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이 성큼 다가온 이때, 눈이 쏟아지는 표지가 인상적인 책
『사랑해, 눈』이 출간되었다.
『사랑해, 눈』은 7명의 신인 여성 작가들이 ‘눈’이라는 주제로 한 편씩의 소설을 더해 엮은 소설집이다. 지난 해 김미월, 황정은, 한유주 작가 등이 ‘비’라는 테마로 쓴 소설을 묶은 소설집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사랑해, 눈』에는 구경미, 박주영, 서유미, 김유진, 김현영, 조해진, 김이은 소설가가 참여했다. 일곱 명의 눈으로 읽어낸 ‘눈’ 이야기는 소재만 같을 뿐, 이야기의 온도도 개성도 제각각이다.
지난 6월 초, 무교동 레스토랑에서 소설집에 참여한 여섯 명의 작가가 모였다. 김현영 작가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순원 작가가 참석해 신인 작가들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시장이 만들어놓은 주류/ 비주류 구분을 벗어나, 70년대 동인정신을 발휘해 함께 모여 열심히 쓰라”는 얘기였다. 출간을 기념하는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작가들과 자유롭게 책 이야기를 나눴다.
| 이순원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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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실려 있는 서유미 작가의 「스노우맨」은 폭설로 인해,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은 폭설로 인해,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현관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쌓인 폭설 앞에서 새해 첫날부터 출근하지 못하게 된 남자는,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안해한다.
“출퇴근이 없는 작가로 지내고 있지만, 나 역시 이전에는 직장인이었다. 바깥에서 보는 도시인, 직장인의 풍경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폭설에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이야기였다.”
눈이라는 키워드를 제시 받은 것도 한 여름. 서유미 작가는
“덕분에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알레고리적으로 풍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각자의 눈을 보여주는 거잖나. 작가들이 고립되어 글 작업을 하는데,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서유미 작가와 구경미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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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미 작가의 「첩첩」 속 눈은 따뜻하다. “눈이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에 흩어져 살던 아들 딸들이 강원도로 모여든다. 눈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이들은 가족의 정과 소중함을 발견한다. 구경미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눈의 포근함을 가족 여행의 질감으로 치환시킨다. 구경미 작가는
“테마 소설집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주영 작가의 「소설, 小說, 小雪」은 눈 때문에 회항한 비행기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한 소설가를 죽일 계획을 짠다. 여기서 눈은 사건의 발?이 되며 미스터리를 이어가는 단서가 된다. 부산출신의 박주영 작가는
“부산은 눈이 오지 않는 지역이라, 눈은 꿈 같은 주제였다”며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소감을 밝혔다.
20년 만에 폭설을 맞은 규슈에서 어머니와 옛사랑의 추억을 떠올린다. 조해진 작가의 「하카타 역에는 눈이 내리고」에서의 눈은 기억을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우연히 여배우의 다이어리를 주운 한 여인이 여배우의 삶을 따라 일탈을 시작하는 김이은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에서의 눈은 주인공의 탈선을 모른 척 동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김현영의 「눈의 물」에서 눈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나타난다.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흰 도화지 같은, 눈 본연의 속성을 잘 그려낸 김유진의 「눈 위의 발자국」도 실려있다. 이 일곱 편의 소설은, 가장 뜨거운 여름날, 작가들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인 셈이다.