. 자연의 대상들은 축약된 형태를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것은 때로 단순화된 기계의 이미지와도 유사하다. 레제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친근함 느낌이 든다. 형태에서도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살린다. 유선형의 부드러운 선들이 눈앞에서 발랄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다.


7. 앙리 마티스의 「달팽이」

앙리 마티스, 「달팽이」(The Snail), 1953, 286.4*287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밝고 화사한 색채의 향연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지만 상황을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나이가 들면서 암과 황달 같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티스가 시도한 것이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cutout) 작업이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업들을 마티스는 84세의 나이에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해나갔다. 아직도 식지 않은 예술혼이 가위로 자르고 밝은 색깔 색종이들을 붙이면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정리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외면적으로는 화사함이 느껴지지만 내면적으로는 예술을 향한 집념이 느껴지는 것이다. 예술가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바로 「달팽이」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 예술가는 아이의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8. 알베르토 자코메티 「베니스 여인 IX」

알베르토 자코메티, 「베니스 여인 IX」(Venice Woman IX), 1956, 113*16.5*34.6

‘저주받은’ 극작가 장 주네는 가장 가까이서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작업을 관찰했다. 그는 자코메티가 가장 순수하게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도 함께 하지 않는 상태의 대상 그 자체. 그 완전한 고독 속의 대상’을 창조하고 있다고 보았다. 자코메티는 195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를 받으면서 10개의 여인 조각 「베니스의 여인들」을 만들었다. 베니스와 관계없는 여인들이지만 비엔날레를 위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다소곳해 보이는 작품이다. 호리호리한 육체, 자그마한 머리는 약간 상단을 바라보는 것 같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발은 좌대에 박혀있다. 그녀는 생명력이 넘친다. 20세기의 불안과 고독 속에서 그녀는 고독하지만 개인적인 제의를 통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가냘프지만 아름답다.


9.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와암!」

리히텐슈타인, 「와암!」(Whaam!), 1963, 172.7 x 406.4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어린 아들은 미키마우스를 보다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릴 수는 없을 거야!” 그 말에 자극받은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식의 전환은 이처럼 우연한 데서 출발했다. 테이트 모던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그림 「와암!」은 팝 아트의 대중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싸구려 코믹스의 한 장면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동네 극장이나 만화방의 장식처럼 걸려 있다.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황당한 그림을 통해서 현실에서 초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앤디 워홀과 더불어서 상업적인 것을 이용해서 예술적인 것으로 재창조해내는 리히텐슈타인의 식견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하게 생각지 않아도 재미있다.


10.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

야니스 쿠넬리스, 「무제?(Untitled), 1979, 360*500

종종 「무제」는 가장 무책임한 제목이라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무제’라는 제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 작품은 ‘Poetry and Dream’ 섹션의 첫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같은 전시실에는 키리코의 「시인의 불확실성」 같이 걸려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는 모두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신화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공존시키는 모습에서도 그런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두 작품을 통해서 20세기 미술이 키리코와 같은 회화의 형태에서 쿠넬리스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1936~)처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변형시키는 작업까지 어떻게 이를 수 있는 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쿠넬리스도 키리코처럼 도시 혹은 광장과도 같은 넓은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새 두 마리가 죽은 것처럼 벽에 꽂혀있다. 후기 산업사회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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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1.19

현대미술, 추상화 같은 거 사실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냥 알록달록하고 예쁜 풍경화같은 게 좋던데. 예술치이기도 하고. 요즘 현대미술전해서 하는 걸 보면 참 예술이라는 게 뭔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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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1.12.06

조르조 데 키리코의 다른 작품에도 보면 (제목은 생각이 안나요),넓은 광장에 아치형 문이 있고 소녀가 달리고 있었는데,느낌이 비슷하네요.전 아직 현대미술에는 석 감동을 못받는것 같아요.좀 난해해서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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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ugi

2011.10.11

어떻게 전시를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글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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