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서울 문래동의 거인체육관에서 행한 세계챔피언 김주희 선수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내 이름은 김주희. 내 얘기 좀 들어볼래? 그래, 지난달 9일, 여자국제복싱평의회(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 여자프로복싱 5개 기구(WIBA, WIBF, GBU, WBF, WIBC) 통합챔피언에 오른 세계챔피언. 덧붙여, 2004년 IFBA, 2007년 WBA 챔피언에 올랐다가 반납한 것을 포함하면 7개 기구에서 챔피언을 먹은.
아, 물론 겁먹지 마. 아직 그날 경기의 상처가 남아있지만, 날 인터뷰한 준수 기자도 첫 만남부터 때리지 말라는 우스개를 하는데, 난 일반인 때리지 않아. 원칙이야. 그러니 겁먹지 말고 들어주면 좋겠어. 사실 이번에 동일 체급 7개 기구에서 챔피언 먹은 거, 기분 좋으면서도 실감이 안 나. 남녀를 통틀어서도 최초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도전을 멈추지 않고 기록을 스스로 깨고 싶은 생각도 들어.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니까!
근데, 이 기자가 찾아와서 날 인터뷰하고 내가 이렇게 얘길 꺼낸 이유가 있어. 얼마 전 펴낸
『할 수 있다, 믿는다, 괜찮다.』 때문이야. 책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얘길 해 볼게. 책을 낸 것도,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
나를 성찰하고, 타인에게 말을 건네다
실토하자면, 나, 첫 타이틀을 2004년에 획득하고 방어할 때까지,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거야’하는 못 돼먹은 마음이 있었어. 어렸을 때는 내가 자란 환경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꺼렸고, ‘누가 나 도와준 적 있었어?’와 같은 피해의식도 있었어. 그러니까, 나 혼자 잘 나서 된 거야, 두고 봐. 이런 마음이 있었다. 그때가 아마도, 만 18살 때였어.
하지만 그런 거 있잖아. 뭐든지 사람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깨닫는다고. 이 때 방어한다는 어려움이 컸어. 시합과 연습에 대한 압박 때문에 연습량을 늘이다가 엄지 일부를 잘라내기도 하고. 그러다, 의무방어 기간이 지나서 챔피언벨트를 반납하고, 모든 걸 다 잃었어.
물론 끝이 아녔고, 재기할 때, 도와준 분이 많았어. 그 전에는 도와준다고 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그랬는데, 그땐 달랐어. 관장님께 도와달라고 부탁드렸고, 용기를 가지도록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어. 그 덕일까. 고비도 많았지만, 많은 타이틀을 딸 수 있었고, 그제서야 알게 된 거지. 본인이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도와준 분이 없으면, 역사나 기록을 세우는 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어른들 말씀. 그때 공감했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들한테 받은 만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바라는 건 욕심임을 알아. 다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책을 읽고, 포기할 만큼 힘들었는데, 용기를 가지거나 큰 힘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야.
최근에 팬레터를 많이 받아. 그 중엔 도전장, 그래 결투신청도 있어. 그것도 관심이니까, 괜찮아. (웃음) 최근엔 부산외대에 다니는 팬이 영작시를 써서 해석까지 보내주기도 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 있는데, 나이는 나보다 어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순데, 10년 정도 운동을 했대.
그런데,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짐을 정리하다가, 내 경기를 봤대. 처음엔 내 눈이 붓는 걸 보고, 어떡해, 이러다가 저돌적으로 공격을 하고 승리하는 걸 보곤, 인터넷에서 나를 검색해보고 책을 사서 편지를 썼대. 내 별명이 울보인데, 그 편지를 보고 굉장히 많이 울었어. 편지엔, 언니 경기를 보고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고, 내일 훈련이 기다려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한 시간을 펑펑 울었어.
편지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봤고, 예쁜 상자에 담아놨어. 나, 그렇게 인기 많은 여자야. (웃음) 책은 그런 내 나름의 바람이 담겨있어. 도전하려고 할 때, 새로 시작하려고 할 때, 막막한 게 많을 때, 포기하고 싶고, 힘들 때, 그런 것들에 대한 용기를 주면서 이런 말을 건네고 싶었어.
