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가 30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조언 - 손미나『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어느 순간, 제 안에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롯데시네마와 YES24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책 인터뷰. 8월에 만난 작가는 '소설가' 손미나다. 파리에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있었다. 왜 소설이었을까?
롯데시네마와 YES24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책 인터뷰. 8월에 만난 작가는 ‘소설가’ 손미나다. 파리에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있었다. 왜 소설이었을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하며 짧은 질문에 길고 친절한 답을 시작했다.
아나운서 시절, 그녀가 인상 깊게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있다. 일곱 살짜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찍은 후에 십 년 후 그들을 다시 찾아서 취재를 한 것. 그렇게 십 년 단위로 그들을 찾아간다. 스물일곱, 서른일곱, 마흔 일곱까지. 사십 년 동안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별도의 자막도 없고, 별다른 내레이션도 없었지만 그 필름을 보며 그녀는 뒤로 넘어질 만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곱 살 아이들과 마흔 일곱이 되었을 때의 그들 모습을 봤을 뿐인데도 누가 누구인지를 딱 짚어낼 수 있겠더군요. 사람은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아요. 일곱 살 때 나는 어땠나, 생각나시나요? 한국 사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리죠. 취직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고, 너무나 정해진 양식이 많습니다. 그 속에서는 어릴 적에 나는 어땠는가를 생각해볼 시간도, 여력도 찾기가 힘들죠.”
그녀도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야, 어머니께 물었다고 한다. 일곱 살 때 나는 어떤 아이였나. 어머니는 말없이 그녀가 유치원을 다니던 때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사진 속, 일곱 살 손미나는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사실 아나운서가 꿈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어요. 제 자신도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던 거죠. 운 좋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내 안에서는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죠. 인간은 모두 하나의 씨앗이라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들은 장미꽃 한 송이를 피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개꽃 한 다발을 피우기도 하죠. 혹은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해요. 자신을 스스로 규제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모든 것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꽃을 피우게 하느냐의 문제이겠죠.”
그녀가 간직하고 있던 소설의 씨앗은 무엇일까. 그녀는 어릴 적 잠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의 작문 수업 시간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들어와서 ‘오늘은 시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을 하자, 그녀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종이를 꺼내고 펜을 꺼내고 준비를 했다.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선생님은 시의 주제가 나무이니 자신을 따라오라며, 문을 열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각자의 나무를 선택해서 30분간 그 나무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대화를 나누어보라고 했어요. 그렇게 30분이 지나서 여러분이 보고 느낀 것을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점수를 매기겠구나, 그리고 발표를 시키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저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시를 쓴 것을 축하한다며 박수를 치고 수업이 끝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게 문학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해서 창작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가하고 질문을 받을 때 이 기억이 떠오르곤 해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계기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어요. 자기 스스로가 찾는 모든 것의 시작은 나 자신을 아는 것부터이니까요. 과연 언제가 그런 때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세요. 한 산악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지대에 이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한발 한발 내딛는데, 결국 문제는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 있게 딛느냐, 아니면 의심을 하느냐, 라고 하더라고요. 아나운서 생활을 10년하고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날 때와 이 소설을 쓸 때, 꼭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육감을 느낀 경우였어요.”
여행의 시작, 소설의 시작
“파리에서 6개월간 여행기를 쓰기 위해 체류하면서 크루아상을 아침 식사로 먹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크루아상을 뜯어보고, 속살을 해부해보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세이를 쓰는 게 행복한 이유는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 같은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는데, 소설을 쓰다 보니 에세이를 쓰면서 겉에서 산책해왔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소설을 통해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소설의 시작이 크루아상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파리에서 보낸 시간 때문이다. 한 사람의 정서와 감성, 세상을 보는 시각과 가치관, 영혼의 크기와 꿈의 대부분은 그가 자라온 환경과 삶의 터전, 지나온 시간의 경험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파리는 음울하고 서글픈 얼굴을 지녔지만, 반면 놀라우리만치 아름답고 신비롭다. 무엇보다 파리는 나처럼 예술과 큰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도 스케치북과 물감을 사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와 시를 쓰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은 헤밍웨이가 말했듯 매 순간이 ‘움직이는 열정’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인 것이다. (p. 8)
그녀는 여러 곳의 여행기를 쓰면서 인간으로서나 작가로서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똑같은 것밖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을 결심했고, 이를 위해서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2년 전, 결심을 다지면서 그녀 자신과의 싸움은 시작됐다. 1년 반 정도 지나니 비로소 여러 질문들이 하나로 모였다. 그녀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순간, 제 안에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쓰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단 제 마음이 정말 편해졌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제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감정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많은 애정을 쏟아야 쓸 수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주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모두가 너무나 소중해졌어요. 이 세상이 소중해지니 제 삶이 행복해졌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당신만의 소설을 써보라 권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말이지요. 여러분만의 꿈을 찾아서, 그리고 소설을 찾아서 한번쯤 자기 안으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여러분 안에 있는 진정한 누군가가 손을 내밀 것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다.”
