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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작가특집②] 난폭한 환상으로 빚어내는 독특한 이야기 - 안보윤 작가

“당신의 소중한 것들,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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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만난 두 번째 청춘 작가는 81년생 안보윤 작가다. 2005년 『악어 떼가 나왔다』로 제 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평범했던 그 소녀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채널예스가 만난 두 번째 청춘 작가는 81년생 안보윤 작가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 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악어와 관계된 것에 편집증적으로 몰입하는 아이, 아이를 잃고 강아지에게 사랑을 옮겨가는 아이의 엄마, 미인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나 휜 다리를 비관하고 다리를 절단하는 얼짱 소녀 등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집약한 독특한 캐릭터와 거침없는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이었던 서영은 소설가는 “가공의 현실과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는 작가의 상상의 활력은 눈부실 만큼 매혹적”이라고 평했고, 류보선 문학평론가는 “코믹하면서 잔혹한 사건들이 읽는 이들을 비감에 빠뜨린다”“이처럼 높은 수준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묘파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질”이라고 평했다.

안보윤 작가는 이후 2009년 『오즈의 닥터』로 제 1회 <자음과 모음 문학상>을 수상한다. 『오즈의 닥터』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일까? 정신과 의사 ‘닥터 팽’에게 상담을 받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는 변형되고 번복된다. 밀도 있는 구성 덕분에 독자들 역시 ‘나’의 말을 들을 때마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머릿속으로 구성에 구성을 거듭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잘 짜인 한편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고수하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난 안보윤 작가는 어딘가 한층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올해 YES24에서 연재했던 「질주하는 검은 혀」를 마치고 머리카락을 잘랐단다. “아이들 사이에서 오해로 빚어진 복수극이었어요. 아이들 이야기라 그랬을까요? 그 무게가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어요.”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녀”였다. 20대 때, 그녀를 가르쳤던 박범신 소설가가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단다. 막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 그녀는 “조그만 회사 들어가서 3년 정도 적금 부어서, 2년 연애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러나 지금 20대를 돌이켜보면, “그저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해, 책상 앞에 앉아 줄기차게 써온 시간이었다”고 안보윤 작가는 말했다.

등단 6년 차. 상복도 많았지만, 고비고비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는 홀로 웅크려 있다가도 이내 큰 걸음을 내디뎌 다음 계단에 성큼 올라섰다. 사학과에 다니던 어린 문학 애호가는 어떻게 작가로 성장했을까? 웅크려 있는 동안, 이 젊은 작가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또 어떤 힘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연신 소녀 같은 미소를 터뜨리던, 청춘 미녀작가, 안보윤에게 물었다.


“환각이 보이는 상태로 좀 살면 안 되는 건가요?”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를 보면, 작가가 이야기를 먼 곳에서 가져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지가 강해서 얼핏 영화 같은 느낌이었고, 굳이 영화로 따지자면, 쿠엔틴 티란티노 같은 영화였어요. 작가님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소설 처음 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비슷한 얘기 많이 물어보세요. 혹시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적 있냐고요. 전 무난하고 평범하게 자랐어요. 그래서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어떤 틀에 갇혀 있어요. 제 소설에서 반복되는 주제인, 상처받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특히 심해요.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부서지는 게 싫어서, 소설 속에는 부서진 상황을 그려요. 그런 상황에 대한 경각심, 그런 메시지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되잖아요.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그걸 다 깨부순 다음에, ‘기억해봐. 예전에 그것 참 아름다웠잖아’라고 말하는 게 저의 화법인 것 같아요.


다리에 스스로 못을 박고, 토막 시체를 김장봉투에 담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이미지, 상상력은 어디에서 발화된 것인가요? 신문기사 등에서 소재를 취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일들이 썩 유쾌하지 않았을 텐데도 매혹을 느꼈던 까닭은 무엇인가요?

