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YES24와 KT&G 상상마당이 함께하는 향긋한 북살롱의 주인공은 출간 여섯 달 만에 24쇄를 돌파하고 일찍이 영화화까지 결정된 소설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그리고 『7년의 밤』까지, 세 권의 장편소설을 통해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그녀가 독자와 만났다. 진행자로는 작가와 ‘쿵짝’이 맞는 씨네21 김용언 기자가 함께했다. 지금부터 그 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단, 대화 속에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따라가자.
김용언(이하 ‘김): 소설을 처음 펴든 날 밤, 책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먼저,『7년의 밤』의 공간이 궁금하다. 어떻게 이 마을을 구상했는가. 정유정(이하 ‘정’): 다른 인터뷰에서는 주로 모델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 마을에 피해를 갈까봐, 였다. 사실은 광주 근교에 있는 주암댐이다. 그 근처에 사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S시는 순천이다. 실제로 그 근방에 수몰된 마을이 있다. 마을의 지형도는 해당 마을에 기본적인 지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예전에 주암댐이 막 생겼을 때, 새벽에 차를 몰고 가면 차가 커브길을 제대로 돌지 못해, 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안개가 낀 날은 가시거리가 2미터도 되지 않는다. 소설을 쓰다가, 무서운 장면을 써야 할 테면 남편을 졸라서 주암댐으로 갔다. 남편도 가는 길에 긴장을 한다. 그런 기운이 떨어지지 않도록(웃음) 꾸준히 보충을 하면서 썼다.
김: 소설 시작하기 전에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스케치를 몇 장이나 했을지 궁금하다.정: 많이 하는 편이다.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스케치북으로 3권 정도. 초고를 들어가기 전에는 작은 스케치북에 다시 그린다. 스케치를 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그림 솜씨가 좋겠거니 짐작을 하는 데 그렇지 않다. 오해다. 전혀 못 그린다. 수채 색연필을 최근에 알게 되어서 테두리를 그리고 물로 채색하는 방법을 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색연필을 놓지 못하겠더라(웃음). 다음 작품은 좀 더 발전된 지도를 가지고 오겠다.
김: 독자 사이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거 같다. 그만큼 인물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정: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인물은 주인공인 최현수이다. 할 일을 다 하고 죽었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인물은 강은주이다. 억센 인물이다. 단순한 억척 아줌마가 아니라 자기 운명과 투쟁하는 인물로 비춰지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인물의 겹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순들이 겹겹으로 있어야 캐릭터가 입체감이 생기는데, 계속 억척스러운 분위기만 나왔다. 6개월쯤 되니, 마침내 은주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은주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나니 그녀가 이제 더 큰 힘을 가지려고 하더라. 괴로웠다. 마지막까지 속을 썩인 인물이 강은주이다.
김: 은주의 죽음은 타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생명력이 넘쳐흘렀던 여자가 죽을 때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야기되니 의심이 되더라.정: 은주의 장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했다. 은주의 이야기를 보다 많이 보여주리라 생각했는데 타자에 의해 전해지는 게 낫겠다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너무 피로도가 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 계속 격투장면이 나오지 않나. 상상에 맡기기로 했다.
김: 승환이란 인물에 대해서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더라. ‘최현수 혼자만으로는 오영제를 대적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서원이가 필요하고, 또 다른 한 명이 필요하다.’ 정: 사실 승환이란 인물의 개연성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소설의 구조적인 면에서 필요했다. 소설이 시작될 때는 한 인물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뭔가를 원하고, 다른 이가 그걸 저지하는 것. 이게 소설의 최소 공배수이다.
오영제와 최현수가 대적하니 계속 공회전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엔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칙적인 어떤 것. 보조 엔진이 필요했다. 잠수와 관련된 자료 중, 119가 없을 당시 한강에서 익사체를 수색하는 이들을 악어라고 했다는 내용을 찾았다. 악어족의 금기가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술을 마시고 들어가지 않는다. 두 번째는 비 오는 밤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서있는 시신을 건드리지 않는다, 였다. 과학적으로 시신이 서 있을 수도 있으나 귀신이라고 생각해, 악어족은 그걸 건드리지 않고 나온다더라. 그 시신을 건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김: 최현수가 쓴 수수밭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정: 어려서 평야지역에 살았다. 어떤 곳은 비옥해서 벼도 심고 그랬지만 내가 자란 곳은 수수밭이 있었고 깊은 우물이 있었다. 어른들이 그곳으로 가면 물귀신이 잡아먹는다고 가지 못하게 했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을 믿었다. 믿으니까, 가고 싶어지더라(청중 웃음). 낮에만 가보고, 밤에 가보지 못한 게 한이 된다(웃음).
김: 야구와 고양이를 좋아하나. 정: 일을 끝내면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다. 사료를 가방에 넣고 골목을 몰래 돌아다닌다. 몰래 접선을 한다. 이제 고양이들도 나의 존재를 알아챈다. 밥을 주고 산을 올라간다. 거기에 상주하는 들고양이들이 있다. 그 고양이들이 마지막 손님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없앴다. 오전에는 메이저리그를 보고 낮에는 국내야구와 일본야구를 보고 저녁에는 스포츠뉴스를 봤을 정도로 야구광이다(웃음). 그러다 보니 텔레비전을 없앴다. 그러던 요즘에는 다시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청중 웃음). 마약보다 질기다. 요즘은 이승엽 선수가 잘해서 행복하다.
김: 소설 세 편 모두, 소설의 클라이막스 부분이 주는 쾌감이 정말 크다. 작가께서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생각할 때 클라이막스 부분부터 시작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가.정: 소설의 시작과 끝이 나오지 않으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한다. 시작과 끝을 만들어놓고 직선으로 가든, 꼬아서 가든 이야기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인물이 그곳을 향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초고를 쓰고 나면 다시 거꾸로 쓴다. 초고가 완성된 후 1년에 걸쳐 수정을 하는데 이때는 순차적으로 봤다가 역순으로 본다. 어느 부분이 맺어져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정리한다. 결말이 정해지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김: 세 편을 관통하는 주제가 ‘자유의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중 『7년의 밤』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같다. 소설의 인물은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하게 만든다. 정: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 선택을 하도록 저주를 받았다’ 선택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형수에게 남아있는 자유의지는 내가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 아니겠나. 나는 이런 자유의지가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두 가지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이며, 두 번째는 그 것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이다.
자유의지가 발현된 것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자유의지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내 심장을 쏴라』. 이 자유의지를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것이
『7년의 밤』이다. 소설의 테마를 잡을 때, 작가는 미완의 과제를 선택한다고 한다. 끝을 보고 싶어 하고, 어떤 식으로 형상화되는지 보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소설을 간단히 줄이면 ‘별 짓을 다하는 이야기’가 된다.
김: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젊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정: 글을 쓰겠다는 생각 자체가 본래 재주와 능력이 있으신 거 아닌가. 나도 공모전에 수도 없이 떨어졌다. 끝까지 쓸 수 있었던 건 동기였다. ‘나는 왜 쓰는가’를 공고히 해야 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 글을 쓰고 싶은가’ 후자라면 어떠한 역경에서도 버틸 수 있다. 사실 문학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결국 버틴 사람이다. 끈질기게 버티려면 ‘나는 왜 쓰는가’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버티고 견디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