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순종의 상징! 제단 위의 어린 양
문득 고야의 그림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고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강한 충격을 받고 싶은 것이다.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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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관:
고야 미술의 결정판!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문득 고야의 그림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고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강한 충격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의 그림은 때로는 빛을 통해, 때로는 외형을 통해, 때로는 상상력을 통해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고야의 그런 강렬함을 통해 외상(外傷)을 입고 싶은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에 고야의 그림이 백여 점 있지만, 그곳에서는 관람객들에게 밀려다니느라 편안하게 볼 수가 없다. 고야의 걸작들이 많지만 그가 직접 던지는 날카로운 창날에 맞을 수가 없다. 그가 던지는 창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설사 그의 예술적 창살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해도 나를 직접 쏘아서 가격하지는 않는다. 그림과 나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은, 조금은 더 고요한 공간에서 고야와 맞대면을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 / San Fernando Royal Academy of Fine Arts Museum)를 찾아간다.
이처럼 적막한 공간에서 고야를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고야의 자화상이 나를 쳐다본다. ‘당신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세상을 보았군요’라고 침묵 속의 질문을 던지면, ‘그걸 알아보았군’ 하고 무지한 중생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내는 것 같다. 그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겨진 웃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웃음을. 무심결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면서 고야처럼 하나에 집중하면서 미쳐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귀가 멀어가면서 느끼는 예술가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최정상에 오른 스타 아티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도 무언가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다운 숙명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마드리드는 ‘미술관 천국’과도 같은 도시이다. 프라도에서 고전 미술을, 레이나 소피아에서 현대 미술 컬렉션을 본다. ‘넘버 쓰리’라고 할 수 있는 티센 보르네미사까지 둘러보면 미술사를 총망라하는 거의 모든 작품을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둘러보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라틴 계열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던 남유럽에서 미술가들의 정열이 어떻게 불타오를 수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중요도로 따진다면 ‘넘버 포?’, 하지만 결코 만만한 공간이 아니다. 프라도에서, 레이나 소피아에서, 티센 보르네미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새로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프라도나 레이나 소피아에서는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그에 비하면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는 작품이 적다. 아니 적당하다. 하나의 미술관을 둘러보는 정도라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슬비에 촉촉하게 젖듯이 그림 하나하나에 젖어든다. 프라도에서는 어느 하나에 집중할 수 없지만 산 페르난도에서는 라틴 미술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알론소 카노 같은 화가들과 그렇게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실들을 장식하는 방대한 고야 컬렉션과 만나게 된다. 이렇게 둘러보고 나면 피레네 산맥 너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페인 미술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거기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샤 같은 개개의 팀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스페인 축구가 얼마나 강력하고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풍요로움이 있다.
이곳은 미술관이면서 동시에 학교이기도 하다. 왕실화가였던 고야는 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고 학장에게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에는 방 두어 개를 연결시켜서 고야만을 위한 단독 전시실을 만들어두었다. 그곳에서 고야의 자화상 두 점과 더불어 고야의 손때가 묻은 팔레트를 만난다. 팔레트에는 월계관이 씌워져 있다. 이곳은 1752년 페르난도 6세에 의해 착공된 이래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학교로 자리 잡았다. 피카소와 달리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대가들이 이 학교를 다녔다. 선배 화가들의 흔적을, 숨결을 느끼면서 그들은 성장했다. 미술관과 학교가 같은 장소에 존재하면서 대가들의 그림을 통해 학생들도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언제나 사람들로 들끓는 솔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중세풍의 고즈넉한 건물로 들어서면 몇몇 조각상들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서 숨을 죽이고 스페인 국왕의 조각상을 보면서 마드리드의 역사를 접한다. 언제나 관람객 숫자보다도 전시실 구석에 앉아있는 직원들 숫자가 더 많아 보인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그 소리가 장내에 울릴 것 같은 침묵 속에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그런 고요 속에서 한가로이 작품들을 바라본다. 미술관에서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면서 찬찬히 한 점, 한 점 시간을 투자할 때 그림들도 자신의 내면을 조금 더 드러낸다. 한 점의 그림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들.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언제나 그런 여유와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림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의 그림들>
1.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페드로 마차도 수사」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n, 159-1664)의 ‘백의의 수사’ 연작은 산페르난도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컬렉션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페드로 마차도 수사의 전신 초상화가 첫 손 꼽힐 것이다. 수르바란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던 수도사의 깊은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수사의 경건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2.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
수르바란은 여러 점의 「하느님의 어린 양」 을 그렸다. 프라도에,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그리고 개인소장품도 있다. 프라도에서 볼 때는 이 그림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양 한 마리가 제단 위에 올려져 있다. 이는 순수와 순종의 상징이다. 부드러운 털은 손에 잡힐 듯하고, 시선은 따뜻하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승리를 내포하고 있다. 양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침묵 속에 빠져든다.