“정말 포기하실 거예요?” 내가 꿈을 가졌던 것처럼, 내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초등학교 4학년 정도밖에 안 되는 체구를 가진 중학교 2학년 여자 아이, 관장님을 아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 돈이 없어서 또 언제 체육관을 쉴지도 모르는 아이, 돈이 없어서 또 언제 체육관을 쉴지도 모르는 아이. 그런 아이일 뿐인 내게 다시 꿈이 생겼다.(p.40)
정말이지, 이 책엔 내 얘기를 110% 실었어. 예전에 인터뷰할 때, 가정사를 약간 내비친 적 있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신 정도까지만 이었어. 책은 달라. 다 쓰고 읽어보니, 세상 한가운데서 알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 말했거든. 운동처럼 진솔하게 땀 흘려서 보여주고 싶었어. 이 책은 그러니, 바로 김주희, 나라고 생각해주면 될 것 같아.
그러니, 이번 책에 아쉬운 것 없어. 다만 요즘 뼈저리게 느끼는 게 있어. 책을 쓰면서도 집안,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없던 건 아니었어. 나는 왜 평범하게 살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힘이 들었거든. 특히 아버지가 좀 더 나아지지 않아서 힘들다보니, 엄마가 계셨다면, 이랬을까. 그래서 부모 복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꽤 있었는데, 착각을 했던 거야!
알고 보니, 난 인복이 장난 아니었던 거지. 팬레터만 봐도 그렇고, 인복 하나는 타고 난 사람이인 거야. (웃음) 그러니까, 내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넌 행복한 사람이니까, 즐겁게 멋지게 화끈하게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난 인복 하난 끝내주는 사람이야. 하하.
그동안 혼자 세상을 살아온 것 같았어도 누군가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살 수 있었다. 가족이 어디에 있든지 기댈 수 있게, 이제는 내가 지켜줄 차례였다. 나는 간절히 믿고 싶었다. 얻기 위한 사랑은 무너져 내려도, 주기 위한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p.208)
그거 알아? 미친 자신감, 김주희!
그래도 아쉬운 것도 얘기할 필요가 있겠지? 없었다면 거짓말이잖아. 나, 솔직담백한 여자라고! (웃음) 지금도 마찬가진데, 친구들은 밖에서 사 먹는 걸 좋아하는데, 난 집밥이 항상 그리워. 집밥 생각이 많이 날 때, 엄마가 계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그런 면에서 (집밥 먹는) 친구들이 부럽고, 부상입고 병원 가서도, 물론 관장님이 계시긴 해도, 보호자가 없을 때 서럽기도 해. 조숙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내게도 그렇게 아쉬운 게 많아.
준수 기자가 슈퍼에서 300원짜리 크림빵을 훔쳐 먹고 빵 부피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던 일화를 끄집어내네. 돈이 밉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물론 그때 300원은 갚았고, (웃음) 돈이 밉기보다 생각이 바뀌었어.
예전부터 난 다른 친구들과 고민의 지점이 달랐거든. 초등학교 때, 나는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어. 그때 아이들은 다른 생각이나 꿈을 가지는 것과 달리. 돈이 없으니 아빠가 아파도 MRI를 찍을 수 없고, 육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병원 진단을 제대로 못 받아서 빈혈을 백혈병 초기까지 키워나갔고, 조금 더 잘 먹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아이가 그러면 좋지 않은데, 오죽하면 돈을 달고 살았겠어. 그땐 그래서, 돈을 버는 게 힘이구나 싶었던 거지.
돈. 돈은 19살, 14살 자매의 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이자 목표였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굶으면서 자존심 지키기다.(p.28)
그러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했어. 우울한 생각만 들고. 그러다가 알게 된 거지. 이미 벌어진 일을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내 성격대로 가자. 노력을 하자 부딪혀보자. 일단 해보자. 권투를 만났고, 챔피언 꿈을 키웠고, 여러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나도 놀랄만한 의지와 끈기를 발견했어. 예전 같으면 포기했을 일도, 이미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어,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라는 방향으로 바뀐 거지. 놀랍지 않아?
요즘 들어선 있잖아. 지금 나도, 적지 않은 나이더라. 흐흐. 권투를 그만해야 할 때도 올 텐데, 뭘 할까, 생각하다가, 이런 것도 떠올라. 여기 영등포 청과물시장 근처니까, 리어카로 장사해도 난 최고가 될 자신이 있다. 미친 자신감이랄까. 달인이 될 자신감이 있다규! (웃음)
권투를 한다는 것
책에도 썼지만, 준수 기자가 묻더라. 권투하는 것, 얼마나 행복한가요? 그래, 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상처나 부상이 괜찮은지 염려하는 것도 고맙지만, 권투를 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진 그걸 물어봐줬으면 더 좋겠어. 알았죠?