악어떼가 나왔다』가 출간됐을 때, 심사평이나 서평 대부분이 이야기가 잔혹하다는 얘기였어요. 사실 저는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 비슷한 일들을 뉴스에서 늘 겪어왔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런 폭력에 무뎌졌나 봐요. 영화나 대중매체들도 상당히 과격해졌잖아요. 처음부터 폭력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계속 쓰다 보니 글에 방향이 생겼어요. 저는 삶 자체가 폭력과 연동되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삶은 항상 폭력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소설에 폭력이 들어가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20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환상, 환각에 관한 소재가 많이 등장해요. 작가님의 『오즈의 닥터』에 환상에 대한 작가님의 입장이 드러나죠. 김종수의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환각이 보이는 상태로 좀 살면 안 되는 건가요. 현실이라고 해봐야 좋을 것도 없잖아요. 나는 도망칠 거예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이 정도가 어울려요. 죄책감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없는 이 정도가.”

어떤 독자 분은 ‘우리가 사는 것도 너무 힘든데 굳이 잔인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냐’고도 하세요. 하지만 과연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잔인할까요? 결코 소설이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제 각각의 환상 속에 빠져 살잖아요. 과연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깨우는 것만이 선의일까요?

제가 평소 부정적이라 환상을 긍정적으로 그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오즈의 닥터』를 쓸 때가 한참 힘들 때였어요. 꿈속에서 내 책을 사인해서 선물하는 꿈을 꾸다 깨곤 했는데, 깨고 나면 항상 억울했어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더라고요. 그때 (환상에) 좀 젖어 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소설 속에 그대로 나온 것 같아요.


80년대 생이라는 것은 작가님에게 혹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80년대 생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70년대와 다르게 우리 세대는 상당히 파편화되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뭔가 변할 것은 이미 변했고, 변해야 할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무력하고 정체된 시기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초등학교 때 겪은 88올림픽도 우리가 함께 해냈다기보다 어른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교육받고 세뇌 받았다는 느낌이 강해요. 항상 이전세대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주입 받았고, 이후에 뭔가 바꾸기에 우리는 나약하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요즘 8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다 제 각각인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고요.



오기와 깡으로 시작한 소설 쓰기


청춘작가 특집이다 보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하셨나요?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역사학과에 갔는데, 정말 맞지 않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방황을 했어요. 그때 엄마가 ‘너희 학교에 이런 선생님도 있단다.(박범신 교수였다) 정말 싫으면 그거라도 들어봐’라고 권해주셨고, 그때 강의가 정말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첫 수업 때, 다른 과 학생은 어차피 못 따라오니까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오히려 오기와 깡이 발동을 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과제를 제출했을 때도, 혹평을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괜찮다고 할 때까지 보여줘야지 하는 독한 오기가 발동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제가 정말 무지하구나 깨달았어요.


평범한 소녀가 작가가 되는 데에 가장 어려웠던 일은 뭔가요? 또 그 어려움을 극복해낸 전환점이 있다면요?

첫 번째 소설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그걸 서랍 속에 깊이 묻어두라며 하신 얘기가 “너는 심지어 재수도 안 해봤겠지? 너는 너무 무난하게 살아왔고, 거기에 안주해왔고, 새롭게 해보고 싶은 도전의식도 없어. 너는 그냥 이 평범한 안에서 평범한 글을 쓰는 게 아니냐? 그렇게 세상으로 나가는 게 무서우면, 연애를 하다가 깨지기라도 해봐라. 그것도 정말 못된 남자랑 만나서 상처를 막받고 헤어져라(웃음) 그 사소한 걸로도 네 소설세계가 확 달라질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스갯소리처럼 하신 거지만 그 말이 저에게는 무척 마음에 박혔던 것 같아요. 그때, ‘그러면 남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신기한 얘기를 써야 하나?’하는 강박에 작위적인 얘기도 써보고, 평범한 내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면서, 지금과 같은 답을 얻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오즈의 닥터』 수연과 비슷한 느낌의 소녀”였다고 한 얘기를 들었어요.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욕망을 지닌 소녀였나요?(웃음)