3. 조반니 벨리니의 「구세주」
많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을 몇 점 발견하게 된다.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도 그 중 하나이다. 「구세주」는 작은 그림이다. 그리스도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맑은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 시선에는 인자함이 담겨있다. 큰 작품이 아니라 소품 초상화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눈빛을 통해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한 인간의 내면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4. 틴토레토의「최후의 만찬」
틴토레토(Tintoretto, 본명: Jacopo Robusti, 1518-1594)의 빨간색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는 우디 앨런이 줄리아 로버츠를 유혹하기 위해서 열심히 틴토레토의 화집을 보면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디 앨런은 틴토레토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을까. 어두운 공간, 마지막 저녁식사. 그리스도와 제자들 몇이 입은 빨간 옷이 까만 배경 위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스도가 입은 빨간 옷은 사랑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가 누군가 말을 꺼내자 제자들의 표정에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표정. 「최후의 만찬」을 그린 작품이 많지만,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즈넉한 느낌이 든다.
5. 알론소 카노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길을 걷다가 지친 그리스도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한다. 사마리아와 유대인은 서로 반목하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여인은 예수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알론소 카노(Alonso Cano, 1601-1667)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그림에서는 베로네제와 유사한 따뜻함이 있다. 배경을 이루는 대기는 은은하고, 푸른빛과 분홍빛이 어우러져서 부드럽게 감싸는 것 같다.
6.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막달라 마리아」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들 중 종교화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가 무리요(Bartolom? Esteban Murillo, 1617-1682)가 아니었을까. 그는 60세가 넘는 생애 동안 대형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의 솜씨가 개화하던 서른 무렵에 그린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 간명하게 든다. 과히 크지 않은 초상화지만 그 안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드러난다. 개종과 회개를 상징하는 막달라 마리아. 두 손을 맞잡고 허공으로 시선을 향한 막달라 마리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7. 주세페 아킴볼도의 「봄」
산페르난도 아카데미에 걸린 화가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화가는 주세페 아킴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이다. 홍대 앞에 있는 닭곰탕 집 다락 투에 갈 때마다 벽에 붙어있는 아킴볼도의 자그마한 복제화를 보곤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파리의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열린 아킴볼도의 대형 전시를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킴볼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화가일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바라보는 세계는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봄」 앞에 서서 오랫동안 그림을 하나하나, 부분부분 뜯어보는 재미를 즐기곤 한다. 꽃잎으로 이루어진 얼굴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활력과 생기가 느껴진다. 화려하게 꽃이 피는 봄의 정서가 다가온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장미꽃 향기가 풍긴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8. 레안드로 바사노의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La Riva degli Schiavoni)
레안드로 바사노(Leandro Bassano, 1557-1622)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서 활동했던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베네치아 앞바다의 물결이 일어나는 듯하고,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캔버스 바깥으로 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번성하는 베네치아의 풍경. 배에서 과일과 채소를 하역하고, 시장 구석에서는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거대한 모습으로 베네치아를 보여주면서 왜 시장 풍경을 가장 전경에 두었을까. 그것이 바로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바뀌었지만 도시 곳곳에서는 여전히 중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시. 그저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베네치아의 한 동네이기도 한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를 들여다보게 된다.
9. 프란시스코 고야의 「팔레트를 든 자화상」
산페르난도 아카데미에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가 그린 자화상이 두 점 걸려있다. 이 그림은 ‘고야의 방’ 입구에 걸려있는 그가 사용했던 팔레트와 짝을 이루고 있다. 팔레트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유만만하다. 궁정화가라면 딱딱하고 권위적일 것 같은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있다. 뒤에 있는 넓은 창문에서는 빛이 들어온다. 빛의 홍수 같다. 그렇게 들어온 빛이 옷에 반사되어 색채들이 여기저기로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던진다. 마네는 바로 이런 빛을 통해 자기가 나아갈 길을 발견한 것이다. 여유, 진지함, 강렬한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10. 프란시스코 고야의 「정어리의 매장」
사육제가 끝나는 ‘재(灰)의 수요일’이면 마드리드에서는 정어리를 매장하는 축제가 열리곤 한다. 제목은 「 정어리의 매장 」이지만 그 축제 같지는 않다. 그래서 고야가 프랑스 군이 스페인에서 철수하는 걸 우회적으로 그렸다고도 한다. 가면을 쓴 여인들이 춤을 춘다. 이 우스꽝스러운 가면 뒤에는 어떤 얼굴이 감추어져 있을까. 아마도 거기에 고야의 풍자 정?과 해학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후일 우리는 벨기에 출신의 제임스 앙소르로부터 고야의 「 정어리의 매장 」에서와 같은 가면 쓴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면을 쓴 인물들의 군상. 거기엔 희극성과 비극성, 아이러니가 같이 포함되어 있다.