사람들은 내가 왜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느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렇게 반문한다. “권투를 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렇게 물어봐주실래요?” 좀 더 힘들어도, 좀 더 아파도 괜찮다. 가로 7미터, 세로 7미터의 링 위에서, 나는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니까.(p.9)
그리고 뭣보다,
“권투는 하루하루 절망의 끝에서 버티는 우리를 한밤중에도 일으켜 세우는 재주가 있”(p.35)으니까. 오죽 연습을 했겠어. 관장님은 내게 ‘미친 직업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시고. 연습을 많이 한 건 그런 이유도 있었어. 어느 날 관장님 왈,
“너 캐치능력이 왜 이리 떨어지냐? 남들은 한 번에 알아듣는데, 속이 터진다.” 집에 가 언니 앞에서 울었어. 난 왜 이리 못할까. 권투는 하면 안 되나봐. 핸디캡도 많고. 그랬더니 언니가 그러더라.
“넌 머리가 나쁘니까, 성실하게라도 해야 관장님이 안 쫓아내지 않겠어?”그래, 묵묵히 성실하게 하는 것, 참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거든. 그러다보니, 연습이 더 많아졌고, 연습벌레가 된 것 같아.
연습벌레도 결국은 권투가 좋아서 된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권투를 굉장히 좋아해. 그게 밑바탕에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이번 경기가 끝나고, 협회장님이
“네 경기와 눈빛을 볼라치면, 이기고 지고를 떠나 넌 정말 권투를 좋아하고 열정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냐고 물었더니,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그러시더라. 그래, 권투를 좋아한다는 건, 몸으로 표현이 된다는 것 아니겠어?
날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것도 권투야. 핸디캡으로 따지면 난 권투하면 안 돼. 일반인으로도 어려운 몸이거든.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하긴 그리 따진다면 끝도 없지. (웃음) 관장님은 날 10년 이상 지도하시면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호되게 꾸짖으셨어. 넌 뭐가 힘들어, 너보다 어려운 애가 많아. 그렇게 호되게 꾸짖을 때도 있는 한편, 엄마가 없는 게 잘 된 거야, 눈두덩이 밤탱이가 되는데, 엄마가 권투 시키겠어, 라고 웃으면서 농담도 하신다.
그러다보니 나도 긍정적이 되더라. 사실, 시합포스터 찍을 때 참 힘들어. 웃으면서 찍은 게 하나 있는데, 웃는 건 자신 있거든. 헌데, 인상을 강하게 쓰고 찍는 건 죽어도 못하겠어. 아유, 표정이 왜 그리 이상할까. 아유, 속상해. 하하.
권투를 포기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만일 권투를 그만두면 챔피언이라는 명예도, 그 명예가 벌어다주는 생활비도, 관장님과의 인연도 끝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나도 무엇인가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마저 이대로 사라진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p.169)
첫 대전료 40만원
책에도 썼지만, 첫 대전료가 40만원이었어. 세상이 처음으로 날 인정해준 사인. 그때 그 봉투, 아직 잘 보관하고 있어. 체육관에 처음 발 디뎠을 때의 입회원서도 코팅해서 잘 간직하고 있고. 그 40만원, 어디에 썼냐고? 세금, 관장료 등을 제하니 20만 원 가량이었는데, 당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워크맨을 샀어. 뿌듯해.
내 손에 처음으로 쥐어진 얄팍한 봉투. 무명인 나의 첫 대전료는 40만원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세상이 나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인이었다. 나는 그 돈을 봉투에 넣고, ‘첫 프로 국제전’이라고 크게 적어넣었다. 방세가 없더라도 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첫 시합의 의미와 눈물을 잊고 싶지 않았다.(p.57)
그리고 준수 기자가 묻는데, 서울 33평형 아파트를 주겠다는 일본 프로모터의 격투기 시합 제안. 갈등, 많았지~ 사실, 나 강연 제의도 꽤 많이 들어오는 스타 강사야. 누군가말로는 내가 엄홍길 대장님 다음으로 돈을 많이 받는 인기강사래. 그런데 섭외가 잘 안 된다는 거. 물론 인기강사라서 그런 건 아니고, 운동을 해야 하니까. (웃음)
요즘 내가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대전료를 받지만, 1년에 경기가 몇 번 없어. 특히 스폰서가 없어서 경기만으로 돈을 벌긴 쉽지 않아. 그래서 강연료가 그렇게 많은 줄 알곤 깜딱 놀랐지~ 내가 이슈가 됐을 땐, 하루에 100건 이상의 전화가 올 때도 있었는데, 관장님이 장난으로 이리 물어봐. 강사 할래?