가족 속에서는 예쁨 받으며 자랐는데, 사회적으로는 전혀 아니었어요. 수연처럼 음침했고, 은근히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누구도 먼저 ‘이리 와’ 불러주지 않는 아이였어요. 환영 받는다는 느낌이 항상 없었어요.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무난하고 평범해서, 깨부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이 깨졌을 때 공포심과 두려움도 동시에 있었어요. 그게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성장한 것 같아요. 안정된 길을 잘 알면서도, 다른 길을 가고 싶었고, 동시에 그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였어요.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겁니다”


스물 셋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스물 다섯 살에 등단을 하셨죠. 굉장히 일찍 데뷔하셨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무식하게 읽고 쓰기를 반복하던 때였어요. 사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데뷔를 했어요. 제가 그걸 알고 있었어요. 문단엔 정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고, 반면 저는 써본 것도 없는 풋내기라 운으로 당선된 것 같은 죄책감이 있었어요. 발 밑이 없는 게 불안했어요. 그래서 데뷔 직후가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였어요.

책 나온 게 하나도 기쁘지 않고, 청탁도 없고, 중압감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쓸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슬럼프도 일찍 겪은 셈이죠.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하면서 정신을 차렸고, 그러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기더라고요. 뭘 쓰든 이전 작품보다 잘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데뷔 이후 3년 동안 방안에서 글만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외롭고 불안했을 텐데요. 무엇이 그런 어려움을 견디게 했나요?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갈 순 없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결혼하고, 취직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더라고요.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더 불안했어요. 결국, 제가 포기하고 취직이라도 해야겠다고 말을 꺼냈는데, 언니가 냉정하게 얘기해주더라고요. ‘니가 뭘 그렇게 노력했는데. 너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그 말이 미안하면서 되게 고마웠어요.

제가 막내딸이어서 그랬는지 부모님이 극진하게 아껴주셨어요. 어떤 간섭도 없이, 항상 ‘널 믿어주고 있다’는 마음을 은근히 전하셨어요. 그 힘으로 올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아슬아슬하던 상태였어요. 그때 섣불리 감싸줬다거나, ‘너도 정신 좀 차리라’고 비난했다면,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때였어요.


나중에 『오즈의 닥터』가 <자음과 모음 문학상>에 당선됐을 때, 가족들이 참 기뻐하셨겠어요.

악어떼가 나왔다』가 당선됐을 때는 어안이 벙벙하고, 기쁘지 않았는데 이때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계속 해왔으니까 되게 기쁘더라고요. 처음에 데뷔할 때는 시상식에 부모님도 부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카들까지 불렀어요.(웃음)

너무 어릴 때 데뷔를 해서, 억눌림 같은 게 있었어요.
악어떼가 나왔다』 는 제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쓴 작품이었어요. 이후에 공부를 하다 제 글 색깔은 찾지 못하고,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만 갖고 있었어요. 『오즈의 닥터』를 쓸 때는, 역시 제가 쓰고 싶어하는 방향을 잡고 마음껏 쓴 것 같아요.


작가님의 직업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벌어들이고 있는 게 시간이라는 걸 깨달을 때, 작가가 됐구나 느끼는 것 같아요. 상금을 받았을 때, 5000만원이면 한참 놀고 먹어도 되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돈을 정의하는 개념이 달라요. 5000만원이면 5년의 시간인 거예요. 오로지 순수하게 소설 쓰면서 보낼 수 있는 그만큼의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이죠. 고료를 받을 때, 돈 벌었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었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아, 내가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거구나’ 싶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막연히 섬뜩하면서 가슴 아픈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읽을 때는 너무 섬뜩한데 읽고 나면 가슴 아픈 여운이 남는 소설 있잖아요. 30대에는 20대에 썼던 것과 조금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좀더 소설이 따뜻해졌으면 좋겠고요. 연애 얘기를 쓰고 싶은데, 항상 끔찍한 죽음으로 결론이 나서(웃음) 언젠가는 꼭 쓰고 싶어요. 지금 장편 열심히 쓰고 있고요. 앞으로 장편과는 다른 맛이 있는 단편집도 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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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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