고야 미술의 결정판!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문득 고야의 그림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고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강한 충격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의 그림은 때로는 빛을 통해, 때로는 외형을 통해, 때로는 상상력을 통해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고야의 그런 강렬함을 통해 외상(外傷)을 입고 싶은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에 고야의 그림이 백여 점 있지만, 그곳에서는 관람객들에게 밀려다니느라 편안하게 볼 수가 없다. 고야의 걸작들이 많지만 그가 직접 던지는 날카로운 창날에 맞을 수가 없다. 그가 던지는 창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설사 그의 예술적 창살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해도 나를 직접 쏘아서 가격하지는 않는다. 그림과 나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은, 조금은 더 고요한 공간에서 고야와 맞대면을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 / San Fernando Royal Academy of Fine Arts Museum)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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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적막한 공간에서 고야를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고야의 자화상이 나를 쳐다본다. ‘당신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세상을 보았군요’라고 침묵 속의 질문을 던지면, ‘그걸 알아보았군’ 하고 무지한 중생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내는 것 같다. 그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겨진 웃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웃음을. 무심결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면서 고야처럼 하나에 집중하면서 미쳐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귀가 멀어가면서 느끼는 예술가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최정상에 오른 스타 아티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도 무언가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다운 숙명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마드리드는 ‘미술관 천국’과도 같은 도시이다. 프라도에서 고전 미술을, 레이나 소피아에서 현대 미술 컬렉션을 본다. ‘넘버 쓰리’라고 할 수 있는 티센 보르네미사까지 둘러보면 미술사를 총망라하는 거의 모든 작품을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둘러보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라틴 계열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던 남유럽에서 미술가들의 정열이 어떻게 불타오를 수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중요도로 따진다면 ‘넘버 포?’, 하지만 결코 만만한 공간이 아니다. 프라도에서, 레이나 소피아에서, 티센 보르네미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새로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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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나 레이나 소피아에서는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그에 비하면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는 작품이 적다. 아니 적당하다. 하나의 미술관을 둘러보는 정도라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슬비에 촉촉하게 젖듯이 그림 하나하나에 젖어든다. 프라도에서는 어느 하나에 집중할 수 없지만 산 페르난도에서는 라틴 미술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알론소 카노 같은 화가들과 그렇게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실들을 장식하는 방대한 고야 컬렉션과 만나게 된다. 이렇게 둘러보고 나면 피레네 산맥 너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페인 미술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거기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샤 같은 개개의 팀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스페인 축구가 얼마나 강력하고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풍요로움이 있다.
이곳은 미술관이면서 동시에 학교이기도 하다. 왕실화가였던 고야는 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고 학장에게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에는 방 두어 개를 연결시켜서 고야만을 위한 단독 전시실을 만들어두었다. 그곳에서 고야의 자화상 두 점과 더불어 고야의 손때가 묻은 팔레트를 만난다. 팔레트에는 월계관이 씌워져 있다. 이곳은 1752년 페르난도 6세에 의해 착공된 이래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학교로 자리 잡았다. 피카소와 달리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대가들이 이 학교를 다녔다. 선배 화가들의 흔적을, 숨결을 느끼면서 그들은 성장했다. 미술관과 학교가 같은 장소에 존재하면서 대가들의 그림을 통해 학생들도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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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언제나 사람들로 들끓는 솔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중세풍의 고즈넉한 건물로 들어서면 몇몇 조각상들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서 숨을 죽이고 스페인 국왕의 조각상을 보면서 마드리드의 역사를 접한다. 언제나 관람객 숫자보다도 전시실 구석에 앉아있는 직원들 숫자가 더 많아 보인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그 소리가 장내에 울릴 것 같은 침묵 속에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그런 고요 속에서 한가로이 작품들을 바라본다. 미술관에서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면서 찬찬히 한 점, 한 점 시간을 투자할 때 그림들도 자신의 내면을 조금 더 드러낸다. 한 점의 그림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들.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언제나 그런 여유와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림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의 그림들>
1.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페드로 마차도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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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n, 159-1664)의 ‘백의의 수사’ 연작은 산페르난도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컬렉션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페드로 마차도 수사의 전신 초상화가 첫 손 꼽힐 것이다. 수르바란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던 수도사의 깊은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수사의 경건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2.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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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르바란은 여러 점의 「하느님의 어린 양」 을 그렸다. 프라도에,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그리고 개인소장품도 있다. 프라도에서 볼 때는 이 그림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양 한 마리가 제단 위에 올려져 있다. 이는 순수와 순종의 상징이다. 부드러운 털은 손에 잡힐 듯하고, 시선은 따뜻하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승리를 내포하고 있다. 양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침묵 속에 빠져든다.
