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지산 메인 무대에 섰던 장기하가 떠오른다. 넓은 무대를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도 정확한 라이브로 관객들을 달궜고, 관객들은 장기하의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장기하는 인디 씬에서 이제 1집을 낸 밴드에 불과했지만, 그 무대 앞에서 누구도 ‘인디’ 혹은 ‘신인’ 같은 얘기는 떠올리지도 못하게 했다. 실력도 인정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2년 전, 거물급 신인의 등장은 화려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앨범에 대한 기대는 한껏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싸구려 커피>만한 곡을 들고 올 것 인가. 1집 마지막에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는데, 그새 또 젊은 피가 수혈된 인디 씬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 것인가. 이런 세간의 호들갑에도 연연하지 않고, 장기하는 2년 만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던져놓고 이렇게 노래한다.
“뭘 그렇게 놀래/ 잘 봐 못 믿겠지만/ 니가 보고 있는 사람이 진짜 나야/ 나도 내가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었어.” 여전히 능청스럽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별일 없이’ 살던 장기하가 돌아왔다.
2집 제목은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작사, 작곡, 편곡까지 장기하가 도맡아 한 1집과 달리, 이번 앨범에는 새로 보강한 맴버들과 편곡부터 믹싱까지 함께 작업했다. 앨범에 이름을 건 데서부터 어떤 결의가 느껴진다. 이것이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최대치를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이다. 쫄깃쫄깃한 리듬감, 일기장에도 적기 싫은 구차한 마음을 솔직하게 읽어내는 가사, 풍부해진 밴드 사운드로 이번에도 단숨에 리스너들을 사로잡았다.
잠들지 못한 밤, 300개나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난 정말 인복 많은 사람이야’ 구슬프고도 경쾌하게 외쳐대고, TV 앞에서 느끼는 이런 저런 회한을 솔직하게 읊조리기도 한다. 이런 솔직함과 재기 발랄함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대단한 미덕이다. 앨범 전체를 감돌고 있는 깊은 서정은 이러한 미덕이 이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 수 있게 길을 터준다.
장기하가 직접 연출한 초저예산 뮤직비디오도 화제다. MBC 뉴스데스크에 ‘신선함으로 뮤직비디오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소개된 「그렇고 그런 사이」는 2분여 동안 클로즈업 된 손만 등장한다. 현란한 핸드 쉐이킹이 내내 눈앞을 어른거릴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2집이 발표되고 여기저기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장기하는 오늘도 심드렁하게 이렇게 노래할 뿐이다.
“뭘 그렇게 놀래/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라?/…/ 뭘 그렇게 놀래/ 내가 빈말 안 하는 사람인 거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