사랑 때문에 욕심을 부려도 될까요?
저의 경우에는 사랑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거 같아요. 사랑이 무엇일까, 소설을 왜 쓸까. 그걸 찾기 위해 글을 썼는데 막상 쓰고 나니 더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사랑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가장 큰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죠. 남녀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죠.
삼십대 여성의 자기계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갈 때 저는 굉장히 두려웠어요. 삼십이 되어보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더군요(웃음). 사회가 만들어낸 압박감이 있죠. 대신 삼십이 되니 용기가 생겼어요. 이십대에는 모든 걸 흡수하는 시기이지만 삼십대에 하는 일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이십대 사이에서 ‘취집’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진취적인 여성들이 사회활동도 많이 하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이 회자가 된다고 하니 놀랐죠.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중요하죠.
삼십대 여성에게 조언을 한다면, 자신의 주관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분위기상 휩쓸리지 마시고 서두르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앞으로 나가라 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하려고 했는데 무엇을 못 했나 생각하면서. 외국어 공부도 해보고요.
몸매나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민망합니다(웃음). 사람은 자기가 가꾸고 노력하는 것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 거 같아요. 이십대는 다 예쁘고 멋있죠. 소설을 쓰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더 노력했습니다. 걷기 운동을 추천하고 싶어요. 걷는 것만큼 날씬해지고 건강해지고 번득번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많이 걸으면, 생각도 맑아지고, 젊어지실 것입니다.
하시고 싶은 일 하시는 거죠? 주위의, 특히 가족들의 반대는 없으셨는지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습니다(웃음). 지금도 아나운서 그만 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시는지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지금도 아나운서 시절을 생각하면, 짜릿하고 신납니다. 그렇다고 후회나 미련이 남지는 않아요. 그 기간 동안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얼마 전 짐을 정리하면서 확인해보니, 제가 출연한 영상의 녹화 테이프가 180분 테이프로 980개가 나오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잘 선택해서 온 거 같습니다. 특히,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어요. 부모님은 있는 그대로,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놔두어두셨어요. 신뢰와 믿음으로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주신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한 거 같아요.
좌절과 절망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아르헨티나 여행을 했을 때, 짐을 몽땅 도둑을 맞은 적이 있었어요. 소매치기는 몇 번 당해봤지만, 그렇게 짐이 모두 도둑맞은 것은 처음이었죠.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2만장도 가방 안에 있었고요.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뛰는 여행이었으니, 상심은 더 컸죠. ‘모든 일은 이유가 있다’며 알고 지내던 인디언 청년이 위로를 해주었어요. 당시에는 화가 났죠. ‘너 자신을 봐라. 너, 멀쩡하게 있지 않느냐. 다시, 하면 된다’ 그때 그 인디언 청년이 해주었던 말이 점점 위안이 되어주었어요.
‘일어나서, 앞을 보고 걸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죠. 인생이 무지갯빛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 아닌가 싶어요. 인생은 전체적으로 보면 고난이 더 많습니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엎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힘든 순간이 왔을 때는 ‘이 무섭고 어두운 길을 빠져나가면 해가 비추는 길이 나오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위안을 스스로에게 해보길 바라요.
이제 파리로 돌아가시면, 파리와 관련된 책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내년 뜨거운 여름 이전에는 나올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만 2년을 체류했어요. 이번 에세이에는 소설을 쓰는 과정도 포함될 거 같습니다. 여행기에는 사실적인 이야기가 들어가겠죠. 소설에서도 도시들이 존재하는 건 맞지만,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니까요. 실제 이야기를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꿈꾸는 건 행복해요. 에세이와 소설을 시작했으니 정말 열심히 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느끼실 수 있게 해야죠. 그리고 제가 가는 나라의 언어를 모두 배우고 싶어요. 언젠가는 1년 정도 제 모든 실력을 남을 위해서 써보고 싶은데 그때 제가 습득한 외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되었던, 아프리카가 되었던 그들도 배워서 세상에 나가고 싶을 테니까요. 그들이 배우고 싶은 언어를 물은 후, 어느 것 하나를 가리키면 막힘 없이 가르쳐주는 것이죠(웃음). 그 후에는 박사학위에 도전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 교수가 되는 게 현재로서는 최종 꿈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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