3. 조반니 벨리니의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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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을 몇 점 발견하게 된다.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도 그 중 하나이다. 「구세주」는 작은 그림이다. 그리스도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맑은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 시선에는 인자함이 담겨있다. 큰 작품이 아니라 소품 초상화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눈빛을 통해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한 인간의 내면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4. 틴토레토의「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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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Tintoretto, 본명: Jacopo Robusti, 1518-1594)의 빨간색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는 우디 앨런이 줄리아 로버츠를 유혹하기 위해서 열심히 틴토레토의 화집을 보면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디 앨런은 틴토레토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을까. 어두운 공간, 마지막 저녁식사. 그리스도와 제자들 몇이 입은 빨간 옷이 까만 배경 위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스도가 입은 빨간 옷은 사랑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가 누군가 말을 꺼내자 제자들의 표정에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표정. 「최후의 만찬」을 그린 작품이 많지만,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즈넉한 느낌이 든다.
5. 알론소 카노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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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지친 그리스도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한다. 사마리아와 유대인은 서로 반목하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여인은 예수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알론소 카노(Alonso Cano, 1601-1667)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그림에서는 베로네제와 유사한 따뜻함이 있다. 배경을 이루는 대기는 은은하고, 푸른빛과 분홍빛이 어우러져서 부드럽게 감싸는 것 같다.
6.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막달라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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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위대한 화가들 중 종교화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가 무리요(Bartolom? Esteban Murillo, 1617-1682)가 아니었을까. 그는 60세가 넘는 생애 동안 대형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의 솜씨가 개화하던 서른 무렵에 그린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 간명하게 든다. 과히 크지 않은 초상화지만 그 안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드러난다. 개종과 회개를 상징하는 막달라 마리아. 두 손을 맞잡고 허공으로 시선을 향한 막달라 마리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7. 주세페 아킴볼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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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난도 아카데미에 걸린 화가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화가는 주세페 아킴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이다. 홍대 앞에 있는 닭곰탕 집 다락 투에 갈 때마다 벽에 붙어있는 아킴볼도의 자그마한 복제화를 보곤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파리의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열린 아킴볼도의 대형 전시를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킴볼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화가일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바라보는 세계는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봄」 앞에 서서 오랫동안 그림을 하나하나, 부분부분 뜯어보는 재미를 즐기곤 한다. 꽃잎으로 이루어진 얼굴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활력과 생기가 느껴진다. 화려하게 꽃이 피는 봄의 정서가 다가온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장미꽃 향기가 풍긴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8. 레안드로 바사노의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La Riva degli Schiav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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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안드로 바사노(Leandro Bassano, 1557-1622)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서 활동했던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베네치아 앞바다의 물결이 일어나는 듯하고,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캔버스 바깥으로 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번성하는 베네치아의 풍경. 배에서 과일과 채소를 하역하고, 시장 구석에서는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거대한 모습으로 베네치아를 보여주면서 왜 시장 풍경을 가장 전경에 두었을까. 그것이 바로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바뀌었지만 도시 곳곳에서는 여전히 중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시. 그저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베네치아의 한 동네이기도 한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를 들여다보게 된다.
9. 프란시스코 고야의 「팔레트를 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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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난도 아카데미에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가 그린 자화상이 두 점 걸려있다. 이 그림은 ‘고야의 방’ 입구에 걸려있는 그가 사용했던 팔레트와 짝을 이루고 있다. 팔레트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유만만하다. 궁정화가라면 딱딱하고 권위적일 것 같은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있다. 뒤에 있는 넓은 창문에서는 빛이 들어온다. 빛의 홍수 같다. 그렇게 들어온 빛이 옷에 반사되어 색채들이 여기저기로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던진다. 마네는 바로 이런 빛을 통해 자기가 나아갈 길을 발견한 것이다. 여유, 진지함, 강렬한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10. 프란시스코 고야의 「정어리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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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제가 끝나는 ‘재(灰)의 수요일’이면 마드리드에서는 정어리를 매장하는 축제가 열리곤 한다. 제목은 「 정어리의 매장 」이지만 그 축제 같지는 않다. 그래서 고야가 프랑스 군이 스페인에서 철수하는 걸 우회적으로 그렸다고도 한다. 가면을 쓴 여인들이 춤을 춘다. 이 우스꽝스러운 가면 뒤에는 어떤 얼굴이 감추어져 있을까. 아마도 거기에 고야의 풍자 정?과 해학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후일 우리는 벨기에 출신의 제임스 앙소르로부터 고야의 「 정어리의 매장 」에서와 같은 가면 쓴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면을 쓴 인물들의 군상. 거기엔 희극성과 비극성, 아이러니가 같이 포함되어 있다.
9개의 댓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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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38
2011.12.21
꼭 그곳에 가야만 하는것은 아니죠.
prognose
2011.11.26
앙ㅋ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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