그런데 격투기 제안은 그것과도 상대가 안 됐어. 스케일이 달랐던 거지. 관장님도 그래. 주희야, 그런 큰돈을 받기가 겁난다. 그래, 지금 운동하는 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야. 허나 강의나 격투기는 아니라고 봐. 훈련비, 병원비 등까지 충당하기엔 대전료가 충분하지 않지만, 빵 훔쳐 먹을 때보다 얼마나 많이 버나. 더 열심히 하고 있고, 더 벌 거야.
중간에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준다는 분도 있었지만, 거절했어. 더 노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돈은 필요 없어. 강연, 격투기 제안을 받는 것도 세계챔피언이기 때문이잖아. 본분을 잊고 돈을 따라가면 세계챔피언은 뺏길 거야. 난 직업적인 전문 강사가 아냐.
그래서 강연도 한 달에 딱 다섯 번. 강연 제안이 수십 건 들어와도,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다섯 번. 관장님도 그러셔. 파격적으로 제안을 해서 나도 흔들릴 때도 있는데, 나한테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관장님과 난 직업적으로 만났지만, 가족이고 하나가 되어 있거든. 돈을 많이 벌어오는 선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관장님이 말씀하셨어.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관장님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릴 적 받은 상처가 있지만, 남을 도우면서 치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더라. 내가 인성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관장님 덕이야. 무척 감사하지. 부모님도 못하고, 스스로도 못했을 일이거든. 관장님은 똑똑한 분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분이고, 현명한 분이야.
나를 위한 시합이 아니라 돈을 위한 시합이 되면 아무리 프로라고 하더라도 상처와 비참함만 남을 수 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면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시합이 되어도 계약은 지켜야 한다. 관장님이 프로모터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내 인생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멀어졌어도, 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은 안도감을 얻었다.(pp.132~133)
할 수 있다, 믿는다, 괜찮다!
한때, 죽음을 생각하고 약을 먹기도 했어. 지금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심각한데,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난 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날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이 없구나, 하면서 순간적으로 못된 짓을 했는데, 반성했어. 이제 난 달라.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울어도, 괜찮아. 난 날 믿으니까. 그 끈만 놓치지 않는다면 두려운 건 없다고 봐. 포기보다 꾹꾹 참는 게 대단할 수 있지만, 그거보다 더 대단한 건, 치고 나가는 거야. 왜 포기하려고 하냐고, 시간만 되면 설득하고 싶어.
난 지금 교육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후반전을 맞이하고 있어. 내년이 졸업인데, 박사과정에 도전하려고. 최초의 여성 지도자가 되고 싶은데, 물론, 관장님처럼 할 자신은 없어. 엔간히 속 섞일 선수를 만날까봐 겁나거든. (웃음)
근데, 소개팅 좀 해 봤으면 좋겠어. 나도 한창 때잖아. 예전엔 부끄러워서 못했는데, 소개팅 주선은 말리지 않거든. 준수 기자도 인정했어. 예쁘고 말도 잘 한다고. 뭣보다 여성스럽다고! 친구들이 소개팅 주선차, 상대방에게 김주희라는 걸 밝히면, 안 때린데? 손 안 댄데? 이런 것만 물어보고 말이지. 흥. 부담된다는데, 다시 말하지만, 난 일반인은 때리지 않아!
앞으로의 계획은, WBC타이틀에 도전해서 그랜드슬램을 하고 싶어. 언제까지 도전할 거냐고 묻는데, 외국엔 주부선수도 많다고. (웃음) 그래,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더 큰 고비가 있을지도 모르고, 심각한 부상에 대한 부담도 있어.
그래도, 도전도 안 해보고 지레 겁먹진 않아. 이젠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분이 더 많음을 알아. 기가 전달되거든. 선수는 링 위에 있을 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도 그게 다 들리고 느껴져. 계속 도전할 거고, 부상이 있다고 소심한 경기를 하지도 않을 거야. 화끈한 경길 할 거고, 수비에 대한 보완도 많이 할 거야.
시간과 거친 몸싸움을 하며 상처가 남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어떤 순간이든 도전함으로써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p.229)
나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권투가 다시 인기종목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아. 가장 절실한 건 일반 팬의 관심인데, 경기 많이 지켜보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어.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 게 힘이 많이 되고, 그런 만큼 멋진 경기, 보여줄 수 있을 거야. 알겠지? 권투를 부탁해. 김주희를 부탁해. 뭣보다, 나, 여성스럽고 예쁜 여자야. 기억해줘. 호호.
은퇴하기 전까지 나는 앞으로도 매순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의 도전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내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건 내가 흘리는 땀방울이라는 것. 계속해서 땀을 흘리는 한 나의 드라마도 계속된다는 것.(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